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림論 - (3) 치료 과정

글쓴이
abydos
등록일
2004-04-29 14: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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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그림論 - (3) 치료 과정


일반인들을 대상으로 먼저 이 글을 올렸는 취지는 이렇습니다.


이미 우리 사회의 모든 사람들이
모두가 애정결핍이고,

또한 모두가 평생을 '나는 내가 아니에요'하고 살면서
가족을 포함한 모든 남들에게
끝없이 피해를 끼치고 있는 것을 보아온 사람으로서,

쉽고 간단한 글을 보는 것만으로도
자신을 흘깃 돌아보게 할 수 있을 것이고,

이어서 지금까지는 전혀 알지 못했기 때문에
또한 그것이 옳다고 '생각'했었기 때문에 열심히 해왔던

'미친 짓'을 더 이상 그대로 똑같이 계속하지는 못하지 않겠나
하는 것이 이 글의 취지입니다.

물론 이 글을 읽는 것만으로
치료가 되어 건강한 사람이 되는 것은 거의 불가능합니다.

'생각'이란 악마가 그렇게 호락호락한 존재가 아니기 때문입니다.



3부 치료 과정입니다.

우선 정신분석의 치료 구도를 보겠습니다.

정신과 의사를 찾아오는 사람들은 세 부류 중 하나입니다.

첫 번째는, 자신이 어딘가 건강하지 않은 사람이라는 것을 인식은 하지만
그것이 정확하게 무엇인지
또 어떻게 해야 건강한 사람이 되는지 알 수 없어
의사를 찾는 경우입니다.

하지만 안타깝게도 우리 사회에 이런 사람은
극히 드뭅니다.

두 번째는, 자신은 자신이 꽃이라고 '생각'을 하는데
현실에서 보이는 결과가 깡통인 것을 발견하고는
그 이유가 바로 이런 저런 알 수 없는 증상 때문이라고
변명하기 위해 의사를 찾는 경우입니다.

다시 말해 의사를 찾아 나에게 바로 그러한 분명한 이유가 있다는 것을
전문가를 통해 확인받고자 오는 것입니다.

이런 경우, 아이러니하게도 환자들은 '완치'를 원하지 않습니다.

'이런 별 것 아닌 증상으로 5년, 10년을 고생했습니까?
상담을 하면 완전히 해결됩니다.' 라고 의사가 말하면

환자는 그 자리에서는
'그렇다면 해야지요' 하지만
그 다음 약속부터 오질 않습니다.

대신, '그것은 신경전달물질의 이상 때문이라
계속 약을 먹어야 합니다'라고 말해주는 다른 의사를 찾아 갑니다.


세 번째는, 자신이 지금까지 나름대로 평생 동안 최선을 다해서
'나는 내가 아니에요'를 했는데도 전혀 행복하거나 편하질 않고
결국 원하는 것을 얻지 못한 사람으로서,

'나 혼자서는 이룰 수 없으니 전문가의 도움을 받아 보자'는 생각으로
의사를 찾는 경우입니다.

의사의 도움을 받아 '나는 내가 아니에요'를 이루려는 경우입니다.


첫 번째의 경우는 상담 성공률이 매우 높습니다.

그리고 두 번째와 세 번째의 경우는 그보다 떨어집니다.

모든 경우에 있어, 상담의 결과는 다음의 두 가지로 다시 나뉩니다.

첫째는, 상담이 시작되어 얼마 되지 않아
바로 자신이 평생을 '나는 내가 아니에요'하면서
미친 상태로 살아왔다는 것을 처음으로 알게 되는 경우입니다.

이 때 매우 놀라고 당황하지만
이를 부인할 수 없다는 것을 알고는 이를 받아들이는 경우입니다.

둘째는, 자신이 원하던 것을 이루려고
즉 자신이 꽃이 아닌 결과를 보이는 이유가
증상이나 병 때문이라 생각하는 경우이거나,

자신이 혼자서는 실패했지만 전문가의 도움을 통해
결국 '나는 내가 아니에요'를 이루려고 하는 사람으로서

상담이 진행되면서 의사가 다루는 내용이
자신이 원하던 것과는 점점 멀어지고 오히려
자신이 평생 피해왔던 '나는 나예요' 쪽으로 진행됨을 인식하는 순간
상담을 중단하는 경우입니다.


현재로서는 이런 초기과정을 지나
결국 상담이 끝까지 진행되는 확률이 절반을 많이 못 미칩니다.

하지만 시간이 점차 흐르면
그 확률은 절반이 될 것입니다.
그 이유는 4부에서 설명하겠습니다.


이렇게 시작된 정신분석 상담의 구도는 그림 10과 같습니다.

그림10



현실에서는 매우 드물지만 미리 자신에게 문제가 있음을
대략 아는 경우이거나,
그리고 의사한테 와서 자신에게 심각한 문제가 있음을 알게 된 순간

상담의 구도는 그림10과 같은 형태를 취하게 됩니다.


'문제의 나'가 있는데 이것이 바로
'나는 내가 아니에요' 하고 살았던 나이고, 생각이자 악마입니다.

