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공계가 무너지는 소리...

글쓴이
임호랑
등록일
2002-07-06 14: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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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자게에 올렸던 것인데, 이곳에 옮겨놓는게 좋겠다는 의견에 따라 이곳에도 올립니다.
 
처음으로 2박3일하는 전기전자 관련 하계 국내학회에 참석하고 이제 막 돌아왔다.
이런데는 할일없는 사람들 놀러가는 곳이라고 생각하고 지난 10년간 국내 하계학회에는 한번도 안 갔었는데, 모처럼 기업체 간부들, 교수들, 연구원들하고 막역하게 얘기도 나누고보니 마냥 시간낭비만은 아니라는 생각이 든다.

그런데, 이번에 서로 속내를 열어놓고 얘기들을 해보니 이공계가 무너져내려가는 소리가 여기저기서 심상치 않게 들리고 있었다. 그 양상은 복잡하고 미묘하지만, 영악한 학생들은 잘도 알고 이공계를 탈출하는 러시가 일어나고 있다는 점은 공통적이다. 급기야는 학회에서 무너져가는 공대교육에 대한 대책을 마련하는 별도 모임(대학원생은 제외하고, 교수, 연구원, 업체 관계자들만 30명 정도)까지 공식적으로 만들어져 진지한 토의가 이어졌다. 

뭐 이공계 기피는 새삼스러운 얘기도 아니고 수없이 얘기들 하던 것이긴 하지만, 교육 및 업체, 연구소 현장을 책임지고 있는 사람들이, 이 문제를 심각하게 느끼고 대책을 모색하는 자리였다는 점에서  나름대로 의미를 부여할 만 하다.

먼저 교육쪽 뚜껑을 열어보니, 대학마다 사정은 다르다. 학부제냐 학과제냐에 따라서도 양상이 다르고, 전공이 무엇이냐에 따라서도 다르며, 서울이냐 지방이냐에 따라서도 엄청 다르다. 

먼저 명문대에서 이공계 학생들이 미적분도 제대로 모른다는 신문보도는 빙산의 일각에 불과하다는 점이 지적되었다. 인문계열을 공부한 학생들이 이공계로 들어와서 생긴 문제는 생각외로 많은 문제를 발생시키고 있다. 일단, 삼각함수도 잘 모르는 공대 2학년생이 상당수다. 그리고, 하드웨어를 다룰 실력이나 관심이 거의 없어 쉬운 소프트웨어쪽으로만 엄청나게들 몰린다. 일종의 3D기피문제인 것이다.

그래도 명문대의 경우 학부는 그런대로 참아줄 만 한데, 문제는 대학원이 무너져 내리고 있다는 것이다. 학부에서 우수한 학생들은 죄다 유학을 떠나버리고, 석사과정은 중위권 타대학 학생들의 타겟이 되고 있으며, 박사과정은 그나마 요즘엔 예전 숫자도 유지하기 힘들어간다고 한다.

이러한 도미노 현상은 중위권 대학원의 붕괴로 이어진다. 이미 중위권 대학원에서는 석사도 모시기(?) 힘들어, 교수들이 직접 실험하고 논문쓰는 바람직한(?) 모습이 자연스럽게 연출되고 있다. 하위권 대학에 있는 교수들은 그 정도는 약과라고 한 마디 한다. 이건 학부도 붕괴되고 있다는 것이다. 입학생수준도 수준이지만, 조금이라도 잘하는 학생은 편입학 시험쳐서 더 좋은 대학으로 가버리기 때문이다.

2년제 대학(옛날 전문대를 요즘엔 이렇게 부른다)는 오히려 잘 나간다는 신문보도와는 달리, 거기에 몸담고 있는 사람의 목소리는 달랐다. 학생들이 한탕주의에 빠져있다는 것이다. 즉, 2년간 배운 것으로 벤처회사같은델 들어가거나 차리는 것이 유행인데, 한 5-10년간 무리를 해서라도 평생살 떼돈 벌 생각들만 한다는 것이다. 뭐 모든 2년제 대학 교수들을 만난 것은 아니니 일반화는 못 시키겠지만, 그래도 상대적으로 제일 이공계 문제가 덜 심각한게 아닌가 하는 엉뚱한 생각도 든다.

한편, 자성의 목소리도 컸다.

선배 이공인들이 제대로 된 일거리를 창출해내지 못하고 제 역할을 못해서 그렇다는 것이다. 과학기술은 자연발생적인 것이 아니기 때문에 기획을 하고 정책적으로 리드해나가는 것이 중요한데, 이러한 판단을 제대로 못하고 인력조정이나 이공인 대우에 대한 총체적 관리 등을 제대로 못해냈다는 지적이다. (나도 여기에 적극 동의하는 편이다)

그리고 또 다른 자아비판은, 좀 배웠다는 이공인들이 힘든 회사생활을 피해 편한 대학교수로 옮기는 것을 지상과제로 삼고들 있다는 것이다. 그 와중에도 나름대로 이유있는 자기합리화를 하는 사람들도 있었다.

"회사에서 능력이 있으나 없으나 매일 밤 10시까지는 기본이지, 몇달마다 돌아오는 신제품 개발해대려면 몇 주씩은 집에도 제대로 못들어가는 생활을 5-10년만 해보라!"

