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펌] 과학위성 1호 산파 임종태 인공위성센터 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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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antab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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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3-10-09 20:3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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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구는 성공할수도 실패할수도 있는 것입니만 우리사회는 실패를 용납하지않지요.
이번 과학기술위성1호도 교신에 끝까지 성공하지 못했더라면 어땠을까요?
순수기술에 의한 위성개발을 접고 고가의 외제부품으로 떡칠한 단순조립품 위성을
국산위성이라고 포장해서 쏘아대는 과거의 방식이 재현되지 않았을까요?
기사제목이 마음에 듭니다.

<<작지만 두려운 ‘실패 확률’  과학의 싸움은 계속된다>>

‘최초의 발견’ ‘최초의 개발’ 등…. 남이 가지 못한 길을 먼저 가고자 하는 열망이야 누구한테나 있지만, 발견과 발명을 으뜸의 목표로 삼는 과학기술은 그 속성에 비춰 ‘최초’의 명예에 가장 연연하는 인간활동 가운데 하나다. 하지만 ‘최초’는 그만큼 마음의 부담을 키운다. 지난달 27일 지상 690㎞ 궤도로 쏘아올려진 우리 나라 ‘최초’의 우주관측위성인 과학기술위성(STSAT) 1호는 “우리 나라의 눈으로 우주를 바라본다”는 야심찬 국가 우주개발 프로젝트인 만큼 세인의 주목을 받았다. 더욱이 2015년까지 과학기술위성을 6호까지 발사하겠다는 국가 계획의 첫 출발점이었다. 그러나 정작 관심은 발사일인 27일보다 이틀이 지난 29일에 이르러 더욱 커졌다. 지상국과 위성의 첫 교신 시도가 이미 10차례나 실패한 이날 밤 11시께. 위성지상국인 대전 한국과학기술원 인공위성연구센터의 30여명 연구원들은 불안과 초조에 휩싸였다. 교신이 되지 않는 과학위성은 ‘우주 미아’가 돼 지난 5년의 연구성과는 물거품처럼 사라질지 모를 순간이었다. 이들 사이에서 누구보다도 긴장의 사흘을 보낸 이가 있었다. 인공위성연구센터 소장인 임종태(54·전기전자공학) 교수는 “발사 이후 56시간 내내 초긴장 상태였다”고 회상했다.

‘그 때 그 순간’의 감회를 묻자 그는 “지옥과 천당을 오갔던 느낌”의 기억을 쏟아냈다.

군사도시의 흔적이 배어나는 러시아 플레세츠크 우주센터에서 과학위성 발사를 직접 지켜본 27일 그는 “젊은 연구원들과 함께 애지중지로 낳은 자식을 저 멀리 시집보낸 심정”으로 귀국을 서둘렀다. 국제전화를 통해 ‘교신이 잘 안된다’는 얘기를 들었지만 크게 걱정하진 않았다. 규모가 작은 실험용 과학위성의 첫 교신은 본래 쉽잖은 일이니까.

“첫 교신이 안돼 걱정은 됐지만 조금 기다려보자며 위안했죠. 그런데 한국행 비행기에 오르기 직전 통화에서 6차 교신도 실패하고 비상용 송·수신 방법까지 잘 안된다고 하더라고요.”

“설마….” 그의 머리에 이 말이 또렷하게 맴돌기 시작한 건 그 순간부터였다.

8시간을 날아 인천으로, 다시 네댓시간을 달려 29일 낮 대전 위성센터로 숨가쁘게 달려왔지만 여전히 교신은 실패를 거듭하고 있었다. 생각할 수도 없었던 악몽이었다. 러시아 발사업체가 “발사 성공률은 97.4%”라고 말했을 때에도 2.6%의 실패율을 애써 무시했던 그였다. 위성 본체 개발 기술을 순수 국산화했다는 자부심은, 여러 실패 가능성들이 떠오르며 우려로 바뀌고 있었다. 20여명의 기자들이 “사실상 실패 아니냐”며 북적대다 돌아간 뒤의 적막한 시간, 밤 11시24분. 큰 기대 없이 시작된 11차 교신에서 5분 만에 신호가 잡혔다. ”러시아 우주로켓에 함께 실려 발사된 위성 6기 가운데 우리 위성은 두번째 무리에 끼어 궤도비행을 할 것이라고만 생각했죠. 그런데 11차 교신 때엔 함께 발사된 영국 서리대학의 위성 3기에 대한 궤도 위치정보를 입수해 첫번째 무리 쪽을 추적하다 신호를 포착했습니다. 처음엔 모두 믿지 못했지만 신호를 거듭 확인하고서야 교신 성공을 확신했습니다.” 이날 새벽 3시가 넘어 러시아 출장길을 떠난 지 5일 만에 집에 들어간 그는 부인한테서 “하루종일 당신과 교신이 안되는군요”라는 농을 들었을 때 그는 긴장의 56시간이 끝났음을 안도할 수 있었다.

