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칼럼] '빅 브라더(Big brother)와 파놉티콘'

글쓴이
최성우
등록일
2002-11-07 14: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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빅 브라더와 파놉피콘

최 성우 (과학평론가; hermes21@nownuri.net)
- '상상은 미래를 부른다(사이언스북스)' 中에서 -


조지 오웰의 공상과학소설 '1984'는 미래 정보화사회의 어두운 면을 그린 디스토피아 소설로 유명하다. 조지 오웰이 먼 훗날이라 생각했던 1984년도 이미 십여 년이 더 지났지만, 그가 이 소설에서 처음으로 등장시킨 '빅 브라더'라는 존재는 오늘날에도 여전히 경종을 울려주고 있다.
산업혁명기인 18세기의 공리주의 철학자 벤담(Jeremy Bentham)은 특수한 감옥을 고안한 바 있다. 즉 간수는 높은 탑에서 죄수를 감시할 수 있지만 죄수는 간수가 감시하는 것을 알 수 없는 특수한 원형감옥을 설계하여, 이를 '파놉티콘(Panopticon)'이라고 이름지었다.
그리고 그는 이러한 구조의 건축물이 감옥 뿐 아니라, 교회, 학교 등에도 바람직할 것이라고 주장하였다. 프랑스의 철학자 미셀 푸코(Michel Foucault)는 이러한 파놉티콘의 원리가 현 사회의 감시와 통제의 기본이 되었다고 지적한 바 있다.
파놉티콘과 똑같은 구조는 아니지만, 방 안의 죄수는 유리창을 통하여 바깥을 볼 수 없는 반면, 바깥의 사람들은 유리창을 통하여 안쪽의 죄수를 볼 수 있도록 하는 특수한 시설이 영화나 TV드라마 등에서 가끔씩 나온다.

그런데, 몇 년 전 우리나라 정부에서 추진하였던 '전자주민카드 제도'가 바로 파놉티콘이 아닌가 하는 문제가 제기된 적이 있다. 정부측에서는 편리성과 관련 산업의 이익을 앞세워 추진하려 했고, 시민단체에서는 정보의 집중화에 따른 위험과 감시, 통제의 확산 등 오남용, 그리고 해킹과 같은 중대 사고 시의 대책이 미흡하다는 점 등을 들어 강력히 반대하면서 한동안 논쟁이 계속되었다. 결국은 정부측에서 전자주민카드 사업의 포기를 선언하기에 이르러 일단락 되기는 하였지만, 미래 정보화 사회에서 비슷한 경우가 또 생기게 될 가능성도 적지 않다.
꼭 전자주민카드가 아니더라도 사회학자들은 벤담과 푸코의 개념을 빌어 국민의 신상 및 신용 등에 대해서 전자 데이터베이스를 구축하려는 발상은 '전자 파놉티콘'에 다름 아니라고 비판한다. '네트(Net)'라는 공상과학영화에서는 바로 이 전자 파놉티콘이 현실화하였을 때, 해킹 등에 의한 부작용과 위험성이 어떤 것인지를 잘 보여준다.

'21세기의 빅 브라더'라 꼽을 수 있는 대표적인 것이 바로 전세계적인 도청망 '에셜런(Echelon)'이다. 현존하는 빅 브리더, 즉 에셜런의 도감청 시스템에 대해서 1988년 8월 영국의 한 월간지가 기사를 실은 이후 그 정체가 세계적으로 알려지게 되었고, 에셜런에 관한 상세 보고서가 1998년 1월 유럽의회에 발표되기도 하였다. 보고서에 따르면, 미국 주도의 전세계적 통신감청 시스템인 에셜런이 유럽 기업의 산업 정보 및 일반인들까지도 감청을 일삼는다고 한다.
에셜런의 기원은 제2차 세계대전 직후인 1947년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전승 당사국인 미국과 영국은 통신 정보를 공동으로 수집하고 공유하자는 비밀 합의를 하고, 이후의 냉전시대에 주로 공산권 국가들에 대한 군사정보 수집용으로 계획되었다. 그러나 1970년대부터는 군사적 목적 뿐 아니라 다른 목적으로도 사용되기 시작하였고, 더욱 광범위하게 확산되었다.
에셜런은 1972년 미국과 영국이 먼저 시작한 UKUSA라는 국제 통신 감청망에 캐나다, 호주, 뉴질랜드 등 3개 영어권 국가를 포함시켜 이들 회원국을 제외한 전세계 모든 종류의 통신정보를 수집, 분석, 공유하면서 세계 최대의 통신정보 감청시스템으로 발전하였고, 각 나라들의 정보, 보안기관들이 연합된 시스템의 성격을 띄고 있다.

원래의 취지는 국제적인 안보를 위하여 테러리스트나 마약상과 같은 위험 인물들에 대한 정보, 그 밖의 중요한 정치적, 외교적 정보를 수집한다는 것이었다. 그러나 이들이 기업이나 국제무역 등에 대한 정보들까지도 감청하여 자국의 경쟁기업 등에 넘겨준다는 의혹들이 강하게 제기되면서, 에셜런은 국제적인 분쟁거리로 등장하고 있다. 유럽의 대기업들이 수 십억 달러에 이르는 큰 계약건들을 미국의 기업들에게 빼앗긴 이유가, 미 국가안보국(NSA)이 에셜런을 통하여 유럽 기업들의 팩스, 전화 등을 도청하여 미국 기업들에게 넘겨주었기 때문이라는 것이다.
물론 미국과 영국 측은 에셜런은 엄격한 통제를 받고 있으며 이를 이용하여 산업스파이 활동을 한 적이 없다고 강력히 부인하였으나, 에셜런의 최대 피해국으로 보이는 프랑스에서는 법무장관까지 나서서 자국의 개인이나 기업이 정보를 유출 당하지 않도록 주의하고 암호를 철저히 활용하라고 촉구한 바 있다. 심지어 걸프전에서의 승리도 에셜런의 공이 가장 크다는 주장도 나오고 있다.

빅 브라더 수준까지는 아니지만, 국내외 여러 기업이나 기관 등에서 직원들의 이메일을 감시하고 통신이나 인터넷 사용 내역까지 검열하는 사례가 늘면서 사생활 침해 문제가 자주 제기되고 있다. 또한 거래기업 등을 통하여 개인의 신상정보가 부당하게 유출되고 심지어는 속칭 '몰래 카메라'에 의해 일거수 일투족을 감시당하는 경우마저 생기면서 개인의 프라이버시가 심각하게 박탈당하기도 한다.
물론 범죄인의 수사나 국가 안보상의 요청 등 일정 정도의 도감청이나 감시 등이 꼭 필요한 경우도 있겠지만, 정보통신기술이 나날이 발전하는 21세기 정보화사회에서 각 개인의 프라이버시 보호 문제는 중요한 화두로 떠오르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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