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선일보] ‘과학기술의 요람’ 대전 한국과학기술원

글쓴이
준형
등록일
2002-08-02 01: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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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심층취재] ‘과학기술의 요람’ 대전 한국과학기술원
“공부는 서바이벌 게임”…KAIST의 연구벌레들
캠퍼스 전체가 불야성…수업 못따라가 작년 79명 제적
 
 ▲사진설명 : 한국 과학기술의 요람으로 불리는 KAIST(한국과학기술원)의 불빛은 꺼질 줄을 모른다.24시간 연구하는 ‘공부벌레 ’들 때문에 KAIST의 연구동 ·도서관 ·기숙사 등은 24시간 문을 연다. 
 
20일 오전 1시 대전시 유성구에 위치한 KAIST(한국과학기술원). 여학생 기숙사 앞 철조망에 3명의 그림자가 어슬렁거리고 있었다. 1분쯤 지났을까. 소형 오토바이의 엔진 소리가 적막을 깨더니 구멍 뚫린 철조망 사이로 음식 그릇들이 오갔다.

“1만8000원입니다. 보쌈 중(中)자 하나 하고 밥 세 개 맞죠?” 야식(夜食)을 받으러 나온 송민호(23·전자공학과)씨는 “오후 6시쯤 저녁을 먹었더니 배가 고파 공부가 안 된다”며 “연구도 식후경”이라고 말했다. 보쌈 그릇을 받아 든 강민정(가명·22)씨는 “낮에 다이어트와 피부 미용을 이야기하던 여학생들도 자정이 넘으면 라면이나 김밥, 치킨의 유혹을 뿌리치기 힘들다”며 발걸음을 재촉했다. KAIST를 둘러싼 철조망엔 현재 ‘개구멍’으로 통하는 야식 창구가 세 군데 있다. 정부 2급 보안기관인 KAIST는 지난 96년 외부인에 의한 도난사고가 증가하자, 야식 배달원을 비롯한 외부인의 출입을 통제하고 있다. 이 때문에 밤이면 학생들이 철조망 앞에서 음식을 기다리는 풍경이 연출되는 것이다.

21일 오전 11시. 전자공학과 석사 2년차인 김준수(25)씨는 기숙사를 나서는 길에 연구실에서 돌아오는 같은 과(科) 친구인 강동우(25)씨를 만났다. “자러 들어가니?(김준수)” “응, 넌 연구실에?(강동우)” 같은 방을 쓰지만 두 사람이 1년 동안 서로 깨어있는 모습을 본 것은 손가락으로 꼽을 정도다. 김씨는 주로 낮에, 강씨는 밤에 숙제와 프로젝트를 진행하기 때문이다. 강씨는 “돈 때문에 공부를 선택했다면 일찌감치 포기했을 것”이라고 했다. 연구를 하면 할수록 성취감을 느낀다는 것이다.

 
 ▲사진설명 : ‘캠폴(캠퍼스 폴리스의 약칭)’로 불리는 교내 경찰들이 야간 활동이 많은 KAIST 학생들의 안전을 책임진다. 
 
KAIST 학생에게 공부는 ‘꿈’을 이루는 길이다. 단지 좋은 직장을 얻기 위해 밤을 새우는 학생은 드물다. 생물과학과 석사 졸업생 황승민(28)씨는 “운동이 운동선수에게 심신단련 이상의 의미를 가지듯, KAIST에서 공부는 직업적 수단이 아니라 자아(自我)를 성취하는 방법”이라고 말했다. 한국 과학의 미래에 대한 책임감도 학생들을 연구실로 이끈다. 생물과학과를 졸업한 허세범(24)씨는 “KAIST 학생들은 등록금과 병역에서 국가의 혜택을 받는다”며 “열심히 공부해야 한다는 의무감이 들 때가 있다”고 말했다.

분위기에 이끌려 공부를 하는 경우도 있다. 기계공학과 이철재(가명·25)씨는 ‘공부 서바이벌 게임’을 따라가지 못해 학부 3학년 때 제적당했다가 재입학했다. 이씨는 “축제 때도 시험을 빼주는 법이 없고 학점도 인색해 공부 스트레스를 많이 받았다”고 말했다. 지난해 총 6600여명의 KAIST 재학생 가운데 학사 16명·석사 20명·박사 40명 등 76명이 자퇴했고, 학사 25명·석사 21명·박사 33명 등 79명은 제적당했다. KAIST 학생 100명 가운데 2명이 1년 동안 학교를 떠난 셈이다. 이씨는 그러나 “제적 당한 뒤 다른 학교도 다녀봤지만 KAIST만큼 연구 분위기가 좋은 곳이 없어 돌아왔다”고 말했다. KAIST는 제적생에겐 다시 공부할 기회를 주기도 한다.

