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스메이커]주식회사 서울대 탄생하나

글쓴이
열방
등록일
2002-08-04 19:01
조회
4,096회
추천
2건
댓글
7건
경향신문 뉴스메이커 485호에 올라 있던 내용입니다.
뭔가 생각해 보아야할 문제 같아서 퍼왔습니다.

-----------------------------------------------------------------------------------------
주식회사 서울대 탄생하나


 
법 개정은 언제나 일장일단을 갖는 모험이다. 제대로 고치면 제도상의 난맥과 부패의 고리를 끊어 조직에 활력을 불어넣는 계기가 되지만, 잘못 고치면 생각지도 못한 함정에 말려들어 그 전보다 못한 결과를 빚기 일쑤다.

여기 또 하나의 개정 법안을 두고 정부와 교육단체가 옥신각신 설전을 벌이고 있다. 교육인적자원부가 지난 4월 입법 예고한 '산업교육진흥 및 산학협력 등의 촉진에 관한 법률안'이 그것이다. 입법 예고 당시에는 별탈 없이 지나간 법안이 9월 정기국회 상정을 앞두고 논쟁의 도마에 오른 이유는 무엇일까. 뒤늦게 교육단체들이 무엇을 발견했기에 법 개정에 쌍수를 들고 반대하는 것일까.

교육부가 밝힌 법 개정 이유는 산업체와 대학 및 정부 출연 연구기관 간의 협력과 교류를 활성화하기 위한 법적-제도적 기반을 마련하기 위한 것이다. 취지대로라면 비판의 여지는 없어 보인다. 대학이 고답적인 상아탑 논리만 고집하며 기업과의 연계 활동을 소홀히 하고 있는 현실을 감안할 때 산학협력을 활성화하기 위한 입법은 환영받을 만하기 때문이다.

그러나 법안의 내용을 살펴보면 볼수록 문제가 그렇게 단순하지 않다는 게 드러난다.
개정 법안의 골자는 대략 다음과 같은 것이다. 간단하게 말해 대학 내에 산학협력단이란 기구를 만들어 모든 연구 활동에 대한 지원과 대외적인 계약을 전담하게 한다는 것. 대학과 기업 간에 이뤄지는 연구 용역 계약부터 교수들이 출원하는 특허 관리, 정부 또는 유관단체의 연구비 지원 업무에 이르기까지 대학과 관련된 모든 연구 활동을 전담하게 한다는 내용이다.

졸업생의 취업난 때문에 골치를 앓고 있는 대학이 환영할 만한 내용도 포함돼 있다. '산업체가 특정 분야의 인력 양성이나 민간의 특정 인력 수요 충족을 위해 학생에게 장학금을 대여하고, 일정 기간 종사한 경우 그 상환 의무를 면제할 수 있는 장학계약을 체결할 수 있다'는 것이다. 대학의 입장에서는 획기적인 제안임에도 교육단체들은 반발하고 있다.

'산학협력단'수익 사업 전개 길 열려
문제는 산학협력단의 성격에서 비롯한다. 이 기구는 법인 성격을 띠며 대학 내에서 별도의 독립회계를 운용하며 수익 사업을 벌일 수 있다. 이는 곧 비영리단체인 대학이 합법적으로 장사를 할 수 있게 된다는 것을 의미한다. 개정 법안은 '산학협력단이 국가 등의 출연 및 보조금과 각종 산학협력 사업에 따른 수입을 재원으로 운용되고, 국-공립대학은 국-공유 재산의 사용료 및 수수료 등을 수입으로 할 수 있도록 하며, 사립대학을 설치-경영하는 학교법인은 교비회계에 속하는 수입의 일부를 교육인적자원부령이 정하는 범위 안에서 산학협력단에 출연할 수 있다"고 돼 있다.

중언부언을 빼고 보면 등록금이나 기타 수입을 이용해 대학도 일반 기업과 같이 장사를 해 돈을 벌 수 있도록 하겠다는 것이다. 좀더 확대하자면 서울대 주식회사-연세대 주식회사-고려대 주식회사 등 학교 기업의 탄생도 가능하다는 얘기다.