이것을 미리 짐작했거나 아니면 의사로부터 듣고 이를 받아들여
이런 문제를 해결하고자 계속 상담을 진행하는 사람이
'해결하려는 나'이며

상담이 끝날 때까지 '잘못되고 병든 나'인,
'생각'을 보고자 하는 '마음'입니다.


물론 '문제의 나'도 나이고 '해결하려는 나'도 나입니다.

지금까지는 거의 또는 모두 '문제의 나'인 '생각'만 존재했었고,
이 생각이 나를 이끌었습니다.

하지만 의사로부터 '문제의 나'를 지적받는 순간부터
그 '문제의 나'를 보고 인정하는 '해결하려는 나'가 생기는데,

상담 과정은 바로 이 둘 간의 처절한 싸움입니다.


한 쪽은 자연의 원리에 반하여
그리고 말도 되지 않는 목적인 '나는 내가 아니에요'를
끝끝내 이루려는 '생각'이고,

다른 쪽에는 자연의 순리를 따르는 또한 자연의 순리 그 자체인 '마음'으로서

이 둘 간의 끔찍한 갈등이 전개되는 것이고,

결국 '마음'이 '생각'의 존재와 그 모순을 모두 보고 깨닫는 순간
그 모든 '생각'을 없애면서 상담은 종결됩니다.


의사는 거울입니다.

자신의 얼굴을 스스로 볼 수 있는 사람은 없습니다.
그래서 거울을 이용합니다.

마찬가지 원리입니다.

자신은 그 다른 남들보다 자신에 대해 제일 잘 알고 있다고
우매한 많은 사람들은 '생각'합니다.

하지만 이 생각은 다만 자신의 '생각'일 뿐이고
극히 잘못된 '생각'일 뿐입니다.

바로 '생각'이라는 것이 존재하는 이유가
'나는 내가 아니에요'이기 때문입니다.

또한 생각이 존재하는 이유가 어떤 방법을 통해서라도
'나는 나예요'라고 해야 할 상황을 피하는 것이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이런 이전까지의 자신의 입장(생각)을 알고 받아들이면서

이제부터는 나 스스로(해결하려는 나)가 내가 과연 어떠했는지(문제의 나)를
보고 해결하고자,
의사라는 '거울' 앞에 스스로 나오는 것이고

그 '문제의 나'를 볼수록 끔찍하고 또 고통스럽지만
이런 고통을 참아내면서
결국 모든 '문제의 나'를 보고 깨닫고
모든 생각으로부터 벗어나면서
상담은 종결됩니다.


거울은 깨끗해야 합니다.
깨끗하지 못하면 사실을 온전히 비출 수 없습니다.

즉 이러한 과정을 이끌 수 있는 의사(치료자)는 우선 자신이
이러한 과정을 밟아서
모든 생각이 없어진 사람이어야만 합니다.

그래서 온전한 '마음' 상태로 있어야만
모든 '생각'과 사실을 비출 수 있습니다.

본인이 정신과 전문의라 할지라도
이러한 과정을 그저 따라하는 것은 매우 위험합니다.


또한 이 글을 보고
나 스스로 이러한 과정을 해보겠다고 시도하는 것 또한 불가능합니다.

대강 하는 척 하면서,
자신은 했다고 '생각'을 할 것이기 때문입니다.

한다고 해봐야 결국
가상모의(Simulation)에 불과합니다.



상담의 또 다른 중요한 측면을 보겠습니다.

많은 사람들이 의사를 찾아서는
우선 묻는 말이 있습니다.

'어떻게 하면 됩니까?'

이는 비단 정신과 의사를 찾는 사람들만의 입장이 아닙니다.
우리 사회의 모든 분야에서
발생한 모든 문제를 대하는 모든 일반인들과 전문가들의 공통된
병든 '태도'이기도 합니다.

'어떻게 하면 됩니까?'

많은 사람들이 이렇게 묻거나 전문가에게 요구합니다.

마찬가지로 전문가 역시

'이렇게 하세요'라고 답을 줍니다.

이렇게 끝없이 '어떻게?'를 묻고 많은 전문가들이 '이렇게' 하라고
조언을 하고 있는데

우리 사회의 현실은 왜 점차 병들고 미쳐만 가는 걸까요.


간단합니다.

그 모든 '어떻게'가 바로 생각이고
그 내용이 바로 '나는 내가 아니에요'이기 때문입니다.

문제를 가진 일반인 역시
끝없이 '어떻게'라는 생각을 통해 '나는 내가 아니에요'를 하려는 것이고,

또한 모든 전문가들 역시 스스로 이러한 일을 맡아하는 방법을 통해
'나는 내가 아니에요'를 평생 하는 사람들이기 때문입니다.

사회의 모든 사람들이
끝없이 '나는 내가 아니에요'를 결국 이룰 수 있는 방법을
한 편에서는 구하고자 하고,
다른 한 편에서는 끝없이 개발해서 남들에게 권하려고 하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나는 내가 아니에요' 라는 것은
머리 좋은 많은 사람들이 끊임없이 애를 쓴다 해도
결코 이룰 수 있는 일이 아닙니다.