“실패….” 56시간 내내 그의 마음을 가장 강하게 짓누른 말이었다.

그는 “성공과 실패의 드라마가 따로 없었다”고 했다. 117억원을 들여 국가 프로젝트로 추진한, 본체를 국내 순수기술로 주도해 만든 위성, 국내 최초의 우주관측 과학위성이 ‘우주 미아’로 전락해 실패로 막을 내린다면 우주기술 개발의 역사에 실패는 희귀한 일은 아니었지만 그가 겪은 실패의 악몽은 너무도 컸다. “우주기술 선진국인 미국에서도 우주왕복선이 갑작스런 폭발사고를 일으키고, 여러 나라에서 위성 발사가 우연한 사고로 실패하기도 합니다. 과학기술엔 실패의 확률이 뒤따를 수밖에 없습니다. 우리 삶에도 실패는 늘 도사리고 있잖습니까.” 그러나 우리 사회가 그에게 준 시선은 “실패란 있을 수 없다”였다고 그는 말한다. 성공은 너무도 화려하지만 실패는 너무도 비참한 우리 사회의 극단을 그는 경험했다.

그의 감회는 힘들었던 지난 기억을 더듬는다.

“어려운 시절도 있었습니다. 1989년 문을 연 우리 위성센터 연구원들은 이미 90년대에 초소형 과학위성 ‘우리별’ 1~3호를 개발한 기술력을 갖추고 있었지만, 연구 여건만은 크게 나아지지 않았습니다. 모든 연구원은 여전히 미래가 불안한 계약직 신분입니다.”

국가적 프로젝트를 계약직 연구원이 주도하는 상황은 가슴 아팠지만, 분위기를 새롭게 다잡아야 했다. 그는 무엇보다 위성센터의 초창기 열정을 되살리기 위해 소장과 연구원의 벽을 없애고 상식과 원칙으로 대화한다는 것을 경영의 원칙으로 삼았다. 시간이 걸렸지만, 현장 연구원들의 열정과 패기는 남아 있었다. ‘맏형’ 연구원인 이현우(34) 박사 등이 버팀목 구실을 하면서 위성센터는 점차 본궤도에 오르기 시작했다. 5년의 노력은 결국 순수 우리 기술로 만든 위성 본체라는 ‘옥동자’를 낳았다. 과학기술위성 1호는 우리 나라 처음으로 우주를 바라보는 우주망원경을 갖춰, 앞으로 최소 2년 동안 우리 은하 진화의 수수께끼를 풀 단서들을 온하늘의 원자외선 영상을 통해 탐색하는 임무를 수행한다. 무게 106㎏에 높이 1m도 안되는 꼬마 위성은 100분에 한번씩 지구를 돌며 국내 우주론 연구의 기초자료가 될 우주 관측 데이터를 날마다 지상국에 실어나르게 된다. 임 교수의 눈에 ‘꼬마 위성’은 우리 위성기술의 희망이다.

“수백㎏에서 1t 넘게 나가는 큰 몸집의 값비싼 대형위성들 못잖게 꼬마 위성이 앞으로 우리 위성 기술에서 큰 구실을 할 것입니다. 과학위성의 성공은 우리 나라 기술도 이제 100㎏급 소형위성에 관해선 설계부터 제작, 평가까지 모든 과정을 우리 스스로 주도할 수 있는 역량을 충분히 갖췄음을 증명한 겁니다.”

