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림論 - (4) 마트로시카(Matryoshka) 원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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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bydo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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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4-04-29 14: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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치료 과정은 너무도 단순하지만,

반대로 너무도 고통스럽습니다.


지난 인생을 버텨오던 모든 것을 버려야 하는 것이고,
모든 희망과 삶의 의미 또한 버려야 하는 것입니다.

그리고는 삶이 끝나는 순간까지 끝없는 고통만이 남게 될 것을
받아들여야 합니다.

의사의 설명을 받아들이는 것이 아닙니다.

이 사람이 평생을 그렇게 될 것으로 '생각'해왔던
바로 그대로 될 것이라는 자신의 '생각'을 받아들이는 것입니다.


그 과정이 얼마나 고통스러운 것이냐 하는 것은
다음 두 가지 요인에 의해 결정됩니다.

첫 째, 그 어떤 가상의 세계를 만든 사람일지라도,
그러한 가상의 세계를 만들 수밖에 없었던 이유는
모두가 자신의 현실이 '견딜 수 없을 정도로 고통스러웠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정신분열병이거나 아니면 반대로
지금까지의 진단 기준에 포함되는 그 어떠한 증상도 포함하지 않는
가상의 세계를 만들었거나 간에
고통스러운 것은 거의 같습니다.

모든 가상의 세계가 공히,
엄마로부터 버려져 죽게 될 것이라는 극한 상황으로부터 피하기 위해
만들어진 것이기 때문입니다.


둘 째, 가상의 세계는 개인마다 다릅니다.

그래서, 이 가상의 세계가 깨져서
자신의 현실인 '나는 나예요'가 모두 드러나는 상황에서 겪게 될 고통은
바로 그 개인이 '만약 그런 일이 벌어진다면 그렇게 끔찍할 것'이라고
평소 '생각'한 만큼대로 입니다.

생각은 생각 스스로의 방식대로 무너집니다.


하지만 결국 이러한 고통스러운 과정을 모두 받아들이고 거친 다음에야
이 모든 지난 삶의 '생각'들이 한낮 '생각'일 뿐이고,
'상상'일 뿐이고, 단지 '꿈'이었을 뿐이라는 것을
스스로 '보게' 됩니다.

그렇게 된 후에야 자신이 바로 직전까지 빠져 살았던
하지만 이제는 깨닫고 그로부터 벗어난
바로 그러한 '생각'을 알게 됩니다.


그렇다면 '생각'이 없어진 후에는 감정만이 남아있을까요.

아닙니다.
이제서야 '건강한 생각'이 남는 것이고,
건강한 생각이란 바로 '마음의 눈으로 보는 것'을 말합니다.

그 마음의 눈으로 보고 있으면 있다 하고,
없으면 없다 하는 것입니다.

지금까지의 모든 잘못된 생각은
있지만 어떻게든 없다고 하기 위해,
없지만 있다고 하기 위해 존재했었고,
결국 나는 내가 아니라고 하기 위해 존재했었습니다.



'나는 생각한다, 고로 존재 한다'는 데카르트의 명제로부터,
최근의 '나는 존재한다, 고로 생각 한다'에 이르기까지

지금까지의 인류는,
'사람은 마땅히 생각을 하는 존재이고, 또 생각을 하니까 사람인 것이다'라고
막연히 '생각'해 왔습니다.

그리고 바로 이 '생각'으로 인해
지구상에서는 영장임을 자처해 왔습니다.

이러한 '생각'이란 것이 도대체 무엇일까요?

그리고 이 글의 주제와 같이 바로 이러한 '생각'을 알게 됐다면
그래서 많은 문제나 질병들을 해결할 수 있게 됐다면
이것은 또 어떤 의미를 갖는 것일까요?

또한 바로 이러한 것이 인류가 서기 2000년을 통과하면서
발견되었다면 이것은 무엇을 의미할까요?

이에 대한 내 견해가 마트로시카(Matryoshka) 원리입니다.



간단히 주제로 넘어가겠습니다.

1886년 헥켈은 '개체(個體) 발생은 계통(系統) 발생을 되풀이 한다'는
'발생 반복설'을 제안하였습니다.

예를 들어 사람의 난자와 정자가 수정이 된 후
태내에서 성장해가는 과정을 보면,
초기에 저등한 동물의 모습을 보인 후에 마지막으로 사람의 모습으로
분화된다는 것입니다.

