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펌 : 개혁당] 이공계 위기의 논리(2)

글쓴이
정우성
등록일
2003-03-13 12:55
조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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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전에 퍼왔던 백승기 님의 두번째 글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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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가 저번에 적은 글을 읽고 몇 분이 좋은 답글을 주셨습니다. 감사드리며 이에 몇가지 다른 의견을 제시하고자 두번째 글을 올립니다. 개혁당 과학기술정책의 기조를 어떻게 놓을 것인가에 대한 제안이라는 사실과 저 자신의 한계로 인해 구체적인 현실을 이 글 안에 충분히 담아내지는 못하는 점 스스로도 아쉽게 생각합니다.



1. 현재 제안된 해결책의 단점
먼저 몇 분의 글에서 수요와 공급의 균형을 어떻게 이룩할 것인지의 해결책을 언급하는 부분을 보겠습니다.

incoh2님의 글(개혁당 KAIST모임 게시판)
"그렇다면 그 구체적인 방법이 무엇인가 하는 게 다음 문제겠죠. 제가 여기서 막혔습니다. 유일하게 생각나는 것은 과학행정 전문 연구기관을 만들어서 미래의 수요를 가능한 한 정확하게 예측하도록 한다 이 정도 밖에 없습니다."

계명하님의 글(scieng.net 자유게시판)
"따라서 정부가 앞장서 전공 분야별로 과거의 기술인력취업현황과 앞으로의 산업발전을 고려해, 구체적인 인력수급방안을 제시해야 하고 이를 토대로 각 대학이 이공계 학과 정원 조정을 해야 합니다.."

맹성렬님의 글(scieng.net 자유게시판)
"그래서 해당 분야의 과학기술 전문가들이 주축이 된 에이전시를 둬야하는 겁니다. 그것이 해결책입니다."

임호랑님의 글(scieng.net 자유게시판)
"Agency-PM중심, 그게 정답입니다."


네 분의 말씀을 제가 다시 적어본다면 "정부가 해당 분야의 전문가들로 구성된 자문위원회를 통해 각 분야의 수요를 가능한 한 정확히 예측하고 그에 따른 조정을 해나가야 한다" 는 것입니다. 이는 지금과 같은 주먹구구식의 계획 대신 현실을 반영하는 계획 쪽으로 가자는 것으로 생각됩니다.

그러나 차이점에도 불구하고 이 둘은 중앙(정부)에서 계획을 세우고 집행하는 구조라는 면을 공유합니다. 저는 중앙계획식 과학기술 개발 자체가 갖는 다음의 두가지 부정적 특성을 지적함으로써 이것이 최종적인 답안은 아니라는 점을 말하고 싶습니다.

1) 과학기술과 사회의 괴리
정부는 수요를 예측하기보다는 국가 전체적인 플랜에 맞추어 수요를 사실상 "설정할" 것입니다. 이는 사회구성원들이 원해서 만들어지는 수요가 아니기 때문에, 과학기술의 발전과 사회 구성원들의 요구 사이에 괴리가 일어날 수 있다는 것을 의미합니다. 보통 정부 주도가 적합한 분야는 많은 자원이 동원되어야 하는 거대과학기술 쪽이며 소소한 시민사회의 요구들에 그때그때 대응하기는 어렵습니다.

2) 과학기술계 내부의 괴리
각 분야를 대표하는 권한을 가지고 나온 대표자들 사이에는 자원 배분 계획을 둘러싼 경쟁이 일어날 수밖에 없다는 점을 생각해야 합니다. 이는 정부의 계획 자체에 파벌간 권력 및 이해관계가 개입하며 이를 바로잡기가 힘들다는 것을 의미합니다. 또한 세분화된 분야들을 큰 줄기별로 묶어서 소수의 인원이 대표하는 형태가 되므로 소규모의 분야는 진지하게 고려되지 않을 수 있습니다.

저는 이상의 이유로 "정부의 정확한 예측"이라는 것에 주의를 할 필요가 있다고 생각합니다. 중앙관리형의 체제가 가졌던 단점들을 고스란히 물려받기 때문입니다. 물론 과학기술계의 의견이 정부 행정에 반영되어야 합니다만 그것의 이유는 "행정은 본디 사회 제반 분야를 반영해야 하므로 과학기술 행정도 예외는 아니"라는 선에 있어야 합니다.










