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학자 정운찬과 서울대 총장 정운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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korn 작성일2004-05-27 09: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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학자 정운찬과 서울대 총장 정운찬

서울대 총장의 앞뒤 다른 구조조정 논리



▲김진석 인하대 교수(철학) ©


서울대 총장 정운찬은 지난 7월 동아일보와의 인터뷰에서 `대학 서열 철폐를 주장하는 사람들이 있는데, 일종의 포퓰리즘이라고 생각한다`고 밝혔다. 그와 더불어 고교입시의 부활을, 초중등이든 대학 교육이든 경쟁력 강화를 우선으로 생각한다는 것이다. 좋다, 경쟁력이 일정하게 고려돼야 할 차원이 분명히 있다.


그러나 바로 그것을 위해서도, 고유한 특성화 기준에 따라 학과나 학문영역을 내실있게 평가하는 체제가 중요하다. 획일적인 기준에 따라 모든 대학과 학생들을 평가하는 대학서열화 체제 및 그 체제의 정점에 있으면서 그것을 부추기는 서울대는 경쟁력 차원에서 도움이 되지 않는다. 비판의 표적이 된 까닭이다. 정 총장은 학생모집 등에서 서울대의 자율성을 요구하는데, 그렇다면 왜 모집방식에서 획일적인 수능시험성적에 자꾸 기대는가. 더 나아가 왜 수능 자격시험화에 반대하는가. `시험 보는 능력보다 창의력이 중요한 시대`라고 그도 인정하는 마당에, 서울대는 왜 수능성적 종합일등이라는 유치한 목표에 집착하는가.


정 총장이 주장하는 경쟁력 있는 대학의 관점에서 보더라도, 서울대는 무엇보다 학부정원을 과감하게 줄여야 마땅하다. `미국 대부분의 대학은 1천5백명을 넘지 않는다`는 것을 뻔히 알면서도, 그는 서울대 학부를 이 정도로 줄이는 것은 아예 힘들다고 말하면서 다른 지원만 요구한다. `학생 1인당 교육비와 교수 1인당 학생비율 같은 기본 수치들을 개선하기 위한 투자 증가`가 필요하다고 하는데, 학부 규모를 그대로 유지하면서 투자만 요구한다는 것은 교육적 기만에 가깝다.


최근 학부 학생수를 단과대학별로 10~20% 줄이되 대학원 지원을 늘린다는 발표가 있었는데, 기본적으로는 옳은 방향이다. 이러나 이 경우에도 학부정원 축소가 일회적 전시행정으로 그쳐서는 안 되며, 중장기적 목표로 확고하게 설정돼야 한다. 그가 이 문제에서도 `예산 부족` 타령을 하는 것을 보면, 그의 구조조정 의지가 심히 의심스럽다.


정운찬은 경제 문제에서 줄기차게 구조조정을 조장해왔다. 옥스퍼드 대학에서는 `한국 대학들이 양적 팽창에 빠져있다`고 발언했다. 맞는 말이다. 그러나 그는 자신의 주장을 바로 서울대에도 적용해야 한다. 다른 대학도 팽창주의를 벗어나야 하지만, 서울대도 모범적으로 그렇게 해야 한다. 공룡으로 남아서 공공의 제한된 자원을 독식하는 것은 지역 균형에 어긋날 뿐 아니라, 국가경쟁력에도 해롭다. 구조조정을 외면한 채 지원을 요구하는 재벌을 그는 일관되게 비판해왔는데, 학부 규모를 줄이지 않은 채 투자와 지원만 요구하는 것도 그의 평소 원칙에 어긋나는 일이다.



서울대는 학벌이라는 기득권을 획득하기 위한 투기장으로 변질되면서, 실력과 능력 사회로의 이행을 가로막고 있다. 그런데도 학벌사회 비판을 `포퓰리즘`으로 치부하는 것을 보면, 그는 학벌문제가 사회적 · 정치경제적 문제라는 인식을 전혀 갖지 않은 듯하다. `다른 나라의 요직에도 일류대학 출신들이 앉아있다`고 하는데, 서울대 출신이 한국 사회에서 차지하는 비율은 다른 나라들과 비교가 되지 않는 독과점 수준이다.


이 독과점 현상은 그 역시 인정하는 `다양성이 사회의 힘`이라는 방향에도 결코 맞지 않는다. `운동권 출신 인사들도 대부분 명문대를 나왔다`는 말도 결과만 보자면 어느 정도 맞다. 그러나 그 현상은 왜곡된 구조에서의 기형적인 결과였다. 그것을 마치 정상적인 기준인 것처럼 호도하는 것은 합리적인 태도가 아니다. 그런 논리라면, 근대화를 비교적 성공적으로 추진한 재벌의 존재가치도 계속 인정해야 할 것이다.



서울대를 `폐지`하자는 게 아니다. 엘리트 교육기관으로 진정 경쟁력을 가지려면, 학부를 과감하게 축소하고 대학원 중심 대학으로 가라. 현재 서울대는 규모로 비효율적일 뿐 아니라, 국립대로서 가져야 할 공공성도 벌써 져버린 상태이다. 서울대가 개혁을 거부한 채 꼼수를 부리기에, 교육개혁은 더욱 정치적 성격을 띠는 것이다. 현재 사회권력과 상징자본을 서울대 출신이 독과점하는 정도는 분권화뿐 아니라 경쟁력에도 매우 해로운 수준이다. 이 경우 학벌 비판은 `포퓰리즘`이기는커녕, 경쟁력과 공공성을 함께 확보하기 위한 정당하고 민주적인 정치 행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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