즉, 한 인간 개인의 역사 속에는 지구 생명체의 모든 역사가
포함되어 있다는 것이기도 합니다.


이것과 비슷하기도 하고 또 다르기도 하지만,

'이러한 여러 개인이 모여 이루는 사회나 국가가 하나의 생명체이고,
또한 이러한 많은 국가들이 모여 이루어진 지구사회가
또 다른 하나의 생명체인데,

이러한 사회나 국가 또는 나아가서 지구사회의 생멸과정은,
한 개인의 생멸과정과 같은 과정을 밟는다' 하는 것이

마트로시카(Matryoshka) 원리입니다.


마트로시카는 러시아의 민속공예품으로서,
아시듯이 큰 인형 안에 그보다 작은 인형이 들어있고,
다시 그 작은 인형을 열면 더 작은 인형이 들어있는 그러한 인형입니다.

마트로시카라는 말은 러시아 말의 '마티'
즉 어머니라는 말에서 비롯됐다고 하며 이 인형의 상징은
다산(多産)을 의미하는 것으로서 풍요를 뜻한다고 합니다.

사진 3입니다.

사진3


비슷하게 생긴 크고 작은 인형들로 구성되는데,
보통은 3개 또는 5개로 이루어지고,
10개 이상인 것도 있다고 합니다.
또한 다들 비슷하게 생겼지만 서로 조금씩 다르게 만든다고 합니다.



원리로 보겠습니다.

모든 인간은 무수히 많은 세포로 구성되어 있습니다.
사람들은 한 개인인 자신의 육체가 분리될 수 없는 것으로서
하나로 마치 '접착'되어 있듯이 붙어 있다고 잘못 생각하지만,

적혈구나 정자 등 인체에서 분리해서
적절한 환경을 유지시켜 주면 한참 동안을 사는
독립된 생명체들로 구성되어 있습니다.

이러한 많은 세포가 모여 이루어진 개체가 바로 인간입니다.

이런 많은 세포들이 수없이 생멸(生滅)하는 과정에서
한 개인은 또 다른 시간의 범주 속에서
한 개인으로서 생멸(生滅)합니다.

태어나고 영 유아시기를 거치고,
청소년기를 거쳐 성인으로서 홀로서기를 합니다.
이어 자신의 과제를 수행하다가
때가 되면 생을 접고 마치게 됩니다.


이러한 많은 개인들이 모여 한 사회를 이루고 국가를 이룹니다.

많은 개인이 태어나고 자신을 살다가 죽어가지만,
한 사회나 국가는 또 다른 시간의 범주 속에서
이와 비슷한 과정을 거쳐 살다가 결국 사망한다는 것입니다.

한 개인 안에는 지금 갓 태어난 세포로부터
이제는 수명을 다한 세포가 같이 존재합니다.

또한 아주 건강한 세포로부터 극히 병든 세포가 같이 존재할 수 있고,
어떤 개인은 이러한 병든 세포들이 더 많은 부분을 차지하기도 하는데,
이럴 경우 이 개인은 많이 병든 사람이 됩니다.


마찬가지로, 지구상에는 여러 국가들이 존재합니다.

이들 중에는 갓 태어나 어린 시절을 보내는 사회나 국가도 있습니다.
아마도 폴리네시아나 아마존 유역에서 아직도 원시생활을 하고 있는
그런 부족일 것입니다.

또한 다른 국가들보다는 가장 성숙한 시점을 통과하는 국가도 있을 것입니다.

또 그만큼 건강한 국가도 있고, 반대로 병든 국가도 있을 것입니다.


이러한 많은 국가들이 모여 이번에는 '지구'라는 또 다른 생명체가 형성됩니다.

그리고 한 개인이나 한 국가와는 또 다른 시간의 범주 속에서
한 개인이 태어나고 성장하고 자신이 과제를 수행하다가
생을 마치는 과정과 똑같이 생멸(生滅)한다는 것입니다.


이어 이러한 여러 거대 생명체들이 모여 더 큰 생명체인 태양계를 이루고,
이어 은하계를 이루고,
결국 아직은 그 끝을 알 수도 없는 우주를 이룬다는 것입니다.

그림15입니다.

그림15



한 개체나 생명체는 그 평균점을 기준으로 그보다 앞서고 또는 건강한
세포나 개인들이 절반을 이루고,
반대로 평균점보다 뒤떨어지거나 병든 세포나 개인들이
절반을 이루면서 구성됩니다.

