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림論 - (7) 맺음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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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bydos
등록일
2004-04-29 14:3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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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것저것 조금씩 빠진 것이 있어
맺음말 치고는 그리 짧을 것 같지는 않습니다.


얼마 전, 신문에서 설문조사를 한 결과를 보았습니다.
우리 사회가 건강하지 않다고 보는 사람들이
90%에 육박한다는 내용입니다.

이 때 만약
'우리 사회가 건강하지 않은 바로 그만큼, 당신이 건강하지 않다'라는
설문을 같이 조사했다면 답은 어땠을까요?

쉽습니다.
'그렇다'고 응답할 사람은 10%도 안 될 것입니다.

이 게 우리 사회의 현주소입니다.


또한 바로 얼마 전, 다시 매스컴에 보도된 내용입니다.

한 학생이 왕따를 당하는 동영상이
인터넷을 통해 퍼졌고
급기야는 그 학교의 교장이 자살을 했습니다.


우리 사회에 이제는 더 이상 특별할 것도 아니다싶을 정도로 만연해 있는
'왕따' 문제.

원인은 간단합니다.

부모가 아이에게 '너는 너가 아니어야 한다'고 강요한 결과입니다.

왕따의 가해자나 또는 피해자 모두
사랑확인과정에서 실패한 아이들입니다.

다시 말해 애정결핍의 피해자들이고,
악마가 그린 그림의 피해자들입니다.

우선 가해자.

이들의 부모 역시 아이에게 무조건 남보다 앞서야 한다고 강요했습니다.
꽃을 그릴 수도 있지만 대부분 깡통을 그리는 경우입니다.

아이는 자신이 꽃이 아니고 바로 깡통임을 잘 알고 있습니다.
그래서 괴롭습니다.

또한 그래서 '나는 내가 아니에요'를 하고 싶은데,
쉽지 않습니다.

이 때 찾는 방법 중 하나가 바로 왕따입니다.
자신이 이미 깡통이지만 주위를 돌아보니 자신보다 더 한심하고 못한
그런 아이가 있습니다.

그런 아이를 대상으로 삼아 괴롭힙니다.

부모에게서 더 정확히 엄마로부터 사랑받지 못해 생긴 분노를
자신보다 약한 그래서 도저히 반항하지 못하는 그런 아이에게
뿜어내는 것입니다.

특이한 것은 당하는 아이가 아무런 저항도 하지 않고
그저 당하기만 할 경우 가해를 하는 아이는 더욱 화가 난다고 합니다.

바로 그렇게 아무런 저항도 없이
꼼짝없이 당하는 피해자를 보면서,

가해를 하는 아이는 바로 자신이 자신의 부모에게
그렇게 아무런 저항도 하지 못하고 당했던
바로 자신의 모습을 발견하면서 더욱 분노가 일어나기 때문입니다.

결국 가해를 하는 아이는 부모로 인해 만들어진 분노를 표현하는 것이고,

동시에 자신보다 못한 그래서 바보 같이 당할 수밖에 없는 아이를 괴롭히면서,
자신은 이런 아이보다는 나은 괜찮은 아이라는 것을
확인하고 또 주장하려는 것입니다.

다시 말해 '나는 내가 아니에요' 하는 것입니다.


왕따에서 피해자 역할을 맡는 아이 역시 마찬가지입니다.

이 아이 역시 사랑받지 못했습니다.
그래서 생긴 집착과 분노를 가지고 있습니다.

하지만 가해자와는 달리 이 아이는 그 분노를
자기 자신을 향해 뿜어냅니다.

즉 가해자가 분노를 밖으로 뿜어낸다면,
피해자 역할을 맡는 이 아이는 그러한 분노를
자신의 안으로 뿜어내는 것입니다.

내용 역시 창녀를 선택하는 아이의 입장과 비슷합니다.

'당신들이 그렇게 대한 내가 어떻게 되는지 봐라' 하는 것입니다.

또한 이것은 다시 '당신들이 그렇게 대했으니 그렇게 된 것이다'라고 하는
것으로서, 역시 '나는 내가 아니에요'를 하는 것이기도 합니다.

하지만 이러한 내용은 철저히 마음속에만 숨어 있습니다.

