석유시대의 종말과 수소 혁명

글쓴이
최성우
등록일
2005-07-20 17: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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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번에 모 대학에서 내는 계간지에 청탁을 받고 쓴 서평적 성격의 글입니다... 국내에는 민음사에서 나온 번역본이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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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한권의 책 - 수소 혁명

최 성우 (한국과학기술인연합 운영위원)


제레미 리프킨(Jeremy Rifkin)은 우리에게도 잘 알려진 저술가로, 현대 과학기술의 발전이 향후 세계의 정치, 경제, 사회, 문화, 환경 등에 미칠 영향을 폭넓고도 깊게 연구해온 인물로 유명하다. 현재 미국 워튼 경영대학원(Wharton School) 최고 경영자과정 교수로 재직 중인 그는 정부의 정책과 기업 등에 자문을 하고 세계 각국에서 강연을 하는 등, 사회적인 활동도 왕성하게 전개하고 있다.
그의 저서 ‘엔트로피(Entropy)’는 우리나라에서도 베스트셀러 반열에 오른 바 있고, ‘노동의 종말’, ‘소유의 종말’을 통하여 사회의 변화와 미래에 대해 신선하고도 예리한 통찰과 분석을 제시했으며, ‘바이오테크 시대’에서는 요즘에도 세계적으로 논란이 되고 있는 생명과학기술 연구에 관련된 여러 문제들에 대한 경각심을 진작부터 일깨운 바 있다.
제레미 리프킨이 2002년에는 ‘The Hydrogen Economy'를 통해서 수소라는 새로운 에너지 수단이 몰고 올 정치경제, 사회문화적 구조의 근본적인 변화에 대해 진단하면서 미래의 방향을 제시하고 있다. 우리나라에서는 ’수소 혁명‘이라는 제목에 ’석유 시대의 종말과 세계 경제의 미래‘라는 부제를 달아서 2003년에 번역, 출간된 바 있다.

우리가 이 책에 주목해야할 이유는 한두 가지가 아니겠지만, 아무래도 이 책의 부제에도 나오는 석유 문제에 먼저 눈길이 가지 않을 수 없다. 산유국이 아니며 나라 전체가 필요로 하는 에너지의 대부분을 수입해야하는 우리나라로서는, 최근에도 고공 행진을 계속하고 있는 국제 유가로 인하여 국민경제에 미칠 부담감과 아울러 미래에 대한 불안감도 떨치기 어렵다. 세계 정치경제적 상황에 따라 국제 유가가 예전에 등락을 거듭한 것과는 달리, 이번의 지속적인 고유가는 일시적인 수급 불균형 때문이 아니라 근본적인 매장량과 채굴의 한계로 인하여 서서히 바닥날지 모른다는 사실이나 우려에서 비롯된 것이라면?
세계 전체의 석유 매장량이나 채굴 가능한 양 등을 정확히 추산하기란 여간 어려운 일이 아니며, 꽤 오래 전부터 지금까지도 낙관론과 비관론이 교차하고 있다. 지구촌의 ‘석유 수명’이 몇 십 년밖에 남지 않았다는 식의 주장은 때로는 ‘양치기 소년의 거짓말’로 치부되기 십상인데, 지난 1972년에 ‘성장의 한계’라는 제목으로 출간된 로마클럽의 보고서가 대표적이다. 석유가 길어야 20년에서 30년 내에 고갈될 것이라고 예측해 큰 충격을 주었으나, 30년이 지난 오늘날에도 생산되고 있기 때문이다.
물론 이 보고서는 새로운 유전이 발견될 가능성 및 채굴기술의 발전 등을 너무 과소평가한 탓에 잘못된 예측으로 이미 밝혀졌으나, 그 이후에 자원 경제학자들이 석유의 미래에 대해 낙관론을 피력하는 계기가 되기도 하였다. 심지어 어떤 지질학자는 석유가 오래 전의 지질시대에 생성된 화석연료가 아니라, 지구의 내부로부터 거의 무한히 공급되는 자원이라는 믿기 어려운 주장을 지금도 펼치고 있기도 하다.

