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F를 통해서 본 미래사회와 과학기술"

글쓴이
최성우
등록일
2002-09-16 11:4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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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래에 옮겨온 신문기사 글들 중에서도 소행성 충돌, 복제동물 등의 얘기가 나왔습니다만...
SF영화나 소설에 나오는 과학기술의 세계와 현재, 미래 사회를 비교해 보는 것도 나름대로 의미가 있을 뿐 아니라, 상당히 흥미로울 듯합니다. 사실 인류를 달에 보내는데에 큰 기여를 한 로켓과학자(고다드, 폰 브라운 등)들도 일찍부터 조지 웰즈, 줄 베른 등의 SF물에 심취했었고, 1970년대 이후 일본의 전자기술을 이끈 엔지니어들의 상당수가 어릴 적 '우주소년 아톰'에 크게 감명을 받았다고 얘기하곤 했지요... (물론 달 탐사에는 냉전시대의 미, 소간 경쟁 등 정치적 배경도 얽혀있었고, 일본이 비록 요즘에는 사정이 많이 안좋다지만 가전기술 등은 거의 세계를 석권해 왔으니... )

첨부하는 글은 꽤 오래전 (1996년 쯤) 통신공간에 처음 비슷한 내용을 올렸다가, 작년에 한겨레신문 과학칼럼(21세기를 여는 열쇠)에도 짧게 요약본을 냈고, 역시 이번에 책을 내면서 내용을 대폭 수정, 보완해서 다시 썼습니다. 제가 그동안 이 사이트의 여러 게시판에 올린 글들은 인용된 책의 '제목'과는 그다지 어울리지 않는(?) 것들이 많았을 것으로 보이는데, 오랜만에 책 제목과 매우 일치하는 글을 올리게 되었네요... 사실 이번 신간 책 "상상은 미래를 부른다"의 맨 처음에 나오는 타이틀 글이기도 합니다.

최근에는 이 주제에 관해서 제가 외부 단체와 대학 등지에서 몇차례 특별 강연을 한 적도 있는데...
오늘자(9월 16일) 전자신문 71면에 특집기사로 '영화 속의 미래 기술'을 다룬 부분에도 제 인터뷰 기사가 사진과 함께 나왔는데, 다른 건 좋은데 제 나이가 46세라고 표기되어 있네요. (저 아직 만 나이로 30대인데, 이럴 수가... !?)

미국 등의 선진국에서는 저명 SF작가들이 국가기관이나 대기업에서 자문을 맡는 경우도 많은데, 아직 우리나라에서는 SF물이 청소년의 오락물이나 일부 매니아의 취미거리 정도로 치부되는 등, 이해 정도가 낮은 듯합니다. (최근의 베르베르 소설 '뇌'가 큰 인기를 끄는 것을 보면 앞으로는 좀 나아질 듯도 한데...) 아무튼 SF가 과학기술의 대중화를 위해서도 좋은 소재임에는 틀림없는 만큼, 학교에서도 SF명작 등에 대해 토론식 수업을 하고 우리나라에서도 역량있는 SF 작가들이 나올 수 있도록 지원하는 것도 필요하지 않을까 싶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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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F(공상과학)를 통해서 본 미래 사회

최 성우 (과학평론가; hermes21@nownuri.net)
- '상상은 미래를 부른다(사이언스북스)' 中에서 -

21세기를 맞이하여 미래사회의 전망에 대한 사람들의 관심이 높아지고 있다. 미래사회에 대한 과학적인 분석과 전망은 물론 자연과학자나 공학자, 혹은 사회학자나 경제학자 등 각 분야의 전문가들이 내놓을 수 있을 것이다. 그러나 그들 못지 않게 지금까지 미래에 대한 예측에 있어서 탁월한 능력을 발휘해 온 사람들이 있다. 바로 공상과학, 즉 SF(Scientific Fiction) 작가들이다.
미래에 대한 뛰어난 감수성과 한발 앞선 통찰력으로, 당대 최고의 과학자들이 도저히 불가능하다고 단언했던 일들을 대담하게 예언하여 상당 부분을 적중시킨 SF작가들은 가장 뛰어난 미래학자들이라고도 말할 수 있다. 따라서 SF소설이나 영화에서 그려지는 미래사회를 성찰해 보고, 인간의 상상력이 어떻게 현실화되어 왔는지 살펴본다는 것도 큰 의미가 있을 것이다.

