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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아 이성주기자 칼럼]부끄러운특종, 의미있는 낙종; 이번 배아복제 엠바고 사건 이전에 있던 뒷이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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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덕양 작성일2004-02-18 11: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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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과학기자협회에서 퍼왔습니다.

 "사실 과학 기자들은 세계 일류 과학 전문지에 게재되는 논문에 대해 속보 전쟁을 치르지 않는다.
대신 똑같은 날 기사를 쓰면서 ‘기사의 질(質)’로 경쟁한다."

 -> 과학기자이신 분들 혹은 과학기자로서의 꿈을 가지고 계신 분들은 꼭 새겨두셔야될 내용이군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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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성주  2004-02-18 10:14:15, 조회 : 9, 추천 : 0

적반하장(賊反荷杖)에 안하무인(眼下無人), 요즘 중앙일보사와 홍혜걸 ‘의학전문’ 기자의 행태를 보면 안타깝고 울가망할 따름이다. 필자는 요즘 ‘2년 전 중앙일보 홍혜걸 기자의 일탈행위에 제대로 대처했으면 이런 일을 막을 수도 있었는데…’하는 생각에 요즘 밤잠을 뒤척이고 있다.

2002년 3월 12일 오후 11시경 동아일보 헬스팀장이었던 필자에게 후배 차지완 기자의 급한 전화가 걸려왔다.

“이 선배 큰일 났습니다. 야근 중에 무심코 중앙일보 인터넷판을 보니 홍혜걸 선배가 엠바고를 깨고 배 교수 기사를 써 버렸습니다.”

충북대 생화학교실 배석철 교수팀이 위암을 억제하는 유전자 ‘렁스3(Runx3)’의 기능을 규명했다는 논문이 세계적 권위지 셀(CELL)의 4월 5일자 커버스토리로 게재될 예정이었는데 홍 기자가 엠바고를 깼다는 보고였다. 차 기자는 필자의 지시를 받으며 2월부터 청주를 오가며 배 교수가 지방대의 열악한 연구 환경 속에서 일군 성과를 취재하고 있었다. 다음 날자 중앙일보 1면에 상자기사로 실리면 차 기자의 노력은 빛이 바랠 터였다.

필자는 도무지 이해할 수 없었다. 적어도 셀, 사이언스, 네이처 등 3대 과학 전문지에 논문이 게재될 경우 이보다 언론이 먼저 보도하지 않는다는 것은 대학생도 알만 한 불문율인데 홍 기자가 그것을 몰랐단 말인가? 일단 필자는 동료기자와의 술자리를 파하고 급히 회사로 복귀했다.그리고 차 기자의 보완 설명을 듣고 당시 정동우 사회 2부장에게 자초지종을 보고했다.

“지금 당장이라도 기사를 써 배달판에 넣을 수는 있지만 우리 역시 국제적 엠바고를 깨는 셈이 됩니다. 그렇지 않으면 부장께서 편집회의 때 낙종했다고 곤란을 겪을 수 있습니다.”

부장은 필자의 의견을 물었고 필자는 “셀에 정식으로 논문이 게재되는 날 크게 쓰면 좋겠다”고 대답했다.정 부장은 동아일보 내에서 특종 욕심과 낙종에 대한 부끄러움이 두 번째 가라면 서러워할 기자다. 그런데 그의 입에서 의외의 말이 나왔다.

“그리 해라.”

‘그리 해서’ 동아일보는 ‘부끄러운 특종’ 대신 '의미 있는 낙종'을 선택했다. 대신 4월 5일자에 배 교수의 뜻 깊은 연구 성과와 의미를 사회면 머리기사로 비중 있게 보도했다.

사실 과학 기자들은 세계 일류 과학 전문지에 게재되는 논문에 대해 속보 전쟁을 치르지 않는다.
대신 똑같은 날 기사를 쓰면서 ‘기사의 질(質)’로 경쟁한다. 그래서 차 기자는 두 달 전부터 배 교수를 취재했고, 이번에도 과학 기자들은 질에서 앞서기 위해 선의의 물밑 경쟁을 벌여왔던 것이다.
당시 배 교수는 “홍 기자에게 엠바고를 파기하면 안 되는 이유를 조목조목 밝히며 보도 자제를 요청했지만 받아들여지지 않았다”고 밝혔다.