그는 벌써 국제무대에서 좋은 징후들이 나타나고 있다고 자랑했다. 몇 해 전부터 외국 소형위성 학술대회에서 우리별 위성의 기술이 주목받았으며, 특히 우리별 3호에 탑재된 해상도 13m급 지상 관측 컬러카메라는 세계 수준에 견줘 손색이 없는 것으로 평가받고 있다고 한다. 그는 “베트남을 비롯한 동남아시아 국가를 대상으로 소형위성 기술의 수출을 시도하고 있으며, 베트남 관계자가 위성센터를 직접 방문하는 등 몇 나라들은 큰 관심을 나타내고 있다”고 소개했다. 임 교수와 위성센터 연구원들은 지난해 10월부터 과학기술위성 2호의 개발에 벌써 나서고 있다. 이번엔 러시아가 아니라 전남 고흥 우주센터에서 우리 나라가 개발한 발사체에 실려 2005년 말에 발사될 예정이다. 말그대로 “우리 우주센터에서 우리 위성을 우리 발사체에 실어 발사한다”는 우리 나라의 위성기술 ‘독립선언’을 이뤄보자는 것이다. 임 교수는 “작지만 두려운 실패의 확률과 벌이는 지독한 싸움이 다시 시작됐다”고 말했다. 30여명 젊은 연구원들의 새로운 도전도 다시 움트고 있다.


<<인터뷰 뒤안길    “실패” 다그치는 기자·의원에 당혹    “개인 성과로 과장 말아달라” 당부>>

위성과 지상국의 첫 교신이 성공한 뒤에도 임종태 교수는 여전히 바빴다. 위성 발사 일정 탓에 밀어둔 학교 수업을 보강하느라 바쁘고, 첫 교신 성공 이후 여기저기서 오는 전화연락과 보고 요청에 답하느라 바쁘다. 인터뷰 당일 늦은 오후에 인공위성연구센터 소장실에서 만난 그는 연신 걸려오는 전화를 받느라, 또 과학위성과 관련한 갑작스런 총장 면담으로 한 시간이나 인터뷰를 늦춰야 했다. 임 교수는 인터뷰 내내 “과학기술 위성 개발에 성공했다고 ‘오랜 우주의 꿈을 이룬 과학자’ 식으로 꾸미지는 말아달라”며 “나는 평범한 공학자일 뿐”이라고 강조했다. 갑자기 쏠리는 눈길이 매우 부담스럽다고 했다.

그가 이번 일로 난생 처음 겪은 ‘여론’은 당혹스런 것이었다. 과학기술위성 1호 발사 전엔 “누가 큰 관심을 가지랴” 했던 것이 첫 교신이 사흘째 10차례나 실패하자, 몰려든 신문·방송 기자들이 “교신이 결국 실패한 게 아니냐” “숨기지 말고 사실을 밝히라”며 다그칠 때엔 당혹감마저 들었다고 했다. 또 한국과학기술원에 대한 국회 국정감사를 하루 앞둔 29일, 일부 국회의원들이 미리 낸 자료에서 “과학기술 위성이 실패할 가능성이 농후하다”며 성급한 결론을 내리고 다음날 국감을 벼른 세상이 너무도 섭섭했다. 이제 여론은 그를 국내 위성기술의 선두주자쯤으로 그리고 있다. 그는 “제발 있는 그대로 보아달라”고 했다.

흔히 과학은 극적 발견으로 묘사되지만, 온탕·냉탕의 여론을 경험한 그의 연구 인생에는 “극적인 게 없다.” 갈수록 공동연구가 연구성패를 가르는 요즘 과학기술에선 한 개인이 새로운 돌파구를 여는 성과를 내기는 점점 더 어렵다는 것이다. 그는 “놀라운 연구성과는 있지만 놀라운 연구자는 찾기가 더 어렵다”고 했다. 이 때문에 과학기술위성 개발의 성과도 위성센터 연구원들, 그리고 다른 국내외 여러 연구기관의 공동노력으로 이뤄진 “종합예술 작품”이지 한 사람의 성과로 돌릴 수 없다는 것이다. 그의 오랜 연구 스타일은 극적 연구보다는 의사소통이 원활한 협업연구의 힘을 더욱 믿는 것 같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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