부모를 향한 분노가 가시화될 경우,
아이는 이러한 자신의 분노로 인해
더 이상 부모로부터 사랑 받을 수없는 상태가 되는 것을
스스로 자초하는 것이 되기 때문입니다.


또한 이 아이는 이런 역할을 맡는 과정을 통해,

'나는 내가 아닌데, 나쁜 아이들이 이유 없이 괴롭혀서 그렇다'고 하면서
결국 '나는 내가 아니에요'를 하는 것일 수도 있습니다.


피해자 역할을 맡는 아이의 가장 극심한 동기로서 이런 것도 있습니다.

즉 자신은 결국 '아무리 해도 안 되는 그런 아이'라는 것을
증명하려는 것입니다.

'나는 나예요'라고 하는 것 같이 보이지만 그렇지 않습니다.

이 아이는 '나는 아무리 노력을 해도 결국 되지 않는 그런 아이'라는 것을
증명해 보임으로써,

'내가 원래 그런 아이로 운명적로 태어났으니,
그것은 내 탓이 아니다'를 주장하는 것이고

이것 또한 '나는 내가 아니에요'를 하는 것입니다.


결국 가해자 피해자 모두 애정결핍의 피해자로서
분노를 안으로 또는 밖으로 터뜨리는 반대의 극끼리
공명(共鳴)을 일으킨 것이고,

가해자로서, 또는 피해자로서
끝없이 다른 생명과 자신의 생명을 파괴하는 것입니다.

이는 섹스의 경우에서
가학증(Sadist)과 피학증(Masochist)이 만들어지는 것과
같은 원리이기도 합니다.


이 사건의 결과인 교장의 경우 역시 마찬가지입니다.

'나는 나예요'를 할 수밖에 없는 상황에 직면하게 되면서
이런 파괴적인 방법을 통해
끝까지 '나는 내가 아니에요'를 한 것입니다.

자살은 그전까지 '나는 내가 아니에요'라고 하면서 살았던 사람이
어느 순간 할 수 없이 '나는 나예요'를 할 수밖에 없는 상황이 되면서,

이 상황에서 '나는 나예요'를 하게 되면 겪게 될
견딜 수 없는 고통을 피하는 극단적인 방법입니다.

즉 자살 또한 나를 나라고 하지 않기 위해 택하는 방법으로서
결국 '나는 내가 아니에요'를 끝까지 하는 것이고,

이 또한 미친 것입니다.



이렇게 사랑을 받지 못해 사랑이 없는 사람들은
끝없이 자신과 또한 서로를 파괴합니다.
이러한 방법을 동원하면서까지
끝끝내 '나는 내가 아니에요'만을 하는 것입니다.

이것이 또한 우리 사회의 현주소입니다.


이제는 깨어야 합니다.

나는 나입니다.
이것 하나가 모든 문제를 해결합니다.



여기서 우리 사회에서는 상대적으로 흔한
몇 가지 질환의 경우를 짧게 보도록 하겠습니다.


먼저 정신질환으로서 강박장애 또는 강박 신경증입니다.

'생각'을 하는 사람이라면 평생을 사는 동안 크거나 또는 작은
강박증상을 갖지 않았던 사람은 거의 없을 것입니다.

강박증상은 자신의 의도와는 상관없이
또한 이러한 생각이 아무런 의미가 없음을 아는데도 불구하고
그 어떠한 생각이 거듭 떠오르는
강박사고(强迫思考, Obsessional Thinking)와

이러한 생각이 의미가 없는 것을 알면서도
이런 생각에 따라 행동하게 되는
강박행동(强迫行動, Compulsive Act)이라는

두 가지 증상의 조합으로 나타나는 노이로제입니다.

그 대표적인 예로서
첫 째는 문을 잠그고 나갔지만 '잠그지 않고 나온 것 같다'는 생각이 들어
다시 문까지 돌아가 다시 확인하는 Repeater 타입과,

둘째는 외출을 하고 돌아와서는 그 동안
손잡이 등에서 세균이 뭍은 것 같아 돌아온 후 열심히 닦는
Washer 타입이 있습니다.

이 외에 정도가 좀 덜하기는 하지만
차창을 스치는 전주의 숫자를 세기도 하고,
보도블록을 걸을 때 두 개씩 또는 세 개씩 반드시 걸어야 편한 경우 등
그 경우의 수는 매우 많습니다.


