평준화는 평등의 만능을 추구하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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korn
등록일
2004-05-27 09: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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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2월 11일자 서울신문에 '평등은 만능이 아니다'(이하 칼럼)라는 글이 실렸다. 이 칼럼에서 고교평준화는 본래 평등한 교육기회를 제공하고자 했던 본래의 도입취지와는 정반대로 오히려 불평등한 결과를 초래한 제도로 지목되었다.

이에 대한 근거로 얼마전 서울대 사회과학연구소의 연구결과를 인용하고 있다. 또한 평등 추구라는 이름으로 '개인의 관심·적성·능력·업적 등의 차이'를 도외시하고 획일적인 사이비 평등 추구에 대한 비판을 하고 있다. 말하자면 고교평준화는 개인의 차이를 고려하지 않는 사이비 평등 정책이라는 것이다.

교육과 평등의 관계와 관련하여 이 칼럼은 두 가지의 논점으로 나누어 볼 수 있다. 첫 번째는 고교평준화가 불평등을 초래했다는 단정적인 견해이다. 두 번째는 개인의 차이를 인정하지 않는, 혹은 '결과의 차등'을 인정하지 않는 획일적 평등, '결과의 평등'에 대한 비판적 견해이다.

먼저 이 칼럼이 근거로 하는 서울대 사회과학연구소의 연구결과는 고교평준화가 고소득 계층의 서울대 입학을 유리하게 하였다는 어떠한 실증적 자료도 보여주지 않고 있다. 단지 연구진의 주관적인 해석이 있었을 뿐이었다. 그것도 고교평준화가 학력 세습을 막는데 실패했다는 해석으로서 연구결과와는 연관성을 찾기 어려운 견해였다.

그러나 고교평준화는 학력 세습을 막기 위해 도입된 정책이 아니다. 만일 고교평준화가 학력 세습을 막기 위해 도입되었다면 고교 수준의 학력 세습은 충분히 막아내고 있다. 대학 학력의 세습, 그것도 서울대라는 한국 최고의 명문 학벌의 세습을 막기 위해서였다면 대학평준화가 도입되었어야 했을 것이다.

여하튼 연구결과와 해석, 그리고 평준화가 학력세습의 원인인 것처럼 보도하는 일부 언론에 대해 교육개혁을 위한 시민단체 등은 물론, 교육부에서는 해석의 논리적 비약에 대한 공식적 보도자료를 내놓았으며, 평소 평준화폐지를 주장하는 사람들과 심지어는 KDI(한국개발연구원)의 우천식 연구원도 한 토론회에서 연구결과를 고교평준화와 무리하게 연관지었다는 비판을 제기한 바 있다.

따라서 이 칼럼의 근거는 비약된 주관적 해석을 토대로 하고 있는 것이다. 그리하여 고교평준화의 평등 추구가 불평등을 초래한 사례라고 하는 단정적인 견해는 사실과 전혀 다르며 정당화될 수 없는 주장이다.

다음 논점은 개인의 차이와 결과의 차등이 수용되어야 한다는 논점이다. 과연 개인의 차이는 온전히 수용되어져야 하는가? 개인의 차이가 개인간의 차별을 정당화하는 기제가 되고 있는데도 말이다. 차이가 차별이 되고, 차별은 또다시 평등한 존재로서의 인간존재의 존엄성까지 위협하고 있는 것이 오늘날 우리 사회의 현실이다.

서울대 사회과학연구소의 연구결과가 말해주듯이 교육은 개인의 차이를 차별로 이어지게 하는 역할을 하고 있다. 그러나 칼럼에서도 말하고 있듯이 '개인의 관심·적성·능력·업적 등의 차이'는 교육에서 전혀 고려되지 못하고 있다. 획일적 교육이 자행되고 있는 것이다.

문제는 그러한 개인의 차이를 고려하지 못하게 하는 획일적 교육의 원인이 무엇이냐는 것이다. 고교평준화는 최소한 평등한 교육의 기회를 보장하는 정책일 뿐, 교육의 결과가 획일적으로 나타나도록 하기 위한 정책이 아니다. 오히려 평준화 안에서 개인의 차이를 고려한 다양한 교육이 이루어져야 한다.

그럼에도 평준화 안에서 차이를 고려하는 다양한 교육이 이루어지지 못한다면 그 원인은 평준화 내에 있다기 보다는 외부에 있다고 보는 것이 타당한 판단일 것이다. 바로 입시경쟁 교육의 구조인 것이다. 입시경쟁 교육의 구조 아래서 개인의 차이와 다양성은 고려될 여지가 없다. 오로지 명문대학을 입학하기 위한 획일적인 성적의 서열이 고려될 뿐이다.

그리하여 평준화를 통한 진정한 교육의 평등을 어렵게 하고 개인의 다양한 차이를 무시한 획일적 교육을 이끌고 있는 것은 입시경쟁 교육 구조에 있다고 해야 할 것이다. 아울러 입시경쟁 교육을 통해 차이는 차별이 되어진다. 이 때의 차이는 성적의 차이일 것이며, 성적의 차이를 통해 대학의 명함이 갈리게 되며, 이렇게 정해진 대학의 명함은 한 개인의 이후의 삶을 결정짓는 현대판 신분증이 된다.

차별은 이렇게 발생한다. 한 개인은 '관심·적성·능력·업적 등의 차이'를 존중받게 되는 것이 아니라 출신대학에 따라 결정된 학벌주의 사회구조의 차별적 구조 앞에 무기력할 수밖에 없는 것이다. 그리하여 우리 사회에서 입시경쟁 교육의 '결과의 차등'은 곧 '결과의 차별'을 의미하는 것이다.

고교평준화는 '결과의 평등'을 추구하는 정책이 아니다. 우리 사회에 평등을 말하는 사람들 또한 평등만능사회를 추구하지 않는다. 그들은 개인의 다양한 가능성이 그 자체로서 다양한 가치로서 존중받을 수 있는 최소한의 토대를 요구하는 것이다.

이러한 요구가 입시경쟁 교육 구조에 의해 획일적인 평등의 요구로 지적되는 것은 사태에 본질과 전혀 다르다. 만일 개인의 차이와 다양성, 그리고 '진정한 평등'에 대해 진실하게 말하고자 한다면 입시경쟁 교육 구조와 이를 뒷받침하고 있는 대학서열 구조에 대하여 비판하여야 할 것이다.

그리하여 더 이상 고교평준화를 평등만능주의로 몰아가는 무책임한 논리의 비약이 있어서는 안 된다. 실증적 근거와 정직한 논리를 생명으로 하는 언론의 본래모습이 교육문제에 대한 시민들의 올바른 인식의 발판이 될 것이다. 이를 토대로 우리 사회의 교육의 본래적 가치가 회복되는 날이 도래하기를 기대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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