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이엔스타임즈] "과학기술 시민단체의 현주소와 나아갈 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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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요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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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4-06-19 08:3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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과학기술 시민단체의 현주소와 나아갈 길


- 최성우 한국과학기술연합 운영위원-         
       

오늘날 한국사회에는 수많은 시민단체들이 존재하고 있으며, 규모가 크건 작건, 전국적인 단체이건 지역사회 단체이건 새로 생겨나는 단체들도 적지 않다. 때로는 시민단체 및 그 활동 방향에 대한 비판과 우려의 목소리도 나오기는 하지만, 시민단체들이 우리 사회에 끼치는 영향력은 이미 간과하기 어려울 정도로 크며, 정부기관 등이 미처 감당하지 못하는 부분들을 채워 나아가면서 우리 사회 발전에 견인차 구실을 하는 경우도 적지 않다.

그런데 일반 국민들 사이에서는 “과학기술 분야에도시민단체가 있는가?”라는 질문들이 나올 법하다. 물론 시민단체라고 할만한 것들이 없지는 않겠지만 다른 분야에 비해서 그 수가 매우 적을 뿐 아니라, 언론을 통하여 접하기도 쉽지 않아서 특별히 관심 있는 사람들이 아니면 존재조차 알지 못하고 지나칠지도 모른다.

유독 과학기술 분야에서는 시민단체조차도 극히 드문 이유를 생각해 보자면, 물론 여러 가지를 들 수 있을 것이다. 다른 분야에 비하여 발전과 변화의 속도가 무척 빠르고 경쟁이 치열한 과학기술의 세계에서, 갖가지 첨단이론과 실험결과, 논문들이 하루가 다르게 쏟아져 나오는 현실에서, 과학기술인들이 자신의 연구개발 활동이 아닌 다른 일에 관심과 노력을 기울이기가 사실 쉽지 않을 수 있다. 또한 우리 과학기술 현장의 풍토 역시 자신들을 위한 목소리를 내거나 사회 활동을 하는 것을 별로 달갑게 않게 생각하는 등, 우리 과학기술인들 스스로의 소극적 태도 등에도 적지 않은 원인이 있음을 부인할 수 없을 것이다.

그러나 더욱 큰 이유는, 과학기술과 과학기술인들을 대하는 한국사회의 ‘독특한’ 편견 및 이공계 전반을 옭아매는 여러 구조적 문제들에 있지 않은가 싶다. “과학기술인들은 우리 사회에 꼭 필요한 존재이며 나라 전체를 먹여 살리는 중요한 사람들이지만, 자신들에 대한 사회경제적 대우나 이해관계에 집착하는 것은 바람직하지 않다”는 식의 외부의 비뚤어진 시각은 아직도 무시할만한 정도가 아니다.

갖가지 희생과 어려움을 감내하면서도 연구개발에만 몰두하는 것이 과학기술인들의 미덕이라도 되는 양 설파하는 등 온갖 왜곡된 이데올로기가 안팎으로 기승을 부리고 있고, 일부 체내화한 것도 문제의 심각성을 증폭시켰다고 할 것이다.

드디어 그 동안 쌓였던 문제와 모순들이 폭발적으로 분출하면서 커다란 파장을 몰고 온 것이 바로 최근의 이공계 기피현상을 비롯한 과학기술계 전반의 위기상황임에 다름이 아니다. 이제 과학기술인들이 제대로 자신들의 목소리를 내는 일, 나아가서 과학기술 시민단체가 올바른 활동을 전개하는 일은 단순히 과학기술인들만을 위하거나 이공계에 국한된 문제가 아니라, 한국사회전체적으로도 매우 중요한 과제가 되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닐 것이다.

그렇다고 해서 우리나라 과학기술 시민단체의 역사가 그리 짧은 것만은 아니다. 1970년대 이후부터 이공계 대학생 및 대학원생들을 중심으로 과학기술의 의미와 과학기술인의 사회적 책임 등을 조명해 왔고, 서구 과학기술운동 등에도 관심을 보여 왔다.

