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설] 이공계 기피현상 해결됐다?

글쓴이
김일영
등록일
2002-06-28 13:04
조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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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니리포트에 좋은 글이 있어 퍼왔습니다. 아직도 정부에서는 당근으로 이공계 사태가 해결될 거라 보고 있는 것같습니다. (저도 계속해서 지적하는 문제지만...) 우리가 바라는 것이 당근인 줄아나 봅니다. 정말 한심합니다.



이공계 기피현상 해결됐다?

"당근만 보고 절벽으로 달리게 하라"

고등학교 이과학생비율 27%. 수년 이내에 예체능계 학생 비율에도 못미칠 것이 불보듯 뻔하다. 21세기를 맞이하여, 동아시아의 개발도상국인 대한민국은, 문예를 드높여 문화창달에 나서며, 공산품이 아닌 문화상품을 수출하여 생계를 꾸리기로 한 것일까.

지적으로 우수한 수험생들은 법대, 상경계열, 의대, 한의대, 치의대에 진학하고 여유있는 집 수험생들은 음대, 미대, 체대에 진학한다. 그 '27%'의 이공계 학생들은 너무 안일하거나, 너무 순진하거나, 자신의 성적을 아쉬워하거나, 그도 아니면 그냥 대학에는 가야하니까 입학정원이 많은 이공계를 선택한다.

과학영재를 기른다고 여름캠프까지 열어 가르쳐서 국제 올림피아드 대회에 입상시켜 놓으면 특례입학하게 되어 좋다고 하며 의예과에 진학한다. 어려서부터 꿈을 품고 자라 대한민국 출신의 세계적인 과학자가 되어 보겠다고, 주위의 만류를 물리치고 자연계에 입학한 수재들은 1학년을 다니고는 수능시험을 다시 쳐서 의대를 가고, 학부를 마치고 의대에 편입하고, 기를 쓰고 영어공부를 하여 GRE 맞추는 기계가 되어 외국으로 뜬 뒤 눌러앉아 세계적인 기업의 인재가 되어 남의 나라에 돈을 열심히도 벌어주고 있다.

남아있는 대학원생들은 병역특례에 묶인 이들뿐이다. 석사를 마치고 5년간 기업체 연구소에서, 또는 박사를 수료하고 5년간 학교또는 연구소에서, 교육부와 국방부에 동시에 얽힌 몸으로, 직장인이자 군인으로, 또는 학생이자 군인으로 살아가는 사람들이다.

근무지를 이탈할 수 없고, 정해진 범위의 수입원 외엔 경제활동을 할 수 없으며, 해외출장시 매번 허가를 받아야하며 특별히 인정되는 이유 없이는 복수여권을 발급받을 수도 없는, 그들이 바로 이공학을 버리지 않고 한국에 남아 있는 유일한 미래 연구인력들이다.

금년에 박사과정 4년차가 되는 K씨는 이렇게 말한다. "이럴 줄 알았으면 학부때 군대를 다녀올 걸 그랬다. 학업이 중단되는 게 두려워 미루다보니 특례에 자연스럽게 편입되었는데 앞으로도 4년이 지나야 자유의 몸이 된다."

정부와 학계는 최근들어 다양한 '당근'을 던져대고 있다.

이공계 대학생 장학금 지원, 국비유학생 증원, 병역특례대상 확대(여기엔 '기초의학'이라는 명분으로 의대생들도 새롭게 대상이 되었다), 대학 연구비 증액등이다. 간단히 말해서 돈주고 군대 빼줄테니 이공계 가라는 것이다. 이것은 새로운 수단이 아니다. 돈과 군대를 미끼로 이공계 학생들을 붙잡아 두고 인력의 안정적인 공급을 꾀하는 수단은 90년대 초부터 근래까지 그럭저럭 성과를 내고 있었다.

하지만 이젠 그 성과를 더이상 기대할 수 없다. 그 이유는, '당근' 시기에서 졸업하여 이제 본격적으로 절벽으로 떨어지고 있는 '선배 이공계생'들이 늘어나고 있기 때문이다. 93년 처음 시작된 병역특례제도는, 당시 86~87학번들이 석사를 마친 시점이었고, 2000년 봄에야 '국산 병역특례 박사'들을 자유의 몸이 되게 하였다. 그들이 여러 국내 연구소에 어렵사리 취업한 뒤 후배들에게 던진 말은 이구동성이었다.


"의대를 가든지, 유학을 가라."


