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칼럼] "유너보머(Unabomber)와 쥐라기공원"

글쓴이
최성우
등록일
2002-10-05 07: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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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근 회원게시판(어느 교수님의 말씀?)과 과학기술 Q&A 게시판에 '과학기술이 인류에게 행복을 주는 것인가 그렇지 않은가?'하는 의문과 관련된 글들이 올라왔는데, 이와 비슷한 주제에 관해 몇년 전에 제 나름의 견해를 썼던 글을 첨부합니다. (통신공간에 처음 올린 것은 1996년으로 기억되는군요. 책에는 약간 업데이트와 수정을 해서 냈습니다만....)    
한가지 미리 얘기드리자면, 이런 류의 의문을 품는다는 것 자체가 어리석거나 원래 잘못되었다는 것은 결코 아닙니다.  도리어 과학기술을 하는 사람들이나, 관심이 많은 사람들일수록 비슷한 고민을 해 보지 않은 사람이 드물 것입니다. (저 역시 학교 다닐 때에 많은 생각을 했습니다만...)

다만, 이런 류의 문제의식들이 현실을 제대로 직시하지 못하고 지나치게 '관념적'인 차원에서 머물거나, 한 측면만을 보고 매우 극단적인 방식으로 사고하는 등, 옳바른 실천 방향을 이끌어내지 못하고 엉뚱한 결론으로 치닫는 경우가 많다는 점을 지적하고자 한 것입니다.  
특히 잘못된 과학기술관을 지니고 있는 사람들이, 과학기술을 잘 모르는 일반 대중들을 '혹세무민'하거나 오도할 가능성도 적지 않지요...    
(다만, 아래에서 예를 든 환경 문제 등에 대해서는 구체적인 방향에서 저와 다른 의견이 충분히 있을 수 있다고 봅니다.  저와 견해가 다르다고 해서 무조건 매도하려는 의도는 아니니 오해 없으시길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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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유너보머와 쥐라기 공원

                                                       최성우 (과학평론가; hermes21@nownuri.net)
                                                       - '상상은 미래를 부른다(사이언스북스) 中에서 -


아무튼 지금의 시대는 인류가 물질적으로 풍요로우면서도 인류의 생존이 여러모로 위협받
고 있는 복잡한 시대인 것만은 틀림없다. 과학기술혁명의 급속한 진행으로 인한 생산력의
비약적 증대, 인간 생활 패턴의 변화에 못지 않게 핵무기로부터의 위협, 오존층파괴, 환경오
염 등의 전지구적 생태위기 등 과학기술로부터 파생된 문제들로 인한 심각한 위협에 직면해
있다.
이에 즈음하여 과학기술 자체를 어떻게 바라볼 것인가 하는 시각에 여러 가지 유형이 있을
수 있다. 선도 되고 악도 될 수 있다는 '양날의 칼'로 간단히 규정해 버릴 수도 있겠지만, 과
학기술의 발전이 인류의 모든 문제를 해결해 줄 수 있다는 낙관론에서부터, 과학기술 자체
에 인류비극의 원죄가 뿌리박은 것이니 거부해야 한다는 극단적 비관론까지 스펙트럼은 매
우 다양하다. 문제해결의 관점과 방향 또한 이들에 따라 달라질 수밖에 없다.
그러나 과학기술이 그 자체로서만 따로 존재하는 것이 아니고, 이미 인간 생활의 거의 모
든 분야에 걸쳐서 깊숙이 뿌리박은 현대 사회의 복잡한 구조 아래서, 현상의 일면만을 보고
섣불리 판단하는 것은 문제해결을 위한 올바른 실천을 이끌어낼 수 없을 뿐만 아니라 그 자
체로서 상당히 위험하다 할 것이다.

독자 여러분 중 '유너보머(Unabomber)'가 누구인지 기억하는 분이 많을 것이다. 현대 과학
기술문명을 거부한 채 살았고, 그것에 대한 극단적 증오와 반감에 수십 차례 과학기술자들
에 대한 폭탄테러를 자행하여 많은 희생자를 냈다가 결국 1996년에 체포된 인물이다. 그 동
안 베일에 쌓여있어서 그를 추적하는 수사당국으로부터 유너보머라는 별명을 얻은 주인공이
바로 미국 유명 대학의 수학교수를 지낸 시어도어 카진스키였다는 데에 많은 사람들은 경악
하였다.
그간 '나는 왜 현대기술문명을 증오하는가?' 등의 반문명 선언문을 미국의 여러 신문에 실
리도록 하기도 했으며 한적한 농촌에서 밭을 갈면서 스스로 자급자족 생활을 해온 것으로
알려지기도 했다.
그가 쓴 논문과 그의 행적을 둘러싸고 미국 지식인 사회에서 논쟁이 벌어지기도 하였고,
대중매체들의 반응도 이해할 만 하다는 등의 동정론, 대학교수까지 지낸 이가 그런 극단적
행동을 했다는 데에 대해서 미국사회가 정말 병들고 심각한 지경이라는 식의 자성론 등이
많았으며, 심지어 그를 영웅시하는 분위기도 없지 않았다. 비록 유너보머는 유죄판결을 받고
구속되었지만, 지금도 미국사회에는 그의 생활방식을 따르거나 연구시설에 테러를 자행하는
등 그와 비슷한 사람들이 행위를 하는 사람들이 여전히 있다.  