개정 법안대로라면 산학협력단은 대학 내에서 활동하고 있는 벤처기업에 투자할 수도 있고 독자적인 기업을 만들어 영리 활동을 벌일 수도 있다.

예컨대 서울대 산학협력단은 삼성과 공동투자로 대학 내에 반도체 업체를 만들어 교수와 석-박사과정생의 노동력을 이용해 새로운 기술을 창출하고 이를 제품화, 이익을 나눠가질 수 있고, 연세대 산학협력단은 의대 내에 생명공학 벤처를 만들어 돈을 벌어들일 수 있다. 또한 자동차 연구 분야가 강한 전문대라면 자동차 정비소를 만들어 영업을 할 수 있고, 농학 분야에 강점을 가진 대학이라면 농장 수확물을 식품으로 가공해 시중에 판매할 수도 있다.

그동안 교육관계법은 법인의 수익 활동만 인정해왔을 뿐, 대학의 영리 활동은 인정하지 않았다. 그러나 이 법이 통과될 경우 대학 내에서도 합법적인 영리 활동이 가능해 지는 것이다. 단순히 제품을 만드는 것뿐만 아니라 교수와 대학원생의 노동력도 용역 계약을 통해 기업에 팔 수 있게 된다. 이른바 '학교 기업'을 대학이 운영할 수 있게 되는 셈이다.

그렇게 되면 기업과 대학이 '누이 좋고 매부 좋은' 효과를 보는 것이 아니냐는 반문이 가능하다. 그렇게 간단하지 않다는 것이 교육단체들의 반응. 이들의 고민은 좀더 근원적이다.

법 개정에 반대하고 있는 진보교육연구소측은 "개정 법안은 대학이 가지고 있는 모든 기술과 지식, 그리고 인력을 이윤 추구를 목적으로 이용할 수 있도록 제도화함으로써 대학의 공공성을 포기하는 것"이라고 비판하고 있다. 강신현 진보교육연구소 연구원은 "산학협력은 필요하지만 문제는 어떤 산학협력인가가 중요하다"면서 "법안은 산학협력을 내세워 대학을 시장에 내동댕이치는 조치나 마찬가지다"고 비판했다.

교육부 '학문의 현실적합성 제고' 항변
지난 7월 25일 '산업교육진흥법개정안 무엇이 문제인가'를 주제로 서울대에서 열린 교육정책토론회에서 김인재 상지대 교수(법학) 역시 "대학과 산업체의 협력은 일정한 전제조건하에서 진행해야 한다"며 "교육과 연구 본연의 역할에 충실해야 하는 대학이 이윤 추구를 목적으로 기업 활동을 벌이는 것은 적절치 않다"는 입장을 밝혔다.

시장논리가 대학에 깊숙이 침투해 교육과 연구의 상업화 현상이 심화하고 있는 형편에 합법적으로 학교 기업을 운영하게 하는 것은 대학에 본연의 역할을 포기하라는 것과 마찬가지라는 해석이다.

김삼호 한국대학교육연구소 원구원은 법 개정에 따른 부작용을 걱정했다. 그는 "부정 축재를 일삼는 일부 비리 사학법인에 개정 법안은 고양이에게 생선을 맡기는 격"이라며 "등록금을 사업 자금으로 빼돌릴 수도 있을 것이며 마음먹기에 따라서는 또다른 부정 축재 수단으로 산학협력단의 회계를 이용할 수도 있다"고 우려를 표했다.

교육부의 항변도 만만치 않다. 황홍규 인적자원정책국 조정2과장은 "개정 법안은 미흡한 환경 속에서 이뤄지고 있는 대학의 연구 활동에 대한 근거를 분명히 하고 제도적으로  뒷받침하기 위한 조치를 담은 것일 뿐"이라며 "모든 대학이 상아탑일 필요는 없다는 점에서 특성에 따라 산학협력을 강화해 학문의 현실 적합성을 높이기 위한 목적"이라고 밝혔다. 대학의 무차별적인 영리 활동이 가능해지는 것이 아니냐는 비판에 대해서는 "기본적으로 교육 연구 활동과 관련된 수익 사업만 인정할 것"이라며 "교육부가 강제하는 것이 아니라 대학의 자율적인 결정에 따라 이뤄지는 것이기 때문에 크게 걱정할 필요는 없다"고 덧붙였다. 오히려 무분별하게 이뤄지고 있는 대학 내의 수익 활동을 투명하게 하고 질서를 바로잡아줄 수 있다는 것이 황 과장의 반론이다.