이를 깨닫는 것이 상답입니다.


상담 과정은 '어떻게'가 아닙니다.

의사는 상담이 끝날 때까지 그 어떠한 방법론을 말하지 않습니다.

'어떻게' 하라고 조언을 하는 모든 병든, 가짜 전문가들의 말은
모두 '사기'에 불과합니다.


상담은 '어떻다'입니다.

어떤 것이, 어디에서부터, 또 어떻게 잘못되고 병들어 있는지를
끝까지 계속해서 보는 과정이고,

결국 모든 문제를 다보고 깨닫게 되면서 상담은 종결되는 것입니다.

'아, 그랬었구나 !'


그 어떤 문제이거나 간에
그 출발이 되는 원인을 발견하고 깨닫지 못하면 결국 해결되지 않습니다.

하지만 우리 사회의 어느 분야에서도
당명한 모든 문제의 근원을
시간이 걸리더라도 찾으려는 입장이나 노력은 없습니다.

끊임없이 결과가 '이렇다'이면 '저렇게'로,
다시 결과가 '저렇게'면 '이렇게'로
병든 모습을 끊임없이 바꾸는 것의 연속일 뿐입니다.

대학 입시제도가, 또 교육제도가 수도 없이 뒤바뀌었지만
그 어느 누구 한 사람도
우리 사회의 교육이 점차 좋아지고 있다고 여기지는 않습니다.

물론 이런 문제가 교육 분야만의 문제는 아닙니다.
모든 분야에서 그렇습니다.

6부 우리 사회의 현주소에서
가급적 여러 병든 분야를 보도록 하겠습니다.




다음은 상담의 과정을 보겠습니다.

상담이 시작되어 바로 자신이 어떻게 병들어 있었는지를
설명하는 과정은 그래도 이것저것 설명할 것이 있습니다.

하지만 이후의 상담 과정은 우스울 정도로 간단하고 단순합니다.


상담에서 다루는 것은,
그래서 결국 이루어야 하는 것은 단 한 가지입니다.

'나는 내가 아니에요'하고 평생을 살았던 것을 알게 된 사람으로서,

지난 평생 동안 미친 사람으로 살았던 것을 알게 된 사람으로서,

이제는 알게 된 이상

또한 그러한 사실을 부인할 어떤 것도 없다는 것을 알게 된 이상 ,
나를 나라고 인정해야 한다는 것입니다.

즉, '나는 나예요'라고 하는 것입니다.


너무나 우스울 정도로 간단하지만,
말 같이 간단한 것은 결코 아닙니다.

내가 평생 해왔던 일이 '나는 내가 아니에요'입니다.
이 하나만을 해왔습니다.

반대로 그 어떠한 일이 있더라도,
죽어도 '나는 나예요'라고 해야 하는 상황이 다시 재현되지 않도록
하겠다는 것이 내가 사는 이유였고 또 목적이었습니다.

그런 내가 '나는 나예요'를 한다는 것은
바로 내 모든 것이, 모든 인생이
그것으로 끝장나게 된다는 것을 의미하기 때문입니다.


그 어머니가 깡통을 그렸거나 또는 꽃을 그린 사람이거나 간에
바로 자신의 현실을 인정하고
'나는 나예요'하는 것은

자신이 아무런 가치도 쓸모도 없는 그러한 존재라는 것을 인정하는 것이고,

그 순간부터 영원히 자신에게는
지금까지 평생을 기대하고 소원했었던
꿈과 희망이 모두 사라지는 것을 의미하는 것입니다.

그리고 이것은 다시
'나는 나예요'를 한다면
이후로 나를 아는 세상의 모든 사람들이
이런 가치 없고 쓸모없는 나를 버리게 될 것이라는 것을 의미하며,

결국 '나는 나예요' 하는 순간부터 영원히
나는 모든 사람들로부터 버려져
나 혼자만 남게 되는 것을 뜻하는 것입니다.


그래서 내가 지난 평생을 '나는 내가 아니에요'하면서
미친 사람으로 살았던 것을 알고 인정하면서도

정작 '나는 나예요'를 하는 것은 정말로 어렵고
괴롭고 고통스러운 것이 됩니다.


또한 이것은,
앞에서 이미 설명한 것과 같이

이 사람이 평생 해온,

'엄마, 나는 내가 아니에요(또는 내가 아닌 꽃이에요).
그러니 엄마 나를 버리지 마세요.
엄마 나를 사랑해 주세요'

이 세 마디가 무너지는 것을 의미하는 것입니다.

'나는 나예요'를 함으로써,

깡통을 그린 사람은 어려서 자신이 깡통이기 때문에 사랑받지 못했고
이미 버림을 받았었던 그 상황이 다시 재현되는 것이고,

꽃을 그린 사람은 평생 동안을 숨기고 살았던,
자신의 실제 모습이 꽃이 아니라 바로 깡통인 것이 이제서 드러나면서

이제는 엄마로부터 영원히 버림을 받게 된다는 것을의미하는 것이고
역시 위의 세 마디가 영원히 무너지는 것을 의미하는 것입니다.


