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계공학 알려주기 [1]

글쓴이
배성원
등록일
2003-07-02 10:4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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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통 각 대학의 학과 사무실에는 입학 후 신입생들이나 재학생에게 배포되기 위해 제작하는 많은 소책자들이 쌓인다. 관심 가지고 챙기지 않으면 여러분의 등록금으로 만든 그 소책자들은 영원히 빛을 보지 못하는데 더 늦기 전에 한 권씩 들고 가서 화장실 등에서 읽어보기 바란다.
그런 소책자 중 신입생에게 중요할 뿐더러 고교생들에게도 매우 중요한 소책자가 있으니 바로 학과소개 소책자다. 요즘은 인터넷의 웹페이지에 전반적인 내용이 포함되어 있겠으나 장소 불문하고 소일거리로 읽으면서 교양을 키우는데는 책이 최고다. 한권씩 챙겨라.
이 글은 평소 암기에 지친 머리로 도저히 소책자 입수나 웹 서핑에 임할 수 없는 고교생들을 위해 학과를 소개하기 위해 썼다. 그중에서도 기계공학에 관해서만 썼다. 다른 전공분야에 관해서는 나는 모르겠다. 그리고 여기 설명하는 커리큘럼(curriculum)은 80년대 후반부터 90년대 초 중반까지의 대한민국에서 전반적으로 통용되던 것이므로 착오 없기 바란다. 학부제 하에서는 어떻게 바뀌었는지 그것도 나는 모른다.
공대를, 특히 기계공학을 마음에 두고 있는 학생들은 대체로 어릴적 텔레비젼에서 보았던 로보트 만화에서 감명받았거나, 멋진 자동차의 질주를 보았거나 또는 상상하거나, 창공을 날으는 비행기의 아티피셜(artificial)한 공학적 진수에 매료된 경우가 많을 것이다. 이 글이 진학을 앞둔 학생들에게 공학이 추상화나 관념화하는 것을 막고 장래의 직업과 연관된 정확한 현실로서 자리매김 하는데 도움을 주었으면 좋겠다. 평소 비관적 논조로 많은 비판을 받아온 나이지만 본심은 항상 명랑함으로 꽉 차 있음을 알리고 싶은 마음에 간결하고 짤막한 구어체 위주로 코믹스럽게 쓰기 위해 노력하였다. 재미있게 읽기 바란다.

A. 1학년 - 교양필수를 중심으로 소양다지기
교양이라고 진짜 교양 생각하면 큰일난다. 생물이니 물리니 전공도 구분 없다. 일반물리, 일반화학, 미적분학이다. 물리실험, 화학실험 추가된다. 기본적인 프로그래밍 랭귀지도 개설되는 곳이 있겠다. 봄학기에 랭귀지 바로 들어가는건 무리가 있을 수 있으니 대학 생활에 이골이 좀 났을 가을학기에 고려해 보라. 봄학기엔 상기의 교양과목 하기에도 벅차다. 가을엔 할랑하냐고? 안심해라. 상기교양 한학기에 끝내주는 학교 찾기 쉽지 않다. 학생의 수준에 따라서 몇 년씩 두고두고 하기도 하니 조심해라. 매주숙제는 기본이고 혹 가다가 퀴즈로 학생의 혼을 빼놓는 교수님도 있으니 지뢰밭을 지나는 심정으로 수업에 임해야 할 것이다. 이 세과목 모두 평균 텍스트의 두께가 5 cm이다. 실험은 매주 리포트. 각 과목의 세세한 설명은 하지 않겠다.

가. 일반물리: ‘늬들이 뉴튼을 알어? 호이겐스와 프랑크를 알어? 맥스웰로 죽여주께’. 바로 일반물리가 추구하는 정신이다. 다른 모든 공학과목의 베이스를 이룬다. 고등학교 물리와는 색다른 무언가를 느낄 것이다. 함부로 공대 들먹이다가 잘못된 적성 찾아 공대 온 학생들의 제정신을 찾아주는데 톡톡히 역할을 한다. 세세한 과목의 설명일랑 생략하겠다. 요즘은 세상이 이상해서 실제로 해본 사람 말은 더 안 믿더라. 인생에서 일년은 덤으로 누구 잘라줬다 생각해도 된다. 일반물리가 적성에 맞지 않다거나 학점 까먹는 싱크(sink)로 작용했다면 수능 재시를 고려해 봄직하다. 잘못 왔다는 말이다. 정치나 상경계로 가볼 일이다. 간혹 드물게 일반물리 성적좀 잘 나온다고 2학년 과목을 기웃거리는 학생이 있다. 추천하지 않는다. 그 시간에 일반물리 한번 더 보는 것이 낫다.

