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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든 의사들에게 참회와 개혁을 촉구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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트리비어드 작성일2002-10-11 21: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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원래 의사 얘기는 하면 안되는 걸 알지만...한겨례에서 이 글을 읽고 감동 받아서 퍼왔습니다. 그 집단이 선도적인 집단이 되려면 끊임없고 치열한 자기성찰이 있어야 합니다. 이 글을 쓴 분의 직업인으로서의 태도는 존중 받아 마땅합니다. 내부의 작은 목소리조차도 보호하지 못하는 집단이라면 그 집단은 역사의 주류에서 밀려날 수 밖에 없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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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월9일 대한의사협회가 자신들의 이해에 부합하지 않은 정책을 제안했다는 이유로 보건정책 활동에 참여한 의대 교수에 대해 윤리위원회를 열어 회원자격 정지 징계 결정을 내렸다. 보건정책가의 정치적 신념에 의한 활동을 윤리위원회에 넘긴다는 발상 자체가 황당한 것이어서 설마 했던 일이 현실이 되고 만 것이다. 더욱이 이러한 결정이 자신들의 의료행위를 타인에 의해 침해받을 수 없는 권리라고 주장해 왔던 전문가 집단에 의해 이루어졌다는 것이 우리를 더욱 놀라게 한다. 또한 그동안 수많은 동료 의료인들의 비리와 불법행위에 침묵해오던 윤리위원회가 내린 결정이라 더욱 입을 다물 수가 없다.

너무나 가슴 아프게도, 이날은 의사들뿐만 아니라 이 시대를 살아가는 모든 이들에게 영원히 부끄러운 날로 기억될 것이다. 나는 이번 대한의사협회 윤리위원회 결정을 ‘파시즘적 야만’이라 규정하고 규탄하고자 한다.

파시즘의 중요한 특성은 인종주의다. 인종주의는 나와는 다른 모습을 한 이들을 철저하게 배척하는 것이다. 또한 파시즘은 ‘다름’에 대해 무자비한 폭력(물리적 폭력만을 의미하는 것이 아니다)을 가한다. 그런 의미에서 이번 대한 의사협회 윤리위원회의 결정은 윤리위원회를 자신들의 이해를 위한 정치권력의 도구로 전락시켜 자신과 목소리를 달리하는 정책가에게 폭력을 행사한 ‘파시즘적 야만’의 전형인 것이다.

내가 아는 한 그들은 의사출신이지만 의사의 이해가 아닌 국민적 이해에 우선하려하는 우리나라에서 몇 안 되는 훌륭한 보건정책가다. 그리고 국민을 위하는 정책이야말로 궁극적으로 의사들에게도 도움이 되는 정책이라 믿는 이들이다. 그들이 특정집단의 이해에 기생해 사는 많은 로비스트 정책학자와는 분명히 다른 이들이라는 것은 아는 사람은 다 아는 사실이다.

의사들 자신도 진정으로 원하는 ‘교과서적 진료’를 할 수 있는 보건의료 체계의 개혁을 위해서는 오랫동안 의료계에 독버섯처럼 뿌리내려 의사들을 옭아매고 있는 ‘블랙마켓’을 부수어야 한다는 그들의 정치적 주장은 여전히 이 시대가 해결해야 할 포기할 수 없는 정책과제다. 그들은 우리 모두 해야 할 일이라는 것을 잘 알면서도 겁이 나서 못했던 일을 개인적 희생을 무릅쓰고 용감하게 결행한 것뿐이다.

그러나 나는 그들을 변호하기 위해 이 글을 쓰는 것이 아니다. 그들은 누구의 변호를 받아야 할 이유가 없고, 그 만큼 나약하지도 않다. 오늘 내가 글을 쓰는 것은 불의를 고발하기 위해서다.

나는 고발한다. 온 국민과 합리적 이성의 신 앞에 고발한다. 이 시간에도 불법, 과잉 진료로 대다수 성실한 의료인들을 욕되게 하고 있는 일부 의료인들의 불법행위들이 엄연히 만연하고 있음을 고발한다.

