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에서의 직장일기...

글쓴이
관전평
등록일
2002-03-09 14: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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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은 이래저래 느낀 점이 많은 하루였습니다.  석달에 한 번 있는 조회(미국에서는 all hands meeting이라고 하더군요.)에서 저는 또 친미주의자가 되고 말았습니다.  제가 조회시간에 느낀점들을 요약해보죠.

미국의 큰 회사중 몇몇은 fellow제도가 있슴니다.  직급과 관계없이 (대충 관계는 있습니다만) 한 분야의 대가로 불릴 정도의 기술적 능력과 업적을 쌓으면 교수처럼 평생을 보장해주고, 어느정도 자유로운 활동을 보장해주죠.  오늘 그런 사람중 하나가 은퇴를 했습니다.  고별강연을 통해서 회사의 미래 비젼에 대해 얘기하더군요.  제가 놀란 것은 사장급의 직위에 있는 그 사람이 갖고있는 광범위한 실무지식, 현상과 미래를 보는 통찰력이었습니다. 다들 막연하게만 생각하고 있는 것들을 수십년간의 경험을 종합해서 명쾌하게 미래를 예측하고 연구개발, 사업전략의 방향을 제시하는 정말 태어나서 처음 보는 수준의 강연이었습니다.  감동적인 강연이 끝났을 때 모든 사람들이 일어서서 끝없는 기립박수를 보냈습니다. 한국에서는 엔지니어의 수명이 40대면 끝이라는 데, 모든 사람의 존경을 받으며 경력을 마감할 수 있는 그 사람은 참 행복해보였습니다.  그 나이까지 그런 기술적 역량을 유지하고, 실제 활동에 참가하다가 모든 사람의 축복속에 은퇴하도록 해주는 fellowship, 참 부러운 제도였습니다.  이사가 되지못하면 40대에 회사에서 밀려나야하고, 그때문에 한정된 자리를 놓고 피터지게 암투를 벌이는 모습으로 기억되는 한국에서의 제 전 직장과는 대조적인 모습이 아닐 수 없었습니다.

조회시간에는 또 각 분기별로 사업실적, 다음 분기의 전망등을 연구소장이 시시콜콜하게 설명해줍니다.  그걸 보면 아 저사람이 얼마나 열심히 일하고 있나하는 걸 알 수 있습니다.  부하보다 몇 배 열심히 일하는 상사를 보면서 전쟁터에서 용감하게 앞서 나가는 장교의 모습을 떠올렸습니다.  미팅시간이 되면 도너츠를 사다가 직접 접시에 담아 써빙하고, 팀원들이 모두들 집에 간후에 메일을 체크하면서 내일 미팅을 준비하는 모습이 제가 갖고있는 미국의 매니저들에 대한 인상입니다.  반면, 부하들이 집에 가나 안가나 감시하고, 부하직원의 공을 가로채는 상사, 이런 모습이 제게 박힌 한국 직장에서의 상사의 전형적인 모습입니다.  왜 제겐 이렇 나쁜 기억만 남아있는 걸까요.  한국에서 새로 오신 분들이 제게 물어보는 질문중의 하나가 휴가갈때는 누구에게 업무를 인계하고 가나요? 하는 겁니다.  한국에서는 자기 밑의 직원에게, 미국에서는 자기위의 상사에게가 정답입니다.  부하보다 열심히 일하는 상사, 월급을 더 받는 만큼 더 많이 일하는 상사, 이런 모습을 한국에서도 볼 수 있었으면 좋겠습니다.  아뭏든 무지하게 열심히 일하는 듯한 연구소장의 모습(이 사람도 fellow입니다)이 너무 보기 좋더군요.

마지막으로, 제가 있는 직장에서 기술개발에 차질이 생겨서 한 육개월을 고생했습니다.  저도 직,간접적으로 고생하면서 욕이 나오는 걸 참을 수 가 없었습니다.  한국에서였다면 책임소재를 둘러싸고 아마 여기저기서 드잡이질이 벌어질만한 상황이었습니다.  저도 도대체 이런 상황을 예측못한 인간을 목이라도 쳐야 속이 시원할 듯 싶었습니다.  그런데 오늘 조회시간에 소장이 그동안 모두들 고생많았다.  우리가 못한 건 누구도 할 수 없는 일이고 이 경험을 통해 비상시에 대처할 수 있는 시스템을 구축하게 되었다, 그동안 문제를 해결하기위해 모두들 수고했다 라며 담당자들에게 면죄부를 주더군요.  문제가 생겼을 때 책임을 전가하기보다는 다 함께 문제를 풀기위해 고민하고, 또 실패로부터 배우려고 노력하는 그의 모습을 보면서 목을 치고 시작하자고 생각했던 제 자신이 부끄러워졌습니다. 

한국에서 제가 만났던 수준이하의 상사들, 미국에서 만난 존경스러운 지도교수, 상사들, 대조되는 모습들속에 제가 미국에 처음와서 들었던 빌 클린턴의 국정연설모습이 떠올랐습니다.  국정과 관련된 수많은 숫자들을 모두 암기해서 연설하면서 we are strong을 외치는 빌 클린턴의 모습과 영삼이 시리즈를 만들만큼 멍청했던 한국의 대통령이 그 상사들의 모습과 어쩌면 그렇게 비교되는 지....

올해 대통령 선거에서도 전 투표권을 행사하지 못합니다. 한 표를 더하지는 못하지만, 부하들보다 더 열심히 일하는 상사, 자신을 부하들에게 봉사하는 사람으로 낮출 줄 아는 상사, 미래에 대한 명쾌한 비젼을 제시해줄 수 있는 상사와 같은 사람이 한국의 지도자가 되는 날이 오기를 마음으로 빕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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