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re] '외산'을 선호하는 이유 분석 및 대책

글쓴이
임호랑
등록일
2002-09-29 18:47
조회
6,043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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댓글
10건
이 문제도 이공계 자정차원에서 짚고 넘어가야할 부분이다.
물론 수준높은 연구를 위해 꼭 필요한 비싼 외산장비를 사야만 하는 경우도 있지만, 문제는 상당부분 그렇지 않은데도 비싼 외산 장비를 사용한다는 것이다. 외국 명문대에 가보면 대체적으로 시설/장비 수준이 의외로 최고 수준이 아니다.  왜 우리나라에만 유독 이런 현상이 심한가?

그 이유 중의 하나는, 체면/외형 중시풍토 때문이다.
연구소나 학교내에서도 누가 더 좋은(비싼 외제) 시설/장비를 가졌냐에 따라 수준이 평가된다. 이것에 따라 위상이 상당히 좌우되고 연구원이나 학생 지원이 달라진다. 그러다보니 이왕이면 비싼 시설/장비를 구매하려고 많은 연구비를 청구하게 되는 것이다.

또하나는 현 과학기술 행정체제 때문이다.
즉 세금 정산위주의 행정체제이다보니 성능과 가격을 제대로 따져보기 보다는 이왕 고달프게 하는 행정처리인데, 좋은게 좋은 것이다는 의식으로 비싼 장비를 계획에 반영하고 또 그대로 집행한다는 것이다. 그리고 이걸 누가 제대로 짚어낼 수가 없다는 것이 문제다.

또다른 하나는 최고 지상주의 때문이다.
사실 모두가 세계 최고수준의 연구개발을 할 수도, 그럴 필요도 없다.
다양한 기술개발 및 연구 수요가 있는데, 우리는 최고만을 지향하고 아무도 2등은 알아주질 않는다. 이에 따른 적절한 투자에 대해서는 논의자체가 성립하질 못한다. 이제 과학기술계 내에서도 무제한적 경쟁이 아닌 규모의 경제와 다양성의 인정, 그리고 첨단기술과 기반기술의 공존 및 협력에 대한 '현실적 접근'이 필요해 보인다.

또다른 문제는 이렇게들 경쟁적으로 사놓고는 제대로 활용들을 안 한다는 것이다. 그리고 같은 기관이라도 중복해서 사는 경우가 허다하다. 이걸 막으려고 장비 리스트를 만들고 정부차원에서 통제를 하고 있지만, 교묘하게 장비이름을 바꾸고 사용목적을 바꿔 어떻게 해서든 구매해서 연구실 재산을 증식하는데 혈안이 되어 있는 많은 소시민적인 과학기술자들을 본다.

이 문제는 과학기술 관리자(경영자)들의 무능력과 무책임주의가 주된 원인이다. 장비를 대여해주고 실험이나 시험평가를 대신하여 이익을 낼 수 있고 평가에 반영해주는 것도 보완책으로 필요하다. 그리고 연구망에 시설이나 장비를 모두 등록하여 가입된 기관이나 단체는 쉽게 접근하여 상태를 확인하고 간단히 연락하여 협조할 수 있도록 만드는 것도 필요하다.

또 하나는 장비를 자체 제작하고 보정(calibration)하는 과정도 매우 중요한 연구개발과정이고, 우리나라가 매우 부족한 장치산업의 효시가 될 수 있으므로, 이런 개발과제에 대해 시간과 자금 지원을 넉넉히 해주는 것도 방법이다.

무엇보다도 중요한 것은 이렇게 많은 국세를 들여 연구개발을 하는 이공인들의 자기성찰이다.
더 이상, 의식도 없이 중복투자하고 자기 연구실 중심주의에 사로 잡히는 일이 있어서는 안된다.

이러한 것들이 효과적으로 되려면, 우리나라 연구계가 다수의 전문가와 소수의 관리자(경영자)로 특화하여 관리자들이 이런 일을 제대로 해낼 수 있는 체제를 갖추는 것이다. 그리고 이를 효과적으로 지원할 정책을 개발하고 제도를 발전시킬 관료나 정치인에, 이런 경험을 가진 이공인들이 자리하여 현장경험을 살린 정책이나 제도를 계획, 시행하는 것이다.
 
  • 임호랑 ()

      참, 이런게 잘못 불똥이 튀면, 장비이용현황 적어내라, 이용률 내라 등등해서 또다른 전시행정만 생기고 아무런 발전도 안 이루어지는 경우가 허다하다. 중요한 것은 이런 것 감시를 '행정적'으로 해서는 소용이 없다는 것이다. 차라리 인건비를 올려주고 이런 장비비를 줄일 수 있는 정책이나, 이용률을 높인 곳엔 인센티브를, 그렇지 않은 곳엔 불이익을 줄 수 있는 제도를 만들어 시행하는게 필요하다. 이걸 정부가 나서서 하면 부작용이 크고, 이공계 기관장들이 경영혁신차원에서 하게 하고, 정부나 정치권에서는 그 결과를 간단명료하게 확인할 수 있는 지혜를 모으는 일이 중요하다. 뭐 써내라 식으로 탁상행정하는 것은 문제를 더 키울 뿐이다. 직접 경험을 한 사람이면 어떻게 하면 좋을지 잘 안다. 현장경험이 그래서 중요하다.

  • 이민주 ()

      군대에서 소원수리 하는거랑 비슷한가요???

  • 쉼업 ()

      으흐흐..그놈의 뭐 적어내라..