그래서 어렵고 고통스러워,

나 자신이 평생을 '나는 내가 아니에요'하면서 살아온 것을 알게 된 후에도
한참 동안을 '나는 나예요'하지 못하고 쩔쩔맵니다.

이 과정에서 이런 저런 생각이 마구 고개를 듭니다.

우선 의사로부터 듣게 된 이 간단한 말이
뭔가 잘못된 것일 수 있다는 전제로
이 말이 틀렸다는 것을 입증하려고 애씁니다.

그리고 의사에게 반박하고 역공을 하기도 합니다.

평소 보지 않던 '정신'과 관련된 서적을 뒤지기도 하고,
다른 정신과 의사가 자신의 문제나 증상에 대해 설명한 부분을
내세우기도 합니다.

이런 과정에서 통상 한, 두 달이 소요됩니다.


하지만 그 어떠한 '생각'을 해보려 해도,
지난 평생을 '나는 내가 아니에요'하고 살아왔다는 것과
이것이 말도 안 된다는 사실,

그리고 '나는 바로 나'라는 사실을 부인할
그 어떠한 논리나 근거가 없다는 것을 결국 받아들이면서

힘이 빠지기 시작합니다.


이것을 확인한 의사는 환자에게 어느 날,

'나는 내가 아니에요'라고 평생을 살아왔다는 것과 더불어,

'나는 나예요'라는 사실을 인정하고 받아들이겠느냐고 묻습니다.


그리고는 이제는 어쩔 도리도 생각할 여지도 없는 것을 아는 환자는
'그렇다'고 대답을 합니다.

여기서부터 힘들고 괴로운 마지막 과정이 시작됩니다.



사진 두 장을 보겠습니다.
먼저 사진 A입니다.

사진A


이 사진과 같이 찍은 사진B와 더불어
대략 12년 전 우연히 찍은 이 두 장의 사진이
내 정신분석의 모든 것이 될 줄은
한참이 지난 뒤에야 나 스스로도 깨닫게 됩니다.

사진A는 치료 전의 모습입니다.
쓸쓸하고 초라하고 또 고통스러운 나입니다.

이렇게 낮은 곳에 위치한 쓸모없고, 가치 없는 존재이기 때문이고,
또 그래서 평생을 정상을 향해 조금이라도 더 올라가려고
기를 쓰고 안달을 해왔습니다.

'나는 내가 아니에요'라고 평생을 해왔습니다.

하지만 이것을 아는 순간 그것이 아님을,
또 그것은 있을 수도 없고 또 미친 것임을 알게 됩니다.

한참을 버텨보지만 더 이상 버틸 수 있는 아무런 근거도
또 그러한 것은 있을 수 없다는 것을 알고는
그 동안 모든 힘을 써서 산 정상으로 올라가려던 것을 결국 포기하게 됩니다.


이를 좀더 강조하기 위해 도식으로 보겠습니다.
그림 11입니다.

그림11


나는 그 동안 산 정상과 나를 잇는
아무리 당겨도 끊어지지 않는 단단한 밧줄을 잡고
계속해서 당기고 살았었습니다.

잘 때나 깨어 있을 때나,
그 어느 순간도 놓지 않고 끝없이 당기고 있었습니다.

혹시라도 이를 놓치게 된다면
나는 바로 내가 되는 것으로 내 모든 것이 끝장나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상담을 통해
더 이상 이것을 붙잡고 있을 이유나 근거가 없다는 것을 받아들이고
결국 줄을 자르게 됩니다.

내가 이 줄을 자르게 되면
내 평생의 모든 희망이 사라지게 됩니다.
그것을 알고 나는 줄을 자르는 것입니다.


그 다음은 초등학교 자연에서 다루는
그런 내용이 뒤따르게 됩니다.

그 동안 온통 모든 힘을 주어 정상을 향했던 모든 힘을 빼는 순간,
나무는 그 탄력으로 인해 반대편으로 나가떨어집니다.

이 과정이 고통스럽습니다.

그래서 많은 사람들이 다시 이 과정에서
어떻게든 힘을 주고 버텨보려고 합니다.

여기에서 '힘'을 준다는 것은
바로 다시 '생각'을 하려고 한다는 것을 의미합니다.

의사는 다시 그 생각을 지적해 주고,
환자는 다시 이를 받아들이면서 끝까지 떨어집니다.

이 상태가 그림 12입니다.

그림12


전체 상담을 통해 이 순간이 가장 고통스럽습니다.

하지만 이 순간이 끝은 아닙니다.

처음 줄을 끊기 전인 위치였었는데, 줄을 끊게 되면
나무는 그 반동의 힘으로 그 정반대의 위치까지 내려갑니다.
하지만 나무는 반동을 일으켜 처음의 위치 쪽으로 다시 튕깁니다.

가장 고통스러운 상황을 겪으면서 환자는 자신도 모르게
이로부터 도망가려고 본능적으로 '생각'을 하게 됩니다.

내가 나라는 사실에서 벗어나 예전 해오던 대로
다시 어떤 '생각'이라도 하려고 합니다.

