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폴레옹과 산업혁명

글쓴이
묵공
등록일
2023-12-10 19: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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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프랑스인에게 나폴레옹은 영웅이자 신화다. 1769년생으로, 변방의 하급귀족에서 출발하여 왕당파를 격파하고 프랑스 시민혁명의 성공을 도왔다. 이 공로로 장군이 되어 전투마다 연전연승하고 쿠데타로 1통령이 된 후 황제에 올라, 유럽대륙을 정복하고 신성로마제국을 해체했으며 프랑스 식민지를 개척했으니 그럴만 하다. 내정에도 힘써 경제적 자유와 평등과 같은 현대 민법의 기초가 된 프랑스헌법을 제정했다.

2. 영화 '나폴레옹'은 꽤 사실에 충실하게 첫째 부인 조제핀과의 관계를 중심으로 그의 저급한 성적 취향, 권력에 대한 탐욕, 불안한 심리묘사 등을 통해 나폴레옹 신화를 해체한다. 영화 끝부분에 51세로 유배지 세인트 헬레나에서 상한 포도주나 마시며 외롭게 죽어간 나폴레옹이 나오는데, 그가 주도한 유럽전쟁으로 300만명의 사람이 죽었다며 그의 업적을 폄하한다. 프랑스인들이 이 영화를 외면할 만하다. 무엇보다 영어로 말하는 나폴레옹이라니!

3. 나폴레옹은 3개월만에 대위에서 중령을 거쳐 불과 24세의 나이로 장군으로 승진한다. 당시 시민혁명 와중에 고위장교가 대거 왕당파측에 가담해 부족했던데다가 나폴레옹이 왕당파 시위대를 제압했기 때문이다. 그는 포병장교 출신으로서 장군이 된 후 그의 몰락의 결정적 계기가 된 러시아 원정전쟁과 워털루전쟁 전 거의 모든 육상 전쟁에서 승리한다. 하지만 트라팔가 해전을 비롯해 아이티 봉쇄 등 해전에서는 영국에게 번번이 밀린다.

4. 나폴레옹이 정치적으로 실권하게 된 배경은 대륙 봉쇄령 때문이다. 그의 집권으로  프랑스가 가장 막강한 유럽국가가 됐던 시기에 영국을 견제하기 위해 내려졌던 것이 부메랑이 되어 돌아왔다. 1760년대의 산업혁명으로 영국의 값싸고 좋은 상품을 프랑스를 포함해 유럽대륙이 널리 쓰고 있었는데 이를 봉쇄하자 러시아를 비롯해 유럽 각국이 반발한 때문이다.

5. 사실 산업혁명으로 증기기관을 함선에 장착하고 값싼 철제 대포로 무장한 영국해군은 범선과는 상대가 되지 않았고 천하무적이었다. 산업혁명은 엔진혁명이자 제철혁명이기도 하다. 영화에서는 자세히 나오지 않는데, 프랑스의 화포는 주로 비싼 구리를 사용한 황동제 대포라 정교하긴 하나 대량생산이 어려웠다. 나폴레옹이 포병장교로서 대승할 수 있었던 한 이유도 보병에서 포병중심으로 전쟁기술이 옮아간 시대 상황 때문이라고 본다. 하지만 그가 몰락한 것도 더 나은 포병화력을 갖춘 영국 때문이라고 본다면, "포로 일어선 자는 포로 망한다."라고 해야 하나? 아니면 "나폴레옹은 산업혁명에 패배했다."라고 해야 하나?

  • 시나브로 ()

    산업혁명 이전 농경사회에서 프랑스는 막강한 힘이 있었을 겁니다.
    유럽에서 가장 넒은 영토를 가진데다가 북서지역엔 넓은 평야가 펼쳐져 있으니 농업에 가장 적합한 나라로 보이거든요.
    프랑스 혁명기와 겹쳐져서 군대가 많이 형성돼 있었던 것도 나폴레옹에게는 좋은 기회였을 것 같고요.

    나폴레옹이 정복사업을 펼치고 있을 무렵에 영국에서 산업혁명의 결실이 나타나기 시작한 것도 어쩌면 운명이라고 봐야 할 듯합니다.
    굳이 제레미 다이아몬드의 총균쇠를 참고하지 않더라도 인류의 흥망성쇠가 과학의 발전과 맞닿아 있음은 너무도 명확합니다.
    징키스칸의 정복도 회전하는 등자(말을 탈 때 발을 디디는 기구)의 덕분이라는 내용을 TV에서 접한 적이 있습니다.

    나폴레옹의 실패가 러시아 원정에서 기인됐다는 세간의 얘기를 아무런 비판의식없이 받아들인 제 자신에 대해 반성할 수 있는 좋은 기회를 제공해줄 것같은 느낌이 묵공님 글에서 강하게 전해집니다.
    베토벤 3번 교향곡의 본래 이름이 '보나파르트 나폴레옹' 이었는데 황제로 등극하는 나폴레옹에 실망해서 '영웅'으로 개명했다는 얘기도 들은 적이 있어서, 민주주의에 대한 시민들의 열망을 좌절시킨 인물일지 모른다는 생각에 어느 정도 부정적 이미지를 가지고 있기는 했습니다.

    영화관에 가서 보지는 못할 듯하고, 넷플릭스에 올라오는대로 감상해보겠습니다.

    좋은 글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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