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겨레21] 한국엔 '애국적' 과학밖에 없는가?

글쓴이
이승철
등록일
2004-05-29 04:51
조회
4,058회
추천
1건
댓글
4건

한국엔 ‘애국적 과학’밖에 없는가


황우석 교수 연구에 대한 <네이처> 보도와 한국사회 반응… 과학과 애국심에 눌려버린 윤리 논쟁

김동광/ 과학저술가 · 과학세대 대표


지난 5월6일 영국에서 발간되는 과학저널 <네이처>가 세계적인 뉴스로 떠올랐던 황우석 교수의 배아줄기세포 연구의 윤리적 문제점을 지적했다. 이에 따라 국내외의 연관 학자들 사이에서도 상당한 논란을 불러일으키고 있다. 놀라운 업적을 경쟁 과학저널에 빼앗긴 <네이처>의 흠집내기식 보도라는 지적이 있는가 하면, 우리가 제기하지 못한 윤리적 문제를 과감하게 제기한 의미 있는 보도라는 평가도 나오고 있다. 이런 가운데 <네이처>의 보도 내용이 무엇인지는 제대로 알려지지 않은 게 사실이다. 간략하게 정리하자면, <네이처>는 크게 세 가지 측면에서 황 교수 연구의 윤리 문제를 제기한 것으로 볼 수 있다.



△ 한국을 대표하는 과학자로 스타 반열에 오른 황우석 교수. 황교수는 <네이처> 등에서 제기한 난자 획득 과정에 대한 의문에 명확한 답변을 하지 않았다.(사진/ 연합)

 



청와대 공직자가 ‘공저’했다고?


우선 200여개에 달하는 난자 획득 과정의 윤리성이다. <네이처> 기자는 인터뷰 과정에서 황 교수 연구실의 박사과정 학생 ㄱ씨가 자신을 포함해서 “연구실 여성 2명이 (난자) 기증자에 포함됐다”고 말했고 자신의 기증 행위가 “아픈 어린아이들을 도우려는 뜻과 애국심” 때문이었다고 밝힌 것으로 보도했다. <네이처> 보도 뒤 황 교수는 ㄱ씨가 난자를 기증한 사실이 전혀 없으며, 잘못된 인터뷰는 영어를 제대로 이해하지 못했기 때문이라는 설명을 덧붙였다. 일반적으로 윤리규정은 같은 연구진에 포함된 연구자로부터 난자 등을 기증받는 행위를 금지하고 있다. 그것은 연구자의 기증 행위가 자발적인 것인지 아니면 연구책임자의 강압이나 유도에 의한 것인지 판별하기 힘들기 때문이다.

사실 난자 획득 과정은 <네이처>뿐 아니라 외국의 다른 언론이나 연구자들이 한결같이 의문을 품는 대목이다. 정자와 달리 난자를 채취하려면 마취처럼 여성의 신체에 해를 미칠 수 있는 복잡한 절차가 필요하기에 아주 특별한 기회가 아니고는 기증자를 구하기 힘들기 때문이다. <네이처>는 황 교수의 연구를 승인한 한양대학교 병원 기관윤리위원회(IRB), 그리고 황 교수 자신에게 난자 기증과 연관된 자료를 요청했으나 거부당한 것으로 알려졌다. 국내 한 신문과의 인터뷰에서 황 교수는 자료 요청을 거부한 이유를 <네이처> 기자의 태도가 마치 후진국 과학자를 대하는 것처럼 오만해서 협조하지 않았다고 답변했다. 하지만 황 교수쪽은 이후 한국생명윤리학회와 국가인권위원회가 제기한 의문에 대해서도 확실한 자료를 제시하지 않았다.



△ 난자은행은 불임시술 과정에서 얻은 잉여난자를 보관하고 있다. 질소탱크에 보관 중인 난자(위)와 난자를 전자현미경으로 촬영한 모습.(사진/ 한겨레21)

 

다음으로 <네이처>는 논문 저자 기재와 연관된 문제를 제기했다. 2004년 3월24일치 <사이언스>에 실은 논문의 공저자 15명 중 13번째 공저자인 순천대학교 박기영 교수(청와대 정보과학기술보좌관)가 실질적으로 연구에 참여하지 않았음에도 공동저자로 이름이 실린 연구 윤리 문제를 지적한 것이다. 이 보도가 있은 뒤 인터넷신문 <프레시안>에 과학 칼럼을 연재하고 있는 소장 과학기술학자들의 모임인 ‘시민과학인 그룹’은 “박기영 보좌관님, 혹시 ‘무임승차’ 아닙니까?”라는 제목의 공개편지를 통해 본격적인 문제를 지적했다. 이에 대해 박기영 보좌관은 같은 인터넷신문에 쓴 답변에서 자신의 이름이 실린 것이 윤리 문제에 대한 ‘교신저자’(corresponding author)의 권한에 따른 것이라고 해명했지만, 높은 도덕성을 요구하는 공직자로서 궁색한 변명이라는 거센 역풍을 불러일으켰을 뿐이다.

