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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가경쟁력은 당신들만 책임질 일이 아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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korn 작성일2004-05-27 09: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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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육은 모두를 위한 것이어야 한다. 이를 위해 국가는 무상의무교육을 확대하고 교육기회에 있어서 차별을 줄여 나갈 책임이 막중하다. 그러나 한국은 교육에 대한 국가의 책임을 방기한 채 학습자 개인과 가족의 책임에 떠넘기고 있다. 평등이나 복지의 자리를 경쟁이나 효율이 점령하고 있으며, 국가의 의무는 시장의 선택이 대신하고 있다. 하기에 교육은 막대한 사교육비를 들여서라도 더 많이 가져야만 하는 사적인 권력획득의 수단으로 전락해 버렸다.
이는 초중등교육만의 문제가 아니다. 한국사회에서 대학은 더 이상 교육기관이 아니다. 대학에서 이미 교육은 실종되었다. 대학은 취업을 위한 준비기관이며, 대학의 학문은 자본과 기업에 팔려고 내놓은 상품일 뿐이다. 시대를 고민하던 비판적 지성은 대학에서 퇴출당했고, 예비실업자들만이 도서관으로 고시촌으로 떠돌고 있다. 그럼에도 정부는 선택과 집중이라는 논리로 자발적인 구조조정을 강요하고 있다.


하기에 교육은 더 이상 교육의 문제가 아닌 사회 전체의 문제이다. 교육을 바로 세우기 위해서는 사회가 바로 서야 하며, 교육을 바로 세워야 사회에 정의가 바로 서게 된다. 『공공성 결핍 - 교육이 사적인 권력획득 수단으로 전락 - 살인적인 입시위주의 경쟁교육 - 소모적인 과중한 교육비 부담 - 국가 주도의 서열화 대입시험 - 수직적인 대학과 학문의 서열체제 - 학벌사회』라는 악순환의 고리를 이제는 끊어야 한다. 교육으로 인한 불평등을 해소하고, 초중등교육뿐 아니라 대학교육을 정상화하기 위해서는 대학서열체제를 타파하고 학벌주의를 뿌리 뽑아야 한다.






지난 5월 12일 WTO교육개방저지와 교육공공성 실현을 위한 범국민교육연대는 그간 공동연구의 결과물인 공교육개편안을 발표하면서 공교육 구조 개혁을 촉구하는 범국민운동의 출발을 선언 했다. 이 자리에서 발표한 공교육개편안의 핵심은 국공립대 통합전형을 바탕으로 한 대학입시제도의 개혁, 서울대학부 개방을 포함한 국공립대학의 공동학위제, 사회적교육과정위원회의 신설을 비롯한 학제와 교육과정의 개혁 등이었다. 이는 그간 학벌없는사회 등의 시민단체가 몇 년동안 전개해 온 논의를 전 사회적으로 확산하여 구체적으로 실현하고자 하는 것이다.


기실 그동안 시민단체와 교육운동 진영의 계속되는 문제제기에 기득권층은 냉소적이거나 심지어는 가소로운 비웃음으로 일관하고 있었다. 정부는 국공립대 통합네트워크라는 개념을 학생들간의 학점교류 차원 정도로 전락시키고 있으며, 서울대는 학부 개방안에 대해 일부 학과의 구조조정을 바탕으로 한 정원의 일부 감축 정도로 대응하고 있었다. 그러나 범국민교육연대는 2003년 몇 차례의 심포지엄과 학술대회 등을 통해 대학서열과 학벌 문제를 사회에 제기했으며, 지난 총선에서 민주노동당이 공약으로 서울대 학부 폐지안과 대학입학제도개혁안을 제시함으로써 이제 더는 침묵으로 대처할 수 없게 되었다.


사정이 이에 이르자 정운찬 서울대 총장은 국립대 평준화와 서울대 학부 개방안에 대해 총학생회장 등 학생들과의 공개 면담에서 "국립대학을 평준화해 30만명을 뽑고 이를 학교별로 배정한다면 이 나라의 장래는 망한다"라는 무책임한 발언으로 기득권 지키기에 나섰다. 그러나 반대하는 논리라는 것이 어처구니없다. 그는 현재 마련중인 학부정원 감축안에 대해 "서울대가 학생을 적게 뽑으면 장래 국가 요직에 진출하는 졸업생 수가 줄어들 것이고 그렇게 되면 학벌주의 완화와 사회통합에도 도움이 될 것으로 본다"고 말함으로써 문제를 회피하고 있다.


그러나 학벌 권력은 그대로 둔 채 졸업생 수를 일부 줄이는 것은 승리한 소수에게 더 많은 권력을 부여하는 것일 뿐이다. 게다가 이번 정원 감축의 구체적인 내용을 보면 인문사회 계열이나 농생 계통의 정원은 대폭 감축했음에도 불구하고 법대나 의대, 경영대와 같은 국가 경쟁력과 전혀 관련없는 사사로운 부와 권력을 유지하기 위한 학부는 전혀 줄이지 않았다.


서울대 총장이 이렇게 나서자 수구 언론은 아예 팔을 걷어 부치고 전면전에 나서고 있다. 이들은 교육 불평등 문제에 대해 대학 가기 어려웠던 수십 년 전과 오늘날은 큰 차이가 있다며, 대학 입학정원이 고교 졸업생 숫자를 웃돌고 있고, 대학에 가고 싶어도 등록금이 없어 못 가는 사람은 현저히 줄었다는 논리를 내세운다. 그들에게는 한해 몇백명의 청소년들이 입시경쟁에 시달리다가 절망 속에서 안타까운 죽음을 맞이하는 현실이나 사교육비를 마련하기 위해 등골이 휘어가고 있는 학부모들은 보이지 않나보다.


또한, 대학 평준화는 교육의 하향평준화를 더욱 확산시키는 것이기에, 평준화는 포퓰리즘이며, 상당수 사람들은 30년 전 이뤄진 고교 평준화가 잘못된 정책임을 시인하고 있다고 한다. 그러나 고교평준화에 관한 국민들의 의식조사는 평준화를 지지하는 국민들이 훨씬 다수이다. 또한 평준화지역과비평준화 지역의 학력에 관한 비교 연구 결과는 언제나 평준화 지역의 학업 성취가 더 높다는 결론에 이른다. 즉, 평준화가 학력을 하향 평준화 시켰다는 논리는 거짓이다.






교육을 통해 차별과 불평등이 생산되고 계승되어 가는 현실임에도 불구하고, 차별적인 교육기회를 통해 기득권의 권력을 유지하려고 하는 시도가 점점 더 거세지고 있다. 이런 현실에서 기존의 고교 평준화마저 국가경쟁력이라는 이유로 깨뜨리려 하는 자들에게 대학서열타파라는 주장이 귀에 들릴 리 없다.


그러나 말이다. 입만 열면 국가 경쟁력을 말하는 당신들에게 묻는다. 국가 경쟁력은 당신들만 책임질 일이 아니다. 국가는 4천명만 책임져야 하는 기관이 아니다. 선택된 소수에게만 모든 기회를 다 보장해 주고, 나머지 대부분은 절망 속에 살아가게 하는 것 보다는 평준화된 국공립대학의 학생 모두가 함께 노력하는 것이 진정한 국가경쟁력 향상 방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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