강박증의 직접적인 원인은 '자기 스스로 용납할 수 없는 끔찍한 충동'입니다.

집착의 경우도 있고 분노의 경우도 있습니다.

집착의 경우, 예를 들어 무엇인가를 취하고 싶습니다.
하지만 정상적인 방법으로는 불가능합니다.
그래서 그것이 큰 죄임을 알지만 이런 방법으로라도
취하고 싶은 충동이 이 사람 마음에 끊임없이 솟아납니다.

'스스로 용납할 수 없는 끔직한 충동'이니 만큼
보통 사람들이 잠시 생각할 수도 있는 그런 예들은 아닐 것입니다.


또한 분노의 경우도 마찬가지입니다.

당연히 화를 낼 수도 있고 또한 그러한 것으로 인해
엄청난 죄책감이나 낭패감을 겪을 필요가 없는
그러한 정도가 아닌 경우입니다.

그 대표적인 경우가,
자신이 아무리 노력해도 이런 자신을 칭찬해주기는커녕
끝없이 나무라고 비난하기만 하는 부모가
차라리 죽어버렸으면 하는 충동의 경우입니다.

이런 충동을 순간 느낀 이 사람은
엄청난 위기에 빠집니다.

만약 이런 충동이 가시화되거나
그렇게 되지는 않더라도 이러한 충동을 본인이 다시 느끼게 되는 것만으로도
끔찍하기 때문입니다.

이렇게 되면, 결국 '나는 나예요'가 되는 것이고,
나는 부모를 향해 이런 충동을 갖는
인간으로서는 아무런 쓸모도 가치도 없는
또한 파렴치한 놈이 되는 것이고,

또한 그럼으로써 더 이상 사랑받는 것은
영원히 불가능해지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이러한 충동을 느낀 사람은 이런 충동을 어떻게든
마음 깊이 묻어 두거나 또는 마음으로부터 씻어 내려고 애씁니다.

강박 행동의 의미가 이것입니다.

즉 자신의 마음속에 있는 충동이 밖으로 새나가지 않도록
끝없이 문단속을 해야 합니다.

그래서 결국 이러한 자신의 현실과는 다른,
현관문과 관련된 증상으로 대체되면서 본인 스스로는
이러한 고통에서 벗어나게 됩니다.

또한 마찬가지로 이런 더러운 마음을
어떻게든 씻어내려는 의도에서 출발해서,

그와 비슷한 다른 가상의 세계가 형성되면서
즉 '병균이 뭍었을 것이다'라는 '생각'으로 대체되면서
이 사람은 현실에서의 고통으로부터 벗어나게 됩니다.

결국 강박증상 역시
자신의 현실문제인 '스스로도 용납할 수 없는 충동'에서 생기는
'죄책감'을 다른 증상 즉 가상의 세계를 만들어 대체하면서,

'나는 내가 아니에요'를 하는 것에 불과합니다.


강박증상의 해결은 의외로 간단합니다.

의사는 이러한 환자의 내면을 간단한 개인력(個人歷)과
가족관계를 듣고 확인한 후에
환자가 증상이 발현될 무렵 느꼈던
용납할 수 없는 충동을 찾아내서 확인시키기만 하면 됩니다.

하지만 환자는 이 과정에서 매우 고통스러워집니다.
모든 가상의 세계가 고통스러운 현실을 피하기 위해
만들어진 것이기 때문입니다.


현재 강박증상을 이해하고 또 치료하는 원리는
주로 '신경전달물질의 이상'이라는 견해입니다.

하지만 그렇지 않습니다.

감기에 걸리면 열이 나고 몸살이 생깁니다.
이것은 감기 바이러스에 감염된 결과
체내에 프로스타글란딘(Prostaglandin)이라는 물질이 유리되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아스피린이 바로 이 프로스타글란딘이라는 물질을 감소시켜서
열도 떨어뜨리고 통증도 떨어뜨리는 것입니다.

즉 열이 나는 것과 몸살의 근본적 원인이
프로스타글란딘은 아닌 것입니다.

바로 감기 바이러스 때문입니다.


만약 어떤 아이가 왼손잡이인데 엄마에게 꾸중을 듣거나
친구들에게 놀림 받은 후에
자신도 오른 손의 힘을 키워보겠다고
계속 오른 손에 무리한 힘을 준다고 가정해 봅시다.