이 과정이 그림 13입니다.

그림13


결국 줄을 끊은 나무는 1부터 시작해서
2, 3, 4의 위치로 진동을 하다가 5의 위치에 도달합니다.

하지만 아직 완전히 진동이 멈춘 것은 아닙니다.

다시 말해,
나를 나라고 인정하고 받아 들여 '나는 나예요'를 했지만
아직도 나는 내가 나인 게 싫고 또 고통스럽습니다.

그래서 이제는 거의 힘이 빠진 상태이지만 그 마지막 힘을 주고
어떻게든 버텨보려고 합니다.

하지만 '나는 내가 아니에요'라고 살았던 것이
결코 말이 되지 않는다는 것과,

끝장이 날지라도 결국 내가 바로 나라는 것을 부인할 수 없기에
마지막으로 힘을 빼면서
이 사람은 이 순간 비로소

'나는 나예요'가 되고,
이제서야 평생 처음으로 나를 나라고 하는 상태가 됩니다.


이 상태가 그림14입니다.

그림14



그런데,

평생을 '나는 내가 아니에요' 하면서 쓸데없는 힘을 주고 살다가
상담을 통해 이런 자신이 미쳤었다는 것을 알게 되었고,
'나는 나예요' 하면 모든 것이 끝장난다는 것을 알고
'나는 나예요'를 했고,

마지막까지 힘을 주다가 모든 것을 버리고 힘을 빼면서
비로소 내가 나인 상태가 되었는데,

이 순간 이 사람은 평생 꿈도 꾸지 못했던
신기한 것을 처음으로 체험하게 됩니다.


평생을 '나는 내가 아니에요'하면서 살았습니다.
그렇게 생각하고 또 그렇게 되어야 비로소 행복해진다고
한 시도 빼지 않고 변함없이 '생각'했었기 때문입니다.

마찬가지로
혹시라도 '나는 내가 아니에요' 하는 것이 실패하기라도 해서
내가 나인 것이 그대로 드러나게 된다면
내게는 영원히 불행과 고통만 남게 되고
내 인생은 그것으로 끝장난다고 '생각'했었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모든 힘을 뺀 직후 이 사람이 겪는 것은
끝없는 고통이 아니라,

어떠한 고통도 더 이상 없는 상태가 됩니다.


이를 묻는 의사의 질문에 이 사람은 비로소 이를 확인하고는
무척 놀랍니다.
순간 어리둥절하여 이 내용을 믿지 못합니다.

하지만 다시 확인을 해봐도 자신에게는
더 이상 어떠한 고통도 남아있지 않음을 확인하지 않을 수 없습니다.


'고통스럽습니까?'라는 질문에 아니라고 합니다.

'불행하십니까?'라는 질문에 역시 아니라고 합니다.
'행복하십니까?'라는 질문에도 역시 아니라고 합니다.


꿈에도 '생각'한 적이 없었지만,
그 원리는 간단합니다.

기대가 없으니 더 이상 실망도 없다는 간단한 원리일 뿐입니다.

그리고는 비로소 알게 됩니다.

내가 그 동안 평생 고통스러워했던 근본적인 이유는,
내가 이렇게 낮은 곳에 위치해서
아무런 쓸모도 가치도 없는 존재여서가 아니라,

바로 그러한 잘못된, 있지도 않은, 말도 안 되는 '생각'으로 인해
평생 동안 쓸 데 없이 무리한 힘을 스스로 주었었기 때문이라는 것입니다.

즉 평생을 되지도 않을 것을 기대했었기 때문에
끊임없이 실망을 한 것이고
그래서 고통스러웠던 것입니다.

다시 이를 벗어나고자 또 다른 더 큰 기대를 한 결과
더 큰 실망과 고통이 계속 되었던 것이라는 것을
비로소 깨닫게 되는 것입니다.

결국 '나는 바로 나'라는 것을 받아들이고
모든 기대를 버림으로 해서
또한 모든 고통으로부터 벗어나게 된 것을 깨닫게 되는 것입니다.


더 이상 어떤 불행도 없습니다.
그렇다고 행복한 것도 아닙니다.

내가 가치가 있는 것도 또 없는 것도 아닙니다.
그런 것은 의미가 없습니다.

나는 이제야 비로소
행복과 불행이라는 생각이 만든 대극으로부터
영원히 해방된 것이고,

영원히 자유를 얻은 것입니다.


이제는 더 이상 행복해지려고 안달할 이유도 없고,
또한 불행해질까봐 두려워할 필요도 없습니다.

그리고 이제야 비로소 깨닫게 됩니다.

행복과 불행은 실제로 존재하는 것이 아닙니다.

이들 대극은 단지 '생각'이 빚어낸 상상에 불과합니다.


'천국과 지옥은 사람들 마음속에 있다'는 말이 있습니다.

비슷하기는 하지만 이 말은 지극히 잘못된 말입니다.

천국과 지옥은 사람들의 '생각' 속에 있습니다.
실제로 존재하지 않는, 사람들의 생각이 만들어낸 허상인 것입니다.



