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림론 (1-2)

글쓴이
abydos
등록일
2004-04-29 14:03
조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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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시 영화 줄거리로 돌아가겠습니다.

결국 환자의 증상은 환자 자신의 열등감에서 오는 견딜 수 없는 고통을 피하기 위해 만들어진 '가상의 세계'입니다.

환자는 이러한 가상의 세계를 만들어서 이를 마치 사실인것처럼 받아들이게 되면서 현실에서의 고통인 열등감, 남자로서의 열등감 나아가 가장 예민한 성적인 열등감으로부터 벗어나 편해지게 됩니다.

물론 자신을 성공적으로 속인 환자 자신은 이러한 것을 절대 의식하지 못합니다

주인공의 증상, 즉 '가상의 세계'는 매우 잘 짜여있습니다.

환자의 평생 지속되는 증상은 세 사람의 환상이고 이들 모두 환자 자신의 현실과는 반대인 거울像(Mirror Image) 으로서 바로 환자 자신이 자신의 현실적인 고통을 완전히 없앨 수도 있다고 '생각'하는 환자 자신의 바람이기도 합니다.

어린 소녀는 바로 자신이 차라리 여자였으면 하는 바람을 나타내는데, 머리가 좋은 주인공은 여자일지라도 나이가 들면 역시 성적인 의무를 이행해야 한다는 점에서, 여자이면서도 계속 어린 상태로 머물러 있는 어린 소녀의 환상을 만들게 됩니다.

하지만 이런 바람에도 불구하고 환자는 결국 나이가 들어 성인이 됩니다. 이 때 다시 바랐던 것이 또래 남자 친구의 환상입니다.

자기 스스로가 겁 없고 대담한 남자가 될 수는 없습니다. 그래서 머리가 좋은 주인공은 자신에게 그러한 친구가 있어서 그로부터 영향을 받아 자신도 그렇게 용기 있고 대범한 남자가 되는 것으로 치밀하게 가상의 세계를 만들었습니다.

세 번째의 환상인 Big Brother는 모든 열등감을 해결하는 환자의 궁극적인 목표입니다.

환자가 머리가 아주 나쁜 사람이었다면 흔히들 뻐꾸기 둥지 위를 날아간 새 등에서 경험하셨듯이, '나는 미국 대통령이야'라거나, '나는 하나님 이야' 했을 것입니다. 하지만 머리가 좋은 주인공은 이러한 조잡한, 그래서 말도 안되는 가상의 세계는 피합니다.

그래서 가능한 한 현실의 내용을 그대로 살려서 자신의 현실에서의 장점인 수학적 능력을 극대화해서
가상의 세계를 만든 것이고 결국 환자는 자신이 작게는 소련의 위협으로부터 미국의 안보를, 크게는 전 세계의 안보를 책임지는 남자로서 할 수 있는 일 중에서 가장 위대할 수도 있는 그러한 일을 하는 사람이라는 가상의 세계를 만들게 됩니다.

하지만 가상의 세계는 그저 가상의 세계일 뿐, 현실이 아닙니다.

그래서 이런 있지도 않은 가상의 세계를 가지고 현실을 살게 되면 환자의 바람과는 상관 없이 많은 문제에 부딪힐 수밖에 없습니다.

주인공은 또래의 친구환상으로부터 고무되어, 기숙사에서 지긋지긋한 공부의 상징일 수도 있는 책상을
창문 밖으로 내던집니다. 이어 친구의 환상과 함께술집을 찾아 한 여성을 유혹합니다.

'서로 액체를 교환하는 거지!'

실제 그로부터 대략 60년이 경과한 지금도, 또한 섹스라는 것이 완전히 엉망이 되어 있는 우리 사회의 현실에서도 이러한 짙은 농담은 어려울 것입니다.

하지만 여기에는 머리가 좋은 주인공의 또다른 계산이 깔려있습니다.

미국은 당시에도 free sex 시대였습니다. 정말 아름답다거나 오랫 동안 당신을 지켜봤다거나, 어떻게든 여자를 띠워준다면 그 날로도 섹스가 가능했을 것입니다.

하지만 주인공이 그런 방법을 통해 만약 섹스를 한다면 스스로 자신의 목을 죄는 격이 됩니다.

그래서 주인공은 진한 농담으로 자신이 대범한 남자라는 것을 시위하는 것과 동시에, 자신이 죽기보다 두려워하는 섹스를 피하는 두 마리의 토끼를 동시에 잡게 됩니다.

결혼 과정도 그렇습니다.

미국. 자유의 나라이지만 한 편 기본적인 룰이나 관습을 깰 수 없는 나라이기도 합니다.

그런 나라에서 주인공은 남자인 자신이 나서서가 아니라 자신에게 접근해오는 여제자로 인해 결혼을 하게됩니다. 자신은 여자 앞에 나서서 구애를 하거나 청혼을 할 수 없는 그야말로 소극적이고, 남자답지 못한 남자일 뿐입니다.

섹스가 그렇게 두려운 주인공이 어떻게 섹스가 필요불가결한 결혼을 할 수 있었을까요?

환자는 바로 이 무렵에 Big Brother와 손잡고 남자로서는 이보다 더 큰 일을 할 수 없을 정도의 그러한 일을 하는 사람으로서 우월감이 최고조에 이를 때였습니다. 이러한 가상의 세계에 주인공 자신이 충분히 빠져 있었던 것이고, 즉 자기 스스로가 자기에게 충분히 속고 있었던 상황이었기에 가능했던 일입니다. 그래서 이 무렵의 주인공은 연미복 차림으로 당당하게 사교 모임에도 어울립니다.