당연히 오른 손의 근육은 피로가 쌓일 것이고
또한 체내에는 젖산이 높아질 것입니다.

이 아이가 아파서 병원에 왔을 때
그 원인을 젖산이라고 해서는 안 될 것입니다.


신체의 원리와 같이,
생각도 어떠한 부분을 무리해서 특히 어떤 한계를 넘어 사용한다면
이와 관련된 신경전달물질은 증가할 수밖에 없습니다.

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신경전달물질 자체를
병의 원인이라고 할 수는 결코 없습니다.

또한 이렇게 '생각'을 이용하여 만든 가상의 세계를 통해
자신의 현실에서의 고통으로부터 도망가고자 하는 사람에게
신경전달물질의 이상이라고 하면서 약을 주는 것은

이 사람의 병을 고치는 것이 아니라
오히려 이 사람으로 하여금 환자가 되도록 돕는 것일 수 있습니다.


앞에서 예로 든 정신분열병 환자가
그 동안 평생을 '나는 내가 아니에요' 하면서 살았다는 것을 받아들이고
이어 약을 끊을 것을 권유받고 약을 끊은 뒤
한 동안 약을 다시 처방해줄 것을 강하게 요구했었습니다.

약 자체의 안정 효과 때문이 아니었습니다.
바로 약을 먹음으로 해서 자신이 정신분열병 환자인 것이 입증되기 때문이고,

'나는 내가 아닌데, 이러한 결과가 나온 이유가 바로
신경전달물질의 이상으로 인해 생긴 알 수 없는 병 때문이다'라고
할 수 있기 때문이었습니다.

결국 약을 먹는다는 것 자체가
'나는 내가 아니에요' 하는 환자의 병적인 기대를
충족시켜주는 것이 됩니다.



다음 신체질환 두 가지를 보겠습니다.
당뇨와 고혈압입니다.

이 두 가지 질환을 가지고 있는 사람들은 많습니다.
또한 신기하게도 두 가지를 함께 가지고 있는 사람들이 많습니다.

정신질환의 원리에 의해 심리적인 부분을 간단히 보겠습니다.


우선 당뇨병입니다.

쉽게 말해, 당뇨병은 집착의 산물입니다.

비유로 말하겠습니다.

나는 2,000cc 자동차입니다. 최대 110마력을 냅니다.

그런데 어떻게든 '나는 내가 아니에요'를 이루기 위해 끝까지 집착합니다.
하지만 내가 발휘할 수 있는 힘만 가지고는 역부족입니다.

어차피 '나는 내가 아니에요'는 아무리 한다고 해도
이룰 수 없는 것이기 때문입니다.

이 사람은 다시 기를 씁니다.
엔진의 실린더 안에 있는 연료를 다 태워도 110마력에 불과한 상황에서
결국 엔진의 실린더 사이를 흐르는 윤활유까지를 태우려고 합니다.

그 결과 당뇨병이 됩니다.

신기하게도 다음의 고혈압과 더불어
사회에서 무엇인가 큰 것을 해보겠다거나
또한 큰일을 실제로 하는 사람들에게 많은 질환이 당뇨병이기도 합니다.

집착이 남들보다 더 크기 때문입니다.

결국 포도당을 분해해서 인체의 에너지를 생산하는 장치가
과부하로 인해 파괴됩니다.


이에 반해 고혈압은 분노의 산물입니다.

집착과 분노 모두 애정결핍으로 인해 만들어집니다.

'나는 내가 아니에요' 라고 집착을 해보지만,
쉽게 이루어지질 않습니다.
이 때 분노가 솟아납니다.

하지만 특히 자신이 남들 앞에서 체면을 세워야 하는
그런 사람들은 쉽게 이런 분노를 쉽게 터뜨릴 수 없습니다.

터뜨렸다가는 더 이상 '나는 내가아니에요'를 주장할 수 없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고통스럽고 불쾌하지만 속으로 누를 수밖에 없습니다.

이런 분노가 혈관계에 미친 결과가 바로 고혈압입니다.


고혈압은 그래도 분노로 인해 만들어지는 신체질환 중에는
부드러운 것에 들어갑니다.