또 하나의 문제는 이 연구를 승인한 한양대병원 IRB의 구체적인 심사과정을 확인하기 힘들다는 점이다. 이 문제는 지난 5월22일 열린 한국생명윤리학회의 총회에서도 집중적으로 제기됐다. 생명윤리학회는 이날 황 교수 연구의 윤리적 문제를 공식적으로 제기한 “의학과 생명과학기술 연구는 생명윤리 기준에 부합하여야 한다”라는 제목의 성명서을 발표했다. 성명서는 당사자에 대한 질의문을 담고 있다. 구체적으로 살펴보면, 한양대병원 IRB에 국가인권위원회의 회의록 제출 요구를 거부하는 이유를 묻고, 체세포 핵이식 연구를 한 서울대학교 수의과대학에도 연구계획을 심사했는지 물었다.


스타 과학자 만들기에만 급급


이처럼 <네이처>는 황 교수의 연구 진행과정에 포함된 여러 윤리적 지점들을 짚고 있다. 그런데 흥미롭게도 이러한 <네이처>의 문제제기가 국내 언론들에서는 극히 짧게 보도됐고, 대부분 당사자인 황 교수의 견해를 그대로 받아서 특종을 놓친 <네이처>가 경쟁지인 <사이언스>를 비방하기 위해 의도적으로 황우석 죽이기를 하고 있다는 식의 보도로 일관했다. 또 황 교수의 연구결과가 발표된 직후 한국생명윤리학회를 비롯한 국내 생명윤리학자와 시민단체들에서 이루어진 지속적인 문제제기도 비중 있게 다루지 않았다.

사실 이번 황 교수의 연구결과를 둘러싼 국내외의 논란은 우리 사회에서 한번도 제대로 다루지 못한 ‘과학기술과 윤리’ 문제를 본격적으로 공론화하고 과학기술 윤리에 대한 우리의 인식 수준을 한 단계 높이는 좋은 기회였음에도, 우리나라의 언론들은 ‘스타 만들기’에만 열중했고, 혹여 애써 빚어놓은 국민적 스타 과학자의 이미지를 훼손하지나 않을까 전전긍긍하는 실정이었다. 물론 이런 사태의 책임이 언론에만 있는 것은 아니다. 처음부터 일관되게 자신의 연구를 ‘애국주의’와 ‘불치병 치료’라는 우리 사회에서 반박하기 힘든 이미지들로 무장시킨 황 교수를 비롯한 연구 책임자들의 문제 접근방식에 원천적인 문제가 있는 것도 사실이다.

애국주의에 대한 호소는 ‘과학=국가발전’이라는 편협한 등식을 확산해서, 이처럼 숭고한 과학발전에 대해 다른 목소리를 내는 윤리적 주장이나 시도를 ‘반과학’ 또는 ‘반애국주의’로 매도할 위험이 있다. 또 이른바 앉은뱅이를 일으킨다는 불치병의 치료라는 이미지도 현재 연구를 통해 언제 실질적인 치료법을 찾을 수 있는지 확실한 전망이 밝혀지지도 않은 상황에서 환자들에게 무책임한 환상을 심어주고, 일반인들 사이에서도 근거 없는 기대를 확산할 우려가 있다. 또 다른 원인은 이번 사태에서 드러난 정치권과 정부의 몰윤리적인 태도이다. 정치권에서는 스타 과학자 모시기에 여념이 없었고, 과기부를 비롯한 정부 기관들은 윤리적 문제에 대해서는 일언반구도 언급하지 않은 채 지원 약속만 남발해서 과연 현재의 노무현 정권에 과학윤리에 대한 기본적인 인식이 있는지조차 의심하게 만들었다.

이번 <네이처>의 보도가 국내에서 제대로 반향을 얻지 못한 근원적인 문제는 일부 연구자에게만 돌릴 수 없을 만큼 총체적인 문제에서 비롯된다. 그것은 우리 사회의 해묵은 성장지상주의와 그에 따른 뿌리깊은 과학기술주의라는 총체적인 문제에서 찾아야 할 것이다. 애국주의가 엄청난 호소력을 발휘하고, 온 사회가 후원회 결성과 스타 과학자 만들기에 나서는 것은 바로 이러한 토대가 있기 때문이다. 따라서 과학은 긍정적인 것이고 윤리는 과학발전의 발목을 잡는 부정적인 것이라는 식의 잘못된 인식이 팽배해 있고, 우리 사회에서 윤리는 지극히 부수적이고 하찮은 지위밖에 인정받지 못하고 있다. 대부분의 연구자들이 윤리 문제를 적극적으로 존중할 중요한 주제가 아니라 교묘하게 회피하면 되는 부수적인 문제로 인식하는 이유도 여기에 있다.