이것이 절반의 원리이고, 또한 세상의 모든 자료들이 보이는
통계의 원리이자 도수분포표의 원리이기도 합니다.


여기서 세 가지를 간단히 보겠습니다.

첫 째, 정신적으로 건강하다는 것을 모든 개인과 모든 사회를 망라하는
하나의 척도로 잴 수 있겠느냐 하는 것입니다.

이런 예로 보겠습니다.

만약 5살짜리 여자 아이에게 '넌 누구와 결혼하고 싶니?' 하고 물으면
가장 많은 대답이 '아빠요"일 것입니다.

그렇다고 이 아이를 미쳤다고 보는 사람이 있다면
그 사람이 바로 미친 사람입니다.

하지만 35살 노처녀에게 '왜 아직 결혼을 안 하느냐?'고 물었을 때
이 여자가 '엄마 죽은 후에요'라는 대답을 하고

그 이유를 물었을 때
'엄마가 죽은 후에, 아빠와 결혼하려고 한다'고 한다면
이 여자는 미친 사람입니다.

원시 사회를 살고 있는 사람들의 정신 수준을 문명사회의 기준으로
측량할 수는 없습니다.

아직 어리기는 하지만 어리다고 병적인 것은 아니기 때문입니다.


둘 째, 이 원리에 따른다면 과연 우리나라는 하나의 국가 생명체로서

그 성장과정의 어디에 와있고,
또 얼마나 건강하거나 또는 건강하지 못한 생명체일까 하는 점입니다.

우리 사회는 아직 원시생활에서 벗어나지 못한 그런 사회는 아닙니다.
분명 문명사회이고, 뉴욕 파리 런던이 같은 시간으로 연결되는
그러한 사회입니다.

하지만 우리 사회는 극히 병들어 있습니다.
모든 구성원들이 3살 무렵 엄마와의 관계에서 이루었어야 하는
사랑확인과정에서 실패하여,

평생을 '나는 내가 아니에요'를 통해
엄마에게 사랑받고자 하는 사람들입니다.

그래서 우리나라를 한 생명체로 본다면
우리 사회의 상태는 '병든 3살'입니다.


셋 째, 지구 또한 하나의 거대한 생명체이고
그 생멸과정 또한 한 인간 개인의 그것을 다른 시간의 범주 속에서
반복하는 것이라면,
과연 현재 지구는 그 과정의 어디에 와있겠느냐 하는 점입니다.


새천년을 맞기 전인 1999년 뉴욕타임스 매거진은
'개인 밀레니엄 시대(The Me Millenium)' 라는 제목의 특집을 다루었습니다.

내용은 이렇습니다.

'과거 중세시대까지 개인은 신의 의지에 따라 움직이는
거대한 수레바퀴의 작은 톱니바퀴에 불과했다.

그런 인류가 지난 1천년간 '나는 무엇인가'에 대해 추구해 왔으며,
이 질문은 수천 년 내려 온 인류의 역사에서 가장 의미심장한 도약을 이루었다'


여기서 한 개인의 생멸과정에 준해
지구의 성장과정의 일부인 서양사를 대강 훑어보겠습니다.

기원후의 첫 천년은 한 인간 개인으로 보자면 대략 10세 까지를 말합니다.
절대적으로 부모의 보호 아래 있는 상황이고,
자신의 독자적인 생각이나 결정은 아직 없는 상태입니다.

그 다음의 천년 역시 한 인간에서의 10대(10세에서 20세)에 해당합니다.
사춘기를 거치게 되고 점차 스스로 생각을 하게 됩니다.
여기서 독특한 문화의 뿌리도 시작되는데 서양사에서 보면
르네상스를 말합니다.

그리고는 10대의 후반이 되면서 정확히 18세가 되면서
부모로부터 독립하기 위해 전쟁을 일으킵니다.
이 과정이 서양사에서는 프랑스혁명이(1789년)라 할 수 있겠습니다.


그리고 인류가 이제 2000년을 통과하는 것은
한 인간이 20세를 통과해서 이제는 한 독립된 인간으로
즉 성인(成人)으로 다시 태어나는 것을 의미합니다.

성인(成人)의 정의는 '스스로 자신의 삶을 책임지는 사람'입니다.
또한 성인의 특징은 현실적, 합리적이며 객관적이고 또 냉정한 사람을
의미합니다.