 KAIST에서 낮과 밤의 구별은 무의미하다. ‘공부 벌레’들은 24시간 연구하고 24시간 잠을 잔다. 대학 시스템도 학생들이 24시간 활동할 수 있도록 짜여졌다. 학사지역 도서관은 24시간 문을 연다. 실험과 실습이 주로 밤에 이뤄지고 야간에 치러지는 시험도 많기 때문이다. 기숙사도 24시간 개방이다. 통금·점호시간, 외박계 등은 KAIST 학생들에겐 낯선 단어들이다. ‘캠퍼스 폴리스(약칭 캠폴)’로 불리는 교내 경찰들의 활동도 활발하다. 이들은 6명이 2인 1조로 3교대 야간근무를 하며 교내 치안을 담당한다. 캠폴은 구급함과 포승줄을 함께 들고 다니며 과속 오토바이를 단속하거나 심야에 학생 안전을 책임진다. ‘BBS(Bulletin Board System)’로 불리는 전자게시판은 KAIST 학생들을 하나로 묶어준다. 학생들은 이 게시판을 통해 숙제나 실험 일정 등을 검색하거나 학과·동아리·동문들의 소식을 접하기도 한다. 개인 게시판을 통해 친구끼리 대화를 나누는 재미도 쏠쏠하다. KAIST 학생들은 BBS 이용을 ‘비비질’이라고 부른다. 물론 인터넷 중독처럼 하루라도 비비질을 하지 않으면 불안감을 느끼는 학생들도 있다고 한다. 38만평 부지에 자리잡은 KAIST는 이곳 학생들에겐 학교이자 가정인 셈이다.

 
 ▲사진설명 : 자연과학동에 위치한 바이오멤스(MEMS)연구실에서 학생들이 새벽까지 연구에 몰두하고 있다. 
 
KAIST에 땅거미가 깔리기 시작했다. 어둑어둑하던 교내는 밤이 깊어갈수록 환해진다. 새벽 2시35분, 자연과학동에 위치한 바이오멤스(MEMS) 연구실은 대낮처럼 불을 밝혔다. 매캐한 화공약품 냄새가 풍기는 연구실에 들어서자, 두 명의 연구원이 넋나간 표정으로 플라스크를 씻고 있었다. 말을 걸었다간 한 대 얻어맞을 분위기였다. “왜 저래요?”라고 묻자 화학과 석사 1년차인 이정규(27)씨는 “실험이 잘못 된 것 같다”고 답했다. 이씨는 “며칠 동안 고생한 결과가 엉뚱하게 나왔을 땐 함부로 말을 걸지 않는다”고 덧붙였다.

KAIST에서 공부와 관련된 전설은 무수히 많다. 2년 전 생명화학공학과 석사를 마친 안우석(LGCI 근무)씨는 석사논문을 준비하면서 3일 동안 한숨도 안 잤다고 한다. 안씨의 지도교수였던 이상엽 교수는 “낮에 KAIST엔 돌아다니는 사람이 드물다”며 “애들이 (공부를) 너무 열심히 해서 걱정”이라고 말했다. 연구에 몰입했다가 정신 이상이 됐다는 선배들 이야기도 심심치 않게 떠돈다. 학점 관리가 엄격하기로 유명했던 96년엔 학업 부담으로 자살한 학생도 있었다.

교수들의 퇴근시간도 밤 12시를 넘기기 일쑤다. 물리학과 윤춘섭 교수는 “집사람은 오래전에 남편이 일찍 들어오는 것을 포기했다”며 “요즘은 아내 보기 미안해 퇴근시간을 한 시간쯤 당기고 대신 1시간 일찍 출근할 계획”이라고 말했다. 덕분에 KAIST 교수들은 최근 5년간(96~2000년) SCI(과학논문인용색인) 학술지에 1인당 20.6편의 논문을 발표했다. 이것은 캘리포니아공대(Caltech)에 이어 세계 2위에 해당하는 교수 1인당 논문 발표 횟수다.

그러나 원자력 및 양자공학과 최성민 교수는 최근 씁쓸한 경험을 했다. 최 교수는 올 봄 초등학교 3학년이 보낸 뜻밖의 ‘위문 편지’를 받았다. “우리 국민들의 불편함을 덜어주기 위해 이렇게 고생하시는 과학자님을 생각하니 가슴이 아파요. 열심히 일해도 월급을 제대로 타지 못하시고….”란 내용이었다. 이공계 기피현상의 실태를 신문에서 읽은 초등학생이 보낸 편지였다. 최 교수는 “미국의 과학권위지(誌) 사이언스가 올해 초 한국의 이공계 기피 특집 기사를 실으면서 「과학기술을 천시하면 미래는 없다」고 경고했던 사실을 잊지 말아야 한다”고 말했다.


◆“짬내서 논다”…71개 동아리 한밤중에도 활동

KAIST 학생들은 공부 만큼 동아리 활동에도 열성적이다. KAIST 주변엔 서울의 신촌이나 대학로 같은 대학가(大學街) 문화가 발달하지 않아 동아리 활동에 적극적인 학생들이 많다.