이런 것들을 모두 깨닫게 된 상태가 다시 사진B입니다.

사진B


아무리 들여다보아도 사진 속의 나무는
그 어떤 방향으로도 힘을 주고 있지 않습니다.

나무는 오로지 평안하고 편안합니다.

이제서야 이 사람은 비로소 '내가 나인 나'가 됩니다.

그런데 평생을 잘못 '생각'하면서 산 것과는 달리
내가 나라는 것이 아무런 문제가 없습니다.
어떠한 고통도 없습니다.

이 시점이 비로소 내가 나인 시점이고,
또 태어나서 처음으로 내가 나를 보고 만나는 시점입니다.

그리고 앞으로는 영원히 내가 나라는 것을
그 어떠한 흔들림도 없이 기꺼이 받아들이게 되는
자신감의 출발점이기도 합니다.

마찬가지로 나를 사랑하게 되는 그래서 평생 동안 나를 사랑하면서 살게 되는
출발점이기도 한 것입니다.


실제 상담 과정에서는 이 과정이
똑같은 두 단계로 진행이 됩니다.

하지만 그 부분은 생략하겠습니다.


'나는 내가 아니에요'라는 것이 바로 '생각'입니다.

이런 생각으로만 살던 사람이
이러한 '생각'이 말도 안 되는 것이었음을 받아들이고
그러한 자신이 미쳤었다는 것을 받아들이고,

'나는 나예요'하는 고통스러운 과정을 받아들이면서
오로지 내가 나인 상태가 되면서

이 사람에게는 더 이상 그 어떠한 생각도 남아있지 않게 됩니다.

'나는 나예요'를 마지막에서 받아들이고
마지막으로 힘을 빼게 되면 자신은 끝장이 나는 것이고,
이후로는 죽는 그 마지막 순간까지
내가 바로 나라는 것으로 인한 무한한 고통의 연속일 것으로 여겼던 주체가
바로 잘못된 '생각'이었습니다.


하지만 이런 내용을 그대로 받아들여 마지막 힘을 뺀 순간부터

자신에게는 그 어떠한 고통도 남아있지 않다는 것을
처음으로 느끼는 주체가 바로 내 '마음'이고,
이것이 평생 처음으로 '나'를 느끼는 '진정한 나'이며
바로 생각에서 해방된 '마음'입니다.

이 '마음'이 처음으로 눈을 뜨고 나를 보는 것입니다.


이어 이 마음에 내 주위가 비치는데
가장 먼저 비치고 드리워지는 것이 바로 내 아이들입니다.

즉 난생 처음으로 이 시람의 마음에 이 사람의 아이들이
느껴지기 시작한 것입니다.

그동안 내가 그려왔던 깡통이나 꽃 그 어느 것도 아닌,
그저 신기하고 신비로운 아이들 그대로의 모습이
처음으로 마음에 드리워집니다.

'이게 내 아이들이구나.
이런 아이들을 그동안 말도 안되는 그림을 그려
괴롭혔었다니...'


이 순간 빛의 속도로 이 사람의 아이들 역시
이 사람의 마음을 감지합니다.

사랑을 처음으로 감지하고 느끼는 것입니다.


사랑은 어떻게든 노력한다고 되는 것이 절대로 아닙니다.

'나는 내가 아니에요'라고 평생을 살았던 바로 그러한 '생각'이
없어진 순간으로부터만 가능한 것이고,

'생각'이 없어져 마음만 남게 되면
배우고 연습하지 않아도 저절로 되는 것이 또한 사랑입니다.



글이 이미 길어졌지만 두 가지를 더 다루겠습니다.

첫 번째로서, 정신분열병 환자가 단지 상담만을 통해
그것도 단지 2개월만에 더 이상 평생 동안
스스로 재발할 수 없는 상태가 됨으로써 환치된 얘기입니다.

대략 1년 전 가상의 세계와 그림論을 보게 되면서
이에 따른다면 정신분열병 환자를 포함해서 모든 정신질환의 환자는
완치가 가능한 것이 됩니다.

하지만 10여 년간 현장에서 수많은 정신분열병 환자를 보아온 나로서도
이것이 실제로 가능할 것인지에 대해서는
장담만을 할 수는 없는 것이기도 했습니다.

하지만 다음에서 마지막으로 다루게 될 여러 신체적 질환들이
이미 해결되는 것을 본 나로서는 안 될 일도 아닐 것 같았습니다.


작년 9월 때마침 찾아온 정신분열병 환자에게
상담을 권했고 다른 경우보다 더 조심스런 마음으로 시작을 했습니다.


환자는 지난 4년간 정신분열병 상태로 살았었고,
나를 찾아오기 전날까지 대략 한 달반을 입원했었던 사람입니다.

상담이 시작되었고,
환자는 '나는 내가 아니에요' 하면서 평생 살아왔다는 것을
순간 받아들였습니다.

간단한 내용 같지만 결코 간단한 일만은 아닙니다.
내가 지난 평생을 미친년으로 살았었다는 것을 안 순간,
이 사람은 이 순간부터는 미친 사람이 아닙니다.