여러 단어를 사용했지만 가장 중요한 특징은,
이제는 더 이상의 어떠한 환상으로부터도 벗어난 사람을 의미합니다.

또한 냉정하다는 말 역시 비인간적이고 몰인정하다는 뜻이 아니라,
바로 있는 것은 있다 하고, 없는 것은 없다 하는 사람을 뜻합니다.



우리 사회는 대략 800년 전 몽골이 이 땅을 침입했을 때,

이 땅의 남자로 대표되는 권력의 수뇌부가
마찬가지로 여자와 아이들로 대표되는 모든 백성들을 버리고
자신만 살겠다고 강화도로 도망친 이후로,

그 후에 다시 집에 들어온 한심한 남자이자 가장이
자신의 무력함과 비겁함을 가리기 위해
孝를 중국에서 수입하여 여자와 아이들에게 강요하면서부터

현재까지,

한 개인에서의 사춘기 과정도 또한 독립과정도
아직 없습니다.


비겁하고 한심한 남자들이 자신의 열등감과 죄책감을 가리기 위해,
즉 '나는 내가 아니에요'를 하기 위해
결국 이 땅의 모든 여자들을 망쳤고,

이로 인해 이후 병든 엄마들로부터 태어나는
이 땅의 모든 아이들이 이어 병들게 된 것입니다.

그래서 지난 800년간 살다 간,
또한 현재를 살고 있는 모든 사람들이 다 애정결핍인 것이고,

역시 지난 800년 동안을 모두가 다
'나는 내가 아니에요'만 하고 있는 것입니다.


역사에 '만약'이란 말은 의미가 없지만,
800년 전 아니면 그 후 언제라도 이 땅위의 남자들은
여자들과 아이들 앞에서 자신들의 나약함과 이보다 더 끔찍한
비겁함을 반성했어야 합니다.

그 후로 지난 800년 간 그리고 지금도,
이 땅위에는 자신의 잘못이나 무능함을 인정하는 남자가
단 한 사람도 없습니다.

끝없이 '나는 내가 아니에요'만을 하면서
다른 많은 사람들에게 끝없이 피해만 주고 있습니다.

물론 남자들만이 아닙니다.
이들 남자들에게서 당한 모든 여자들과 아이들 역시
모두 '나는 내가 아니에요'를 할 뿐입니다.

그래서 미친 나라가 됐습니다.


하지만 '생각'은 '생각'의 방식으로 무너지기 마련이고,
또 '해법'은 '문제' 안에 있기 마련입니다.

내가 본 간단한 것이 맞다면
이제는 우리사회도 깨어날 수 있습니다.


그 과정이 괴롭기는 하지만

'나는 나예요' 하면 됩니다.



인류라는 거대한 생명체는 2000년을 통과하는 지금
한 개인으로 하면 모든 환상을 깨닫고
성인(成人)이 되는 과정을 통과하고 있습니다.

이 과정을 앞에서 이끄는 나라가 바로 미국입니다.

미국이라는 사회는 한 생명체로 보자면
지구상에서 가장 성숙한 나라인 것 같습니다.

가장 큰 이유가 바로
미국이라는 나라가 부모도, 형제도 자신의 국가나 모든 가치기준도
다 버리고 떠나온 사람들로 이루어진 나라이기 때문입니다.

한 개인으로 보자면
20세를 코앞에 둔 19세입니다.


그에 조금 뒤떨어진 나라가 프랑스인 것 같습니다.

다른 여러 경험이 앞으로 더 필요하지만,
프랑스의 결혼문화를 보면 실제 결혼을 하는 경우는
대략 30%에 불과하다고 합니다.

그리고 결혼을 하지 않고 동거 등의 방식을 택하는 사람들은
결혼하는 사람들을 '부르조아'라는 시각으로 본다고 합니다.

즉 결혼하는 사람들은 자유와 독립에 반해서
더 편하다는 이유로
기성세대에 굴종하는 사람들이라 여긴다는 얘기일 것입니다.

또 실제로 결혼을 하는 사람들은 대부분 부모의 허락을 받는 것 같습니다.

프랑스 혁명으로 부모로부터 독립을 하는
선봉 역할을 한 나라가 바로 프랑스이지만
이들은 아직 18세에 머물고 있습니다.



결국 20세를 통과해서 이제는 인류가 성인기에 진입하는 과정을
미국이 현재 앞장서서 진행하고 있습니다.

