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re] 서울공대

글쓴이
서울공대92학번
등록일
2002-08-10 22:4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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짧은 답변에 썼듯이, 저를 비롯해 많은 친구들이 전공을 살리지 않고 다른 일을 하며 살고 있습니다. 그러한 이유는 무엇일까요? 일단은 사회적/금전적 대우가 기대치보다 낮다는 것 때문입니다. 또한 엔지니어로서의 자기 만족적인 모습에서 볼때도 성취에 대한 보람 등의 면이 낮기 때문입니다. 이런 것은 개인의 문제가 아니고 사회구조적인 모습을 갖고 있기 때문에 쉽게 풀 수 없는 문제입니다. 즉, 혼자 열심히 한다고 해서 해결되는 문제가 아닌 경우가 많습니다.

자 그럼 첫번째로 "엔지니어로서의 성취감"에 대해서 자세히 봅시다.
한국은 70년대부터 정부주도하에 중공업 위주의, 즉 자본/노동/토지 등을 투입하면 성과가 크게 나오는 2차산업을 근간으로 해서 발전하기 시작했습니다. 이 때는 눈에 보이는 제품이 가치 창조의 수단이 됩니다. 그러나, 90년대부터는 3차산업위주로 세계 경제가 재편되고 있는데, 문제는 이것이 서비스 산업보다는 지식산업이라는 것입니다. 지식산업에서는 선도기술 개발 및 표준화, 특허, 인증, 라이센스, 컨설팅과 같은 것이 가치 창조의 수단이 됩니다. 2차 산업은 Developing country로 넘어가고 있고, 2차산업에서 제품의 양산에 필요한 선도기술을 쥐고 있으면 앉아서 돈을 버는 좋은 장사가 되는 것이죠. 선진국은 노동에 대한 인건비가 크기 때문에 2차산업은 이미 경쟁력이 없는 상태입니다.
 
한국은 이런 면에서 뒤쳐지고 있고, 실질적으로 선도기술을 개발한 예는 아직까지는 한손에 꼽을 정도밖에는 없습니다. 그리고 삼성이나 LG 등의 대기업을 포함해서 중소기업, 벤처기업들에서는 아직도 대다수가 2차산업의 방식으로 일하고 있습니다. 그런 상황에서는 생산기술 개선(Development)나 양산기술 개발 등이 주를 이루게 됩니다. Research에 주력을 하기는 어렵죠(이런 것은 실제로는 중소기업의 조금 새로운 말인 벤처기업들에도 그대로 적용됩니다. 회사운영의 측면에서 볼 때, 선도기술개발보다는 당장 먹고 사는 것이 급하기 때문에 SI -용역개발- 등에 매달리게 되는 것입니다. 이것도 양산의 형태라고 볼 수 있습니다).
그러나, 학교에서 석사 이상을 한 사람들은 배우기는 Research 위주로 배웁니다. 즉, 선도기술개발이나 이론/원리 위주의 지식을 근거로 배운다는 얘기죠. 이러다가 회사에 가면 단순해 보이거나 노가다이기도 한 일을 주로 하게 되니 "내가 이런 거 하려고 공부했나"하는 생각이 드는 겁니다. 본전생각이 드는 거죠. 지식근로자가 되기 위한 과정을 마치고 회사에 가니 지식이 별로 필요치 않거나 잔재주만 필요한 일을 하게 되는 것입니다. 이런 상황에서는 성취감은 찾아보기 어렵습니다. 거기다가 사회적/금전적 대우마저 몇몇 타직종과 비교해 열악하기 때문에 많은 사람들이 다른 분야로 진출하는 것입니다. 어차피 성취감에 대한 것은 배신당한지 오래이기 때문에 대신에 사회적/금전적 대우가 더 좋은 쪽으로 하는 것이 더 좋겠다는 생각이 들기 때문이죠.

