학벌없는 사회로 가는 길

글쓴이
korn
등록일
2004-05-27 08:5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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학벌없는 사회로 가는 길 (시사저널 2003/10/30)

김진석



부동산투기문제와 결합되어, 교육문제가 폭발할 지경이다. 물론 이들 문제는 하루이틀된 것이 아니어서 갑자기 그렇게 된 것처럼 호들갑을 떨 필요는 없다. 오히려 어떤 점에서는 문제가 악화되어 폭발 직전에 이르는 상황이 문제 해결에 도움이 될 수도 있다.


부동산 투기 및 사교육 열풍과 관련하여 경제부총리는 최근 특목고를 강북에 유치해야 한다고 말했다. 겉으로는 강북과 강남의 균형을 맞추려는 대책 같이 보이지만, 지금도 서울의 8개 특목고와 외국어고 중에 7개가 강북에 있다는 점을 생각하면, 이런 발언은 진지한 정책에 대한 고민이 전혀 없는 상태에서 나온 것이다. 부동산가격 폭등 등을 비롯한 경제 문제에 대한 책임을 교육문제에 전가하려는 치졸한 태도를 보여준다고 하겠다.


그런가하면 정운찬 서울대 총장은 마치 이들 교육문제를 해결하기 위해서는 평준화를 폐지하는 것이 최선의 길인 것처럼 이야기한다. 현재 학교에서 아이들 수준 차이가 크기 때문에 학습지도에 어려움이 있는 것은 사실이다. 그렇더라도 그 어려움은 현행 입시제도가 과열을 부추기고 있는 상황에서 생긴 결과이지, 그 자체로 현재 교육 문제의 핵심은 아닐 것이다. 그리고 입시제도를 부활해서 부분적으로 차별화된 공교육을 제공하는 방법이 사회적으로 좋은 방법인지의 여부는 그만두더라도(현재 평준화 폐지 여부에 대한 여론은 반반 정도이다), 그것이 현실적으로 효과가 있어서 사교육 바람이 없어진다면 동의할 만할 것이다. 그러나 그런 보장은 전혀 없다. 최근 한 여론 조사에서 밝혀졌듯이, 공교육이 내실화되어도 사교육은 줄어들지 않을 것이라는 응답이 65%로, 줄어들 것이란 35%의 응답과 비교하면, 압도적이다. 또 강북에 있던 과거의 명문 공립 및 사립 고등학교 중 대부분이 강남으로 이전한 상태에서, 입시제도를 부활한다고 현재의 강남(한강 이남이란 넓은 뜻의) 편중 현상이 개선될 리는 거의 없다고 여겨진다. 이 점에서 보자면, 입시제도를 부활하자는 의견은 주로 과거 입시제도에서 유리했었고 그 결과로 현재 강남에서 거주하는 중산층 상류 이상 사람들의 ‘세습적’ 희망사항일 듯하다. 다르게 말하면, 포괄적인 제도 개혁이 수반되지 않는 한 평준화폐지는 성공하기 어렵다. 포괄적인 사회개혁의 방향 자체를 논의해야 마땅하겠지만, 교육영역 안의 몇 가지 예만 들어보자. 사교육을 유명무실하게 만들 공교육에 대한 과감한 지원, 획일적 평가 방식에 의존하는 대입제도 개혁, 분권화의 차원에서 지방거점 국립대학의 육성, 그리고 지식권력을 독과점하는 학벌의 타파.


특히 학벌문제에서 아수라 교육의 정점인 서울대는 비판에서 벗어나기 힘들다. 현대적 교육의 강점은 자율적인 시민을 육성하면서 계층 사이에 민주적인 이동을 자유롭게 한다는 데 있다. 이를 위해 일정한 경쟁은 필요하고 또 바람직할 것이다. 그런데 한국 사회에서 교육은 오히려 거꾸로 신분 사회를 대대로 세습하는 방향으로 굳어지고 있다. 그 결과 교육을 통해 지도층으로 올라선 사람들도 사회구성원으로부터 존경을 받기는커녕, 학벌을 부추기며 사리사욕만 취하는 자들도 비판받기에 이른 상황이다. 서울대의 경우 4000명이 넘는 과도한 학부정원을 유지하면서, 전체 대학교육 재정의 반 정도를 집어삼키고 있다. 그런 공룡몸통으로 국제경쟁력을 확보한다는 이야기는 거짓이다. 학부 정원을 줄인다고 하지만, 구체적으로 몇 년 안에 미국의 유수 대학 수준인 1500명 정도로 줄이는 계획을 내놓지 않는 한, 서울대는 개혁 의지가 없다고 보아야 한다. 정운찬 총장은 기득권을 유지하면서 개혁을 피하려는 시도를 한다는 의심을 받고 있다.


현 상황이 계속된다면, 대학교육 자체의 과감한 개혁을 진지하게 검토해야 한다. 서민들에게 교육경쟁은 가정파괴의 주범이 될 정도이다. 공적 교육의 차원에서 기회를 주면서 그 부담은 덜어주는 게 무엇보다도 중요하다. 사립대학들의 경쟁체제를 한편으로 유지하면서도 교육의 공공성을 확보할 수 있는 방안은, 서울대를 포함한 전체 국립대를 무상으로 평준화하는 방안인 듯하다. 서울대는 대학원 중심으로 가라. 필자가 운영위원으로 참여하는 <학벌없는 사회>에서는 이 방법을 최선의 방식으로 제안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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