그 마지막 환상을 깨닫고 이를 통해 모든 환상으로부터 벗어나
성인이 되는 마지막 과제가 바로
선(善)과 악(惡)이라는 환상입니다.

생각은 바로 그 생각의 모순에 의해 깨지게 되어 있습니다.


미국의 아직 남은 '생각'은
자신은 선(善)이라며, 자신의 감추어진 악(惡)과
공명(Resonance)을 일으키는
비슷한 다른 나라를 '악의 축'이라며 공격을 합니다.

많은 인명이 살상됩니다.

하지만 이 두 나라를 밖에서 보는 많은 사람들에게
이 상황은 마지막 남은 선(善)과 악(惡)이라는 환상을 깨닫는
좋은 기회입니다.

도대체 누가 선이고 또 누가 악이겠느냐 하는 것이고,
과연 선과 악이 따로 존재하는 것이겠느냐 하는 화두를
다루지 않을 수 없게 되는것이고,

결국 어느 한 사람 또는 그룹으로부터
그 모든 것이 환상에 불과했다는 것을 깨닫게 되면서
한 사회나 국가가 이어 인류가
모든 '생각'으로부터 깨어나게 되는 것입니다.

요약해서 그림 16입니다.

그림16




이러한 작거나 큰 모든 생명체의 생멸과정은
그 안에 소속되어 있는 소수 특정한 구성원들의 '생각'에서
인위적으로 만들어지는 것이 아닙니다.

자연의 원리에 그렇게 되도록 되어 있는 것입니다.

사춘기에 접어들면 자신의 의지와 상관없이
2차 성징이 나타나도록 되어있는 것과 같습니다.



인류에게 생각이 있다는 것이 무엇을 의미할까요?

그리고 이 글에 따른다면,
생각이 없어진 사람들이 결혼을 해서 낳은 아이들은
아무런 생각도 없게 될까요?


인류가 생각을 할 수 있다는 점에서
다른 어떠한 동물보다 앞선 존재라는 것은 부정할 수 없는 사실입니다.

그러기에 지구상에서는 인간이 영장입니다.

하지만 자연은 인간에게 이러한 생각을 다 '만들어서' 준 것은 아닙니다.


동물들은 모든 삶을 본능에 의존합니다.
그리고 그 본능은 시계처럼 정확합니다.
하지만 그 본능의 한계를 벗어날 수 없습니다.

이러한 상태에서 바로 생각을 하는 동물인 인간이
지구상에 나타나는데,

이들에게는 기존의 다른 동물들이 저절로 갖고 있는 본능이라는
기능에다가 더해서 생각이라는 기능이 추가된 것이 아니라,

생각이 부여된 만큼 본능 부분이 박탈된 것 같습니다.

그래서 인간은 동물들이 본능적으로 하는 부분을
새롭게 부여된 생각이라는 기능을 발달시켜
스스로 풀어야 하는 숙제를 함께 부여받은 것 같습니다.

하지만 이 숙제를 푸는 순간부터 인류는
다른 여타 동물들이 보거나 겪을 수 없는
더 큰 세상의 원리를 볼 수 있게 되는 것 같습니다.


생각을 부여받았기 때문에
그 생각으로 인해 박탈된 부분을 이제는 스스로 해야만 하는
기초과정이 바로
그 생각의 속성을 깨닫는 과정이고

또 이를 깨닫게 되면서 가장 우선적으로
이루어야 하는 과정이 바로 '사랑'입니다.


지구 상에 생각을 하는 동물이 등장한 것은 대략 10만 년 전이라고 합니다.

결국 인간이 이 '생각'이라는
인간만의 기능을 취득하는데''대략 10만년이 걸렸다는 얘기가 됩니다.


이러한 '생각'으로서의 시행착오는 인간이 어차피 겪어야만 했던 과정입니다.

지금까지의 보편적 인간이 그랬고,
지금은 인류가 성장해서 다들 깨어나는 시점에 와있음에도 불구하고
애정결핍으로 인해 '나는 내가 아니에요'하는 사람도 그렇고,

결국 '나는 나'로서 내가 바로 나라는 사실로부터 끝없이 도망가,
점점 멀어지면서 생각 안에서 온갖 대극 사이를 헤매다가,

결국 생각의 자체 모순으로 인해,
내가 나인 사실로 회귀하게 되는 것이고,
지난 모든 헛된 '생각'으로부터 벗어나
이제서야 성숙하고 건강한 성인의 길을 걷게 되는 것입니다.