그렇다면 인류가 이용할 수 있는 값싼 에너지로서 ‘석유의 미래’에 관한 진실은 과연 무엇인가? 제레미 리프킨은 이 책의 초반부에서 세계적으로 정부나 기관, 혹은 전문가나 각종 보고서들마다 엇갈리고 서로 상충되기도 하는 전망과 수치에 대해 논하면서, 정치적, 상업적 목적에 따른 수치 조작뿐만 아니라, 각종 ‘귀에 걸면 귀걸이, 코에 걸면 코걸이’ 식의 해석이 용어와 개념 규정의 혼란에서도 비롯되었음을 날카롭게 지적하고 있다.
즉 ‘매장량’이라는 개념 자체를 전문가들이 각각 달리 해석할 뿐만 아니라, ‘자원’이라는 것을 별도로 구분하는 경우도 있다. 또한 그냥 석유라고 뭉뚱그려서 지칭할 경우, 그것이 육지나 연해 지하에서 샘솟는 경질유, 즉 ‘일반유’만을 의미하는 것인지, 그밖에 타르샌드에서 채취한 석유, 중질유, 심해나 극지방에서 퍼올린 석유, 석유 혈암(頁巖) 등의 ‘비일반유’까지 포함하는 것인지 구분할 필요성도 언급하고 있다.
석유 생산량의 추이 및 예측에 관한 매우 유명한 모델로서, 허버트(Hubbert)라는 지구물리학자에 의해 고안된 ‘허버트의 종형(鐘形) 곡선’이 있다. 그는 미국의 석유 생산이 1965-1970년에 절정을 이룰 것임을 일찍부터 예측하여 세계를 놀라게 하였는데, 석유 생산량이 전형적인 종형 곡선을 따라 기어오르다가, 'EUR‘(최종적으로 회수 가능한 석유의 추정 매장량) 중 반이 생산되면 절정에 이른 후 미끄러진다는 것을 그의 그래프는 보여준다.
OECD의 국제에너지기구(IEA)나 비관적인 견해를 지닌 전문가들은 이 그래프에 따라 세계의 석유 생산이 정점에 이르는 시기를 2010년에서 2020년 사이로 예측하고 있다. 낙관론자들은 아직 이보다는 더 시간적 여유가 있을 것으로 생각하지만, 그래도 그 차이는 불과 10년-30년에 불과하며, 저유가 시대가 종말로 치닫고 있다는 데에는 별다른 이견이 없다.

제레미 리프킨이 이 책을 쓰던 2002년 무렵의 국제 유가는 배럴당 24달러 안팎이었으나, 지금은 40-50달러 부근에서 좀처럼 내려올 기미를 보이지 않고 있는 것을 보면, 우리는 머릿속이 여러 가지로 복잡해 질 수밖에 없다. 이미 세계의 석유 생산은 허버트 곡선의 정점을 향해 거의 치닫고 있는 것일까? 정점에서 급격히 미끄러지는 시점이면 국제 유가는 배럴당 100달러, 아니 200달러 이상으로 치솟을지도 모를 일이며, 미래의 에너지에 대해 아무런 준비와 대책 없이 그 시기를 맞이한다면 세계는 지난 1970년대 석유파동 시기의 고통과 혼란을 몇 배 능가하는 재앙이나 전쟁을 자초할지도 우려하지 않을 수 없다.

이 책의 중반부터는 지난 인류 역사상 에너지와 문명의 흥망성쇠, 화석연료 시대의 이모저모 등을 리프킨 특유의 해박하고 방대한 지식을 동원하여 흥미롭게 고찰하고 있다. 그의 예전 저서 ‘엔트로피’에서 선보인 바 있는 열역학적 분석 틀을 다시 한번 차용하기도 하고, 과학기술의 발전과 사회경제적 변화를 아울러 폭넓게 조망하기도 한다.
이어서, 이슬람 세계에서는 석유를 ‘알라의 선물’이라고 부르는 데에서 잘 알 수 있듯이, 중동 등의 특정 지역에 편중적으로 매장된 석유로 인한 지정학적 문제들, 그리고 지난 2001년의 9.11 테러 등에서 극적으로 표출된 바 있는 미국과 이슬람 세계의 정치적 갈등과 향후 전망 등을 언급하고 있다.
또한, 대기 중 이산화탄소의 농도 증가로 인하여 최근에 지구 온난화 및 이상이변의 우려가 더욱 고조되는 데에서 잘 알 수 있듯이, 화석연료의 사용으로 인한 지구촌의 제반 환경 문제들도 다각도로 분석하고 있다. 특히 상대적으로 청정하고 값이 싼 석유와 천연가스가 고갈됨에 따라, 석유 소비국들이 타르샌드, 중질유, 석탄 등의 ‘더러운 화석 연료’들의 채굴에 눈독을 들일 경우, 경제적 타당성을 떠나서 인류 사회와 지구가 지불하여야 할 댓가가 엄청날 것임을 경고하고 있다.
아울러 석유가 에너지 수단뿐 아니라 각종 산업의 긴요한 원료로 사용됨으로써 이룩된 농업 혁명, 인구의 폭증, 전력 등 고에너지의 운송 체계 등에도 주목을 하면서, 화석 연료의 인프라가 여러 결정적 지점에서 혼란과 붕괴에 쉽게 노출될 수 있다는 취약점도 예리하게 지적하고 있다.

