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립대학을 평준화하라

글쓴이
korn
등록일
2004-05-27 08:5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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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립대학을 평준화하라


-- 바칼로레아를 칭송하기만 할 필요는 없다



11월 28일 한국교육개발원이 주최한 ‘사교육비 경감 5차 공청회’에서 개발원은 대학수학능력시험을 년 2회 이상 치르거나 자격고사화하는 방안을 발표했다. 점수 위주의 대학신입생 선발방법이 무한경쟁을 초래하고 사교육비를 증가시킨다는 비판적 지적이 높아지면서 나온 방안인데, 시민 교육단체에서는 이미 오래 전부터 그 방안을 제시했었다. 최근 수능 시험의 총체적 부실은 눈 뜨고 보기 힘들 지경이다. 시험 예상문제집을 출간한 사람들이 버젓이 출제위원으로 참여하는가 하면, 출제위원 중 태반에 가까운 사람들이 전년에 이어(심지어 수년째) 다시 위원으로 들어가니, 부실과 부패가 생길 수밖에 없는 판이다. 또 수능 시행 이후 처음으로 복수답안이 인정되면서 찬반으로 나뉜 학생들이 감사원에 감사를 신청한다며, 국가의 관리 능력에 이의를 제기하고 있다.


수능의 자격고사화는 필요하다. 그러나 지금처럼 모든 대학이 전국적으로 서열화된 상황에서는 입시제도만을 바꾼다고 해서, 커다란 효과가 생기기는 힘들다. 옛날처럼 대학들이 다시 본고사를 치른다면, 상황은 어떤 점에서 오히려 더 나빠질 수도 있다. 그러니 수능 자격고사화가 효과를 거두려면, 대학평준화가 필수적임을 강조하고 싶다. 극심한 경쟁체제에 익숙한 많은 사람들은 그것이 가능하겠냐고 반문할 것이다. 쉽지는 않지만, 그리 어려운 것도 아니다.


물론 여기에도 크게 보면 두 가지 방식이 있다. 첫째는 프랑스나 독일 방식의 무상 평준화이다. 대학은 국립으로 운영되고, 학생들은 학생회비나 의료보험료 정도만을 낸다. 그뿐 아니라 가난한 학생은 국가에서 생활보조금을 받고, 받은 금액의 반 정도는 졸업 후 저리로 장기 상환한다. 이 방식이 사회적 복지 차원에서 바람직하기는 하지만, 사립대학에서 훨씬 더 많은 학생이 공부하는 한국 현실에서 이것은 당장은 어려운 일이고 아마도 장기적 과제에 해당할 것이다. 사립 대학을 국립화하는 데는 엄청난 규모의 재정이 필요하다. 더구나 학생들의 등록금까지 국가가 지불하려면!


따라서 일단 국립대학만의 무상평준화가 바람직하다. 이 평준화가 하향평준화로 변질되지 않기 위해서는 지방 국립대에 대한 과감한 지원도 무엇보다도 필요하다. 그러나 가시적인 개혁을 거부한다면, 서울대도 평준화에 포함시켜야 한다(아니나 다를까 저 공청회가 열리던 날, 서울대가 수능 반영률을 대폭 올린다고 보도되었다). 사립대학은 지금보다 훨씬 자유롭게 운영될 수 있을 것이며, 따라서 실질적 경쟁 체제로 가게 될 것이다. 이 경우 비싼 교육비에 시달릴 필요 없이 일반 서민과 중산층의 자녀들은 상향평준화된 무상의 국립대학으로 진학하게 될 것이다. 현재 국립대학의 등록금이 여전히 사립대학 반 정도 수준이기에 실질적인 매력이 없는 형국인데, 무상으로 전환된다면, 그리고 그에 더하여 국가시험에서 지역할당제가 실행된다면, 국립대 평준화는 충분히 성공할 것이다.


평준화가 왜 중요한지 다른 예를 들어보겠다. 프랑스의 대학입학자격시험(바칼로레아)은 학생들이 자율적으로 선택할 수 있는 과목의 폭이 크게 보장되어 있다는 점에서 다른 나라의 부러움을 산다. 더구나 독일이나 영국에서는 없는 주관식 철학문제들의 수준이 높을 뿐 아니라, 답안도 무난하게 채점되고 있다. 무슨 수로 프랑스는 그렇게 할 수 있을까? 프랑스의 지성이 뛰어나고, 채점하는 교사들의 ‘객관성’이 보장되어서? 전혀 아닌 것은 아니지만, 그 시험이 무난하게 관리되는 중요한 이유를 사람들은 흔히 간과한다. 무엇보다도, 고등사범학교를 비롯한 몇몇 명문대학(소위 그랑제꼴grands écoles)을 제외하고는, 대학이 평준화되어있기 때문이다. 그리고 그에 근거하여 공교육이 제대로 실행되기 때문이다. 만일 프랑스 대학들도 한국처럼 획일적으로 서열화되어 있다면, 프랑스도 지금처럼 여유 있게 출제하지도 못하고 별 탈 없이 무난하게 채점하지도 못할 것이다. 거기에서도 0.5점을 가지고 다툴 수밖에 없을 것이다. 그러니 그저 철학논술을 포함한 여러 장점이 있다는 이유로 바칼로레아를 입시제도의 꽃인 양 칭찬하는 태도도 버리자. 중고등학교와 대학에서 공공성이 확보된 평준화를 실행하는 만큼, 우리도 얼마든지 멋있게 주관식 시험을 볼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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