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향신문] ‘다이내믹 코리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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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요유
등록일
2002-06-20 23:3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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희망을 쏘는 시민의‘거리축제’

‘다이내믹 코리아’

월드컵이 보여준 한국의 역동성에 세계는 물론, 우리 자신도 놀라고 있다. 별로 실현 가능성이 없을 것으로 보이던 8강 신화를 이룬 것도 12번째 선수라고 불리는 붉은 악마들의 응원과 한국인의 신명 덕분이다. 한국팀 첫 경기였던 지난 4일 폴란드전 당시 50만명이었던 거리응원단 수는 22일로 예정된 스페인전에서 5백만명이 될 것으로 예측된다.

세대·성별·계급·성향·지역을 막론하고 붉은색과 태극기 아래 하나가 돼 뿜어내는 한국 월드컵 열기의 정체는 무엇인가. 세계 어느 나라에서도 유례를 찾아볼 수 없었던 한국적 역동성의 실체와 월드컵 이후의 변화 방향을 전문가들의 조언과 함께 짚어본다.

◇열기의 정체=월드컵의 열기는 가장 정직하고 단순하면서도 과격한 운동인 축구 자체가 뿜어내는 원초적 흥분에다 한국인 특유의 심성이 더해져 상승작용을 일으킨 것으로 보인다.

주강현 우리민족문화연구소장(민속학)은 “우리 민족은 샤머니즘 성향이 강해서 한꺼번에 집단으로 모여 무언가를 압도적 분위기에서 해내는 것을 좋아한다”며 “응원열기를 파시즘의 대중심리로 우려하는 사람도 있는데 그것보다는 일종의 주술의식처럼 즐기는 것”이라고 말했다.

김동춘 성공회대 교수(사회학)는 “대화가 차단되고 억압적인 우리 사회에서 월드컵은 욕망을 마음껏 분출시킬 수 있는 해방구가 되었다”며 “함께 한다는 공동체의식과 붉은옷을 입고 태극기를 몸에 두르는 데 따른 짜릿한 해방감은 매우 긍정적 현상”이라고 말했다.

열기 속의 세대간 차이도 지적됐다. 김정운 명지대 교수(사회심리학)는 “붉은 악마란 이름으로 모인 수백만의 사람들이 외치는 ‘대~한민국’에는 여러가지 의미가 들어있다”고 밝혔다. 30대 이상의 시민들에게 그것은 민주화를 떠올림과 동시에 ‘아, 이제는 잘 살게 됐구나’라는 감동이 깃들어있다면, 젊은 세대가 외치는 ‘대한민국’은 ‘지오디’나 ‘에이치오티’를 외치는 것과 다를 바 없다는 것. 장년층의 응원이 경기에서 이기려는 수단인 반면, 젊은이들의 응원은 그 자체가 놀이이고 목적이다.

◇응원의 명과 암=1970~80년대의 시위문화와 90년대의 놀이문화가 합쳐진 거리응원은 우리가 근대화 과정에서 잃어버렸던 축제문화를 되살려주는 동시에 물질주의를 벗어나는 촉매역할을 할 것으로 기대된다. 그러나 국가주의에 대한 경계도 없지 않았다.


송호근 서울대 교수(사회학)는 “경제성장이 어느정도 이뤄진 상황에서 사람들의 관심은 물질적 가치로부터 문화·여가·자아실현·환경 등의 추상적, 심미적 가치로 이전한다”며 “월드컵은 의식의 개방성과 탈물질주의적 가치를 확산시킬 것”이라고 보았다. 이같은 탈물질주의는 타문화에 대한 개방성, 환경·생태·시민주권·평화에 대한 존중과 같은 풍조를 만들어내고 정치적 진보성과 연결된다는 것. 반면 강내희 중앙대 교수(영문학)는 “매스컴이나 정치권에서 축구성적을 국력과 연결시키거나 대중적 에너지의 발로인 환호와 열광이 대한민국을 외치고 우리의식을 강조하는 것 같아 우려스러운 부분도 있다”고 지적했다.


