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re] 이 문제와 관련된, 전문가의 해설을 첨부합니다...

글쓴이
최성우
등록일
2003-02-23 11:4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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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가 윗 글에서 문제를 낸 것은, "벨이 그레이보다 한두 시간 먼저 특허를 출원함으로써, 벨은 대성공을 거두고 그레이는 안타깝게도 분루를 삼켰다" 라는 인식이, 지적재산권 제도의 측면에서 조금만 생각해 보면, '선출원주의'의 입장에서 보아도 매우 이상하고, '선발명주의'의 입장에서 보아도 매우 이해하기 힘든, (물론 약간의 참작은 되겠지만...) 잘못된 것이라는 사실을 지적하고 하는 의도였습니다.

이 문제와 관련된, 지적재산권 전문가의 글을 아래에 첨부합니다.  실은 위의 전화기 발명에 관한 글은 (제가 책을 내기 전에) 어느 온라인 테마게시판에 올렸던 글인데, 그 후 patsong님이 관련된 문제에 대한 질문과 함께 부연설명을 해 주셨습니다...^^    

     *              *              *               *               *              *             *

『프론티어 플라자-과학의 뒤안길/최성우,송호찬 (go FLAZA)』 160번
제  목:다시 돌아보는 전화기 발명                                  
올린이:patsong (송호찬  )    99/04/04 01:40    읽음:109 관련자료 없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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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최성우님이 '한시간차 특허의 진상'이라는 제목으로 전화기
   발명을 둘러싼 과정을 상세히 이야기한 바 있습니다. 저는 이를 조금
   다른 각도에서 바라 보았습니다.
     =============================================
     다시 돌아보는 전화기 발명-특허는 누구 것인가(3)
    
     1) 두 시간 빨리 특허출원하는 것이 그렇게 중요한 일인가?
    
     알렉산더 그레이엄 벨(Alexander Graham Bell)이 엘리사
   그레이(Elisha Gray)보다 두시간 먼저 특허출원하여 특허를
   받았다는 이야기는 너무나 유명하다. 사실, 그레이라는 이름을 모르는
   사람도 많다. 몇 해전, 일등을 강조하는 어떤 대기업에서 광고
   카피로 '2등은 아무도 기억하지 않는다'라고 하면서 2등의 이름을
   연속해서 내보낸 일이 있다. 그 광고 덕분에 역설적이게도 2등의
   이름들을 기억하게 되었다. 그 2등의 이름들 속에는
   엘리사 그레이가 끼여 있다.
    
     전화기 발명을 둘러싸고는 많은 이야기들이 전해내려 오고,
   이러쿵저러쿵 말들도 많다. 예를 들면, 우연히 산을 엎지른 것은
   아니었다는 주장 또는 벨의 조수인 톰 왓슨에게 다급한 목소리로
   이야기한 적이 없었다는 주장 등속이다. 그런데, 특허출원에
   간발의 차이가 있었다는 것은 여러 곳에서 언급하고 있다.
   1876년 2월 14일 벨이 먼저 출원하고 그레이가 약 2시간 뒤에
   출원하였다는 것이다.
    
     그렇다면, 이 두 시간 차이가 특허에서 그렇게도 중요한
   것인가? 그리고, 우리나라에서 벨이 2시간 먼저 출원하고 그레이가
   2시간 늦게 출원했다면 누가 특허권을 가질까?
    
     2) 우리나라에서는 먼저 출원한 사람이 특허를 받는다.
    
     그러나, 두 번째 질문에 대한 답은 뜻밖에도 '알 수 없다' 이다.
   유행하는 말로 며느리도 모른다. 우리나라 특허법에서는 같은
   발명에 대하여 두 사람이 특허출원하였을 경우를 대비한 규정이
   있다. 그 규정에 따르면, 기본적으로 먼저 출원한 사람만이 특허를
   받을 수 있다. (이를 '선출원주의'제도라고 한다.) 다만, 그
   전제는 서로 다른 날에 특허청에 제출한 특허출원이 경합을
   벌일 경우이다.
    
     그럼 같은 날에 출원한 것은 어떻게 할까? 그런 경우에는 두
   사람이 서로 협의해서 정한 사람에게만 특허권을 허여한다.
   그러니, 벨과 그레이 중 어떤 사람이 특허를 받을지는 알 수 없는
   것이다. 협의 과정에서 서로 치고 받고 싸우기만 하다가는 둘 다
   특허를 받지 못한다. 그러니, 원만하게 협의할 수밖에 없다. 그
   원만한 협의라는 것은 예를 들면, 누구 한사람이 특허를 받은 뒤,
   이를 공유할 수 있게 서로 약정을 하는 것이다.
    
