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 사회의 학벌 신화: 그대로 두면 50년 뒤에도 깨지지 않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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kor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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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4-05-27 09: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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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 사회의 학벌 신화: 그대로 두면 50년 뒤에도 깨지지 않는다.
홍 훈
(학벌없는사회 공동대표,
연세대학교 경제학과 교수)
2004년 3월 7일

사회현상을 두고 미래를 점치는 일은 자연현상을 두고 점치는 일보다 더 많은 문제를 안고 있다. 자연현상도 복잡성과 불확정성을 가지고 있지만. 사회현상은 인간의 의지가 개입되어 있어 그런 의지가 특정 방향으로 움직임에 따라 다르게 나타날 수 있기 때문이다. 그런 의지는 개인의 의식이나 의도뿐만 아니라 집단적인 차원에서 정치, 정책, 법 등으로 나타난다. 우리 사회의 학벌 문제도 이런 사회현상에 속한다. 그러므로 일단 인간의 의지가 개입되지 않는 경우 학벌 문제가 어떻게 전개될지 일차적으로 설명해 보고 우리의 의지가 바뀔 때 어떤 변화가 가능한지 말해 보고자 한다.
현재 우리 사회의 학벌 문제는 사회 및 경제와 교육을 관통하는 핵심적인 고리이다. 사회의 학벌구조는 서울대학교를 정점으로 하는 고착화된 대학의 서열을 기반으로 하며, 이런 대학의 서열로 인해 중등교육은 입시경쟁의 장으로 전락했다. 보다 구체적으로 우리 사회에서 학벌은 권력, 돈, 명예를 집단사이에 나누는 가장 중요한 장치이다. 특정인이 고졸자인가 아니면 대졸자인가, 그리고 대졸자이면 어떤 대학 졸업자인가가 일생을 통해 그 사람이 누릴 권력, 돈, 명예를 압도적으로 결정하게 된다. 특히 대학졸업자들 사이에서 특정 사회구성원의 졸업장은 교육중의 수업의 질이나 양, 그리고 졸업 후 직장에서의 실적과 무관하게, 이 구성원이 사회에서 차지할 위치를 결정하게 된다.
불가역적이고 고착화된 대학 서열 속에서 각 대학은 그 서열에 해당되는 특권을 누리게 되어 있다. 이런 특권은 거의 전인적인 것이어서 우리 사회에서 졸업장은 신분을 결정하는 장치라고 말할 수밖에 없다. 혹은 10대 후반에 쟁취하는 졸업장은 한국사회의 신분 혹은 계급을 재생산하는 사회 형태 혹은 기호라고 말할 수 있다.
전반적으로 보면 학력/학벌에 의존한 이런 사회경제적 불평등과 차등이 대학의 서열에 의해 뒷받침되고, 이런 대학 서열이 입시경쟁을 통해 유지되며, 다시 입시경쟁을 위해 중/고등교육이 존재한다. 이와 같이 사회의 불평등, 대학의 서열, 그리고 처절한 입시경쟁이 엇물려 서로를 재생산하고 있다.
또한 해방이후로 학력/학벌로 인한 사회의 불평등은 더욱 심화되었고, 대학교의 서열은 더욱 고착화되었으며, 입시경쟁은 더욱 치열하고 심각하게 변했다고 진단할 수 있다. 이 과정에서 각 대학교가 그나마 유지해 오던 전통이나 분야별 특색은 지난 20여 년 사이에 완전히 서열체계에 흡수된 것으로 보인다. 이렇게 본다면 우리 사회의 학벌구조는 단순 재생산이 아니라 확대 재생산의 경로를 걸어 왔다고 말할 수 있다.
한국 사회의 학벌구조와 이로 인해 빚어지는 입시경쟁은 중고등학교를 입시를 위한 병영으로 만들고 있으며 중고등학교에서 지적인 감수성을 상실케 하여 대학 교육마저 황폐화시키고 있다. 사교육비의 폭발적인 증가, 강남 지역의 아파트 가격 폭등, 기러기 아빠의 증가, 성적비관형 자살, 그리고 심지어 출산기피나 인구감소 등도 모두 한국 사회의 학벌구조가 빚어낸 것이다.
이와 같은 엄연한 현실에도 불구하고 학벌문제와 입시경쟁에 대한 인식은 쉽사리 바뀌지 않고 있다. 사회적 이동성, 국가 경쟁력, 능력주의, 지식기반사회 등 몇 가지 미신이 학벌과 서울대학교의 신화에 얽혀 있기 때문이다. 이미 부모의 재력에 따라 학벌이 결정된다는 점에서 사회적 이동성은 맹신이며, 입시경쟁이 진정한 의미의 경쟁력이나 창조력을 죽인다는 점에서 국가경쟁력을 운운하는 것 역시 근거가 없다. 또한 학벌이 집단을 이루어 특권을 부여한다는 점에서 개인별 능력주의와도 무관하다. 끝으로 입시경쟁이 사회가 필요로 하는 지식을 배양시키는 것이 아니라 주입식 교육을 통해 지적인 능력을 감퇴시킨다는 점에서 지식기반사회라는 근거와도 맞지 않는다.
나아가서 학벌구조를 기반으로 하는 다수의 지식인들과 일부 교육부관료, 교육학자, 학교재단 등으로 구성된 교육권력이 전향적인 인식의 전환을 거부하고 있기 때문에 학벌 문제에 대한 사회적 합의가 도출되지 않고 있다. 이들은 자신들의 기득권을 위해 우리의 미래인 학생들을 희생시키고 있는 셈이다.
해방이후의 역사나 현재의 상황을 놓고 볼 때 우리사회에서 학벌과 서울대학교의 신화는 그대로 두는 경우 더욱 강화되면 되었지 약화되지 않을 것이다. 어떻게 할 것인가? 자연현상과 달리 사회현상은 우리가 원하는 바대로 적어도 상당 부분 변경시킬 수 있다. 사교육비를 줄이기 위해 사교육을 공교육으로 흡수하겠다는 교육부의 최근 정책은 문제를 해결하는 것이 아니라 문제를 확인시켜주거나 그것을 더욱 확대시킬 것이다. 문제의 해결은 사회의 학벌구조, 대학의 고착화된 서열, 그리고 입시경쟁을 각 차원에서 타파하는데 있다.
사회의 차원에서는 학벌을 타파하기 위해서는 한시적으로 고위직의 학교별 비율 제한과 지역할당제를 통해 인재할당제를 시행해야 할 것이며, 대학의 차원에서는 서열을 완화하기 위해 서울대학교를 개방하고 국공립대학의 통합을 시도해야 할 것이고, 입시차원에서는 수능을 폐지하고 고교 내신성적으로 대학생을 선발하며 입시를 졸업자격시험으로 개편하는 것이 바람직할 것이다. 국립 서울대학교는 국민을 위한 대학이자 기초학문을 중심으로 한 대학원 중심 대학으로 거듭나야 할 것이다.
이렇게 한다면 꼭 10년은 아니더라도 학벌구조도 없어질 것이고 서울대학교의 신화도 사라질 것이며 중등교육과 대학교육이 되살아날 것이다. 또한 사회에서는 학벌 집단끼리의 경쟁이 개인의 능력이나 노력에 의한 진정한 경쟁으로 바뀔 것이며, 대학교별 경쟁은 전공별이나 학생별 경쟁으로 바뀔 것이다. 이렇게 될 때 국가경쟁력도 향상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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