과학과 윤리의 공존을 찾아라


이런 와중에 한 경제신문(5월7일치)에 실린 기사는 우리 사회에 팽배한 윤리에 대한 시각을 잘 대변한다. “어려운 여건에서 일궈낸 세계적인 성과가 나라 안팎의 악재들로 인해 제대로 추진되지 못할 경우 주도권을 다른 나라에 넘겨줄 수밖에 없다. 이같이 화급한 상황인데도 황 교수는 생명윤리 문제와 관련한 사회적 합의가 도출되기를 기약 없이 기다리고만 있다. 연구를 계속할 수 있도록 뒷받침해주든지, 아니면 아예 중단을 시켜버리든지 하루빨리 결론이 나야 될 것 같다.” 이 기사에서 생명윤리 문제는 ‘화급한’ 상황에서 황 교수를 ‘기약 없이 기다리게’ 만드는 무엇이고, 윤리의 기능은 연구를 ‘뒷받침’해주거나 ‘아예 중단시켜버리든지’의 둘 중 하나일 뿐이다.

이런 시각을 고수한다면 과학과 윤리는 영원한 대립물일 수밖에 없다. 윤리에 대한 적극적인 고려와 존중이 없이 이루어지는 연구가 진정 우리를 위한 것인지에 대한 진지한 성찰이 없는 한, 윤리 규정은 피해나가야 할 대상으로 전락할 뿐이다. <네이처>의 보도는 우리가 스스로 제기해야 할 문제를 대신 거론해주었다는 점에서 한편 부끄러운 일이다. 이제는 우리 스스로 윤리와 과학의 잘못된 이분법을 극복하기 위한 적극적인 방안을 모색해야 할 때이다.




  • 김덕양 ()

      이 글의 저자인 김동광씨는 참여연대 시민과학센터라는 곳의 소장으로 계시는 분이죠. 그런 분이 박기영 보좌관의 답변이 citisci 의 기사보다 먼저였다는 사실을 왜곡하시군요. 후후. 역시 KIN~~ 이라고 외칠 수 밖에 없군요.

    부연설명하자면 박 보좌관의 답변은 citisci 의 일원인 프레시안의 강양구 기자의 기사에 대한 답변이었죠. 그걸 오해한 citisci 에서 위에 언급된 기사를 내놓은 것이고, 그후에 나온 강양구 기자의 다른 기사를 보면 박 보좌관이 다시 한번 공저자로서는 아무런 문제가 없다는 점을 해명한 내용도 나오죠. 적어도 글을 쓰려면 사실관계 확인은 좀 제대로 해야되는거 아닐려는지. 쯧쯧.

  • -_-; ()

      사실 관계는 조금 틀릴지 모르지만 그 문제는 여전히 보는 사람에 따라서는 궁색한 면이 없지 않고 글 전체의 내용은 과연 우리가 그러했는가 한번쯤 생각해볼 가치가 있다고 생각합니다.

  • 이웅 ()

      시과센입니까? ㅋㅋㅋ

  • Simon ()

      김동광 감독이 글을 잘 쓰시는 군요. 농구만 잘 하시는 줄 알았는데...
    동방생명/국민은행, 파이팅!

목록


펀글토론방

게시판 리스트
번호 제목 글쓴이 등록일 조회 추천
99 로버트 김,"상처뿐인 조국사랑" 댓글 3 고비 05-31 4812 2
98 日서 유전자 조작으로 광우병 안걸리는 소 탄생 -_-; 05-31 4244 9
97 국립대 통합네트워크로 대학평준화 시작을 댓글 1 revolution 05-30 4993 28
96 국립대 통합네트워크로 대학평준화 시작을 korn 05-29 4727 0
95 [한겨레] 코넬대 합격 아들 등록못시켜 ‘눈물’ 댓글 3 offaxis 05-29 5889 0
94 신입사원의 마음뺏는 '감동경영'에 이직률도 뚝 댓글 4 ㅎㅎㅎㅎ 05-29 5826 1
열람중 [한겨레21] 한국엔 '애국적' 과학밖에 없는가? 댓글 4 이승철 05-29 4059 1
92 KAIST총장에 노벨상수상 로버트 로플린 교수 댓글 6 정우성 05-28 4958 0
91 [한겨레] 경상대 또 세계를 놀래다 댓글 8 쉼업 05-28 4821 0
90 [중앙] 이공계 자리와 몫 ; 홍성욱 교수 기고문 댓글 3 김덕양 05-28 4712 0
89 이공계 병역대체근무 3년으로 단축 댓글 10 문병근 05-27 5607 9
88 모든 대학이 무상 평준화된 독일을 찾아서 댓글 1 korn 05-27 4439 1
87 [경향] 삼성경제硏 베스트·워스트 CEO 유형 소개 cantab 05-27 4221 3
86 [연합] 전문연구요원 병역 1년단축 추진 댓글 2 박상욱 05-27 3599 1
85 북한 해킹부대,남한정보 수집 사실 첫 확인 이공클럽 05-27 3833 2
84 당신들이 원하는 게 진정 경쟁력인가 korn 05-27 3585 2
83 노무현정권의 경제정책과 규화보전.. muroi 05-27 4240 1
82 우리 사회의 학벌 신화: 그대로 두면 50년 뒤에도 깨지지 않는다. korn 05-27 3570 1
81 내가 생각하는 '경쟁' 과 '학벌사회' korn 05-27 3732 1
80 대한민국과 선진국들과의 차이 korn 05-27 3481 1


랜덤글로 점프
과학기술인이 한국의 미래를 만듭니다.
© 2002 - 2015 scieng.net
모바일 버전으로 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