이 직전까지 평생 동안,
그리고 정신분열병을 앓았었던 지난 4년여 동안
자신이 미쳤다는 사실을 모르고 살았었습니다.

미친 사람은 자신이 미쳤다는 것을 모르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순간,
자신이 바로 직전까지 평생 동안
'나는 내가 아니에요' 하면서 미쳐 있었다는 것을 알게 된 순간부터

이 사람은 더 이상 미친 사람이 아닙니다.



그리고 이어 지난 4년 이상 복용해 오던 약을 끊도록 권했습니다.

이 상황에서 환자는 극도로 불안해지기 시작했습니다.


하지만 환자의 정신분열병 상태가 악화되는 것이 아니었습니다.

환자는, 다른 어떤 사람도 마찬가지이지만,
고통스러운 현실로부터 도망가 더 편해지기 위해
가상의 세계를 만들고 이 안으로 피신했었습니다.

하지만 이 환자가 불안해하고 불안정해진 이유는
상태가 악화되어서가 아니었습니다.

이 환자는 지금까지 살아오던 중에 가장 고통스러웠던 것이고,
그 이유는 지난 날 동안 '나는 내가 아니에요' 하면서 살았었다는 것과
또한 자신의 정신분열병 또한 '나는 내가 아니에요'를 하기 위해
자신이 만든 가상의 세계에 불과하다는 것을 알았기 때문에,

이제는 나는 바로 나라는 현실이 아무리 고통스러워도
더 이상 다른 어떠한 가상의 세계나
더 이상 정신분열병의 증상을 유지할 수 없다는 이유로
극단적으로 고통스러웠던 것입니다.

즉 환자는 다시는 이러한 가상의 세계 속으로 도망갈 수 없어서
괴로웠던 것이고,

다르게 표현하자면
더 이상 미칠 수가 없어서, 미칠 지경이었던 것입니다.


환자는 수차례에 걸쳐
자신이 마치 재발한 것처럼 의사에게 보이려 했습니다.

현실을 받아들이고 그 엄청난 고통을 감수하는 것보다는
이미 오랫동안을 그렇게 해온 것처럼
차라리 정신분열병 상태로 사는 것이
훨씬 더 편했던 것을 알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의사는 이를 쉽게 봅니다.
그리고는 힘들지만 받아들이라고 했습니다.

환자는 다시 정신분열병 상태로 되돌아가려고 애썼지만
그렇게 될 수가 없었습니다.
그건 단지 '나는 내가 아니에요'라고 하기 위한
'가상의 세계'인 것을 이제는 알았기 때문입니다.

이제는 더 이상 정신분열병 환자가 아닙니다.

이렇게 되는데 대략 2개월이 걸렸습니다.


환자는 점차 정신분열병 환자처럼 행세하려는 시도를 포기하기 시작했고,

이어 오래지 않아,
'나는 나예요'를 받아들였습니다.

그리고는 역시 위에 설명한 신기한 경험을 했고,
'생각'에서 깨어나면서,

이제는 영원히 다시 재발하거나
아울러 사는 동안 그 어떠한 가상의 세계를 만들 필요가 없는
상태가 되었습니다.

아직 상담 중이고,
종결까지는 마무리 단계를 남겨두고 있습니다.


하지만 대략 4년간을 끊임없이 망상과 환청 속에서 살던 환자가
이미 지난 4개월 동안 약을 끊은 상태에서
그 어떤 증상도 보이지 않고 지내고 있습니다.


어떤 정신질환이거나 간에,
또는 그 어떠한 증상도 아닌 '생각'을 동원해서
'나는 내가 아니에요'를 해왔던 사람이거나 간에

모든 생각으로부터 벗어나
완전히 건강해지는 데는 대략 6개월이 걸립니다.


또 다른 정신분열병 환자의 경우는 더욱 특이합니다만,
다음 기회에 다루도록 하겠습니다.



마지막으로 신체질환에 대해서입니다.

내게 와서 상당을 하는 사람들은 위에 말한 정신분열병 환자 두 사람과
의부증을 보인 다른 한 사람을 제외하면
나머지 대부분은 그 어떤 노이로제 증상조차 보이지 않았던 경우입니다.


지금 유학중인 딸의 상태를 걱정한 어머니,

아들이 7세부터 심한 틱(Tic) 증상을 보여 혹시 군대를 빼볼까
찾아왔던 어머니,

그리고는 이미 이곳을 찾아 상담을 하고 부부관계가 아주 좋아진 것을 보고
자신도 부부 사이에 문제가 있다며 찾아온 사람 등등입니다.

하지만 이들 모두 자신들이 평소 '생각'하며 살았던 것과는 달리
자신들이 심각하게 병들어 있다는 것을 알게 되고
상담을 한 것입니다.


그래서 어떤 보이는 정신과 증상은 거의 없었지만,

상담 과정에서 이들이 제각기 다른 많은 신체질환들을
오랜 동안 가지고 살아온 것을 알게 됩니다.