나. 일반화학: 솔직히 잘 모른다. 주기율표, 분자의 특이 성질...뭐라는지 잘 기억나지 않는다. 삼투현상 그런거 이야기 한다. 화학반응으로 넘어가면 좀 골치 아프다. 이퀴리브리엄(equilibrium)을 뭐라고 하지? 참, 화학평형이라고 하지. 화학반응이 전자의 교환현상이란거 확실히 배우고 그 전자의 배치에 대해서 스핀이니 뭐니 한다. 그..... 바닥상태(ground state)니 뭐니 에너지 이야기와 연계하고 주기율표와도 관련된다. 그다음 화학적인 물질 구분으로 들어간다. 오가닉 컴파운드나 섭스턴스의 구분 등등. 화학식도 배우고..벤젠 등 탄소계 화합물.. 외울거 무지 많다. 이쪽 공부하고자 공대온 옆 친구들을 보면 재미있어 한다. 기죽지 마라. 그 친구들 물리는 잼병이다. 결국 수학이 말해준다.

다. 미적분학: 물리보다 더 제정신 차리게 하는데 특효가 있다. 고등학교 수학좀 했다고 껍죽대다가는 여기서 강펀치 서너번 맞고 바로 퇴장이다. 고등학교 수학? 그게 수학이냐? 완전히 버리고 다시 한다 생각하고 덧셈, 뺄셈에 관한 기억만 가지고 수업에 임해라. 미분까지는 어느정도 버틴다. 적분 들어가면 힘에 버거울 친구들 이중에도 많을 것이다. 그러나 시련은 거기서 그치지 않고 약간의 휴식 뒤에 기하(algebraic geometry)가 또 여러분을 괴롭힐 것이다. 2, 3학년 올라가면 이정도 수학은 약과다 생각하면 그나마 힘이 날까?

라. 각종 실험: 과고 학생들은 대학 입학전에 대충 다 했을지도 모르겠다. 개인적으로 물리실험보다 화학실험이 재미있었다. 실험수업은 주로 2시간 연강인데 학점수(credit)는 짜게 배정하는 경우가 많다. 그러나 필수인데 어찌하리. 게다가 실험전에 꼭 퀴즈보는 열혈 조교도 있으니 조심해라. 화학실험 조교는 어여쁜 누님들이 주로 맡으니 기계공학도로서는 학창시절중에 여자와 한 강의실에 있을 수 있는 몇 안되는 기회중 하나다. 학교 사정이 좋으면 실험 시간에 몇개 부셔 먹어도 양심에 많이 찔리지는 않는다. 물리실험은 프로세스 중심의 리포트가 쓰여지고 화학실험은 결과중심으로 분석되는 경향이 있더라. 쉽게 말해 공진 실험을 하면 두 말굽이 떨어진 거리를 몇개씩 정해서 순차적으로 실험하고 각 포지션의 공진주파수나 엠프를 측정하고 결과작성, 분석후 리포팅한다. 화학은 내 기억으론 '양'적 개념이 중요하다. 그 와중에 산도도 측정하고 칼라도 분석하고..그러나 결국 결과물의 '양'적인 개념에 중점을 두고 실험하는 경향이 있다. 느끼기 나름이다.

마. 랭귀지(language): 게시판에 보면 ‘어떤 랭귀지가 좋아요?’ 라고 철모르게 물어보는 학생들 가끔씩 있다. 좋다고 하면 하던거 버리고 그거 할거냐? 랭귀지는 그런것이 아니다. 학원에서 6개월 짜리 강의 들으면 코딩 좀 할거 같지? 문돌이 사고방식이다. 알려진 알고리즘이나 알려진 팩키지 구성하는데 쓰면 딱 좋은 사고방식이다. 랭귀지 과목은 어떤 특정 랭귀지에 국한되서 신텍스(syntax) 몇개 외우는 시간이 아니다. 설명을 위해 주로 거론되는 랭귀지가 포트란이면 포트란이고 씨면 씨 과목이 되는거겠지. 랭귀지 마인드를 익히도록 노력해라. 아무리 개떡 같고 오래된 gwbasic 이라도 랭귀지 마인드만 있으면 씨로 하는 일 할 수 있게 구성가능하다. 가능해야 한다. 실제로도 가능하다. 그것이 랭귀지다. 강의 막판에 학기 마무리용 텀 프로젝 하는곳 많다. 역시 좀 배웠다고 껍죽대지 말고 소박한거 골라서 해라. 소박하고 참신한 주제를 알차게 하는것- 그것이 배우는 학생이 실속을 챙기는 것이다. 무슨 말인지 알아들었을 것이다.