쥘 베른((Jules Verne 1828∼1905)은 19세기에 이미 여러 작품을 통하여 비행기, 원자력잠수함, 우주여행 등을 지극히 사실적으로 예측하였다. 특히 그가 1865년에 내놓은 '지구에서 달까지(1865)'는 20세기 중반에야 가능해 진 아폴로 우주선에 의한 달 여행과 너무도 흡사하여 많은 사람들이 놀랄 정도이다. 로봇 소설의 아버지라 불리는 아이작 아시모프(Isaac Asimov; 1920-1992)를 비롯한 여러 SF작가들은 가까운 장래로 다가온 인간과 로봇의 공존시대에 대한 전망을 일찍부터 제시한 바 있다.
마이클 크라이튼(Michael Crichten)은 '쥐라기공원(Jurassic Park)'에서 호박 속에 든 모기의 화석으로부터 중생대 공룡의 DNA를 추출하여 복제한다는 기발한 착상을 소개한 바 있다. 영화로도 큰 인기를 모은 바 있는 그의 작품들은 전 세계 어린이들에게 공룡 붐을 몰고 온 것에 그치지 않고 고생물학, 지구과학, 생명과학 등의 연구에도 적지 않은 영향을 끼치고 있다.

당대 최고의 SF작가로 꼽히는 아서 클라크(Arthur C. Clarke)는 1945년에 내 놓은 '무선세계(Wireless World)'에서 지구 상공에 정지궤도의 인공위성을 쏘아 올려 통신에 이용할 것을 제안함으로써, 오늘날과 같은 위성통신 시대를 연 장본인이기도 하다. 그의 원작을 토대로 거장 스탠리 큐브릭이 감독한 SF영화 '2001년 스페이스 오딧세이'는 1968년에 소설과 함께 대중에 선보였는데, 미래 기술의 예측만이 아니라 우주 속에서 인간의 존재 근원을 찾는 작품으로 높은 평가를 받고 있다.
영화사상 최고 명작의 하나로 꼽히는 이 작품은 2001년을 맞아 현실과 비교되면서 다시 한번 사람들의 관심을 모은 바 있다. 그러나 장거리 우주여행을 위한 인공동면 기술, 호텔과 같은 우주정거장 시설 등 여기에 나오는 예측들은 아직 실현되지 않은 것들이 많다. 특히 사람처럼 논리적 사고가 가능하고 승무원과 대화도 나누는 인공지능 컴퓨터 'HAL 9000'과 비교할 때, 오늘날의 컴퓨터는 체스를 두는 점 이외에는 그 성능과 수준이 아직 크게 미치지 못한다. 그러나 화상전화기, 개인용 비디오, 음성인식 보안장치 등 실용화된 기술들도 적지 않다.

피 한 방울로 유전자 정보를 판독하여 본인 여부를 알아내고 그 사람의 건강, 수명 등을 예측하는 장면이 나오는 영화 가타카(Gattaca)는 유전자와 생명공학의 시대라 일컬어지는 21세기를 맞아 시사하는 바가 크다. DNA칩 등 이 영화에 나오는 기술 중 상당수가 이미 현실화되었을 뿐 아니라, 미래 사회의 '유전자 차별' 가능성에 대해 경종을 울리게 한다.
복제인간의 자아 정체성 문제를 심오하게 다룬 영화 '블레이드 러너(Blade Runner)'는 복제양 돌리와 복제 송아지가 탄생하고 인간복제마저 이루어지지 않을 것이라 장담할 수 없게 된 오늘날, 과학과 윤리에 대해 많은 사람들이 함께 풀어야 할 과제를 진작에 제시하고 있다.

