생명과학부 재학중인 학생입니다. 궁금한 것이 있습니다.

글쓴이
지유
등록일
2003-11-01 02: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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의대에 떨어지고 생명과학과에 왔고,
나랏돈 먹고 학교 다니고 있습니다.

1학기 때에는 수능을 다시 볼 까 많이 고민도 했었지만,
이공계 장학금이 결정되고 난 뒤, 4년 전액 장학금을 두고 어딜 가~ 그냥 지내자.
하고 생각하게 되었습니다.

그런데, 문득 스스로가 굉장히 바보같다는 생각이 들더군요.

대학생에게 무상으로, 한 학기에 이백만원이 넘는 (어떤 경우에는 삼사백에 달할) 돈을 지불할 여력이 있으면,
대학생 여섯, 한 학기 지원할 돈으로-
월급 이백에 졸업생 제대로 고용하는 것이
먼 미래를 바라봐야 하는 국가 책임자의 선택이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이공계 장학금에 홀려 오는 사람은 별로 없겠지만(온 다음에야 저처럼 홀릴지도요)
과학이라는 분야가 매력적인 만큼,
고용이 제대로 된다면 그 편이 사람을 끄는 데 적합하겠지요.

그리고, 솔직하게 고백해서-
저 1학기 학점 2.8 나왔습니다. 한심하죠? 놀았습니다. (자랑할 거리는 아닙니다만)
그런데도, 213만원이 나왔습니다.
우리 부모님, 세 달 버는 돈이 나왔습니다.
이런 공부도 안하는 것한테도 저런 돈이 나옵니다만,
열심히 일하시는 분들에게는 돈이 안가네요.

물론 저한테는 좋습니다.
부모님 부담 안되셔서 좋고,
사정을 모르는 어른들께는, 장학금 받고 다닌다고 이쁨받아 좋고.
대학 생활 더러워도, 돈내고 하는 짓 아니라 좋고-

...그렇지만 미래가 걱정됩니다.
그리고,
이런 건 생각지도 않고 한순간 국가 돈을 먹는다는 생각에 희희낙락했던 자신이 한심해 견딜 수 없었습니다.


제가 의대를 가려고 생각했던 것은,
의사가 되어 돈을 벌기 위함이 아니었습니다.
물론 이런 의도를 가지고 의대에 가도, 다들 결국엔 의사의 길을 택한다고는 하지만요,
의대에 가서 연구직을 택하면, 갈 데가 많다는 이유에서였습니다.
생명과학과 혹은 생명공학과를 나오는 것보다, 훨씬요.

하나밖에 없는 자식, 돈 잘 못 벌어서 호강 못 시켜드려도.
하고 싶은 일 하면서, 큰 돈은 못 벌어도, 제대로, 고용문제로 시달리지 않고,
그냥 하고싶은 것만 하면서 사는 모습 보여드리리라 생각했습니다.

지금은 의대가 아닌 일반 대학의 자연과학부에 들어왔고,
저건 옛 생각이 되어버렸습니다. 그때와는 다른 현실을 인지해야 했습니다.
대학생이 되었고, 현실이 고등학교 때 생각했던 것과는 많이 다르다는 것을 알았습니다.
이 학교를 오게 되면서, 그래도 뭐, 취직이야 되겠지- 먹고야 살겠지- 생각했으나,
학교에 들어오고 나서,
취직보단 고시를, 과외를, 학원 강사를 택하는 것이 편하다는 사실을 알았습니다.
돈들여 외국 유학까지 가서 그곳에서 박사를 따오지 않는 이상은,
우리나라에서 박사까지 해봐야 인정받는 것이 '더럽게도' 힘들다는 사실을 알았습니다.
외국에서 박사를 따 와도, 취직하는 것도 힘들거니와,
그 학력으로 과외나 학원 강사를 하면-
취직하는 것보다 돈을 많이 번다는 사실을 알았습니다.


물론 아직 대학 1학년생에 불과하여, 아직 모르는 현실이 있을 수 있으나
여기 글들을 수시간여 읽어본 결과 어느정도는 제가 생각한 것과 비슷하리라 가정하고,
여쭙겠습니다.

뇌신경과학을 하고싶었습니다.
중학교 3학년때부터 이어온 꿈입니다.
길게 이어왔다고 꼭 그것이 옳은 것은 아니겠으나,
제가 재미와 즐거움을 느끼는 것은 오로지 저것과 관련된 것 뿐이었습니다.


...할 수 있나요?

현실을 도외시한다 치고,
제가 일을, 할 수 있나요?
다른 분야가 아닌, 제가 원하는 분야에서, 지속적으로,
일을 할 수 있나요.


...암울해졌습니다.
이곳에 와보고 암울해졌다면, 별로 들으시기 좋은 소리가 아니겠지만.
원래부터 알고있는 현실이었지만,
그래도, 하면 할 수 있겠거니 생각했습니다.


가장 문제가 고용 안정성이라 들었습니다.
월급이야, 속된 말로 '미친'사람들이 많으니,
대충 기본적인 것만 보장이 되어도- 할 것이다, 라고.

그런데-말입니다.
저, 연구원 노조가 있다는 말은 한 번도 들어보지 못했습니다.
견문이 짧아서인지는 모르겠지만, 정말로 한번도, 들어본 적이 없습니다.

힘들게 생활하시는 노동자분들께는 죄송합니다만,
-그래도 그분은, 장기근속 하시더군요.
21년동안 한 회사에서 근무하시더군요.
노조도 만들 수 있더군요.
부러워해서는 안될 일이지만, 부러워져 버렸습니다.