1985년에 창립된 YMCA 청년클럽 ‘두리암’을 첫 과학기술 시민단체라고 볼 수 있는데, 그후 ‘청년과학기술자 협의회’로 확대·개편되면서 1987년 이후의 정부출연 연구기관 등의 과학기술 노동운동과 함께 여러 활동들을 전개하였다. 또한 한국과학기술청년회라는 단체는 과학기술 이슈와 관련된 대중 사업들에 관심을 기울이면서 나름대로 활동과 역할을 하였다.

1990년대에 들어와서 국내외적으로 급변한 환경 등으로 인하여 기존 과학기술 운동단체의 활동은 급격히 쇠퇴하였지만, 경제정의실천시민연합에 과학기술위원회가 발족하고 참여연대에도 ‘과학기술 민주화모임(현 시민과학센터)’ 등이 결성되는 등, 오늘날의 ‘시민운동’적 성격을 띈 과학기술 단체들이 생겨나면서 새로운 맥을 이어가기도 하였다.

2000년대에 들어와서 청소년들의 이공계 기피현상이 심각해지고 이공계 대학, 대학원생들의 탈이공계 엑소더스가 나타나는 등 과학기술계 전반의 위기가 고조된 상황에서, 온라인을 기반으로 하여 ‘한국과학기술인연합’이라는 단체가 현장 과학기술인들을 중심으로 자생적으로 탄생함으로써 과학기술 시민운동은 새로운 전기를 맞게 되었다.

즉 기존 단체들로부터 파생되거나 일부 학자나 활동가들을 중심으로 결성된 것이 아니라, 정부출연 연구기관 및 민간기업의 현직 연구원, 이공계 대학원의 석, 박사과정 학생 등 광범위한 현장 과학기술인들의 참여에 기반하고 있는 점이 특징이다.

2년 남짓의 짧은 기간에 1만 2천명 이상의 회원이 참여했을 뿐 아니라, 과학기술인들의 권익 보호, 증진 및 과학기술 정책 참여, 합리적이고 선진적인 연구개발 체계 수립을 위한 개선책의 제시 등을 목적으로 여러 활동들을 전개하여 과학기술계 안팎의 관심과 주목을 받고 있다.

현 시점에서 과학기술 시민단체가 할 일들과 해결해 나아가야 할 과제는 무척 많겠지만, 무엇보다도 중요한 것은 현장 과학기술인들의 생생한 현실에 바탕을 두고, 전문가로서 그들의 사회적 참여와 역할을 높이는 일이다. 과학기술 시민단체, 혹은 과학기술인들의 모임이라고 해서 지나치게 과학기술인들의 이해와 요구에만 매몰되거나, 과학기술 만능주의적인 경향을 보인다면 이는 바람직한 일이 아닐 것이다.

그러나 작금의 이공계 문제, 나아가서 국가적 위기로까지 번질 가능성이 큰 과학기술계 위기의 핵심이 바로 전문가로서의 과학기술인들이 사회 전반적으로 철저하게 배제되거나 소외되어 왔던 데에 있는 만큼, 이들이 사회적 역할과 책임을 다할 수 있는 여건과 풍토를 만들어 주는 일이 대단히 시급하다 하겠다.

물론 과학기술과 관련된 현안들이 한두가지가 아닐 것이며, 현대 과학기술이 파생하는 문제 등에 대한 비판적인 검토나 시민 참여 방안 등도 국내외를 가리지 않는 중요한 과제일 수 있다. 그러나 한국 사회에서 차지하는 과학기술의 위상 및 우리 과학기술인들의 현실에 대한 천착과 깊은 고민을 결여한 채 무분별하게 외국의 방법론들을 좇는 데에 급급하거나 특정의 도그마나 이념에 편향되어 문제를 바라본다면, 올바른 해결 방안이 나올 수 없을 뿐만 아니라, 의도와는 정반대로 일반 시민들 역시 과학기술로부터 더욱 멀어지게 만들 우려가 클 것이다.

우리 사회의 과학기술 시민단체는 오늘날 싫든 좋든 막중한 시대적 임무를 부여받은 만큼, 현장 과학기술인들의 참여를 드높이고 올바른 정책적 대안과 해법들을 만들어 나아가면서, 바람직한 과학기술상 및 미래 사회를 위한 청사진을 제시하기 위하여 최선의 노력을 기울여야 할 것이다.
 

  • 임호랑 ()

      전반적으로 정리가 잘 된 것 같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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