몇 해 전부터 전세계 극장가를 휩쓸면서 공룡붐을 일으키고 있는 '쥐라기공원'에도 여러 심
각한 메세지가 숨어 있다. 영화 시리즈야 뭐 흥미와 오락을 위주로 만들어진 전형적 헐리우
드 영화의 하나이니 별다른 것을 기대하기는 어려울지 모르나, 마이클 크라이튼의 원작소설
은 한번 진지하게 읽어 볼 만하다
솔직히 필자는 그에게 아주 반했었다.  고생물학, 분자생물학, 지질학, 물리학, 수학, 컴퓨터
공학 등 그 해박하고도 방대한 현대과학지식을 총동원하여 대중적인 필치로 흥미진진하게
써내려 간 그의 소설은, 어릴 적부터 공룡에도 지대한 관심을 가져왔던 필자에게 묘한 지적
흥분과 감회를 불러일으키기에 충분했다. 과학기술의 잘못된 이용에 대한 진지한 경고는 단
순한 공상과학소설 이상의 의미가 있었다.
그러나 그 소설의 곳곳에 나타난 현대과학기술에 관한 저자의 강렬한 암시는, 그것도 고도
의 상업성을 고려한 전략인지는 모르겠으나, 처음에는 필자를 혼돈스럽게 만들었고 그것은
곧이어 약간의 실망스러움으로 바뀌었다. 커다란 몸집으로 지구를 누볐던 공룡이 갑자기 멸
망한 것처럼, 인류도 진화된 두뇌덕분에 이룩한 과학기술 때문에 결국은 멸망하고 말 것이
라는 저자의 최면은 여러 군데에서 발견되었다.

인류 생존의 위기 정도가 정말 심각한 지경인 만큼 많은 지식인들이 생태주의적 세계관에
큰 관심을 기울이고 있다. 그런데 그중 적지 않은 이들이 '과학기술' 자체에 커다란 의문과
회의를 품고 있으며, 자연스럽게 반(反)과학주의로 나아가고 있다. 유너보머도 그 중 한사람
이었을 것이다. 또는 거기까지는 아니더라도, 신(新)과학운동이니, 동양철학적 과학관이니 하
면서 매우 '형이상학'적이고 관념적인 논리들이 펼쳐지고 있다. 반면에 문제에 대한 구체적
이고도 명확한 접근이나 해결을 위한 실천방법은 오리무중인 경우가 많다.
물론 생태주의 자체가 모두 잘못되었다고 볼 수는 없으며, 여기에도 다양한 주장들이 있고
바람직한 실천방안을 제시하고 있어서 필자 역시 개인적으로 관심을 가지고 있는 부분도 적
지 않다. 또한 전지구적 위기에 관한 생태주의자들의 엄중한 경고 역시 결코 가볍게 생각할
수 있는 성질의 것이 아니다. 그렇다고 '과학기술에 문제가 많은 것은 잘 알지만 그래도 어
떻하겠느냐?'는 식의 냉소적인 주장을 하려는 것도 아니며, 과학기술의 발전이 결국은 (환경
문제도 포함하여) 모든 문제를 다 해결해 줄 것이라는 극도의 낙관론이나 기술만능주의를
주장하려는 것은 더욱 아니다.

다만 문제를 좀더 구체적이고도 명확한 관점에서 바라볼 필요가 있다. 과연 현대 과학기술
의 문제, 정확히 말해서 그것의 발달이 파생한 제반 정치, 경제, 사회, 문화의 파행적, 불균
등적 상태 및 인류생존 자체의 위기라는 문제가, '과학기술의 관성적 발전이냐?' 아니면 '그
것의 포기를 통한 인류의 생존이냐?'식의 강요된 양자택일로 해결될 성질의 문제일까?
아니면 개념조차도 모호한, 신과학이니 무슨 'OO토피아'니 하는 관념적인 형이상학이 인류
를 구원으로 이끌어 줄 수 있을까? 물론 '자연을 착취하지 않고, 공생하고 화해하는' 세계관
이나 '인간과 자연의 조화' 등등의 기본적인 취지는 다 좋다.  
환경문제와 관련된 구체적인 예의 하나로서, 원자력 발전소 문제를 들어 볼 필요가 있다.
한때 화석연료를 대신할 '제 3의 불'로 각광받은 적이 있는 원자력 발전은, 인체 및 환경에
치명적인 방사성 폐기물의 처리 및 방사능 누출, 폭발 사고 등의 위험성이 큰 문제로 지적
되어 왔다. 1986년 옛소련의 체르노빌(Chernobil) 발전소 폭발사고 이후, 서유럽과 선진 각
국에서는 지속적인 반대운동에 의하여 원자력발전소가 거의 자취를 감추어가고 있는 반면
에, 우리나라에서는 아직도 원자력 발전에 의한 에너지 의존도가 높고 아시아 각국과 개발
도상국에는 새로운 원자력 발전소가 계속 증설될 추세이다.
원자력발전이라는 기술은 유럽에서는 불안한 것인데, 아시아나 개발도상국에만 오면 갑자
기 '안전'해지기 때문일까? 다른 환경문제도 사정은 비슷해서, 대기오염이나 수질오염도 선
진국보다는 개발도상국 각 지역에서 훨씬 심각한 경우가 많다.