협심증과 심근경색이 바로 분노의 결과이고,

신체질환 중에서 가장 끔찍한 경우라 할 수 있는
암(癌) 역시 분노가 만들어내는 가장 극단적인 결과입니다.

물론 모든 암(癌)의 원인이 오로지 분노라고 말하는 것은 아닙니다.
체르노빌 원전사고와 같이 암의 첫 번째 원인은
인간이 만든 공해입니다.

하지만 같은 조건에서도 암에 걸리는 사람과 걸리지 않는 사람이 있습니다.
이러한 변수가 바로 심리적 요인일 것이고
그것이 바로 분노입니다.

분노를 결국 드러내면 나는 그 순간으로부터 영원까지,
'나는 내가 아니에요'를 할 수 없는 것과 동시에
영원토록 '나는 나예요'가 되는 것입니다.
그러면 끝장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고혈압, 협심증, 심근경색 그리고 급기야는
암(癌)까지 동원해서라도
끝끝내 '나는 내가 아니에요'를 하는 것입니다.


이런 고혈압과 당뇨를 같이 가지고 있는 사람들이 많습니다.
이유는 간단합니다.

집착과 분노는 같은 시간 만들어져,
동전의 앞뒷면과 같이 그 크기가 같기 때문입니다.



이렇게 '생각'은 모든 정신질환과 또한 대부분의 신체질환들을 만듭니다.

그 생각의 목적은 한 가지.
죽는 날까지 '나는 내가 아니에요'를 하는 것입니다.

이러한 병적인 모든 생각이 바로 사랑이 없음으로 인해 생겨납니다.
다시 말해 엄마가 아닌 악마의 그림으로 인해 만들어집니다.


그림은 병든 엄마가 아이가 태어나는 순간 그 그림의 원형을 그립니다.
하지만 아무리 악마라 하더라도
아무런 근거도 없이 깡통이나 꽃을 그린다는 것은 마음에 걸립니다.

그래서 거의 대부분의 엄마들은 아이가 조금 더 커서 대략 3살이 될 무렵,
그래서 아이가 스스로 움직이고 또 자신의 행동을 보일 무렵
감추어 두었던 그림을 드디어 내보입니다.

만약 깡통을 그린 아이가 3살 무렵 집 안에서 놀다가 실수로 컵을 깬다면,
'무슨 애가 이렇게 칠칠치 못할까' 할 것입니다.

하지만 꽃을 그린 아이가 같은 행동을 했을 때 엄마의 마음에는
'애가 참 동작성이 좋구나' 하는 그림이 다시 확인될 것입니다.


대개의 경우 악마인 엄마는 그 아이로부터 자신의 그림을 입증할
어떤 가시적인 증거를 찾을 수 있는 3살(만 2세) 무렵
그림을 확정(Confirm) 짓습니다.

이 그림은 평생 변하지 않습니다.


흔히들 어느 집에 가서 어린 아이들을 처음 볼 경우
우리 사회의 첫 인사가
'너는 아빠 닮았구나' 또는 '엄마 닮았구나'입니다.

하지만 대개는 이 아이들의 부모로부터
넌 누굴 닮았다는 얘기가 처음 시작될 것입니다.

이 '닮았다(look after)'라는 별 것 아닌 것 같은
한 마디가 바로 그림의 출발입니다.

즉 절대 해서는 안 되는 말입니다.


아이는 부모를 통해 세상에 오지만,
아이는 부모와는 상관없는 독립된 생명체입니다.

내 병적인 동기로 인해
성질 나쁜 남편을 '닮았다'라거나,
깐깐한 제 할머니를 '닮았다'는 것으로 그림을 그리는 것뿐입니다.

또한 이럴 경우,
'콩 심은데 콩 나는 식으로 애가 그런 것이지,
내가 악마로서 그림을 그린 것이 아니다' 라고 변명하기에
아주 쉽기 때문입니다.

이렇듯 그림은 그려집니다.



하지만 문제가 있으면 그 해법 또한 있는 법입니다.

또한 인류는 이 과정을 밟을 수밖에 없었던 것이고
이제는 그 생각으로부터 깰 때가 되었습니다.