SF소설이나 영화가 보는 미래는 여러 가지 모습이 교차하고 있다. 과학기술의 지속적인 발전에 힘입어 갖가지 새로운 문명의 이기들의 혜택으로 더욱 풍요롭고 안락한 삶을 누릴 수 있으리라는 희망과 기대가 섞인 낙관적인 견해가 있는가 하면, 기계에 의한 인간의 지배, 혹은 핵전쟁이나 기타 재난에 의한 인류 멸망 등 매우 비관적인 전망들도 적지 않다.
낙관적인 전망의 대표적인 작가는 아이작 아시모프를 들 수 있다. 그의 소설에 등장하는 로봇은 모두 지루하고 힘들고 위험한 일들을 대신 해 주는, 인간의 충실한 하인이거나 친구이다. 그의 유명한 연작소설 '파운데이션(Foundation)'에서는 사람들이 우주공간을 자유자재로 여행하며, 초현대문명을 갖춘 엄청난 규모의 대제국이 은하계 전체를 걸쳐서 끝없이 펼쳐진다.
SF작가는 아니지만 '제3의 물결', '미래의 충격' 등을 통해 오늘날의 정보화시대를 예견하고 날카롭게 분석한 미래학자 앨빈 토플러(Alvin Toffler) 역시 현재와 미래의 과학기술과 인류문명에 대해 상당히 낙관적인 견해를 지니고 있다. 영화 '콘택트(Contact)'나 'ET'에서도 외계 문명과의 접촉을 매우 희망적으로 그리고 있으며, 외계인은 지구의 인간에게 친근한 존재로 다가온다.

그러나 비관적이고 끔찍한 미래를 그린 작가들도 적지 않다. 그중 고전적인 것은 아무래도 조지 오웰(George Orwell)의 '1984년'일 것이다. 미래사회는 '빅브라더(Big Brother)'라는 독재자에 의해 지배되는 전체주의 사회이며 컴퓨터와 같은 첨단기술이 인간을 억압하는 데에 쓰인다. 올더스 헉슬리(Aldous Leonard Huxley)의 1932년 작인 '멋진 신세계(Brave New World)' 역시 문명과 과학을 신랄하게 풍자한 디스토피아 소설로 유명하다.
아무래도 미래에 대해 가장 비관적인 모습을 그린 작가는 '사이버 펑크'의 원조라 불리는 윌리엄 깁슨(William Gibson)일 것이다. 그가 1984년에 선보인 '뉴로맨서(Neuromancer)'는 오늘날 일상 용어가 되어 버린 사이버 스페이스(Cyber space)라는 단어를 처음 등장시키면서 인터넷과 컴퓨터 정보사회가 낳을 새로운 사회상을 예리하게 전망하고 했으나, 지극히 끔찍하고 우울한 자화상을 보여준다. 컴퓨터 칩을 인간의 뇌에 이식함으로써 만들어지는 사이버 스페이스는 거대한 컴퓨터망에 연결되어 어떤 다국적 기업에 의해 지배되며, 해커들이 정체 불명의 상대와 목숨을 건 사투를 벌인다.

그 동안 관객들에게 큰 인기를 끈 SF영화들도 대부분 암울한 디스토피아를 묘사하고 있다. '블레이드 러너(Blade Runner)'에서 서기 2019년의 로스 앤젤레스(LA)는 언제나 밤처럼 어두컴컴하고 을씨년스러운 분위기이며, 도시는 온통 대기오염 상태여서 항상 산성비가 내린다. '터미네이터(Terminator)'에서 사람들은 핵전쟁의 폐허 위에서 다시 기계와 컴퓨터를 상대로 힘든 싸움을 벌여야만 한다.
'토탈리콜(Total Recall)'에서는 3차원 입체영상 홀로그래피(Holography)와 가상현실(Virtual Reality)이라는 멋진 첨단기술에도 불구하고 미래사회는 여전히 어둡고 암울하다. 역시 가상현실이 등장하는 '매트릭스(Matrix)'에서는 인간이 기계의 지배를 받는 정도가 아니라, 인간들은 태어나자마자 인공지능(AI) 컴퓨터가 만들어낸 인공 자궁 안에 갇혀 그 생명 연장을 위한 에너지로 사용되면서, 뇌세포에 매트릭스라는 프로그램을 입력 당하여 기억마저 그들에 의해 입력되거나 삭제되는 등 철저한 통제를 받는다. '쥐라기공원(Jurassic Park)'에서는 유전공학에 의해 탄생된 공룡들에게 사람들이 잡아먹히는 등, 완벽하다고 생각했던 최첨단 과학기술로도 통제할 수 없는 예측 불가능의 사태가 발생한다.