그런데 우리는 배 교수 논문을 소개한 며칠 뒤 결과적으로 오보를 했다는 사실을 알게 됐다. 동아일보는 배 교수의 논문이 커버스토리로 게재된다고 기사를 썼는데 셀의 맨 끝에 실렸던 것이다. 확인 결과 중앙일보의 홍 기자 때문이었다.

배 교수는 중앙일보 기사가 나간 뒤 셀의 편집진으로부터 “우리 저자의 언론 및 공중과의 대담은 자유지만 셀이 나온 뒤로 제한한다”는 내용의 공식 경고를 받았다.  그는 셀의 편집진에게 전말을 해명하느라 곤욕을 치렀고 결국 그의 논문이 셀의 마지막에 실리는 수모를 당했던 것이다.

당시 이런 사실이 의학 기자들 사이에 시나브로 소문이 났다. 당연히 의학 기자들은 중앙일보 홍 기자의 반칙에 대해 분노했다. 특히 홍 기자는 당시 펴낸 자신의 책에서 "한국의 의학 기자들은 논문 발표 전에 보도를 해서 문제"라고 쓴 상태였다.

의학 기자들은 “흙탕물은 혼자 흐리면서 묵묵히 일하는 다른 기자들을 매도하고 있다”며 대책을 논의하는 단계까지 이르렀다. 이때 필자는 “피해 당사자인 내가 알아서 공론화하겠다”며 다른 기자들을 진정시켰는데 이것이 더 큰 일의 화근이 됐을 줄이야...

필자는 당시 이미 엠바고를 깬 지 두 달이 지난 때여서 문제를 제기해 공론화하기에는 시기가 너무 늦었다고 판단했다. 또 가장 큰 피해자인 배 교수가 소송을 생각하고 있다고 말해 일단 기다려보기로 했다. 하지만 배 교수는 소송을 진행하기에는 할 일이 너무 많았다.

아울러 공론화 과정에서 한국 과학계와 언론 전체가 엉뚱한 방향으로 매도될 수도 있다는 생각이 필자의 머리를 떠나지 않았다. 결국 홍 기자가 양심에 따라 두 번 다시 똑같은 일탈을 하지 않은 것을 믿으면서 이 일을 덮어 버렸다. 그러나 이번 사고가 터지면서 필자의 게으름과 무소신이 더 큰 화를 불렀다는 자책을 하게 됐다. 혹시 경쟁지가 잘못된 방향으로 흐르는 것을 즐긴 측면은 없는가, 단지 게으름 때문에 옳은 길보다는 편한 길을 택한 것은 아닐까….

필자는 현재 회사와 개인의 사정 때문에 과학 및 의료 분야를 떠나 있어 현재 ‘논쟁이 안 되는 논쟁’에 참여하기가 적절치 않다. 그래서 이 문제에 대한 토론에 참가해 달라는 한 방송국의 요청도 정중히 거절했다. 이런 국외자의 눈으로 중앙일보와 홍 기자의 행태를 보면서 무력감, 자책감, 부끄러움이 깊어지는 것을 어쩔 수가 없다.

특히 중앙일보는 언론사에서도 빛나지 않는 곳에서 정도(正道)를 지키고 있는 대다수 기자들을 ‘특종을 시기하는 무능하고 게으른 기자’로 매도했다. 중앙일보는 과학 기자들이 중앙일보 때문에 낙종했다는 사실을 부끄러워하는 것이 아님을 알아야 한다.

과학 기자들은 국제 사회에서 대한민국 과학자와 과학담당 기자들이 기본적인 약속도 지키지 않는다고 알려지는 것이 부끄러울 따름이다. 또 우리 기자 모두가 중앙일보 기자처럼 비쳐질까 민망하다. 특종(特種)은 중앙일보가 생각하는 것처럼 지고지순한 가치가 아니다.

그래서 한국과학기자협회는 국제적 신사협정을 깨는 것이 한국 과학기자들의 풍토가 아니며, 중앙일보 대신 유감의 뜻을 표명한다는 등의 내용이 담긴 서한을 ‘사이언스’ 편집진에 보낼 예정이다. 이는 일탈행위를 한 기자 대신에 보통의 과학 기자들이 세계 과학계에 사과한다는 의미다.