나는 고발한다. 그들의 불법을 알면서도 그가 나의 스승이고, 아끼는 동료이고, 사랑하는 제자라는 이유로 침묵해온 유치한 동료애를 고발한다.

나는 고발한다. 그동안 수많은 불법진료에 눈감고, 동료들이 법의 심판을 받기 전에 먼저 계도하는 책임을 방기해 왔던, 그리고 이번 치욕적인 결정을 내린 대한의사협회 윤리위원회의 무책임과 야만을 고발한다.

나는 고발한다. 보건의료계 뼛속까지 침입한 병을 뿌리뽑기 위해서는 제 뼈를 깎아내는 아픔이 있어야하고, 그런 과정에서 개개인의 이해에서 벗어나야 한다는 것을 누구보다 잘 알면서도 여전히 자신의 몸에는 메스 대기를 거부하고 작은 이익에 집착하는 의료인들의 소아적 태도를 고발한다.

나는 고발한다. 의사협회의 무능력과 비민주성을 비난하면서도 참여하기는 주저하는 그 이기심을 고발한다.

나는 고발한다. 무엇이 옳은지 잘 알면서도 광포한 파시즘적 위풍에 침묵하는 많은 선후배 동료의사들의 그 침묵을 고발한다.

이번 사건은 단순히 특정집단의 우발적 사건이 아니다. 이것은 우리 사회에 자리잡고 있는 ‘우리 안의 파시즘’이다. 더욱이 이것이 ‘히포크라테스 선서’로 상징되는 전문가로서 자율규제 전통이 상대적으로 많이 남아 있는 집단에서 발생한 일이라는 점에서 문제가 더욱 심각하다. 오늘 대한의사협회 윤리위원회의 결정을 특정집단의 문제로만 볼 수 없는 이유다.

다시 말하건대, 오늘날 국민과 함께 보건의료계가 겪고 있는 어려움은, 이러한 모순이 우리 의료인들의 몸과 행동 속에 각인되어 있는 까닭에, 의료인들의 참회의 눈물과 제 살을 도려내는 아픔이 선행하지 않고서는 의사들에 대한 국민의 불신은 회복되지 않을 뿐만 아니라 우리 보건의료계에 희망은 없다. 하물며 보건정책가의 정치적 신념을 이미 권위를 상실한 윤리위원회에 세운다고 해서 의료계의 윤리가 회복되지 않으며, 스스로의 추한 모습을 더욱 드러낼 뿐이라는 것을 알아야 한다.

윤리위원회에 먼저 넘겨야 할 사람은 그들이 아니라 과거와 현재, 그리고 우리 외부와 내부의 불의에 여전히 적극적으로 저항하지 못하는 우리 모든 의료인이다.

그러므로 오늘 나는, 나를 포함한 대한민국의 모든 의사들에게 참회를 촉구한다. 그리고 우리 외부와 내부의 모순, 불의한 선동, 달콤한 권력욕, 그리고 적당한 담합, 천박한 의리에 저항할 것을 촉구한다. 의사의 ‘자존심’이 아니라 우리들을 애타게 쳐다보고 있는 환자들을 돌보는 그 의사의 ‘자부심’을 위해 싸울 것을 촉구한다. 참회의 눈물과 소아를 버리는 비장한 결의로 시작하는 개혁만이 이번 대한의사협회 윤리위원회가 저지른 야만의 역사를 일부라도 보상할 수 있는 길이다. 나는 우리 의사사회가 이 마지막 기회를 잃지 않기를 진심으로 바란다.

신영전/ 한양의대 조교수



댓글 1

배성원님의 댓글

배성원

  이나라 엘리트 구성의 한 축인 의사'..그들 사회에 불고있는 천박한 자본주의에 대한 내부의 자성을 촉구하는 모습이군요. 이런 미친 광풍이 짧은 요몇년에 생겼다면 이런 촉구로 진정이 되고 진정한 개혁이 이루어질지도 모르지요. 제가 보기에 그 뿌리는 수십년을 거슬러 기인합니다. 골수에 박혀 있지요. 개혁을 하려고 해도 '약사'들이 미워서..그들이 더 떵떵거리는 꼴 보기싫어서 안 할겁니다. 인간은 참 재미있는 동물이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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