  • 소요유 ()

      하하. 현재에도 적어내고 있어요.  주요장비 이용실적인데 대개 연구장비의 경우 관세 감면 품목이이서 커다란 딱지 (15cmx15cm 정도)가 붙어 있죠. 구입가격이 1억원 넘으면  매년 보고해야 합니다.  그것은 그렇고 임호랑님 글에 동감합니다.  과학자들은 남한테 아쉬운 소리 하는 것을 불명예라 생각하나봐요. 사실 기분은 좋지 않죠. 그거 가지고 있다고 '뻐기는 넘'들도 있으니...... 

  • 소요유 ()

      아참, 제가 윗글의 댓글에서 '과학자는 최고를 지향한다'는 의미는  임호랑님이 쓰신 최고의 의미와 다릅니다.  임호랑님은 다른 사람과 상대적 비교에 의한 최고이지마, 제가 쓴 의미는  절대적인 평가에 있어서 최고를 의미합니다.  예를 들면 제가 1/10mm를 측정할 수 있는 자가 있다면 '과학자인 저로서는 당연히' 1/100mm를 측정할 수 있는 자를 가지고 싶습니다. 이것은 제 개인의 능력을 떠나서 '과학자라면 호기심 다음으로 가져야할 덕목'입니다.  문제는 이용율일 텐데, 과학 실험장비는 컴퓨터의 라이프와 똑같습니다.  결국은 경쟁력이 문제가 되는데  능력이 떨어지는 장비는 그 만큼 시간을 많이 투자해야  경쟁력을 갖게 됩니다.

  • 소요유 ()

      결국에 어떤 장비가 적절하냐는 쉽게 판정내리기 힘든 일인데  자신의 능력, 자신의 열정, 돈 등 제반 여건 등에 의하여 결정된다고 봐야 합니다.  예를 들면 제가 1980년대말 90년대 초에  Stanford Research Institute에서 제작한 pulse counter를 구입하여 (제 기억에 대략 1000만원쯤 했던 것 같네요) EMI 광전관과 연결하여  빛의 시그널을 측정하는데 사용하였습니다. 이러한 일은 당시에 CCD 카메라로도 가능했지만 당시 괜찮은 CCD  카메라 가격이 1~2억 할 때니 결국 펄스 카운터를 삿죠. 그러다가 3년후인 1990년대 초반, 물태우정권 말기에 어느날 갑자기 '돈이 쏟아져' 1~2주일내에 100만달러 (8~7억원)를 쓰라는 명령이 내려왔어요.   

  • 소요유 ()

      이런 일은 대개 '아랫 것들'에 게 맡기잖아요. 뭐  무조건 써야되는데 미국제품을 사야된다기에 여러 부서에서  올라온 것들 중에  2억원 하는 micro VAX, 이 CCD 카메라 등  몇몇 것을 삿었어요. 어느날 갑자기 꿈이 실현된 거죠. 그러니  그 펄스 카운터는 겨우 2년 썼었나요. 아주 좋은 것이었는데, 지금도 기기실에 잠자고 있어요.  한편 2억원 짜리 CCD 카메라는  무려 11년만이 작년에 정식 퇴역했구요. 이것은 공식작인 장부상 수명보다 무려 6년 긴 수명이었어요. 한편 micro VAX는 2~3년 쓰다가 쓰임새가 없어서 다른 곳에 처분했지요.  이런 일이 지금은 가능하진 않아요. 그때는 미국과 무역역조 문제로 미국이 잔기침하니까  우리나라가 몸살을 알았죠. 아마 그때 엄한 장비 많이 들어왔을

  • 백수 ()

      이유를 하나 더 추가하자면, 사람을 믿지 않는 풍토때문입니다. 국산장비의 경우, 대부분 수의계약을 하거나, 유찰 후 수의계약을 해야 하는데, 이런일이 감사에서 늘 지적당하는 메뉴이거든요. 이런일을 자주 일으키면, 대부분 좋지 않은 소문--업자와 유착--에 시달리게 되고, 장수하지 어렵습니다. 그래서, 한두번 구설수에 시달린 사람들은 국산장비 쓰려고 하지 않지요. 개발단계의 장비들은 원래 문제가 많지요. 이런 문제들을 받아들일 수 있는 여유가 없는 한, 국산 장비들을 보게 되기는 어려울 것입니다.

  • 임호랑 ()

      백수님 지적도 중요한 이유가 되네요. 계약과 회계, 감사가 지금 연구효율을 좀먹고 있는데, 아무도 이를 해결하려 않으니...

  • Young Bae Kim ()

      저는 잘모르겠습니다. 다만 먼저 자리를 잡은 친구들과 얘기를 해보면, 써봐서 좋다는 것을 알기 때문이라는 것도 큰이유인 것같습니다. 별로 주목받지 못하는 이유입니다만.. 실험기재도(저는 생물학자라 공학하시는 분들과 조금 다를 수있습니다.) 브랜드 충성도가 높다고 할까요? 분명 전의 연구실에서 이런 장비로 결과가 나왔는데, 저런 회사 장비로 하니 결과가 안나온다. 이런 상황을 미리 피하고자 하는 것도 한목하겠지요. 그래서, 이쪽 분야 사람들은 간단한 시약(소금같은)도 몇십년동안 같은 회사거를 쓰곤하거든요. 여러가지 이유가 있지만... 다른 분들과 달리 제가 아는 분들은 적은 돈 아껴 쓰는데, 이왕이면 확실히 결과가 나왔던 것들을 사는 것같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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