2. 보완 방안
정부 주도의 경직성을 보완하는 방안으로서 시민사회의 유동성을 과학기술계 내부로 끌어들이기 위해 제가 생각하고 있는 방향을 말씀드리려고 합니다.

1) 진입장벽의 축소
수요와 공급의 간극을 좁히는 원론적인 답변은, 인적자원의 상호이동성을 높이고 공급이 대응하는 데 걸리는 지연시간을 최소화하는 것입니다. 즉 고시와 같은 진입장벽은 불필요하게 높지 않아야 하며 사회인 재교육이 폭넓게 장려되어야 합니다.

장벽을 낮춘다는 것은 전문인력 양성에 반하는 것으로 보일 수도 있습니다. 그러나 고시 제도의 대안으로서 변호사 개업의 장벽을 낮춘 다음에 높은 실력에 다다랐음이 인정받는 사람이 판사로 임용되게끔 하자는 의견이 있듯이, 둘의 조화를 이루는 것은 가능하다고 봅니다. 즉 전문성을 담보하는 방법으로서 하나의 큰 장벽을 넘었나 못 넘었나를 보는 것이 아니라 높이가 조금씩 다른 작은 장벽들 여러 개를 놓아 여러 단계로 걸러내는 시스템이 있게 되는 것입니다. 그러면 성공과 실패의 이분법 대신 조금씩 다른 서비스를 제공하는 여러 개의 직업 형태가 가능할 것입니다.

이를 지원하기 위해서는 교육이 특정 시점에서 단절되는 것이 아니라, 일단 직업을 택한 후에도 다방면으로 양질의 교육을 제공받아 자기계발을 할 수 있어야 합니다. 만일 대학에서 직장인 대상의 교육을 적극적으로 담당한다면 대학의 운영에도 도움이 되지 않을까 생각하고 있습니다.

다음과 같은 커리큘럼 상의 고려도 부탁을 드리겠습니다. 학위를 얻기 위해 몇 년에 걸치는 하나의 커리큘럼이 존재하는 상황은 고속도로로 비유될 수 있습니다. 경험 있는 분은 아시겠지만 고속도로는 한번 타면 중간에 멈추거나 돌아가기가 참 어렵기 때문에 목적지를 수정하고자 할 때에 경험되는 장벽이 높습니다. 물론 고속도로도 필요합니다만 고속도로만 깔아놓고 살 수는 없듯이, 시내 도로망처럼 짧은 커리큘럼들 여러 개가 접점을 가지고 있는 교육 형태가 많아져야 합니다. 그래서 각자가 놓인 위치에서 시작해서 다른 위치를 향해 언제든 점진적으로 옮겨갈 수 있도록 말입니다.

2) 시민사회와의 연계 강화
또한 과학기술과 사회의 괴리라는 문제에 대해 우리가 하나 생각해 볼 수 있는 움직임은 과학상점 운동입니다. 과학상점 운동이란 기업이나 국가 프로젝트가 아니라 시민단체 등의 의뢰를 받아 연구를 수행하는 활동을 말합니다. 네덜란드에서 시작되었으며 우리나라에서도 전북대를 시발로 각종 단체들에서 움직임은 있지만 아직 추진력이 크지는 않은 것으로 알고 있습니다. 반드시 과학상점 운동이 아니어도 상관 없습니다만 지난 8일의 과학기술위원회 워크샵에서 제시된 "과학이 곧 삶이 되는 과학기술 정책"라는 훌륭한 문구를 실제적인 내용으로 채워나갈 필요가 있음은 분명합니다.

끝으로 고 최종욱 교수(서울대 철학과, 2001년 작고)의 귀중한 내부비판을 인용합니다.