두번째로, 이런 상황을 벗어나기 위해서는 어떻게 해야 할까요?
이런 상황을 타개하기 위해서는 한국도 지식산업 체제로 전환을 해야 하는 것입니다. 그런데, 지식산업이란 것이 2차산업처럼 정부주도하에 개발계획 수립하고 자본/노동/토지를 투입한다고 해서 성과가 바로 나오는 부분이 아닙니다. 여기서 딜레마가 생기게 됩니다. 지식산업위주로 개편을 하자니 들어가는 자본이나 시간, 노력 등이 크고 긴 데 비해서 선진국을 따라 잡으려면 숨가쁘죠. 그리고, 이런 지식산업은 민간기업이 주도하는 측면이 큰 데(물론 정부연구기관의 역할도 중요합니다만) 몇십년간의 2차산업 방식에 맛들인 민간기업들이 변신의 노력을 많이 안 하는 편입니다. 왜냐하면 기존에 잘하던 것은 그냥 왠만큼 하면 잘 되는 편이기 때문이죠.

따라서 이렇게 투입되는 자본, 시간, 노력 등에 대해 성과가 언제 나올지도 모르고 어떤 것이 나올지도 모르는 연구는, 충분한 이윤이 많이 나와서 R&D에 재투자를 할 수 있는 기업들이 주가 되어야 합니다(정부출연기관도 가능하겠죠). 주로 대기업이 되겠지만, 전문영역에서 성과를 보이고 있는 기업들도 가능할 것입니다. 

그러나, 앞으로는 좀 더 빠르게 변신해야 할 필요성이 대두될 것입니다. 중국같은 나라는 고급인력(engineer, scientist)도 풍부하고 저임금의 생신기술인력도 풍부하기 때문에 2차산업은 금방 따라올 것입니다. 가전산업같은 경우는 이미 전세계적인 경쟁력을 갖추고 있고 Market share도 Ranking 10안에 드는 제품들이 많습니다.
이런 추격을 뿌리치고 지식산업 위주로 변신하기 위해서는 위에서 말했듯이, R&D 투자와 더불어 이런 지식산업위주로 변신할 수 있는 강력한 Drive(CEO의 mind 변화, scientist, engineer에 대한 사회적/금전적 우대)가 필요합니다. 

>저 서울공대 02 학번입니다.
>서울대 공대가 휘청 거리고 있다고 하고 거만하다고 하시는데 우리나라 이공계 살려야 한다 막 그러시는데요.
>실력면으로 보면 전국의 모든 구린 공대중에서는 최고라는 것은 누가 뭐래도 사실입니다.
>지방 공대 학생들이 보면 어처구니 없겠지만요. 물론 서울대 학생이 다 잘하는 것은 아니죠. 분명히 수능이란 어처구니 없는 절차 밟아서 들어온 미적도 못하는 머저리들 있죠.하지만 상위 10퍼센트는 적어도 다른 어느 공대 최우수 학생이라고 해서 덤빌 수는 없을 거에요.고등학교때 이미 미분방정식이나 선형대수학 다 보고 들어오고 학부 3학년의 물리 화학 실력을 가지고 들어오는 신입생도 있지요. 세계에 나가서도 훌륭히 소화해 낼 만한 그런 학생들입니다. 세계 수학,물리 올림피아드 입상자들이 서울대 가지 다른 학교는 거의 안 가거든요. 그러니 무시하지 마세요.
>
>제가 학생들 보면 저 역시 공대 다니지만 공대를 별로 살려야 할 필요성을 못 느끼겠거든요. 우선 공대 살려달라는 요구를 하기 전에 학생들이 실력이나 키우고 그런 소리를 해야지 공부도 안하고 배째라 이러다가 이공계 안살려주면 들고 일어나고 엄청 추합니다. 이번에 서울대 의대 충분히 들어갈 수 있었는데 공대로 발길 돌렸습니다. 물론 지금으로선 만족하구요. 이길로 나가서 우리나라 안 들어오면 성공할 자신 있거든요. 우리나라가 더러워서 그렇지.
>
>말이 꼬이네.
>하여간 서울공대 너무 까지 마시고 공대 들어왔다고 의대보다 못 살것이라는 생각 하지 말고 삽시다.
  • 김기범 ()

      글 잘 읽었습니다. 저도 공감합니다!..지식사회 하니까 자꾸 피터 드러커 할아버지 얼굴이 떠오르네요..^^..참 오래도 사시네..

  • 손영일 ()

      저도 공감합니다. 좋은 글이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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