이 과정을 요약한 것이 그림17입니다.

그림17



그렇다면,
앞으로 생각에서 벗어나는 사람들이 많아져
그러한 사람들이 절반으로서 구성된 사회가 된다면

그러한 생각이 없는 부모들에게서 태어난 아이들은
처음부터 아무런 생각이 없이 평생을 살게 될까요.

그렇지는 않습니다.

어린 아이들은 역시 분별력이 없고,
성장하는 과정에서 이것과 저것을 보고는
대극으로서 생각을 할 수 밖에 없습니다.

그리고 사춘기가 되면 이러한 생각들이 더욱 발달하지만
성인이 되면서 이전 가졌던 생각들 중 많은 부분이
바로 있지도 않은 환상이었다는 것을 깨달으면서
이러한 생각으로부터 벗어날 것이란 겁니다.

하지만 지금까지 인류가 해왔던 생각과 전혀 다른 점이 있다면
이들의 생각이
'나는 내가 아니에요'를 하는 것이 아니라는 점입니다.

또한 성인이 되어 환상으로부터 벗어날 때까지
아이들에게 환상이 있는 이유는,

나중에 이러한 환상으로부터 벗어난 뒤에도
'마음의 눈으로 보는' 건강한 생각을 하기에 앞서
미숙하기는 하지만 적절한 훈련과정을 밟는 것이기도 합니다.

'가상의 세계'에서 많은 있지도 않은 것을 경우의 수로서
만들어 본 사람은,

이러한 가상의 세계에서 깨어난 뒤에도
많은 사실을 '마음의 눈으로 볼' 수 있습니다.


생각의 모순 속에 빠져 대략 10만년 동안 이러한 생각을 탐험하면서
모든 인간은 다음의 두 가지 모순을 깨닫지 못했었습니다.

첫 째가, 인간의 생각이 만든 모든 대극(對極) 즉, 열등감과 우월감,
조증과 우울증, '이기적'과 '이타적', 행복과 불행 그리고 선과 악
이런 것들이 서로 반대말이라고 생각한 것이고,

둘 째가, 바로 이러한 모든 대극들이 실제로 존재한다고 '생각'한 것입니다.

하지만 이러한 모든 대극들은 서로 반대말이 아니며
이들 모두 현실에는 존재하지 않습니다.
단지 미성숙한 생각이 만들어낸 허상일 뿐입니다.

근처 가까운 산을 올라 보십시오.

그 어디에도 행복이나 불행, 선이나 악은 존재하지 않습니다.

하지만 사람들의 발자취에는 어디에나 악(惡)의 자국이 남아 있습니다.
아직 생각을 하는 존재이기 때문이고,
이러한 자연과 함께 더불어 그 자체를 목적으로 살기보다는
이 모든 것을 수단으로 삼아
'나는 내가 아니에요'만을 하려고 하기 때문입니다.


이기적인 것도 이타적인 것도 없습니다.

길을 걷다가 넘어져 한 쪽 손에서 피가 난다면
나는 본능적으로 다른 손으로 다친 손을 감싸게 됩니다.

이 상황에서 감싸는 손을 이타적이라 할 수 없고,
마찬가지로 피 흘리는 손을 이기적이라고 할 수 없습니다.

또 식곤증이라는 말이 있습니다.

식사를 하면 평소에는 더 많은 피가 머리에 공급되던 상황에서
음식물 섭취를 위해 장(腸)으로 재배치되기 때문입니다.

이 경우 역시 장(腸)을 이기적이라 할 수 없고,
머리를 이타적이라고 할 수 없는 것과 같은 원리입니다.

하지만 머리가 '나는 내가 아니에요'를 고집하기 위해
피를 잡아둔다면 결국 같이 병들거나 죽는 수밖에는 없습니다.


우리는 모두 한 크거나 작은 생명체의
한 부분일 뿐입니다.

앞으로 곧 이를 깨닫게 된다면 지구사회는 하나의 공동체로서
힘을 합쳐 더불어 살게 될 것입니다.

물론 어느 사회나 기준에 미치지 못하는 사람들이 반을 이루고
이들이 문제를 계속 만들 것입니다.

하지만 이들 중 대부분은 건강한 사람들의 분위기를
따라가지 않을 수 없을 것입니다.


인류는 2,000년을 통과하면서
어차피 '생각'으로부터 깨어나게 되어 있습니다.