21년간, 상담 중에도 기관지 확장제를 꺼내 흡입할 수밖에 없을 정도의
천식을 앓았던 부인,

대학 때부터 시작된 만성 활동성 간염이
이제는 간경화와 간암의 초기에 와있던 남자,

그 동안 수년간 내게 왔지만 권하는 상담 대신 약만 먹었던 사람이
오랜만에 와서는 그 동안 심근 경색으로 쓰러졌었고,
심장에 인공혈관을 삽입했다는 남자,

어른 나이가 되면서부터 발 관절에서 뼈가 밖으로 자라나와
그 기간 동안 편안한 신발만을 신고 살았던 부인,

5년 전 위암 수술을 받은 남자,

만성 C형 간염으로 나이 40인데 언제 죽을지도 모르는 상태로 살아온
40대 부인 .

고등학교 때부터 시작되어 성인이 된 후에 각막이식술을 받았던,
원추 각막이라는 희한한 병을 앓았던 40대 부인.

엄마가 꽃을 그렸지만 고교 입학 과정에서
자신이 깡통인 것을 보고는 이 무렵부터 류마치스열이 생겨
사경을 헤맸었던 여고생, 등등.


이들 모두가 상담을 통해 바로 자신의 신체질환과 증상이
그 이유를 모르는 어떤 것이 아니라,

바로 이러한 신체질환을 통해
극단적인 고통상황으로부터 벗어나
결국 '나는 내가 아니에요'를 하려 했다는 것을 깨닫고 확인했습니다.


21년간 천식을 앓던 부인은 상담을 시작한지 1년 반 정도가 되면서
모든 천식 증상이 없어졌고,
이후 지난 몇 년간 다시 증상이 나타난 적이 없이 살고 있습니다.

앞으로 다시 나타날 수도 있지 않겠느냐?

아닙니다.

본인 스스로가 , 그 질병을 통해 '나는 내가 아니에요' 했었다는 것을
알게 된 지금, 그리고 또한

이제는 모든 '생각'으로부터 벗어나 건강한 삶을 살게 되면서
더 이상 그 어떠한 정신질환이나 신체질환을 통해
'나는 내가 아니에요'를 할 필요가 없어졌기 때문에
재발 또한 불가능하고 또 그럴 필요가 없습니다.

만성 활동성 간염을 가졌던 남자는,
이런 내용을 상담 내내 의사에게 말하지 않았었지만,
상담을 마친 후 간 검사를 해보니
만성 활동성 간염의 상태가 정지된 것 같다고 말합니다.

발 관절 때문에 고생한 부인은
바로 그 발의 문제가 자신의 어머니가 어려서부터
'여자는 발이 작아야 예쁘다는 말'을 들으며 자랐다는 것에서
비롯된 것임을 알게 된 순간부터 발의 증상이 모두 없어졌고
이제는 원하는 어떤 구두도 신을 수 있다고 합니다.


신체질환을 가졌던 다른 사람들은
다시 재발하거나 악화될 수 있는지
현재로서는 물리적으로 확인할 방법은 없는 것 같습니다.

하지만 그들 모두가 이러한 신체질환들이
바로 이를 통해 '나는 내가 아니에요' 했었다는 것을 깨달았다는 점에서,

또한 이미 '생각'이 없어져서 건강해진 이상
다시 이런 신체질환이 재발될 이유가 없다는 것을
본인 스스로 알고 있다는 점에서

다시 재발을 염려하거나 또 염려할 필요가 없다는 것을
모두 알고 있다는 것입니다.


이런 경험을 통해 내린 결론이 바로,

세상의 모든 문제를 포함해서
모든 정신질환과 대부분의 신체질환이 결국 '생각'으로부터
비롯된다는 것이고,

바로 그 '생각'의 내용이 '나는 내가 아니에요'라는 것입니다.




그 과정이 매우 고통스럽기는 하지만,
문제의 해결은 간단합니다.

'나는 나예요' 하면 되는 것입니다.


나는 나입니다.

이것은 그 어떤 생각이나 노력을 통해서도 바꿀 수 없는 '사실'이고,

또 내가 바로 나인 것은,
내가 생명을 부여받아 이 땅에 오게 된 이유이자 목적입니다.


그리고 내가 평생 수행해야할

내 인생의 과제입니다.


그러한 내 인생의 과제를 시작함에 있어,
가장 먼저 해결해야 하는 기초 과정이

바로 '나는 나라고 하는 것'으로 시작되는 것입니다.


나를 나라고 해야,

그 때부터 내가 내 인생에서 수행할 과제를
비로소 시작할 수 있습니다.


계속해서 '나는 내가 아니에요'만을 하고 있다면
나는 아직 내 인생을 시작하지도 못하고 있는 것입니다.


하지만 안타깝게도

이 사회의 모든 사람은
아직도 '나는 내가 아니에요'만을 하고 있고,

그래서 다들 병들어 있습니다.



4부 마트로시카 원리에서는
바로 이런 우리 사회가 다른 나라와 어떻게 다른지,

또 인류가 서기 2,000년을 통과하는 것이 어떤 의미를 가지고 있는지
설명하고 비교해 보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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