그 엄마가 상담을 통해 자신이 평생을 통해
'나는 내가 아니에요' 하고 살았고
또한 그런 일환으로 자신의 아이들에게
그런 끔직한 그림을 그렸다는 것을 받아들이고,

이어서 고통스럽기는 하지만 '나는 나예요' 하는 과정을 통해
생각에서 완전히 벗어나는 순간

아이들 역시 평생 사로잡혀 살았던 악마로부터 또한 그림으로부터
완전히 해방되게 됩니다.

또한 아이들은 이 순간 더불어 난생 처음으로
'엄마'를 만나게 됩니다.

물론 이 과정에서 가장 먼저 생각이라는 악마로부터 해방되는 것은
바로 엄마 자신입니다.

생각으로부터 벗어나면서 이 사람은 처음으로

건강한 내가 되는 것이고,
동시에 건강한 엄마가 되는 것이고
또한 동시에 건강한 아내가 되는 것입니다.


실제의 상담에서 나는,
문제가 있다며 부모가 아이를 데려올 경우
아이가 초등학교이거나 중학생 정도면 그 엄마만을 상담합니다.

어린 아이를 의사에게 데리고 오는 엄마의 병적인 '생각'은 두 가지입니다.

하나는 바로 자신이 그린 대로 아이가 깡통임을 확인하려는 것이고,

다른 하나는 자신이 바로 이런 깡통인 아이를
어렵고 힘들지만 끝내 보살피는 '좋은 엄마'라는 것을 입증하려는 것입니다.

이런 엄마의 병적인 요구를 들어줄 수는 없습니다.

이런 엄마에게 '그 동안 많이 힘드셨겠어요'라고 해야
'장사'가 잘 되지만 결코 그럴 수는 없습니다.


하지만 의사의 권유를 듣는 척하면서도,
자신의 이름으로 진료기록부를 만드는 것조차
인정하지 않는 엄마들도 꽤 많습니다.

애가 (깡통이고) 문제이지, 자신은 끝내 아니라는 것입니다.


아이가 고등학생이거나 그보다 더 위인 경우,
하지만 아직 아이는 정신적으로 어리고
또한 아직도 한참이나 부모의 영향을 받을 수밖에 없는 경우는

그 엄마를 주로 상담하되
아이도 보조적으로 상담합니다.

이제는 아이도 알 만큼 컸기 때문이고
아직은 아니지만 이제부터는 문제를 해결하면서
곧 성인이 될 준비를 해야 하기 때문입니다.




이제는 글을 접을까 합니다.

지난 1년간 참으로 힘들고 또한 놀라운 과정이었습니다.

그 동안 모두 6명이 모든 생각에서 벗어났습니다.
그 중 2명은 종결을 하고 졸업을 했습니다.

그리고 6명 중에 다섯은 여자들이고,
남자는 오로지 한 사람뿐입니다.

우리 사회의 남자들.
상담이 후반까지 가기는 하지만
끝내 '나는 나예요'를 하지 못합니다.

이게 우리 사회의 남자들입니다.


1년에 6명이라면,
감기 환자나 맹장염 환자 같으면
비교도 되지 않는 작은 숫자입니다.

하지만 정신분석을 조금이라도 아는 사람이라면
이 자체만으로도 가공할 내용입니다.


또한 종전까지의 정신분석은
많은 사람들로부터 인정받지 못하는 무리한 '생각'을
마찬가지로 많은 사람들이 인정하는 평균적인 '생각'으로
바꾸어주는 정도였습니다.

생각을 바꿔주려고 애썼지만
결국 생각의 외형 정도를 바꾸는 게 고작이었고
그렇기 때문에 정신분석은 그 한계를 넘지 못하고
쇠퇴했었던 것입니다.

하지만 앞으로의 정신분석의 목표는
바로 모든 생각을 없애는 것이 될 것입니다.

이러한 과정을 6개월 정도에 마칠 수 있다면
이 또한 대단한 일일 것입니다.


내가 대단하다고 하는 얘기가 아닙니다.

이제 인류는 그럴 때가 되었다는 것이고
또 앞으로 얼마 후에는 이런 대단한 일이
상식이 될 것이기 때문입니다.



끝으로, 내 개인적인 부분을 짧게 말하자면

예고에서 말했듯이
9년 전 이 자리에 개업한 후 몇 년이 지나면서
모든 환자는 물론 이 땅위의 모든 사람이
애정결핍이라는 것을 보게 됐습니다.