◇냄비인가, 변화인가=월드컵이 끝나면 모든 것이 예전으로 돌아갈 것이란 냄비론도 있지만 사회적 의식의 변화에 대한 기대가 점점 커지고 있다. 특히 히딩크가 보여준 리더십과 투명성, 붉은 악마의 응원문화는 새로운 발전방향을 제시할 전망이다.


정신과 전문의 김정일 박사는 “이번 월드컵에서 한국의 선전은 진실의 승리”라고 말했다. 히딩크 감독은 철저하게 객관적 실력을 기준으로 전혀 주목받지 못하던 변두리 선수를 대거 기용, 승리를 이끌어냄으로써 끈이 있는 사람은 성공하고 끈이 없는 사람은 실패하는 현실에서 무기력감을 느껴왔던 사람들에게 희망과 가능성을 보여주었다는 것.


강내희 교수도 “히딩크가 보여준 리더십의 교육효과, 붉은 악마의 자발성 등은 사회변화의 긍정적인 힘이 될 것”이라는 데 동의했다. 그는 또 “이 열기를 국가경쟁력 향상논리로 몰아가거나 정치세력·기업의 이해관계에 이용하는 것은 경계돼야 한다”고 지적했다.


최원기 한국청소년개발원 부연구위원(사회학)은 붉은 악마의 응원문화를 대중문화에서의 한류열풍, 정보통신산업의 비약적 성장 등 ‘한국적인 것의 세계적 모델화’로 보았다. 그는 “기존의 훌리건과 대조되는 한국의 새로운 응원문화는 집단주의와 개인주의, 정신주의와 물질주의, 한국중심주의와 세계화, 온라인과 오프라인을 조화시키면서 새로운 문화변동의 방향을 매우 긍정적으로 제시했다”고 평가했다.


〈한윤정·이무경·도재기·이상주기자 yjhan@kyunghyang.com

  • 소요유 ()

      개인적으로 붉은 악마로 대표되는 이번의 응원문화가 '전체주의적'이라는 분석에 동의하지 않습니다.  그 이유는 '자발성'에 있고, 이 자발성이 '상징조작'과 같은 것으로 부터 발생된 것이 아니라는 점입니다. 물론 이를 상징조작을 이야기하는 사람들 (정치인들, 국가주의자들)이 문제이긴 하지만  전 우리국민이 갖는 톡특한 정서, 즉 '신명'과 '샤머니즘적인 태고유형'을 갖는 집단무의식으로 봅니다.  이런 의식은 우리가 얼마간 사회주의적인 정서를 갖고 있는 면에서도 잘 나타나 있습니다.  일종의 마을굿이 국가단위로 확대된 것 처럼 보이지만 잘 보면 '같은 마당을 공유'하는 '동네단위'의 모임으로 봐야 할 것 같습니다.     

  • 소요유 ()

      그런 의미로 이와같은 집단 무의식적인 행동을 너무 전체주의적인 것 보다는 좀더 건강한 것으로 생각됩니다. '신명'으로 표현되는 이와같은 '굿'은 주연과 관중이 구별되지 않는, 다시말하면 관중이 그 제의에 적극적으로 참여하는 형태로 나타납니다. 예를 들면 판소리 마당에서 관객이  연희를 펼치는 판소리 명창의 소리에 적극적으로 참여 (추임새)하는 것과 같습니다.     

  • 포닥 ()

      소요유님에게 한표. 제발 빛고을 광주가 월드컵 4 강의 기적의 도시란 새로운 이름을 가지게 되길 기원합니다. 이번 주말, 한반도의 암울했던 기억의 한조각을 씻을 수 있는 씻김 굿 한마당이 펼쳐지기를 간절히 바랍니다. 신의 은총이 모두와 함께하기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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