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표 쓰고 시작한 '변리사 공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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흐름
등록일
2003-10-10 04: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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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제 이런 글 보는 것도 지쳤지만, 그래도 볼 때마다 절절하여 올리지 않을 수가 없군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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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태 인터뷰 1] 사표 쓰고 시작한 '변리사 공부'
30대 중반 남성의 제2막을 위한 '막다른 선택'
"늦지 않았다. 앞으로의 인생을 바꿀 수만 있다면…"
 
 
미디어다음 / 김진경 기자
media_jinkyoung@hanmail.net 
 
사회의 중심이 되어야 할 40-50대가 불안하다. 사오정(45세 정년), 오륙도(56세에도 자리를 지키면 월급도둑)라는 말이 인구에 회자되고 있으니 말이다. 이러한 '불안증후군'이 30대로 급속히 번지면서 '회사원'으로의 삶을 접고, '책'을 펴는 사람들이 늘고 있다.
합격만 되면 신분상승이 보장되는 사법고시부터 지난해 1인당 평균 연봉이 5억 5,000으로 발표된 변리사, 그리고 한의대 진학을 위한 수능 준비생까지 각종 전문직 자격증에 '위험한 도전'을 하는 '장수생'들이 늘고 있다.

"지금의 선택에 후회가 없기를 소망합니다"

 
 
인생이 제 2막을 준비하는 '장수생'이 늘고 있다. 사진은 서울 강남역 인근에 위치한 변리사 전문 학원 ⓒ미디어다음 김준진 
 
변리사 시험에 도전하고 있는 김준일(가명. 34) 씨도 '인생 2막'에 도전한 사람이다. 서울의 명문대 섬유공학과 출신인 그는 대학원 졸업 후 들어간 대기업 연구소를 지난해 초 5년 만에 그만두고 변리사 시험을 택했다.

한 때는 섬유분야 최고의 전문가를 꿈꿨지만 불황 때만 되면 연구비를 삭감하는 회사를 보고 나서는 평생을 보장 받을 수 있는 '자격증'으로 눈을 돌릴 수 밖에 없었다. 회사에 다니면서도 밤 시간엔 변리사 준비를 해오던 그는 집중적으로 준비하면 가능할 것 같은 자신감 때문에 회사에 사표를 던졌다.

지난해 4월 1차 시험에 붙은 뒤 합격의 '단맛'을 보았지만 2차 시험은 준비기간이 짧아 보기좋게 낙방했다. 올해 8월 2차 시험을 치른 김씨는 '정말 이번에는 떨어지면 안된다'며 운명의 그날을 애태우며 기다리고 있다.

최종 합격자 발표일(11월말)을 달포 정도 앞둔 그는 "하루하루 피가 마르는 심정"이라며 "기도하는 심정으로 살고 있다"고 고백했다. 그는 요즘 막다른 골목에 서 있는 느낌이다.
미래에 대한 불안감 때문일까. 자꾸 지난 세월에 대한 회한이 피어 오른다.

김씨가 대전 대덕연구단지에 자리잡은 모 대기업의 연구소에 입사한 것은 대학원을 졸업하던 1996년 1월. 직원 5000여명을 거느린 대기업의 신설 연구소는 젖과 꿀이 흐르는 기회의 땅일 것이라는 기대를 갖기에 충분했다. 섬유분야 최고의 전문가가 될 것이라 다짐하며 들어선 '연구원의 길'이었다. 하지만 5년차, 10년차 선배들의 모습에서 장밋빛 비전은 찾아볼 수 없었다.

"경기 불황으로 기업체들이 가장 먼저 삭감하는 부분이 연구비입니다. IMF 당시에도 경험했고, 지금도 연구에 대한 투자는 기대하기 어려운 상황이죠. 유학하고 온 선배들을 봐도 희망이 없고, 결국 '자격증이 최고'라는 생각을 하게 됐습니다."

그래서 시작한 시험공부가 벌써 5년째. 시험에 합격한 뒤 결혼하려 했지만 부모님의 성화에 못 이겨 지난 2000년 결혼도 했다. 교육청 공무원으로 직장생활을 하고 있는 아내가 "나중에라도 변리사에 대한 미련은 없어야 한다"며 용기를 주어 사직서를 던질 수 있었다.


 
신림동 고시촌은 밤 늦은 시간까지 자격증 시험 준비생들로 불이 꺼지지 않는다.
©연합뉴스 
 
퇴직금 500만원은 변리사 시험의 유일한 밑천이 됐다. 그 때부터 경기도 산본 집에서부터 신림동 고시촌과 강남의 변리사 학원을 오가는 나날이 시작됐다. 한 집의 가장이 아내를 출근시키고 난 뒤 독서실로 향할 때의 그 참담함은 정말 경험하지 않은 사람은 짐작하기 어려운 감정이었다. 다른 사람의 시선이 그토록 부담스럽게 느껴진 것도 정말 처음이었다.

"독서실에서 졸다 깬 어느날은 제 자신이 너무 한심하기도 하고, 창문 너머로 아침에 출근하는 샐러리맨을 보면 정말 부러웠습니다. 불쑥 사직서를 내는 게 아니었는데… 후회도 수십번 했습니다."


"출근하기 싫다는 아내에게 아무 말도 못했습니다"

퇴직금 500만원은 8개월 만에 바닥을 드러냈다. 그 뒤엔 아내의 월급중 90만원이 학원비와 책값 그리고 독서실 비용으로 들어갔다.

