해외기업 R&D 센터 유치 공염불된다

글쓴이
박상욱
등록일
2004-09-29 20:5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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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공계를 억압하고 기술인력의 유동을 가로막는 현재 분위기와, 입법을 추진중인 악법 및 관련대책 등을 볼 때, 정부가 의욕적으로 나서고 있는 다국적기업의 국내 연구소 유치는 공염불로 돌아갈 공산이 크다.

외국기업이 한국에 연구소를 차리는 이유는 매우 단순하다. 첫째, 해당 분야의 숙련된 연구개발인력과 우수한 신규 인력이 공급되기 때문이다. 외국 기업의 연구소라 하여 코쟁이 연구원들이 수백명 들어와 연구를 수행한다고 생각하면 지나친 순진함을 넘어 무식의 극치이다. 둘째, 해당 분야의 산업기반이 튼튼하며 새로운 제품의 테스트베드가 되기에 적당하기 때문이다. 이런 이유로, IBM의 유비쿼터스 연구소나 모토롤라의 휴대폰 연구소 등이 들어왔고, 인텔도 연구소를 내겠다고 선언하는 등, 주로 IT 분야에 연구소 유치가 집중되고 있는 것이다.

독일판 GE라 할만한 지멘스(Siemens)는 경주 근처 작은 읍인 건천에 초음파 진단기기용 발진부품 공장을 운영중이다. 이 공장의 불량률이 낮은 등 성과가 매우 만족스럽자, 아예 세계에 흩어져 있는 관련 공장을 이곳으로 모아오려고 계획중이다. 이미 세계에 두 대 뿐인 고가의 시험장치가 들어와 있다고 한다. 지멘스는 이 제품을 위한 연구소도 한국에 세우고 있다. 벤처 열풍이 가라앉으며 사세가 급격히 기운 메디슨 사의 연구원들이 누구 하나 세계적 대기업 연구소로의 전직 손짓에 가슴 한번 콩닥거리지 않았다면 그것은 거짓말이거나, 그들이 성인군자라는 의미이다.

지멘스를 두둔할 이유도 의도도 없으며 또 메디슨사 출신 인력 10명중 세 명이 메디슨 근무 시절의 자료를 개인적으로 보관하고 있었던 것은 그것이 실제로 지멘스로 넘어가지 않았지만 오해를 불러일으킬 소지가 있었음을 인정한다. 개인적으로는 그들의 부주의함과 부적절한 행동을 책망하고 싶다.(그들의 실수가 이공계 전체에 커다란 암운이 드리우는 데에 악용되고 있기 때문이다. 물론 그것이 기소될 정도의 큰 잘못인지에 대해서는 노코멘트 하겠다) 지멘스는 초음파 진단기기 시장의 메이저이며 우리 기술을 굳이 가져가서 큰 이득을 볼 처지도 아니다. 월급 몇푼 더 받자고 전직한 연구원 몇명이, "기술이 없던 지멘스라는 경쟁 회사에 핵심 기술을 팔아넘겨 우리를 '따라잡게' 한다."는 식으로 감상적으로 접근하면 세계적 웃음거리가 되기 십상이다.

"미국 도요타가 미국 회사입니까, 일본 회사입니까?" 라는 유명한 질문이 있다. IMF이후 외환위기 극복을 위해 외자유치에 힘쓸 당시, 김대중 전대통령이 '국민과의 대화' 생방송 TV 토론에 나와서 한 말이다. 그에 따르면 미국 도요타는 미국땅에서 미국 노동자를 고용하여 미국의 국부 창출에 이바지하고 있으니 미국 회사라는 것이다. 따라서 외자유치, 국내 기업의 외국 매각을 좋게 보자고 주장했고, 많은 사람들이 (울며 겨자먹기였는지는 몰라도) 이에 공감했고, 실제로 많은 알짜 기업과 금융사가 외국에 넘어갔다.

마찬가지 논리로, 한국 지멘스는 한국 회사인가, 독일 회사인가? 인텔, IBM, 모토롤라는 어떠한가? 그들의 연구소는 외국 연구소인가 한국 연구소인가? 앞으로 들어올 연구소들은 어떠한가? 외국 연구소가 국내에 들어오면 이공계 연구인력의 일자리가 창출됨은 물론, 연구성과는 한국인의 머리 속에 남고, 기술 확산과 파급효과 또한 우리나라에 대부분 남는다. 이런 설명조차 필요없이, 한마디로 묻자. 외국 연구소가 국내에 들어오는 것은 반길 일인가? 거부할 일인가?

새로 만든다는 '첨단기술유출방지에관한법률'과 관련 대책 등을 보면, 이공계 연구개발인력의 전직이 제한되고, 특히 외국 자본과 관련된 쪽으로는 더욱 어렵도록 만드는 것으로 보인다. 간단히 말해서, '외국 연구소는 국내에 들어와도 경력 연구원은 뽑기 어렵게 된다'. 어찌저찌 경력 연구원을 뽑아도, 주변의 곱지 않은 시선을 견뎌야 하고, 개인 PC에 전직장에서 묻어온 매뉴얼, 이메일 나부랭이 한두장만 있어도 해당 연구원은 물론, 회사의 주요 자료에 대해 압수수색을 당해야 하고, 전직금지에 관한 소송에 시달려야하고, 큰 역할을 할 것으로 기대하고 데려온 연구원은 검찰에 불려다니고 기소당해 법정에 서느라 정신 빠지고... 뭐하러 국내 연구인력을 쓰겠는가? 신참들로만 연구소를 차릴 수도 없는 노릇이고, 뭐하러 한국에 연구소를 세우겠는가?