칼 뺀 김에 내쳐 달려 4학년까지 마치고 싶지만 이거 시간 많이 드는 일이다. 욕심은 금물이다. 차근차근 짬을 내서 마무리 하겠다. 기계공학과 1학년 커리에 대해서 실상을 좀더 알려주시고자 하는 선배들과 요즘 학부제에서는 이러하다는 현장성 조언도 좋겠다. 많은 첨언 부탁한다.

마지막으로, 꼭 하고 싶은 말이 있다. 얼마전에 ‘엔진하고 싶은데 어떤 과 가면 되나요?’라고 물어온 학생이 있었다. 글제목이 기억나진 않지만 그때에도 내가 답글로 엔진을 하기(?) 위해 거쳐야 하는 길을 교과목 중심으로 설명해준 적이 있다. 그때도 그렇고 지금도 그렇고, 이공계를 보는 시각에 많은 오해와 왜곡과 심지어 환상이 있음을 심각하게 느끼고 있다. 여느 단과대학과는 달리 공대는 제대로 하자면 낭만이고 뭐고 찾을 겨를이 없는 것이고.. 자신이 꿈에 바라마지 않던 어떤 특정 분야를 하기 위해선 정말 엄청난 노력이 수반되어야 한다. 의대 진학생이 산부인과 전문의 하고 싶다고 했다면 꽤나 큰 가능성을 보일 것이다. 그러나 이제 기계과 진학하는 학생이 ‘엔진’ 하고 싶다고 해서 실제로 그 일로 즐겁게 연구하는 위치에 있을 가능성은 거의 없다. 흰색 가운을 입고 현란한 계기판을 들여다 보고 막중한 임무를 수행하는 일도 없을 것이며 손끝에서 뭔가 그럴듯한 것들이 쏟아지지도 않는다. 환상을 깨라. 꿈깨란 말이다. 힘들고 고달프게 숙제와 퀴즈에 치이고 날밤을 생으로 까도 졸업후에 여러분에게 주어지는 건..... 여러 게시판에 잘 나와 있다. 당장 신문 사서 읽어 보아도 분위기를 짐작케 할 여러 사건들이 오늘도 일어나고 있다. 꿈을 깨라. 그대들보다 15년..근 20년을 더 산 선배의 충고다. 진지하게 숙고해라. 이공계는 쉬운 길이 아니다.

  • 수박겉핥기 ()

      진학을 절대로 말리시는 글 같습니다. --; 저 학부때엔, '여러분들 고생해서 배웠다는 것 회사에서 다 알고 있다'며 교수님들이 격려해 주셨죠. 그런 줄 알고 버텨냈는데, 학부 졸업할 즈음 되니 기계 회사들이 휘청휘청 망해가더군요. 학부제 졸업생들은 그만큼 괴롭게 공부하고 졸업하는지 모르겠군요. 보상이 없다는 것을 알았을테니 대충 영어나 해서 졸업하는게 최선이라 생각들 할텐데...

  • 사색자 ()

      어, 성원님, 이거 대외비 아닌가요? 왜 이걸 여기서 공개하시나요? 안그래도 망해가는 기계과인데... *^^*

  • song ()

      내가 대학진학때 이런 정보가 있었더라면~

  • 2bgooroo ()

      ㅋㅋㅋ 명언입니다... 여러분들 고생한거 회사에서 다 알고 있따..ㅋㅋㅋㅋㅋㅋㅋ 왜 이렇게 웃기지

  • 배성원 ()

      ^^ 저도 웃기군요. 알면? 그래서? ....라는 의문이 바로 이어지는 코멘트입니다. 그들도 분명히 알고 있겠지요. 그렇다고 조직적으로 기만해서 헐값에 쓰고자 하는 유혹을 떨칠수야 없겠지요. 사랑하지만 헤어진다는 말도 있지 않습니까? 고생한 줄 알지만 대우는 못 해준다.

  • 긍정이 ()

      윽~ 기계공학의 비록을 여기에대 공개하시면 어쩌란 말입니까? 기계공학과 문 닫겠네.. 그래도 멋진 과입니다. -기계공학 학교만 7년이상 다닌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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