긍정적이든 부정적이든 법안이 개정될 경우 대학의 성격을 크게 변화시킬 것은 분명해 보인다. 현실적인 재정난을 감안할 때 무턱대고 대학의 수익 활동을 막을 수도 없지만, 그렇다고 대학이 주식회사화되는 것도 꼴사납긴 마찬가지다. 대학은 자본과 불가근 불가원(不可近 不可遠)의 위치를 유지할 때 그 존재 가치가 더욱 빛나기 때문이다.●

안길찬 기자 chan@kyunghyang.com

  • 임호랑 ()

      흠~ 저는 교육부에 한표. 대학이 상아탑이라는 문돌적 사고방식이 얼마나 우리나라 대학을 놈팽이 양성소만드는데 기여해왔는지 그 폐해를 생각해본다면... 선진국 어느대학이든 사회적 수요에 기민하게 대학이 반응하지, 사회와는 동떨어진 상아탑에 안주하질 않는다. 이는 19세기적 대학관이다. 꼭 산업체로만 국한할 것은 아니되, 대학교수가 학원운영을 좌지우지하는 것 보다는 선진국들처럼 장기적으로 정부의 대학통제를 강화하여 학위수준유지, 교육내용 내실화나 대학회계처리 투명화 등을 담보하며, 종국에는 30%정도의 인력은 전액국가장학생이 되도록 하는 것이 바람직하다고 본다. 유럽 각 대학이 이렇게 운영되고 있다. 교권을 국민(정부)에게 돌려주는 것이 '주권재민'적 민주주의로 가는 올바른 방향이다.

  • 원유철 ()

      장기적으론 교육부안이 옳은것 같습니다. 이미 영국,일본에서는 시행하거나 할 예정인 대학의 '독립법인'화는 결국 가야할 길인 것 같습니다.

  • 수험생 ()

      이미 선진국(특히 교육계 쪽이 아주 잘 정비된 곳들) 에서 일반화된 산학협동단계입니다. 다만 악용할 소지가 다분하다는점이 문제겠죠. 특히 의약품 관련분야는 정말 하소연할 곳이 없다고 하네요. 약값이 금값보다 더한 때가 곧 올거 같습니다.

  • 이공계2 ()

      저도 교육부에 한표입니다. 일전에 한 주립대가 (또 외국이야기 죄송합니다) 사립대들처럼 이런 시스템을 도입하였다 하여서 주목을 끌었습니다. UCLx 는 학교셔츠를 한국에 내다 팔던데..누구도 뭐라하는 사람없습니다. 이런 시스템화는 운영주체가 전문경영인들이라서 대학직원의 관료화를 막는 순기능도 있습니다. 미국도 주립대의 경우 직원들의 관료화에 교수들이 치를 떨고있는 곳도 있으니까 말입니다.

  • 배성원 ()

      저도 일단은 교육부에 한표. 운영을 묘를 살린다면 바람직한 모습의 정착이 더 빨리 되겠죠. 문제는 항상 이럴대 깽판치는 미꾸라지가 있어왔기 때문에.....몇번 휘청거릴때마다 교육부 얻어터지고, 법을 이리저리 갈대휩쓸리듯 땜빵을 하고...종국엔 효과도 없고 그 법이 있었는지 없었는지도 모르는 몽롱한 상태화 되는거지요....몇몇 미꾸라지...얘들이 문젠데....기존의 상법으로 문제된 사학을 처벌할 근거가 확실히 될까요?