필자 역시, 지금 의학 담당 기자는 아니지만 이 사과의 대열에 동참하고 싶다. 게으름과 잘못된 판단으로 호미로 막을 것을 가래로도 막지 못하도록 한 죄를 조금이라도 덜고 싶은 것이다. 그렇다고 이 부끄러움과 한심함으로 잠 못 이루는 아픔에서 벗어날 수 있을지는 모르겠지만….


댓글 10

소요유님의 댓글

소요유

  전 개인적으로 홍기자의 행태가 얄밉긴 하지만 한편으로 기자로서 해야할 일을 하였다는 점은 인정해 주고 싶습니다.  물론 "원래 기자라는 사람들은 그래"라는 고정관념을 밑에 깔고 말이죠.  뭐, 이런 이야기하면 성추행 당한 여자에게 옷 더렵혔다고 나무라는 꼴이긴 한데  우리 과학기술인들이 연구 결과를 발표하는데에도 전략이 필요합니다. 사실 요즘 우리 언론에 심심찮게 등장하는 과학전문 잡지들이 게재예정 논문을 잡지 발행 이전에 발표하지 못하도록 하는 것도 일종의 마케팅 전략이라고 볼 수 있습니다.

소요유님의 댓글

소요유

  연구자로서 좋은 연구결과가 나오면 여기저기 알리고 싶은 심정은 누구나 이해할 수 있을 겁니다. 그러나 이렇게 알리는 것도 일종의 홍보전략이 필요하다고 생각합니다.  과학전문잡지는 사실은 언론과 보도를 경쟁한다고 봐야 합니다. 이게 전문학술지와는 다른 점이라는 것을 연구자들이 이해해야 할 것 같습니다. 

소요유님의 댓글

소요유

  연구 성과에 있어서도 워낙 홍보나 마케팅이 강조되는 시절이므로  어절 수 없긴 한데 그래도 한템포 늦추어 볼 수 있는 여유가 필요하다는 생각입니다. 이번 사태는 카르텔이 공고한 과학잡지를 비론한 언론 사이의 특종을 둘러싼 파열음이지만  한편으로 우리 연구자들의 마인드와 전략 부재의 문제이기도 합니다. 

heaviside님의 댓글

heaviside

  아 홍혜걸 이양반이 이번 황우석교수건이 처음이 아니였군요...쩝 혼좀 나야쓰겄구만..먼저 특종을 국민들에게 알려야 한다는 사명감에 그랬다고 하던데 조그만 박스기사로 다룬것은 황교수를 두번 죽인일이라고 봅니다. 차라리 외국언론처럼 1면에 다루었으면 덜 꼴뵈기싫을텐데 이번 사건은 생각할수록 안타깝군요

소요유님의 댓글

소요유

  너무 나가는 센세이셔널리즘에 가까운 홍보도 문제지만 공유해야할 사실을 적절한 방법으로 널리 알리지 않아 우리 과학기술인이 저 평가 받는 문제가 보다 심각하다고 봅니다. 우리는 이런 면이 본질이 아니라고 생각하기 때문에 대처에 많이 미숙합니다. 가끔은 헛발질도 하고 말이죠. 내용이 충실하다면 과대포장 문제는 적절한 선에서 이해될 수 있다고 봅니다.  외신이든 내신이든 과학란에 올라오는 많은 과학관련 기사들이 어느 정도 과대포장되어 있습니다. 물론 들어나지 않게 말이죠. 

muroi님의 댓글

muroi

  약속을 깬 그것도 두번이나 깬 홍기자는 영원히 추방되어야 합니다.

김준호님의 댓글

김준호

  사직하는 것을 고려한다고 했는데 고려만하는 것은 아닌지.....

이상훈님의 댓글

이상훈

  홍기자...의료계에서도 기피인물에  속하는 것으로 알고있는데....

아침안개님의 댓글

아침안개

  "특히 홍 기자는 당시 펴낸 자신의 책에서 "한국의 의학 기자들은 논문 발표 전에 보도를 해서 문제"라고 쓴 상태였다." <- 어이가 없네요... 그래도 전 자신의 신념(먼저알려야한다는)에 따라서 행동하는거라 좋게 봐줄려고 했는데 겉과 속이 다른 사람이었군요. 전 다른 언론들의 보복때문에 이런 난리가 난줄 알았는데 실상은 그게 아니군요.

슈나리님의 댓글

슈나리

  요즘 중앙일보가 망할 조짐이보이는군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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