     3) 미국에서는 발명을 먼저한 사람이 특허권을 갖는다.
    
     그런데, 벨이 최초 발명자로서 특허권을 얻은 것을 보면 미국은
   좀 다른 제도를 취하고 있다는 것을 금방 알 수 있을 것이다. 미국
   특허제도에 따르면, 먼저 발명한 사람이 특허를 받는다. (이를
   '선발명주의'라고 한다.) 벨에게 특허를 주었고, 벨이 발명자라고 하는 것을
   보면, 벨이 먼저 발명하였다는 것을 인정한 것이다. 그렇다면, 두 시간
   차를 두고 출원한 것을 가지고는 그리 난리칠 일도 아닌데 하고
   갸웃할 것이다.
    
     발명의 과정을 간단히 살펴보자. 먼저, 착상(conception)이
   이루어지고 그 착상을 구체화하여 실제로 착상의 구현에
   성공(실시화, reduction to practice)하면 발명이 완성된다. 이를
   바탕으로, 미국 특허제도에서는 누가 먼저 발명하였는지 판단할
   때에 크게 보아 다음 세 가지를 따진다. 착상의 선후, 실시화의
   선후, 그리고 실시화가 이루어질 때까지 열심히 한
   정도(diligence)가 그것이다.
    
     착상과 실시화 모두를 먼저한 사람이 있다면, 문제는 간단하다.
   먼저 한 그 사람에게 특허를 주면 된다. 그런데, 착상을 먼저한
   사람이 실시화에는 늦었다면 문제가 조금은 복잡해진다. 이때에는
   열심히 한 정도를 따진다. 착상을 먼저 하였고 열심히
   노력하였는데도 실시화에는 조금 늦었다면 착상을 먼저한 사람에게
   발명자의 명예와 특허권이 돌아간다. 그렇지 않다면, 물론 착상을
   먼저 했더라도 실시화를 먼저한 사람에게 부와 명예가 돌아가는
   것이다.
    
     잘 알고 있듯이, 벨은 전화기 발명에 열심이었다. 이 발명가는
   전화의 유용성을 믿고 그가 하는 발명을 밀고 나갔다. 그런데,
   그레이는 전화를 어린아이 장난감 정도의 가치밖에 인정하지
   않았고, 실시화(발명의 완성)에 그리 열심이지도 않았다. 그리고,
   아이디어를 착상한지 두 달이 지나서야 특허출원한 것이다.
   여기서도 벨은 후한 점수를 얻을 수밖에 없다.
    
     그런데, 이상한 것은 벨이 특허출원한 날은 1876년 2월
   14일이었지만, 그 유명한 사건은 그해 3월 9일에 이루어진 것이다.
   모두가 아는 그 일, '미스터 왓슨 이쪽으로 오게'라는 벨의
   목소리를 왓슨이 전화선을 통해 똑똑히 들은 일 말이다 (물론
   이것은 전화발명을 극적으로 표현하기 위해 지어낸 것이라는 설도
   있다). 그렇다면, 실제 실시화가 이루어진 것은 특허출원 이후인
   것이다. 여기서 주목할 것은 특허출원도 하나의 실시화로
   간주(constructive reduction to practice)된다는 점이다.
   그렇다면, 벨이 그레이보다 2시간 먼저 출원하였다는 것은
   벨이 2시간 먼저 실시화를 이루었다는
   결론을 내릴 수 있는 것이다. 그래서 두 시간 차이라는 점도
   중요하다.
    
     결국, 이리저리 둘러보아도 벨이 특허받을 수밖에 없는
   조건이다. 벨은 자신의 전화기 발명에 대한 특허권을 지키기 위해
   600여회나 법정에서 방어해야만 했다고 한다. 그가 전화기
   발명자로서 우뚝 선 것은 발명을 하고, 그 발명에 대한 권리를
   만들고, 권리를 지켜나가는 데에 모두 열심이었던 덕이다.
    
     같은 발명이 두 개 이상 특허출원된 때에 대하여 특허법은
   다음과 같이 규정하고 있다.
    
     제36조 ① 동일한 발명에 대하여 다른 날에 2이상의 특허출원이
   있는 때에는 먼저 특허출원한 자만이 그 발명에 대하여 특허를
   받을 수 있다.
            ② 동일한 발명에 대하여 같은 날에 2이상의 특허출원이
   있는 때에는 특허출원인의 협의에 의하여 정하여진 하나의
   특허출원인만이 그 발명에 대하여 특허를 받을 수 있다.(뒤의
   단서는 생략)
    
     1999년 4월 4일 송 호 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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