[펌] 요즘 샐러리맨의 비애

글쓴이
cantab
등록일
2004-05-09 17:3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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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래 기사를 보니 남의 일 같지가 않습니다. 반드시 화이트칼라 샐러리맨들만 겪고 있는 어려움이 아닙니다. 연구직들도 심지어는 젊은 교수들도 겪고있는 문제입니다. 경향신문에서 퍼왔습니다. "경영진의 기호가 소비자나 고객에 우선한다는 사실"은 개발자의 입장에서 가장 고민스러운 일입니다. 전에 모 자동차회사에 다니는 친구에게 니네회사 차 디자인이 왜 그모양이냐고 물었더니 디자인팀에서 아무리 멋지게 해서 올려도 경영진들이 참견을 시작하면 결국은 그렇게 나올 수 밖에 없다고 하던 일이 기억납니다. 시장이 필요로 하는 제품을 개발하는게 아니라 경영층의 의중을 살펴 알아서 기는 제품을 개발한 다음 그걸 억지로 사원들에게 할당줘서 물건파는 시스템, 이것이 우리 기업의 현주소가 아닌지 모르겠습니다. 그런놈들이 밖에서 강연이랍시고 이공계 졸업생들 수준이 어쩌고 실무능력이 어쩌고 하면서 떠들어 대는 인간들은 아닐런지요...



20대 후반의 이모씨는 지난해 말 국내 굴지의 대기업에 입사했다. 대학 졸업 후 결코 짧지 않았던 백수 생활. 부러움으로 얼룩진 친구들의 얼굴을 뒤로 한 채 고층빌딩의 회전문 안으로 씩씩하게 들어섰다.

반년 남짓 지난 지금 하루 하루가 죽을 맛이다. 아침 8시에 출근해 밤 9시, 10시를 넘겨야 퇴근할 수 있다. 윗사람에게 ‘찍히지’ 않기 위해선 특별히 할 일이 없어도 멍하니 남아 있어야 한다.

“일만 열심히 한다고 되는 게 아니야. 사내(社內) 실세가 누군지 파악해 충성을 바치는 게 출세의 지름길이지.”

대학 선배로부터 처음 이 말을 접했을 땐 믿기지 않았다. 막상 회의에서 부장이 “아이디어가 신선하긴 한데, 사장님이 싫어하실 것”이라며 한칼에 잘라버리는 것을 보고 절감했다. 경영진의 기호가 소비자나 고객에 우선한다는 사실을.

자기 일만 잘한다고 해서 배겨낼 수 있는 것도 아니다. 낮에는 사무직, 밤에는 영업직이다. 전자회사에 다니면 휴대폰을 팔아야 한다. 그나마도 다행이다. 자동차회사에선 승용차를 몇대씩 떠맡긴다.

은행원에겐 대출과 보험 판매 목표가 할당돼 있다. 어느 부서에 있느냐는 중요하지 않다. 실적이 나쁘면 ‘애사심’이 없다는 뜻이다. 승진 누락과 같은 인사 불이익은 물론, 최악의 경우 정리 대상이 된다. 인사고과 점수를 따기 위해 평소 연락도 안하던 친척, 친구들에게 전화를 걸어야 한다.

영업력이 중시되면서 나타난 또 하나의 현상은 출신 배경에 따른 양극화다. ‘부자 아빠’나 ‘관료 아빠’를 둔 사람은 아무래도 실적이 좋다.

전문직종이라는 변호사와 회계사도 마찬가지. 뒤에 누가 있느냐에 따라 수임 건수가 달라진다. ‘개인 능력’이란 알리바이를 뒤집기 어렵기 때문에 항변도 쉽지 않다. “플러스 알파일 뿐”이라고 하지만, 살다보면 그 ‘알파’가 전부일 때도 있다.

이렇게 숨가쁜 생존 경쟁을 거쳐도 기업의 ‘별’인 임원에 오르는 사람은 몇몇이다.

나머지 다수는 소리 소문 없이 정리된다. 부장 직함을 끝으로 회사 문을 나서는 나이도 40대 후반에서 초·중반으로 내려오고 있다.

이래 저래 사무직들의 어깨는 처질 수밖에 없다. 월급을 얼마나 받느냐도 중요하나, 인간은 자존심을 먹고 산다. 일에 대한 자부심과 가슴에서 우러난 열정 없이 생산성만 높아질 수는 없다.

요즘 이씨는 남들 몰래 공기업 입사시험을 준비하고 있다.

“죄수처럼 ‘나 자신’을 죽이며 살고 싶지 않다”는 것이다. 고생을 모르고 자라난 세대의 배부른 투정일 수도 있다. 그러나 세태를 돌이킬 수 없다면 여기에 맞게 기업 조직과 문화를 재정비하는 게 순리 아닐까.

개혁, 실용, 보수, 진보…. 4·15 총선이 막을 내리자 ‘거대 담론’들이 튀어나오고 있다. 대기업·노사정책을 둘러싼 정부와 재계, 노동계의 힘겨루기가 본격화하고 있다.

그러나 경제의 또 다른 축을 맡고 있는 화이트칼라의 존재에 대해선 아무도 관심이 없다. 노동조합 역시 생산직 중심으로 돌아간다. 사무직 자신들도 “다 그렇게 사는 거지, 뭐” 하고 체념하고 있는지 모른다. ‘로또’ 복권에 1주일을 맡기면서.

딱 꼬집어 말하기 힘든 문화나 겉으로는 표시가 나지 않는 분위기, 사소해 보이는 그런 것들로부터 우리 사회·우리 경제의 균열이 시작되고 있는 건 아닌지 두렵다.

권석천 경제부차장 miladk@kyungh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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