  • 소요유 ()

      제목이 선정적이네요.  사립대는 벌써 십수년전 부터 해왔던 것인데  이제 이를 제도적으로 뒷받침 하겠다는 이야기군요.  일단 전 양쪽에 반표씩. 학교가 장사꾼 판이 되는 것은 좋지 않다고 봅니다. 그렇다해도 일정 정도 수익사업을 막을 수 없을 겁니다. 그런데 문제는 현재 주차장 사업부터 해서  아마 대학의 거의 모든 면이 수익사업의 이름으로  바뀌는 것을 우려합니다. 

  • 정문식 ()

      저도 '원칙적'으로는 교육부 안에 찬성합니다. 물론 순수한 의미에서의 '상아탑'이 전혀 무의하다는 것은 아니지만, 고등 교육이 보편화된 현대 사회에서 대학은 1차적으로 사회 각 분야에 필요한 '전문가'를 배출하는 것이 목표라고 생각합니다. 그런 의미에서 산학 협동은 좋은 방안이 될 수 있겠져... 그러나 한 가지 짚고 넘어가야 할 것은, 교육 관료와 대학 사회의 불합리성과 비리, 부적절한 유착 등 구조적인 부조리 요소를 청산하지 않는 이상, 소위 '무시험 대입 제도'나 '열린 교육'이 보여 주었듯이 보다 최악의 상황으로 갈 수도 있습니다. 선진 제도의 도입도 물론 중요하지만, 교육 당국과 대학, 기업들이 자신들 본연의 위치를 알고, 최대한 합리적이고 공정한 의식을 갖추는 것이 선행되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목록


자유게시판

게시판 리스트
번호 제목 글쓴이 등록일 조회 추천
381 이공계 대책에 기술자 대책이 없다니... 댓글 1 고영회 08-06 3844 0
380 [동아일보] 외국기업 한국R&D센터 성공시대 댓글 11 박상욱 08-05 4991 0
379 [MBC] 위기의 사립대학 댓글 7 정문식 08-05 4592 0
378 [디지털타임스] "정부내 과학기술인력 대폭 늘려야" 댓글 8 박상욱 08-05 3714 0
열람중 [뉴스메이커]주식회사 서울대 탄생하나 댓글 7 열방 08-04 4097 2
376 [한겨레] 라틴 아메리카와 한국/ 김수행 댓글 13 정문식 08-03 4252 0
375 일주일 간 좋은 글들 많이 읽었습니다. 댓글 3 천칠이 08-03 3496 1
374 수도권 집중현상과 이공계 기피 댓글 9 백수 08-03 4206 2
373 병역 면제자가 국방부에서 일할 수 있나? 댓글 7 김덕양 08-03 3715 2
372 답변글 [re] 병역 면제자가 국방부에서 일할 수 있나? 댓글 1 불확실한 미래 08-05 3481 0
371 [연합] 말단 공무원에서 KTF CEO된 이경준사장 댓글 1 김덕양 08-03 4849 0
370 [디지털 타임즈] 나노기술촉진법 이공인201 08-02 4015 1
369 [조선일보] ‘과학기술의 요람’ 대전 한국과학기술원 댓글 11 준형 08-02 5547 0
368 예상한 것보다 훨씬 심각한 이공계 몰락의 현실 댓글 4 백수 08-02 4756 1
367 답변글 뱀다리-책임감만 강하면, 조직에 이롭지 못하다. 댓글 4 백수 08-02 4294 1
366 '청소년 이공계 진출박람회' 열려 댓글 2 tatsache 08-01 3443 0
365 [경향신문] "드러난 美 신경제 허상" 댓글 11 소요유 08-01 3711 0
364 [문화일보] 공직사회 ‘기술직 차별’ 아직도 박상욱 08-01 4511 1
363 [전자신문] 출연연 출신 벤처CEO, 연구원 복귀 여부 놓고 '고민' 댓글 1 박상욱 08-01 3989 0
362 [전자신문] [ET칼럼]중간 이공인을 위한 대책없나 댓글 1 박상욱 08-01 3668 0


랜덤글로 점프
과학기술인이 한국의 미래를 만듭니다.
© 2002 - 2015 scieng.net
모바일 버전으로 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