학벌 비판이 포퓰리즘이라고? 정운찬 총장 구조조정 제대로 합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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kor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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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4-05-27 08:5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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학벌 비판이 포퓰리즘이라고? 정운찬 총장 구조조정 제대로 합시다.

김진석

서울대 총장 정운찬은 지난 7월 동아일보와의 인터뷰에서 “대학 서열 철폐를 주장하는 사람들이 있는데, 일종의 포퓰리즘이라고 생각한다”고 밝혔다. 그와 더불어 고교입시의 부활을 초중등이든 대학 교육이든 경쟁력 강화를 우선으로 생각하는 것이다. 좋다, 경쟁력이 일정하게 고려되어야 할 차원이 분명히 있다.


그러나 바로 그것을 위해서도, 고유한 특성화 기준에 따라 학과나 학문영역을 내실있게 평가하는 체제가 중요하다. 획일적인 기준에 따라 모든 대학과 학생들을 평가하는 대학서열화 체제 및 그 체제의 정점에 있으면서 그것을 부추기는 서울대는 경쟁력 차원에서 도움이 되지 않는다.


비판의 표적이 된 까닭이다. 정운찬은 학생모집 등에서 서울대의 자율성을 요구하는데, 그렇다면 왜 모집방식에서 획일적인 수능시험성적에 자꾸 기대는가? 더 나아가 왜 수능 자격시험화에 반대하는가? “시험 보는 능력보다 창의력이 중요한 시대”라고 그도 인정하는 마당에, 서울대는 왜 수능성적 종합일등이라는 유치한 목표에 집착하는가?


그가 주장하는 경쟁력 있는 대학의 관점에서 보더라도, 서울대는 무엇보다 학부정원을 과감하게 줄여야 마땅하다. “미국 대부분의 대학은 1500명을 넘지 않는다”는 것을 뻔히 알면서도, 그는 서울대 학부를 이 정도로 줄이는 것은 아예 힘들다고 말하면서 다른 지원만 요구한다. “학생1인당 교육비와 교수 1인당 학생비율 같은 기본 수치들을 개선하기 위한 투자 증가”가 필요하다고 하는데, 학부 규모를 그대로 유지하면서 투자만 요구한다는 것은 교육적 기만에 가깝다.


최근 학부 학생수를 단과대학별로 10-20% 줄이되 대학원 지원을 늘린다는 발표가 있었는데, 기본적으로는 옳은 방향이다. 이러나 이 경우에도 학부정원 축소가 일회적 전시행정으로 그쳐서는 안 되며, 중장기적 목표로 확고하게 설정되어야 한다. 그가 이 문제에서도 “예산 부족” 타령을 하는 것을 보면, 그의 구조조정 의지가 심히 의심스럽다.


그는 경제 문제에서 줄기차게 구조조정을 조장해왔다. 옥스퍼드 대학에서는 “한국 대학들이 양적 팽창에 빠져있다”고 발언했다. 맞는 말이다. 그러나 그는 자신의 주장을 바로 서울대에도 적용해야 한다. 다른 대학도 팽창주의를 벗어나야 하지만, 서울대도 모범적으로 그렇게 해야 한다. 공룡으로 남아서 공공의 제한된 자원을 독식하는 것은 지역 균형에 어긋날 뿐 아니라, 국가경쟁력에도 해롭다. 구조조정을 외면한 채 지원을 요구하는 재벌을 그는 일관되게 비판해왔는데, 학부 규모를 줄이지 않은 채 투자와 지원만 요구하는 것도 그의 평소 원칙에 어긋나는 일이다.



서울대는 학벌이라는 기득권을 획득하기 위한 투기장으로 변질되면서, 실력과 능력 사회로의 이행을 가로막고 있다. 그런데도 학벌사회 비판을 ‘포퓰리즘’으로 치부하는 것을 보면, 그는 학벌문제가 사회적 ․ 정치경제적 문제라는 인식을 전혀 갖지 않은 듯하다. “다른 나라의 요직에도 일류대학 출신들이 앉아있다”고 하는데, 서울대 출신이 한국 사회에서 차지하는 비율은 다른 나라들과 비교가 되지 않는 독과점 수준이다. 이 독과점 현상은 그 역시 인정하는 “다양성이 사회의 힘”이라는 방향에도 결코 맞지 않는다. “운동권 출신 인사들도 대부분 명문대를 나왔다”는 말도 결과만 보자면 어느 정도 맞다.


그러나 그 현상은 왜곡된 구조에서의 기형적인 결과였다. 그것을 마치 정상적인 기준인 것처럼 호도하는 것은 합리적인 태도가 아니다. 그런 논리라면, 근대화를 비교적 성공적으로 추진한 재벌의 존재가치도 계속 인정해야 할 것이다.


서울대를 ‘폐지’하자는 게 아니다. 엘리트 교육기관으로 진정 경쟁력을 가지려면, 학부를 과감하게 축소하고 대학원 중심 대학으로 가라! 현재 서울대는 규모로 비효율적일 뿐 아니라, 국립대로서 가져야 할 공공성도 벌써 져버린 상태이다.


서울대가 개혁을 거부한 채 꼼수를 부리기에, 교육개혁은 더욱 정치적 성격을 띠는 것이다. 현재 사회권력과 상징자본을 서울대 출신이 독과점하는 정도는 분권화뿐 아니라 경쟁력에도 매우 해로운 수준이다. 이 경우 학벌 비판은 ‘포퓰리즘’이기는커녕, 경쟁력과 공공성을 함께 확보하기 위한 정당하고 민주적인 정치 행위이다.

(교수신문 8월 게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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