또한 이로 인해 모든 사람들이 열등감에 빠져있고
또한 이를 보상하기 위해 반대의 우월감을 만들어
평생을 사는 것을 보았습니다.

또한 나 스스로도 정신과 전문의가 된 이후까지
바로 그러한 사람이었던 것을 발견하고 확인했습니다.

그리고 그러기까지 스스로 많은 시행착오를 했던 것들이
모두 여기에서 비롯된 것을 알게 되었습니다.


해결 방법은 우선 우월감을 버리고
반대로 모든 열등감을 그대로 받아들이는 것이었습니다.

내가 먼저 이 과정을 스스로 했습니다.
고통스러웠고 스스로도 아니라고 자꾸 발뺌했습니다.

하지만 아니라고 버틸 어떤 근거도 없었습니다.
결국 여러 번 고통스러운 과정을 통해 받아들였습니다.


그런데 세상이 끝장나는 것이 아니라
나 자신에 대해 그 어떠한 문제도 느끼지 않는
자유로운 상태가 되더라는 것입니다.


이어 애정결핍으로 인해 생긴 집착과 분노를
끝까지 보고 깨닫는 일이었습니다.

시간이 지나면서 모두를 깨달은 것 같은데,
아직 생각의 일단이 그림자처럼 남아있는 것을 다시 확인했습니다.

그리고는 가상의 세계와 그림論을 보게 된
지난 1년 전까지,

이러한 생각의 그림자를 무조건 누르지 않고,
오히려 상징적인 방법을 통해 내가 통제하는 선 안에서
생각이자 집착을 허용했었습니다.

내가 택했던 종목이 골프였습니다.

어려서부터 그리 부유하지 못했던 것에서 생긴 집착을 위로함이었고,
또한 어떻게든 지기 싫어하고 이기고 싶었던 집착을
상징적이고 나름대로 허용할 수 있을 정도의
선 안에서 허용했던 것입니다.

그렇게 몇 년을 지냈습니다.

하지만 이 기간에도 나는 골프를 제외하면
그 어떤 기대나 소원도 없었습니다.


그러다가 대략 1년 전 가상의 세계와 그림論을 보고 정리하는 과정에서
내가 남았다고 여겨 관리했었던
그 것 역시 단지 '생각'이라는 것을 보고 깨닫게 되면서

나머지 생각에서 모두 벗어났습니다.



내가 만약 프로이드를 따르고 융을 좇았다면
아마도 생각에서 깨지 못했을 것 같습니다.

덕분에 개인적인 시행착오도 많았고
또한 고통도 있었지만

모든 것이 다 깨라고 그랬던 것을
이제는 알고 깨달았습니다.


비록 한 사람으로부터 시작되었지만
그 내용이 너무도 간단해서
앞으로 널리 퍼지는 것은 시간문제인 것 같습니다.

한 가지.
바로 이러한 우리 사회가
죽는 한이 있어도 끝끝내 '나는 내가 아니에요' 하면서
버티지는 않았으면 좋겠습니다.

물론 결과는 미리 예측할 수도 없고 기대 또한 불가능합니다.

결과는 결과를 봐야 알 수 있습니다.

결과가 어떠하든,
나는 사회로부터 더 크게는 자연으로부터 부여받은
내 역할을 끝까지 수행하겠습니다.



마지막으로,
가장 최근에 그린 그림을 다시 보여드리겠습니다.

그림 17입니다.



결국 이 그림 안에 지난 10만 년 간 인류의 모든 '생각'이 그려져 잇습니다.
그리고 지금까지 내 인생의 모든 과정이 그려져 있습니다.

나는 그냥 나입니다.

하지만 '아니라고' 평생을 '생각'했던 것뿐입니다.




그동안,
긴 글 읽으시느라 고생하셨습니다.

감사합니다.

  • 안기영 ()

      에 세상의 대부분의 것들처럼 사람 역시도 끊임없이 변합니다. 내가 누군지는 알 수 있다는 보장은 없습니다. 하지만 그것보다는 내가 무엇이 되고 싶다는 것은 그나마 더 쉽게 알 수 있습니다. 나는 내가 아니라는 것을 너무 부정적으로 받아들일 필요는 없다고 봅니다. 나는 지금의 내가 아니고 앞으로 다른 내가 되고자 한다는 것은 긍정적인 발전적 요소가 될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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