이 책의 주제라 할 수 있는 수소에너지의 본격적 이용에 따른 수소 경제의 새벽과 그로 인한 세계화의 재편 등 미래의 변화상에 대해서는, 쥘 베른의 한 SF소설을 인용하는 것을 시작으로 하여 책의 마지막 두 장에서 논하고 있다. 현대 문명의 여러 이기들을 진작에 예측한 것으로 유명한 프랑스의 SF소설가 쥘 베른은, 1874년에 발표한 자신의 소설 ‘신비의 섬’에 등장하는 인물들의 대화를 통하여, 향후에 인류 문명에 필요한 에너지는 물로부터 추출하는 수소에서 얻는 날이 올 것이라 예언했던 것이다.
수소는 매우 독특한 원소이면서 우주에서 가장 많은 원소이다. 원자번호 1로서 가장 가벼운 원소이고, 두개의 원자로 구성된 수소 분자 역시 가장 분자량이 작고 가벼운 기체이며, 끓는점은 영하 252.9 ℃로 극히 낮다. 수소는 연소 효율도 매우 높고 연소 시에 물(수증기)이외에는 아무 것도 생성하지 않으므로, 지구 온난화의 주범으로 꼽히는 이산화탄소나 다른 오염물질도 방출하지 않는다.
인류가 사용해 온 에너지의 ‘탈탄소화’ 경향은 이미 진행되어 왔던 것으로서, 나무, 석탄, 석유, 천연가스 순으로 단위 질량당 탄소의 수가 갈수록 적어지게 된다. 그리고 이러한 탈탄소화 여정의 마지막에는 수소가 있을 뿐만 아니라, 에너지의 형태 자체가 무거운 것에서 가벼운 것으로, 물질적인 것에서 비물질적인 것으로 진보해 온 것을 감안하더라도 미래의 에너지가 수소라는 데에 이의를 다는 사람은 많지 않을 것이다.

그러나 이처럼 장점이 많은 수소는 현재 수준에서 자유롭게 이용하기가 쉽지 않다. 지구 상에 존재하는 수소는 대부분 물의 형태로 결합되어 있기 때문에, 분자 형태의 수소를 얻기 위해서는 전기분해 등으로 물로부터 분해해 내어야만 한다. 이 과정에서 물론 다른 에너지가 소요될 뿐만 아니라, 수소 분자를 생산했다고 해도 자체의 특성 때문에 보관, 이용, 수송 등이 무척 까다롭고 비용도 많이 든다.
즉 수소는 석탄이나 석유, 천연가스처럼 그 차제가 원료이자 에너지의 원천이 되는 것이 아니라, 일종의 에너지 운반체이며 전기처럼 따로 만들어내어야 하는 제2의 에너지 형태임을 간과해서는 안 된다. 따라서 결국 인류의 미래 에너지 문제는 태양광, 풍력, 수력, 지열 혹은 다른 재생 가능한 에너지원을 활용하여 충분한 수소를 생산해낼 수 있느냐가 관건일 것이다.
수소는 또한 차세대 자동차의 동력원인 연료전지의 원료로도 사용된다. 연료전지는 화학반응을 통하여 전기에너지를 얻는다는 점에서 1차 화학전지와 원리가 같으나, 다만 외부로부터 반응물질을 계속 공급해 주기 때문에 충전 없이 지속적으로 전기를 생산해낸다는 데에서 차이가 있을 뿐이다. 연료전지는 1960년대에 미 항공우주국(NASA)이 우주선의 전력 공급용으로 이용하면서부터 관심을 불러 일으켰고, 자동차, 모바일 기기 등으로 실용화 연구가 이루어진 것은 매우 최근의 일이나, 그 개념이 나온 것은 내연기관보다 오랜 역사를 지니고 있다.

연료전지가 주목을 받는 또 하나의 이유는 그 자체가 곧 하나의 미니 발전소가 될 수 있으므로, 송전 방식으로서 ‘분산 전원’이라는 새롭고 혁신적인 시스템의 가능성을 높여주기 때문이다. 즉 현재의 중앙 집중화된 전력 생산 및 공급 시스템을 대신하여, 각 가정, 건물 등에 작은 연료전지 발전소가 들어서게 되면, 모든 사람이 에너지의 소비자인 동시에 잠재적인 에너지 생산자가 될 수 있다는 것이다.
제레미 리프킨은 월드와이드웹(WWW)의 인터넷 통신망에 비견되는 수소 에너지망(HEW)이라는 분산적 시스템의 개념을 제시함으로써, 인류 역사상 처음으로 ‘민주적인’ 에너지 권력 시대에 들어설 수 있으며, 저렴한 수소 에너지는 제3세계를 빈곤의 굴레에서 벗어나게 하여 세계 권력구조의 재편을 가져올 것이라고 주장한다.

최근 산업자원부가 ‘수소 경제 종합 기본계획’을 설립하기로 하는 등, 우리나라에서도 수소 경제 시대에 대한 관심이 크게 높아지고 있다. 시대적 요청을 정확히 반영한 제레미 리프킨의 이 책은 갈수록 더욱 각광을 받게 될 듯하다. 경제학이나 사회과학 전공자, 정책 관련 담당자들뿐만 아니라, 미래를 짊어지고 나아갈 과학도, 공학도 및 일반 과학기술인들이 반드시 읽어 봐야할 책이 아닌가 생각된다. 다만 저자가 과학기술 전문가가 아니므로 수소 에너지나 연료전지 연구개발에 관련된 구체적 과학기술 지식과 정보를 얻기는 어려운 면이 있는데, 이점을 감안하여 과학기술적 동향을 함께 파악해가며 읽는다면 금상첨화가 아닐까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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