지구온난화 등의 전 지구적 환경위기가 고조되면서 기후 변화협약, 교토 의정서 등 환경문
제의 공동해결을 위한 국제적인 노력도 그 동안 나름대로 진행되어 왔으나, 석유소비 감소
를 우려한 OPEC 회원국이나 경제에의 영향을 우려한 개발도상국 등 각국의 이해관계가 엇
갈려 갈등을 빚고 있다.  
환경문제를 예로 들기는 했지만 다른 분야에서도 비슷한 경우가 많고, 따라서 우리가 흔히
'과학기술 문제'라고 이야기하는 것은 대부분 '과학기술 그 자체'의 문제가 아닌 경우가 많
다. 과학기술과 관련 맺고 있는 현대의 정치, 경제, 사회, 문화, 군사 등 온갖 분야의 모순과
갈등, 파행성 등이 결부되어 투영된 문제인 것이다.

이러한 상황에서 문제의 본질과 당면의 해결과제를 명확히 하여 노력하고 실천하는 것이
필요한 것이지, 뭉뚱그려서 '과학기술 자체가 인류에게 행복을 줄 것이냐, 파멸을 줄 것이
냐?'는 것을 관념적으로 고민한다는 것은 도리어 사치이거나 시간 낭비일 수 있다.  
참고로 살펴보자면, 역사상 반(反)과학주의는 물론 한번도 실천적으로 성공한 적이 없을 뿐
만 아니라 숱한 혼란을 초래하기도 하였다. 과학의 객관성 및 내적 논리를 무시한 채, 과학
기술 자체를 인간적인 것으로 바꾸어 놓겠다는 '낭만적인' 생각은 과거에도 자주 등장한 바
있다.  
프랑스 혁명 직후 '지식귀족에 의해 독점되는 과학이 아닌 민중의 과학'을 주장한 프랑스의
자코뱅주의가 그렇고, '자연을 착취하는, 자본주의 사회의 추상화되고 계량적인 과학이 아닌
자연과 대화하고 화해하는 과학'을 만들려던 19세기 서구 마르크스주의자들의 낭만적인 노
력 역시 실패로 끝났다.

조금 다른 이야기인지 모르지만, 과거 옛소련과 최근 미국에서 있었던 과학과 철학에 관한
논쟁들의 결과를 보더라도, 특정한 세계관에 유리한 방향으로 인위적으로 과학을 몰고 가려
는 발상이 얼마나 덧없는 것인지를 보여준다.
러시아 혁명 직후 보그다노프(Bogdanov) 등의 당 이론가들이 주창한, '부르주아과학을 극
복한 새로운 프롤레타리아과학' 역시 '사회주의 사상의 과학자'를 만드는 데에는 성공했을지
몰라도 '사회주의 과학'은 끝내 이루지 못한 채 알맹이 없이 끝났다. 도리어 나중에 리센코
(Lysenko)와 같은 괴물을 낳고 혼란만 초래하였을 뿐이다.
몇 년 전 미국에서 수리물리학자 소칼(Sokal) 교수가 '첨단 과학이론이 포스트모더니즘의
새로운 과학이 될 수 있다.'라는 주장을 하면서 포스트모더니즘계 철학자들의 주장을 뒷받침
하는 것처럼 보였던 자신의 기고논문이, 사실은 '아무 의미도 없이 날조된 것이며, 이 논문
을 게재한 상대방이 얼마나 무지한가를 시험해 보기 위한 것'이었다는 충격적인 고백을 한
이른바 지적 사기사건이 불거지면서 큰 파문을 일으킨 바 있다.  

필자의 의도는 '대중을 위한 과학기술' 혹은 '인간을 위한 과학기술'을 회피하려 하거나, 과
학기술자들에게 면책이나 면죄부를 주려 하는 것이 결코 아니다. 도리어 과학기술의 담당자
인 과학기술자들은, 자신들의 전문지식을 이용하여 문제 해결에 적극 노력해야만 할 것이다.
그러나 이것이 과학기술, 혹은 과학기술자들만의 문제가 아닌 이상, 사회의 제반 모순과 문
제들을 극복하려는 전반적인 움직임과 궤를 같이 해야할 때에만 성공할 수 있을 것이다.
과학에 대한 막연하고 낭만적인 거부는 과학에 대한 무조건적인 맹신만큼이나 위험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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