그러면 그런 생각 안드는게 비정상이라는 것이다.  즉, 삼성전자를 비롯하여 대기업 어디를 가도 고급 이공인력들을 가혹하리만큼 부려먹는  현실에 대한 지적인 것이다. 그런데도 누구 하나 나서서 현상타개를 하려는 몸짓도 없이 모든 것을 개인문제로 돌리고 저 혼자서 문제를 해결해보려는 소극적인 사람밖에 없었다는 점이다.

교수들 자질이 스스로 부족하다고 실토하는 사람들도 있었다. (참 이공인들은 이럴 때 보면 순수한 면이 있다) 이공계 교수를 하려면 현장경험이 10년은 넘어야 하는데, 제대로 가르치려고 보니 부족한게 한 두가지가 아니라는 자성이다. (이건 그 말 하는 사람이 겸손해서 일 수도 있다)

연구소나 업체에 있는 사람들은, 현장에서 필요로 하는 인력과 구직자 간의 갭에 대해 성토하였다. 현장에서는 하드웨어를 다룰 줄 알고 기본적인 과학원리 및 공학상식이 풍부한 사람을 원하는데, 학교에서는 너무 소프트웨어만 가르치고, 실력도 너무 미달되는 학생들을 가르쳐 내보낸다는 불평이 줄을 이었다.

LG 내부 사정을 잘 아는 한 전직 연구원 출신 교수는 이런 말도 했다. 공대생들이 6년(학사+석사)간 영어공부만 하는지 국내 석사들 대부분이 토익 800점을 넘기는데, 정작 공학실력은 그에 비해 초라하기 짝이 없다는 것이다. 그래서 잠시 '그놈의 세계화' 때문에 외국 어학연수 가는게 중고딩/대딩간 유행이 되었고, 이로 인해 해외유학 러시 및 영어 공부 광풍, 해외이민 바람이 불게되었다는 분석도 이어졌다.

더 횡설수설해지기 전에 정리를 해보자.

1)  이미 우수 고졸생은 더 이상 이공계에 안 온다. 뭐 대책이고 뭐고 세워서 바꾸고 말고 하기에는 이미 늦었다는 것이다. 이제 수준이 낮아진 이공계 학생들은 어려운 과목은 들을려고도 안 하기 때문에 과목을 통폐합하고 수준을 낮춰 학생들 구미를 맞추는 것을 교수들은 당면과제로 생각하고 있다.

2) 이공계 대학간 먹고 먹히는 도미노 현상이 두드러지고 있다. 이건 무엇이든 무너질 때 발생하는 현상이다.  --> 이 문제 해결을 위해서는 국내 명문대 대학원이 다시 과거처럼 해외 유학을 막고 우수학생을 흡수하는 역할을 제대로 해내는 것이 중요하다.

3) 이공계 기피 및 이공인의 위축은 기성세대 이공인들에게도 위협으로 작용하고 있다.
--> 이러한 위기감이 문제해결의 원동력으로 작용할지 오히려 몰락을 부채질 할지는 아직 미지수다.

4) 이  와중에도 여전히 이공계 대학(원) 졸업자 수준은 현장에서 요구하는 수준에 한참 미달이라는 것이다.  --> 그 나마 업체나 연구소에 가겠다는 고급인력이 아직도 남아있다는 사실에 자족해야 하지 않을까?


                                                                    - 끝 -

 
  • 김일영 ()

      이공계 문제를 급속화 시킨 것을 몇가지 살펴보면, 학과 통폐합으로 인한 학부제, BK21로 인한 특정대학 및 학과 밀어주기, 대학원 인원 증원으로 인한 대학원 학력 미달, 병역특례로 인한 우수 인력의 이동 제제 등을 뽑을 수 있지 않을까합니다. 이러한 문제들이 곪은 고름을 급속하게 확산시킨 것이 아닌가 생각됩니다. 이공계 문제를 해결하는 방법은 이제 순리에 따라 원칙적으로 하나씩 곪은 고름을 하나씩 제거하는 방법보다는 획기적은 방법으로 수술대에 올리는 방법뿐이라고 생각합니다. 대학의 생존력 강화를 위한 산학연협동 및 국가 지원 사업의 형평성 제고와 대학원의 질적 향상을 위한 석사 및 박사 제도의 강화, 병역특례시 이동을 제한을 풀어 자유로운 연구활동을 보장해야 할 것이라 생각합니다.

  • 김일영 ()

      그리고 기업들도 생각을 바꾸어야 합니다. 위에도 영어이야기가 나오지만 영어를 너무 지나치게 필요로 하다보니 영어가 주가 되고 전공이 부가 되는 우수운 일이 일어나는 것입니다. 기업은 산학연에 적극적으로 투자를 하고 이를 통해 인력을 양성해야 합니다. 투자를 하지 않고 좋은 인력을 모시기에 혈안이 된 그들이 모습도 반성을 해야지요. 기업 연구소는 일정부분 대학과 공동연구를 추진하고 연구 추진시 특정 대학이 아닌 범 연구적 지원이 가능하도록 해야 할 것입니다. 또한 교수들에게도 SCI 논문을 중요하게 요구할 것이 아니라 연구를 시행하는 과정을 중요시하고 그것을 평가할 수 있는 제도적 뒷바침이 되어야 할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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