비행기로 한시간만 더 날아가면, "어서옵쇼!!! 땅도 그냥 드리고, 세금 혜택도 드립니다. 우수 이공계 인력 펑펑 쏟아지고, 아시죠? 13억 시장.. 아, 네. 기술표준요? 여기 먹으면 엄청 유리해집니다. 에이, 까짓거 우리끼리 표준 따로 정해도 되요." 이런 매력적인 곳이 있다. 기술 수준이나 인적 조건은 조금 딸리지만, 뭐 어떠랴. 소송 당하고 파렴치법으로 몰리고, 기껏 거액 투자했는데 생색 나기는 커녕 '기술 유출의 적'으로 몰리는 곳보다야 장기적으로 백배 낫지 않겠는가?

이공계 살리자고 2년 넘게 줄창 립서비스하더니, 결정적인 사안에서 카운터펀치를 날리는 이 정부는, 과연 진짜 이중플레이의 명수인지, 아니면 부처간 소통에 문제가 있는건지 정말 궁금하다. 또, 외자 유치하고 외국 연구소 유치하자고 여기저기 쑤시고 다닐 때에는 언제고, 외국 연구소가 절대 들어올 마음 안생기도록 뒤통수 탁 치는 것도 마찬가지로 어떤 문제가 있는건지 정말 궁금하다. 국민들의 지적 상상력을 자극하기 위해 이런 앞뒤 안맞는 짓을 벌이는 것인지, 아니면 정말 아무 생각이 없는 것인지... 전자건 후자건 정부가 취할 태도는 아니다. 사냥개 백마리 키워서 늑대 잡자더니, 한두마리 사냥개가 배고파서 뒤뜰의 닭 잡아먹었다고 사냥개 몰살시키자는 것인가. 닭 잡아 먹은 개는 골라내 처벌하면 되는 것인데, 선량하고 사명감 투철한 나머지 사냥개까지 쇠사슬 달고 입마개 씌우고, 말 잘들으라고 개패면, 그런 사냥개가 늑대를 잘 잡을 리도 없을 뿐 아니라, 참다참다 들고 일어나 물 수도 있다는 것을 알아야 할 것이다.

  • 김하원 ()

      적확한 지적입니다.

    네 사실 그렇지요. 외국계기업? 국내기업? FDI 유치 캠페인이 한창일 때 나온 논리가 이거죠. 우리나라에서 고용창출하고 세금내면 우리기업이나 다를바없다...

    그리고는 그회사로 사람이 가면.. 뭐 사안에 따라 불법일 수는 있죠. 하지만, 국가경제를 뒤흔든 나라의 적? 정도가 심합니다.

  • 박지훈 ()

      박수 !! 날카로운 지적입니다. 마지막 문단에. 이공계 살리자고 ~~ 카운터 펀치를 날리는 이 정부는...이 부분이 정확한 표현입니다.

  • 김선영 ()

      최고의 표현입니다.

    회사한번 옮기는데 팬티까지 벗어서 전 직장에 놔두고 와야할 판이군요. 한마디로 어이가 없습니다. 이러다가 삼성에서 일하다 인텔가면 반도체기술을 인텔이 베낄려고 했다고 우기겠습니다. 어이없는 세상... 일반인들도 우리나라가 유출할 기술이나 많은줄로 착각하는 나라.

  • 배성원 ()

      유명 외국기업이나 고위직들에 대해서는 걸고 넘어지지 않겠죠. 우리나라 '법'이란게 워낙 그렇듯이 이법도 내용 자체의 위헌적 요소도 문제지만 더 문제인 것은 조항 하나하나 문구 하나하나가 의미의 확대 축소가 자유자재인 '고무줄 법안'이라는 것입니다. 해석 하는놈 마음대로, 걸고 넘어지고 싶은 놈 마음대로 라는 점입니다.

    빗대어 표현하기 조차도 싫지만 이법이 통과된다면 과학기술계의 국보법이 될 것이 자명합니다. 전직할때 아무 기술적 보호조치를 취하지도 않아놓고, 좋은 기회네 뭐네 가서 잘 하라고 격려까지 해 줘놓고, 간 다음에 인사과 사원들 실적 올릴라고 막 걸고 넘어지면 그대로 3년간 실업자로 지내야 합니다. 하루 300만원 물어내 가면서.... 사실상 그거 줄 수 있는 사람 없지요? 돈 대신 전 직장에선 아마 그 금액에 대해 또다른 각서를 요구할겁니다. 여차하면 걸고 넘어질테니까 이쪽 업계엔 눈길도 주지 말라는 엄포와 함께..

    노예법이란것이 별거 아닙니다. 악의적인 상상이 많이 가미됐지만 저런 사건 한두개만 터지면 모든 일선연구자들은 '올스톱' 이지요. 노예가 무언지... 일만 한다고 노예입니까? 자유인도 일 열심히 죽도록 합니다. 일 안해도 먹고사는것이 해결되는 계층은 노예제 사회에서도 일부 귀족에게나 통하는 거였죠.
    노예란 자기 직업에 대한 자유가 없는 사람을 말합니다. 이 농장에서 일하다가 일당이 안 맞으면 저 농장에서 일할수 있으면 노예가 아니지요.

    이 법이 통과되면,.... 그리고 몇몇 '시범케이스'가 생기고 나면...... 나라 망하는거 그때부터 아마 시간문제일 겁니다.

  • 긍정이 ()

      대체... 카운터 펀치를 기획한자 그 누구인가?

  • 행인 ()

      잘 알고 계시네요... 특히 SIEMENS의 현재 상황에 대해서 잘 알고 계시는군요...... 정말 웃기는 이야기죠........ SIEMENS가 메디슨의 기술을 도용했다????? 말도 안되고 될 수도 없는 이야기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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