"언젠가 일요일 저녁에 아내가 정말 회사 다니기 싫다며 울었습니다. 직장 상사와 문제가 있었던 건 알고 있었지만 그 정도로 스트레스가 심한 줄은 몰랐죠. 하지만 그만두라는 말은 끝내 할 수 없었습니다. 참담했죠"

아무리 마음을 다잡아도 같이 공부하는 사람들과 갖게 되는 술자리는 유일한 스트레스 해소책이었다. 학원 수업이 끝난 뒤 밤 11시부터 시작된 술자리는 '수험생의 애환'이 꼬리에 꼬리를 물고 이어져 새벽 3시를 넘겨 파했다.
"집에 갔더니 아내는 잠도 안자고 제게 화를 벌컥 냈죠. 저도 공부에 대한 스트레스를 핑계로 무장해서인지 아내 앞에서 공연히 당당해지더라구요. '그럼 나보고 어쩌란 말이냐'며 맞섰습니다. 나는 곧 잠에 곯아 떨어졌지만 그 날 아내는 뜬 눈으로 밤을 새우고 출근을 했습니다"

아내에 대한 미안함과 생활난 탓에 과목당 10만원씩 하는 학원을 포기하고 테이프를 사서 공부를 하게 됐고, 고시촌과 독서실 대신 집에서 공부를 할 수 밖에 없었다.


"불확실한 미래에 대한 두려움이 가장 크죠"

 
 
김준일 씨는 "사는 게 뭔가요. 하루하루가 행복해야 하는 것 아닌가요"라고 말한다. 사진은 서울 역삼동에 있는 특허청 전경
ⓒ미디어다음 김준진 
 
"이번 2차 시험에 실패하면 1년이란 시간을 더 투자할 수 있을지 자신이 없습니다. 1년 반동안 아내에게 돈 한푼도 주지 못했습니다. 한 집안의 가장으로서 아내는 물론이고 부모님과 장모님 뵐 낯이 없습니다. 다시 취직을 한다면 변리사 사무실에라도 나갈 생각도 있습니다"

친척들의 "회사는 잘 다니지?"하고 던지는 인사말에도 마음은 천길 낭떠러지.
"그냥 잘 다닌다고 해라"하고 귀띔하시는 어머니 말씀에 가슴으로 눈물을 삭힌 적이 한두번이 아니었다.
그는 요즘 여러가지 생각으로 마음이 산란하다. 보다 나은 미래를 위해 노력하는 과정 그 자체로도 행복해야 하는데, 아내를 포함한 가족의 희생이 너무 커 더욱 마음이 착잡하다. 왜 이렇게 살아야 하는 것인지, 무엇을 위해 사는 것인지
김씨는 "나를 포함해 '보장되지 않는 미래'를 위해 자격증 시험에 뛰어들고 있는 수많은 '샐러리맨'들을 보면 불만보고 달려드는 '불나방' 같은 인생이 아닐까요"라고 반문한다.

"사는 게 뭔가요. 하루하루가 행복해야 하는 것 아닌가요. 그냥 앞만 바라보며 뛰다가 결국 가면 또 그 자리는 현실이고 또 다른 미래를 위해 뛰고 계속 이렇게 반복되는 거잖아요. 그러면 결국 또 미래를 위해 뛰다가 불행한 현재만 남는 것은 아닐까요."

그에게 10년 뒤 모습이 어떨까 물었다.
"하루 하루가 전쟁인데 10년 뒤를 생각할 겨를이 있습니까"
 

  • 진호 ()

      변리사 시험 공부는 글쎄요...이제 별 메리트가 없는 것 같은데....수입도 상당히 펑튀기 된 면도 없지 않고....어쨋든 잘 되기를 바랍니다.

  • 미래재벌 ()

      나이도 있고 섬유분야면 절대 안팔릴텐데요 괜한고생하시는 건아닌지.. 변시 200명합격자중 50명이 수습을 못구합니다.

  • 마당쇠 ()

      뻥튀기가 극심한 분야입니다. 가령 2000만원 버는 사람과 1억버는 사람을 평균내면 어떻게 될까요? 지금 알려진 분야별 소득 순위는 이런 식으로 계산 되어 있습니다. 그리고, 다음에 기사가 난 당사자의 경우는 돈도 중요하겠지만 안정적이고 보장되어 미래에 대한 불안감을 떨칠 수 있는 그런 일을 하고 싶다고 그 심정의 피력한 것입니다. 수습을 못구한다는 50명은 전 분야에 걸친 것인지 아니면 특정 분야에 편중된 것인지, 저는 후자쪽이라고 봅니다만...

  • 미래재벌 ()

      그 50명이 소위 말하자면 비인기과 출신이죠. 전자쪽은 수습은 구한다고 합니다만, 섬유 화학 기계쪽은 수습구하기도 힘들답니다.

  • 마당쇠 ()

      헉 기계쪽도 그런가요? 저는 변리사 분야에서 비인기 분야라면 특허 의뢰 건수가 상대적으로 적은 분야를 생각햇습니다만... 이에 대하여 조금 더 자세한 설명 부탁드려도 될 지 모르겠습니다.

  • 마당쇠 ()

      약학 쪽도 비인기로 알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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