2002년 6월 현재 2600여명의 학부생을 위한 동아리는 55개, 4000여명의 석·박사 과정 학생을 대상으로 한 동아리는 16개가 등록돼 있다. 총 71개 동아리 중엔 ‘UFO(미확인비행물체) 연구회’나 마이크로 로봇을 개발하는 ‘MR(Micro Robot Research)’ 같은 이색 동아리도 있다. 학교가 집인 KAIST 학생들은 동아리 방에서 24시간을 보내기도 한다. 애니메이션 동아리 ‘샹그릴라’는 24시간 애니메이션을 상영할 때가 많고, 천문관측 동아리 ‘별바리기’는 동아리 특성상 밤에 모인다. 새벽에 울리는 드럼 소리나 비오는 날 들리는 태평소 소리는 기숙사 학생들의 단잠을 방해하기도 한다. 동아리 건물이 기숙사에서 걸어서 5분 거리에 있기 때문.

해외연수 기회와 병역혜택 등도 KAIST 학생들의 기(氣)를 살린다. 올해 학부생 가운데 50여명이 4개월~1년 코스로 미국이나 유럽 대학으로 연수를 떠난다. 또 학부생 160여명은 여름방학을 이용해 6~8주 동안 외국 대학에서 공부할 수 있다. 하계 연수경비는 학교에서 250만원까지 지원한다. 박사 과정 학생들은 전문연구요원(특례보충역)으로 편입돼 현역 입대하는 대신 해당 전문분야에서 5년 이상 근무하면 된다. 학점 4.3 만점에 3.0 이상이면 무조건 장학금을 받는다.


(大田=朴英哲기자 ycpark@chosun.com )

  • 준형 ()

      좋은글인지 나쁜건지 전 잘 모르겠네요, 입시가 가까워 지니깐 이공계도 희망이 있다는 식으로 글을 쓴거 같은데, 어떤건가요?

  • 과학도 ()

      선동적인 면이 있지만 조선일보가 국가주의자 집단인건 맞지 않나요? 제가 보기엔 부국강병이란 기치를 거의 제1목표로 삼고있는 신문입니다.

  • 소요유 ()

      하하. 과학기술에 의한 '부국강병'의 방향은 우리와 일치하는 데, 그 목적이 무엇이야겠죠.  이게 아마도 명분을 줄 수 있는가  아닌가를 판별할 것 같습니다. 

  • 김일영 ()

      이렇게 열심히 일한 카이스트 졸업생들 지금 무엇을 하면서 어떻게 만족하는지 궁금하군요. 참 지금도 열심히 땀의 보상을 제대로 해주지 못하는 현실이 안타깝기만 합니다.

  • 전우진 ()

      이 기사를 쓰신분이 카이스트 졸업생이시라더군요 ^^  한가지 아쉬운건 SCI 논문 이하부터는 인쇄판엔 짤렸다고 하더군요..  카이스트생 답게 카이스트의 생활을 정말 있는 그대로 담아낸것 같습니다..

  • EE ()

      헐.. 대단하네요.. 제가 알기로 UCB 공대는 4년 안에 졸업 못하면 다른 곳으로 옮겨야 되고.. 그리고 과 안정하고 입학한 경우 과 진입하기위해 경쟁하고.. 과 진입 후에는 4년 졸업 위해경쟁하고.. 미국은 학점 낮으면 취직이 안되닌까요.. 그래서 약 45% 정도의 학생이 중도 탈락하고 전공을 바꾸거나 학교를 옮긴다고 하네요..

  • fall ()

      역시 조선일보답네요.

  • fall ()

      우리나라 언론은 뭐든지 줄세우기를 참 좋아하는데.. 예전에는 서울대 많이 보낸 학교 서열대로 발표하고.. 그거 못하게하니까 요즘에는 사법시험 많이 붙는 학교 순서대로 정렬해서 발표하고.. 요즘에는 좀 세련된 SCI 논문 편수로 소팅을 하는데.. 이건 비교의 기본이 안되어있는것입니다. 왜냐하면 강남에는 한학년에  학생이 한 천명되는 학교도 있고 소도시에는 한 200명 되는 학교도 있는데.. 서강대나 이대 같은경우는 법대생 인원이 고대나 서울대 1/4 이나 되나요. 이러니까 하다못해 연세대가 법대 정원을 늘리고.. 어떤 기사에서는 어느 나라는 교수 1인당 학생수가 10명될까하니 무지 선진국이라고 하다가 또 SCI 논문 이야기 나올때는 태도가 싹 바뀝니다. SCI 페이퍼를 전부다 교수 혼자 쓰지 않는한 논문편수는

  • fall ()

      대학원생 인원에 비례하는법입니다.

  • fall ()

      개인적으로는 카이스트 졸업생들이 잘 되었으면좋겠습니다. 그래야 과학고 졸업한 학생들이 의대도 덜 갈터이고.. 카이스트 졸업생들이 교수도 좀 많이 되고 그래야..

  • 정문식 ()

      저도 지금은 다른 직업에 종사하고 있지만, 아직도 '과학자'의 옛꿈을 버리지 못하고 있는데, 적어도 지금 새내기들부터는 일이 잘 풀려서 타의에 의해 '망명'이나 '전직'을 하는 일이 없었으면 좋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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