SF에 등장하는 갖가지 과학기술들이 긍정적인 쪽으로든 부정적인 쪽으로든 현실화된다고 해서 SF의 역할이 꼭 미래의 첨단과학기술을 예측하는 데에만 한정된 것은 아니다. 도리어 미래의 사회상에 대한 진지한 성찰과 아울러, 과학과 인간의 존재에 관한 근원적인 질문들을 던지고 이에 대한 해답을 찾아 나아가는 데에 SF의 진정한 의의가 있다고 할 것이다.
또한 두렵고 암울한 미래를 그리고 있는 상당수 SF들이 과학기술의 잘못된 이용에 대해 경고를 내리는 것은 좋으나, 과학기술의 발전 자체에 대한 막연한 공포나 맹목적인 거부감으로 이어져서는 안될 것이다. 미래사회를 유토피아로 만들건, 디스토피아로 만들건, 그것은 과학기술을 다루는 주체인 인간들의 몫이기 때문이다.

  • 소요유 ()

      동감입니다. 어제 터미네이터 2를 봤습니다.  그것을 보면서 미래를 비관적으로 보는 것은 인간에게 어떤 심리적인 요인이 있을까 생각해 봤습니다. 역시 확인하게나 예측할 수 없는 데에 대한 불안감이 우선일 것 같았습니다. 거기에다가  '자연에 대한 인간의 집단적 죄의식 (뭐 종교적인 원죄의식이랄 수도 있겠고)'이 인류 역사에 스며들면서 나타나는 인간 자신의 행위에 대한 부정이 있는 것도 같습니다.  이러한 무의식을 차지하고 있는 죄의식과 불안감이 인간이 만든 기계에 대한 반감이 보태져 나타나 있지 않나 봅니다. 즉 산업혁명직후의  '노동자들에 의한 집단 기계파괴운동'의 연장선상에 있고, 한편으로 이러한 분위기 속에서 태어난 '프랑켄슈타인'의 효과가 심리적으로 깔려있다는 생각이 듭니다.   

  • 소요유 ()

      언젠가 Q&A에서 논의하였듯이 헐리우드 영화가 나타내는 여러가지 면들, SF  소설에서 그리고 있는 세계는 인간이 상상가능한, 따라서 이룰 수 있는 여러가지 세계들을 그린다고 생각됩니다.  이런 '상상들' 하나만으로  미래를 예단하는 것은 인간 스스로의 인식을 잘라내 편협적으로 될 것입니다.  우리가 지난 10여년가 우리사회에서 논란이 되었던 '휴거' 소동과 같은 것들이 아마도 지극한 현실 부정속에서 발견했다고 여기는 관념적으로 확신한 긍정이 작용한 것으로 생각됩니다.  인간사는 한쪽으로 많이 치우치는 것 같지는 않습니다.  모파상의 소설 '보봐리 부인'의 마지막 독백이 '인생이라는 것은 그렇게 슬픈 것도 그렇게 아름다운 것도 아니다'라는 말이 기억납니다. 

  • 신경 ()

      상당수의 SF소설이나 영화들은 과학기술의 발전으로 야기 될 문제들을 미리 예언해 주기도 하더군요.. 그러한 문제들에 대해 미리 충분한 논의가 이루어 진다면 지금처럼 눈앞에 닥쳐 법 새로 만들고 그럴 필요 없을텐데요...^^ 근데 또 그런 토론 자체가 우습게 보일 수도 있겠죠? 시작 되지도 않은 일에 대한 그런 토론들..

  • 소요유 ()

      과학의 한가지 역할이 '미래 (혹은 새로운 환경)에 대한 예측'일테니 일어나지 않는 일에 대한 토론도 의미있다고 생각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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