계약직 이야기를 이곳에서 주욱 읽고 나니, 정말로, 노조원들이 부러웠습니다.
혹시라도 노조가 있다면, 정말 바보같은 언급이 되겠으나,
저는 노조가 있다는 것만으로도, 잘리면 항의할 수 있다는 것만으로도.
참으로 부럽더군요.


솔직히 다른 것 다 필요 없습니다.
어려서 현실을 잘 몰라서일지도 모릅니다...만.
최소한의 생계만 보장해주시고, 고용 안정성만 확보해 주신다면,
아이큐도 창의력도 모자랄지 모르지만,
이 한 머리 바쳐 일할 것입니다.

전 장영실이 나타나기를 한 번도 빌어본 적이 없습니다.
단지, 세종대왕이 나타나기를 빌었습니다.
어느 시대에도, 천재는 있다고 생각합니다.
단지, 그 천재를 발굴해 사용해주는 사람이 있느냐, 없느냐의 문제라고 생각합니다.


쓰다보니 넋두리 식의 글이 되었습니다만,
다시 한 번 여쭙겠습니다.

일을 할 수 있나요?

제가 졸업할 때 즈음엔, 박사를 한 이후엔,
일을 할 수 있습니까.


그리고,

조금은 핀트를 벗어난지 모르겠지만,

연구원 노조가 있습니까?
없다면, 생겨날 가능성이라도 있습니까?



..대답해주시면 감사하겠습니다. 긴 글 읽어주셔서 감사합니다. 잘못된 점 지적해주시면 수정하겠습니다.

  • what? ()

      일단 질문에 대한답은, 최소한의 생계만 보장되고 고용안정성만 확보되는 연구원을 바라신다면, 그건 확실하게 가능합니다.

  • what? ()

      그리고 이공계 장학금 2.7이 컷인걸로 알고있는데, 좀 공부하시는게 필요할듯.. 노력없인 이도저도 안됩니다..

  • 공돌이 ()

      장학금까지 받은걸보면 우수학생인것같은데 오직 의대를 못들어가서 인생 자체를 실패한것으로 생각하다니.. 아무리 현실이 그렇다손치더라도 참으로 나약하기 그지 없습니다. 앞으로 힘든일으 많을텐데 신세한탄만 한다고 누가 밥먹여주지는 않습니다. 생명과학이면 이공계에선 남들이 가고싶어하는 학문아닙니까? 유학을 가서 (요즘은 이건희장학금같은것도 있어 1년에 5천만원을 줍디다) 미국교수가 될수도 있고 (참고로 말하면 미국교수 그다지 어렵지않습니다) 또 한국에 와도 교수나 국책연구원에서 충분히 정년까지 일할수 있는 자리가 있습니다.

  • 공돌이 ()

      물론 의대가 최선일수도 있겠지만 이렇게 된 이상 차선에서 최선을 다하는 자세가 중요하지 않을까요? 의대라고 해도 10년 20년후에 지금같은 부를 누릴지 누가 장담합니까..

  • 배성원 ()

      그... 연구원 노조는 별로 기대하지마십시오. 글을 많이 읽어보셨뎄는데... 약간 모자란 것 같습니다. 조금 더 읽어보시면 왜 그런지 알겁니다.

  • 정정당당 ()

      "뇌신경과학"을 하시려면 의사가 되셔야지 지금 자연과학부에서 뭐하시는겁니까. MEET보시려면 학점이라도 잘 받아두시거나, 지금 학점을 만회하기가 어렵거나 귀찮으면 수능 또 보는거지 어쩌겠어요. MEET의 살인적 경쟁률을 생각하면 후자가 나을듯... 연구원 노조요? 아니 계약직이 무슨 노조는 노조에요. 전혀 가능성 없습니다. 없고요. 그리고 지금과 같이 공급이 넘쳐나는 한에는 고용안정성도 큰 기대는 하지 마세요. 최소한의 급여요? 언감생심...

  • 지유 ()

      우선, 공돌이님. 전 의대 못가서 인생을 실패한 것으로 생각한 적은 없습니다. 단지 그쪽이면 같은 분야를 하면서도 직업은 보장 되었을텐데 지금은 그렇지 않다고 생각해서 쓴 글입니다. 그리고 말씀하신 희망적인 답변들은 감사합니다.

  • 지유 ()

      배성원님, 어떤 글을 더 읽어야 할 지 구체적인 지도 해주셨으면 좋겠습니다. 글이 참 많고 답글도 좋은 것이 많아서 제목을 보고 가려 읽었는데 제 취향이 아닌 제목에서는 좋은 글이라도 넘겨 버렸을 지도 몰라서요.

  • 지유 ()

      what님, 공부는 저도 2학기인데 해야겠다고 생각하고 있었구요, 컷이 2.7이었던 건 처음 알았습니다. 다신 이런 점수 받지 않겠으나 정보 감사드리고요. 역시 희망적인 답변 감사드립니다.

  • 지유 ()

      그리고 정정당당님. 저는 위에서 말씀드린 바와 같이 의사가 될 생각은 없습니다. 그리고 생명과학부 졸업생, 이 분야 석박사로서 뇌신경과학을 할 수 있냐고 여쭌 것입니다. 연구원 노조는 좀 암울한데요. 답변 감사합니다.

  • 준형 ()

      한국에서 뇌신경과학의 실정은 모릅니다만 미국에선 이공계 박사들이 해 볼만 합니다. 수학, 전산, 화학, 물리, 심리학 등등 전공자들이 너무나 많이 필요한 분야 입니다.

  • 지유 ()

      준형님 감사합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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