마트로시카라는 인형이 20세기 초에 만들어졌다는 것도 그렇고,
다음 5부에서 가볍게 다룰 재즈 역시 19세기 말에 출현했다는 것 또한
인간의 어떤 의지와는 상관없이 자연의 원리에 의해
그렇게 될 수밖에 없는 과정을 겪고 있는 것입니다.

가장 최근의 '증거'를 보자면,
2,000년을 바로 통과하면서 전 세계를 뒤흔든 영화
매트릭스의 경우입니다.

주인공 네오는 자신의 세계에 대한 모순을 느끼게 되면서
이런 것을 미리 경험한 다른 사람들과 조우하게 됩니다.

그리고는 모피어스의 권유를 받고 빨간색 약을 선택합니다.

이어 변환과정을 거치는데,
이 장면은 실제의 상담 과정과 매우 흡사합니다.


저항군에 의해 구출이 되고 소생하게 된 네오의 첫 마디가
'내가 죽었나요(Am I dead)?'입니다.

이에 대한 모피어스의 답은
자막에는 '전혀 그 반대지'라는 말로 잘못 번역되어 나오지만

'그것과는 거리가 멀지(Far from it)' 입니다.


잘못된 '생각'에서 인류가 깨어나는 것을 의미하는 것이고,
이는 마치 현실인지 꿈인지 잘 구분이 되지 않는 꿈에서
깨어나는 것과도 비슷합니다.


즉 영화를 만든 워쇼스키 형제에게도 이러한 자연의 원리는
비추어졌습니다.

하지만 아깝게도 이들 형제는 이러한 기회를 이해하지 못하고,
나머지 부분을 기존의 '생각'으로 처리하고 맙니다.

기계가 만든 '사이버 세상'이니, '매트릭스(Matrix)'이니...


앞으로도 여러 사람들이 도처에서 이러한 자연의 이치를
우연히 깨닫게 될 수 있습니다.



앞에서도 말했지만,
자연의 원리는 인과론도 인과응보도 아닙니다.
또한 권선징악은 그동안 '어린 인간'들이 만든 '어린 생각'에 불과합니다.

반대로 자연의 원리는,
모든 인간으로 하여금 거쳐야 할 모든 과정을 거치게 하되,

그 사람이 이루어야 하는 모든 과정을 제대로 마칠 수 있도록
끝없이 이끌어 주어서,

결국 모든 문제를 해결하고 자신의 과제를 이루도록
도와준다는 것입니다.


더 간단히 말하면 어차피 그렇게 되도록 되어 있다는 것입니다.

그 누가 '아버지'처럼 쳐다보고 있으면서
일일이 보고 지적해주는 게 아니라,

그런 문제를 풀지 못하고 방황하는 사람은
바로 그런 문제를 인식하도록
그 거울상(Mirror Image)으로 하여금 공명(Resonance)을
일으키게 하는 것이고

이를 통해 자신의 문제를 보도록 원리가 만들어져 있다는 것입니다.


만약 자연이 ,
모든 인간으로 하여금 때가 되면 바로 직전까지의 생각이
단지 '생각'에 불과했었다는 것을 스스로 깨닫도록 설정이 되어있다면,

이것을 보려고 하는 모든 사람들로 하여금
볼 수 있는 그러한 장치가 이미 우리와 가까운 곳에
벌써부터 존재할 것입니다.

다른 많은 것이 있겠지만,
내가 본 세 가지를 예로 들겠습니다.

술, 섹스 그리고 꿈입니다.


위 세 가지는 모두 공통점이 있습니다.

모든 사람들이, 더욱 구체적으로
모든 병적인 '생각'이 추구하는 바입니다.

먼저 술.

기쁜 일이 있을 때 마시면 더욱 흥이 나고,
또 슬프거나 괴로운 일이 있을 때 마시면 고통이 사라집니다.
이 때가 '나는 내가 아니에요'가 되면서 고통을 잊는 순간입니다.

하지만 이어 술이 술을 마시고
술이 사람을 마시게 되면서,
이 사람은 자신의 의지와는 상관없이 인사불성이 되면서
자신이 평소 감추어 오던 '나는 나예요'의 상태가 됩니다.

즉 생각이 원하는 것을 얻기 위해 술을 마시지만
곧이어 생각이 원치 않던 상황이 벌어지면서
생각이 더 이상 이 사람을 통제할 수 없는 상황이 됩니다.

하는 수 없이 '나는 나예요'가 되는 상황이고
이 상황에서 '생각'은 없어집니다.