하지만 결국 그럴듯한 가상의 세계도 현실을 이겨낼 수는 없습니다.

결국 주인공은 결혼 얼마 후부터 상태가 악화됩니다. 바로 섹스 때문입니다.

하지만 이러한 현실에서의 고통스러운 문제를 주인공은 다시금, 또다른 가상의 세계를 만들어 피하려고 합니다.

즉, 안가가 적들에게 발각이 되고 급기야는 그들로부터 추격을 받고 총격을 받기도 합니다. 모두 가상의 세계일 뿐이고, 그래야 환자는 현실의 고통으로부터 도망가 편해질 수 있기 때문입니다. '내가 고통스러운 것은 섹스 때문이 아니야, 내가 너무 중요한 사람이기에 적들이 죽이려 해서 괴로운거야'

결국 주인공은 자신의 의지와는 상관없이 입원을 하게되고, 상당 기간을 거쳐 퇴원을 합니다. 증상도 많이 완화되었습니다.

어느 날 부인이 잠자리에서 섹스를 요구하는데, 주인공은 이를 피합니다.

이 때 세상이 다 끝난 것 같아 절망에 빠진 부인의 입에서 위기에 처한 주인공을 살리는 구세주 같은 한 마디가 나오게 됩니다.

'약 때문에 그래?'

궁지에 몰린 주인공은 부인의 이 한마디로 인해 평생의 안식처를 얻게 됩니다.

'그래, 나도 하고 싶지만 약 때문에 되질 않아'

머리가 좋은 주인공은 우연히 아내의 입에서 나온 더할 수 없이 소중한 도피처를 더욱 더 공고히 하려고 합니다. 주인공은 이후 약을 잘 먹지 않게 되고, 다시 재발하게 됩니다.

이런 논리입니다.

'나도 섹스를 원하고 또 당신의 요구도 들어 주고 싶다. 그런데 약 때문에 그럴 수가 없다. 그래서 약을 먹지 않았는데...'

그런데 다시 재발이 되니 결국 약을 계속 먹을 수밖에 없고, 그러니 아쉽지만 섹스는 포기해야하지 않겠느냐... 이런 것입니다.

하지만 안 오던 비가 한 번 오면 퍼붓는다고, (It never rains, but it pours.) 역경은 연이어 찾아옵니다.

환자가 재발을 하면서 다시 환상이 보이게 되고, 아내를 해칠지도 몰라 이를 제지하는 상황에서 주인공은 아내를 밀치게 되고, 이제는 더 이상 견딜 수 없다고 판단한 부인이 주인공을 결국 떠나게 됩니다. 하지만 빗속에서 주인공은 떠나는 아내의 차를 막아서며 자신의 가상의 세계를 타협해야하는 주인공으로서는 상당히 위험한 무리수일 수도 있는 한 마디를 던집니다.

이렇게 해서라도 자신을 버리고 떠나는 '엄마'를 잡아야 하기 때문입니다.

'나이가 들지 않아!'

이 부분에서 감동을 받지 않은 관객은 아마도 없었을 것입니다.

하지만, 주인공은 역시 머리가 좋은 사람입니다.

술에 취해 인사불성이 되어있는 상태에서 그 사람은 자신이 취했다는 것을 알지 못합니다. 하지만 다음 날 아침 깨어나서 자신이 취했었다는 것을 알게 된 상태는 더 이상 술에 취해있는 상태가 아니고, 그 상태에서 완전히 깼다는 것을 의미합니다.

정신과에서는 이를 병식(病識)이 생겼다고 합니다.

즉 병식이 생겼다는 것은 더 이상 증상이 남아있지 않다는 것을 의미하는 것입니다.

하지만 머리가 좋은 주인공은 여기에서도 두 마리의 토끼를 결국 잡게 됩니다. 즉, '그것이 환상이었어'라는 말로 자신을 버리고 떠나는 '엄마'에게 희망을 주어 엄마를 다시 잡게 된다는 것과, 병식이 생겼고 그래서 이제는 병이 나았고 그래서 더이상 약을 먹을 필요가 없어진다면 주인공은 자신이 가장 두려워하는 성적인 의무를 이행해야 합니다.

그러니 증상을 완전히 없앨 수가 없습니다.

그래서 절충을 합니다.

'그게 환상이라는 것은 알았는데, 불행히도 없어지질 않아...'

그러니 하는 수 없이 약은 계속 먹어야 하고, 역시 할 수 없이 섹스는 포기해야 한다는 것입니다. 이 이유로 인해 환자의 증상은 평생 지속됩니다.

하지만 여기서 또 하나의 의문이 남습니다.

주인공이 노벨상을 수상하는 시상식장에서도 여지 없이 환상은 나타납니다. 여기에서, 성적인 의무감으로부터 피하기 위해 환상을 끝까지 유지한 것이라면 이제는 나이가 70이 넘어 상식적으로 생각해도 성적인 의무감으로부터는 벗어날 수 있는 나이일 텐데, 그렇다면 그러한 환상도 이제는 버려도 될텐데... 하는 점입니다.

하지만 주인공은 머리가 좋은 사람입니다. 현실적으로 이제는 나이가 들어 성적인 의무감으로부터 자유로워진 것은 자신도 알 것입니다.

하지만 이런 시기가 됐을 때, 드디어 환상을 놓게 된다면 결국 자신은 그 오랜 동안 바로 그러한 이유로 인해 환상을 유지해왔다는 것을 스스로에게 인정하는 것이 결국 되고말기 때문입니다.

자신을 속일 수 없다면 그 어떠한 현실의 고통도 피할 수 없기 때문입니다.

여기까지가 영화의 내용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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