"인문과학이 위기에 빠져있다는 목소리가 높다. 이러한 현상은 우리의 경우 학부제 실시와 특히 IMF 이후 문학, 역사, 철학 등과 같은 학과들에 지원하는 학생들의 수가 격감하고 있거나 아예 지원자가 없는 상황 속에서 현실성을 갖고 표출되고 있다. 교육부는 수요자 중심으로 교육체제를 바꾸겠다는 의지를 개혁의 의지로 승화시키면서 인문과학의 위기를 호소하는 목소리를 외면하고 있다. 오히려 교육부는 "신자유주의"라는 기치를 들고 대학의 구조조정을 강요하고 있다. 이러한 상황 앞에서 우리의 인문과학자들은 학부제와 IMF 그리고 신자유주의를 비판하기 전에 지금까지의 관행에 대해 스스로 반성하는 자세가 필요하다. 왜냐하면 수요자들이 인문과학을 외면하는 이유는 한국의 인문과학자들이 수요자들의 욕구와 관심을 외면하거나 도외시한 결과이며 그것에 대한 수요자들의 보복이기 때문이다.(중략)

그러나 우리의 경우 그러한 수준을 넘어서 아예 현실을 무시하거나 현실을 거론하는 것을 "비학문적"인 태도 혹은 정치적 의도를 가진 "불온한 것"으로 터부시하였다. 그리고 그러한 터부는 "가치중립"이라는 미명하에 또는 "반공"이라는 허울 아래 정당화되었다. 이러한 정당화된 터부는 "비판"을 생명으로 하는 인문과학의 자기존립의 토대 자체를 해체하였고 "시대비판"을 철학의 임무로 규정한 헤겔의 주장을 사문화시켰다. 현실의 외면 내지 암묵적인 침묵을 통해 억압적 현실을 호도하거나 정당화하는 데 앞장섰던 한국의 인문과학이 한국의 현실로부터 외면을 당하게 된 것은 어쩌면 당연한 귀결일지도 모른다.(후략)"

  • 김덕양 ()

      아...퍼오신 글이군요. 뭐라 코멘트를 해드리고 싶어도 여기서는 토론이 안될터이니. 암튼 개혁당 과기위원회에도 과학상점쪽으로 관심을 가지고 계신 분이 계시군요.

  • 정우성 ()

      우리끼리의 토론도 의미있지 않을까요?

  • 정우성 ()

      고속도로와 시내 도로망의 비유는 비단 대학 뿐 아니라 다방면에 적용이 될 수 있을 것 같습니다. 정출연의 재교육 문제 등은 고속도로를 강요받은 사람에게 갑자기 다른 고속도로로 순간이동하라는 이야기와 비슷한 문제에서 출발한 것이 아닐까 싶구요.

  • 정우성 ()

      대기업의 경우에는 소니유니버시티 등과 유사한 형태의 사내 교육프로그램(얼마전에 삼성전자 공대 졸업이 있었죠)이 존재하고 직급별로 끊임없는 교육 프로그램을 통해 교육을 시행하지만 좀더 눈높이를 낮추어서 중소기업에 있는 인력들은 이러한 교육을 받고 있는지 궁금합니다.

  • 정우성 ()

      IT분야는 고용보험환급 프로그램으로 지정 교육기관에서 일부 교육을 받는 제도가 있는 것으로 아는데, IT전문가들이 다른 소양을 익히기 위한 교육프로그램이 있나요? 대기업은 기업 스스로 어느 정도 교육공학적인 체계가 있지만 이를 못하는 하층부 구조에 속한 인력들의 교육은 어찌 이루어지고 있나요?

  • 김덕양 ()

      아 정우성님. 토론이 워낙 길어질 것 같아서요. 제 개인적인 이유로 본인이 아니신 경우 시간을 내기가 좀 힘듭니다.  죄송하구요. 그럼 즐통하시기를. ^^

  • 정우성 ()

      아 제 애기는 딱히 둘이 토론하자는 이야기가 아닙니다. 회원 여러분들 다함께 여러 가지 것들을 생각해 보자는 이야기였죠.

  • 임호랑 ()

      과학상점... 기술이 시장과 무관하게 가도 안 되지만, 시장에만 맡길 수 없는 선도적(leader) 역할이 있는 것도 한 특징입니다. 이는 정부든 Agency든 기획하고 이끌어줘야 하는 부분입니다. 선진국들이 다 그렇게 하고 있습니다. 특히 국방과 정보부분은 그렇게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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