정부, 학계, 산업계는 이공계 출신 연구인력의 수요처이자 사용자이지 연구인력의 이익을 보호하고 의견을 대변하는 집단이 아니다. 연구인력이 당장 부족하면 근본적인 해결책을 내지도 않으며, 근본적인 해결책을 내는 것은 그들의 이익에 반하는 일이다. 연구인력은 그 일의 특성상, 신선한 상품일수록 좋은 것이므로, 학생들을 늘려서 신입연구원, 특히 5년간 맘대로 쓸 수 있는 발목 잡힌 병역특례 신입연구원의 수급만 제대로 이루어지면 되는 것이다. 5년의 유통기한이 지난 연구원은 처우에 불만이 있으면 그만두고 나가서 뭘 해서 먹고살든 관심이 없는 것이다.

따라서 정부, 학계, 산업계의 이공계기피현상 대처방안은 항상 '유인책'이다. 다음은 2월 6일자 신문기사이다.

<서울대 공대 이장무 학장은 "이공계 기피현상은 국내 과학기술분야의 심각한 공백으로 직결되는 만큼 정부차원의 획기적인 이공계 "유인책" 마련이 시급하다"며 "전국 이공계 관련대학 학장 협의회와 연대해 해결방안을 모색해나갈 방침"이라고 밝혔다.>

이는 눈을 가려 당근만 앞에 보이게 해 놓은 말을 절벽으로 몰아가는 것과 마찬가지이다. 학생들에게 장학금을 주고, 두뇌한국21 사업을 통해 장려금성격의 준급여를 주고, 연구비를 증액하고, 병역특례를 늘려서 학생들을 모으고 붙잡아두는 이러한 유인책은, 결국 학생들에게 더 깊은 배신감과 더 큰 실망감을 안겨줄 뿐이다.

무엇보다, 이미 이러한 당근을 겪어본 90년대 이후의 연구인력들이라는 산 증인들이 있다. 고등학생들은 자신의 인생에 관심이 많으며 충분히 영악하고, 학부모들은 자식의 미래를 자신의 노후보다 더 걱정하며 쉴새없이 귀동냥을 한다. 당근에 끌려 이공계에 진학했다가는 당근의 유효기간이 끝나는 30대 이후를 보장할 수 없다는 것을 잘 알고 있다. 그렇다고 20대 시절에 그 알량한 당근의 덕택으로 남들보다 화려한 삶을 사는 것은 당연히 아니다.

현대 산업사회에서 부가가치를 만드는것은 자연자원도, 집약적 노동도 아닌 신기술이다. 벽돌만한 전화기나, 386 CPU는 팔리지 않는다. 이공계 연구인력이 부가가치를 만든다. 현대 과학기술의 급속한 발전속도때문에, 기초과학-응용과학이라는 구분자체가 무의미하다. 차세대 기술이라고 떠들어대는 BT(bio technology)나 NT(nano technology)가 생물학, 물리학, 화학 그 자체가 아니고 무엇인가?

환경, 기후문제와 관련산업은 지질학, 해양학, 대기과학 없이 가능한가? 증권,경제예측, 경영, 데이터처리와 분석이 수학과 통계학 없이 가능한가? 기초과학의 최신 분야는 항상 머지않은 차세대의 응용기술을 뜻한다.

이공계 연구인력에 대한 근본적인 인식변화와 처우개선이 없이는 어떤 미래가 기다리고 있는지 충분히 예측가능하다.

우리나라는 세계 최고의 성형수술 수준, 세계 최고의 라식수술 수준을 갖게 될 것이며 매우 똑똑하고 훌륭한 지적 능력을 가진 이혼전문 변호사와 상속전문 변호사들을 갖게 될 것이다. 남의 돈을 굴리는 금융인들이 외국에서 돈을 벌어올 연구인력보다 백배 잘 사는 나라. 이것이 21세기 대한민국의 모습이다.


하니리포터 박상욱 / cutewolf@plaza1.snu.ac.kr

편집시각 2002년02월06일17시01분 KST

  • 로켓연구가 ()

      명문입니다.

  • 반골 ()

      촌철살인의 명문이라고 덧붙이고 싶군요.

  • 김선영 ()

      최고의 법치국가가 탄생하고 있지요. 법으로 반도체도 만들수있다고 믿는 것일까요?

  • 김진구 ()

      김선영님의 리플이 정말 압권이군요.

  • 임호랑 ()

      정말 엄청 고수들이군요. 저는 잠시 잠수해야 할까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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