술은 인간의 역사와 함께 존재합니다.
바로 그 술의 존재 이유가
'생각'을 무기 삼아 그 '생각' 안에 숨어있는 사람으로 하여금,

생각의 모순을 통해 생각에서 깨도록 하는
자연의 원리가 숨어 있다는 것입니다.


섹스 역시 마찬가지입니다.

때가 되어야만 발정기를 맞는 다른 동물들과는 달리
인간에게 성욕이 늘 존재하는 것은
단지 생식만을 목적으로 하는 것 같지는 않습니다.

섹스 역시 술과 같은 원리입니다.

서로 좋아하고 서로 탐합니다.
이렇게 누군가가 나를 필요로 하고
또한 나도 누군가를 필요로 하는 것에 서로 빠집니다.

이 상황이 점차 진행되면서
'나는 내가 아니에요'를 느낍니다.

하지만 이 상황은 곧 통제할 수 없는 상황으로 치닫게 되고,
곧 내가 나를 통제할 수 없는
무아지경(無我之境)에 빠지는데
이 순간은 지금까지 나를 통제해왔던 내가 순간 사라지는 상황이고,
곧 나를 지배했던 '생각'이 순간 사라지는 상황이기도 합니다.

즉, 섹스라는 것에는
인간이 반드시 깨닫고 깨어야 하는
'생각'으로부터 깨어야 한다는 내용이 함께 한다는 것입니다.


아이러니한 것은 기존의 기독교나 이슬람교 모두
술이나 섹스를 금하거나 금기시하고 있다는 것입니다.


마지막으로 꿈입니다.

꿈 역시 실재하지 않는 가상의 세계로서,
하지만 꿈을 꾸는 모든 사람들은 꿈을 꾸는 동안
그것이 꿈이라는 사실을 아는 사람은 결코 없습니다.

그 안에 행복이 있고 이루지 못한 욕망이 있고,
또한 생각으로는 피한 것 같은 현실에서의 고통도 있습니다.

꿈은 이러한 자신의 생각을 비쳐 보여주는
중요한 거울입니다.


결국 꿈에서는 이러한 자신의 생각을 이루기도 하고,
또 피하고 싶었던 고통으로부터 도저히 피할 수 없어
죽음에 직면하는 상황에서 결국 깨게 되는데,

꿈이 인간에게 주는 가장 큰 교훈은
바로 그렇게 사실로 여겨왔던 가상의 세계이자 꿈에서
이제는 깨라는 것입니다.

지난 1년 전까지 꿈 분석을 열심히 했었습니다.
주로 융의 이론을 참고했고,
내가 경험한 것으로 나름대로의 틀을 세웠었습니다.

하지만 그림論이 정리되면서 이후로는 꿈을 분석하지 않습니다.

물론 상담을 하는 사람들은
책이나 다른 곳에서 꿈을 분석하는 내용을 듣고는
자신의 꿈을 얘기하기도 합니다.

이럴 경우 짧게 해석해 주기도 합니다.
하지만 모든 꿈은 그 사람의 현재의 위장하고 있는 '생각'을
그대로 반영하는 것에 불과합니다.

중요한 것은 꿈의 해석이 아니라,
바로 그러한 꿈을 꾸고 있으니 이제는 깨라고 하는 것입니다.

그래서 짧게 꿈을 분석한 뒤에는 매번 이 내용을 다시 확인해 줍니다.


모든 생각에서 깨어나면,
이후로는 그 어떤 생각이나 주장, 기대나 소원이 없게 됩니다.

그래서 이제는 더 이상 종교가 필요 없습니다.


종교란 '모르는 것을 대하는 생각'입니다.
반대로 과학이란 '모르는 것을 보려는 성숙한 마음의 태도'입니다.

어린 아이는 모르면 불안합니다.
그래서 빠른 해답을 원하고 그 불안으로부터 벗어나려고 합니다.

하지만 성숙한 어른은 모르는 것을 끝없이 알고자 하지만
아직 모르는 상황이라면 모른다는 것을 견딥니다.


앞으로는 선과 악을 나누는 그 어떤 종교도 사라지게 될 것입니다.

선과 악이란 아직도 어린 불안한 아이의 환상에 불과한 것이기 때문입니다.


다음의 5부는 쉬어가는 장으로서,
재즈에 비친 자연의 원리를 짧게 다루어 보도록 하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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