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또 과학기술 푸대접인가"
- 글쓴이
- 여인철
- 등록일
- 2003-01-16 13:3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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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 자 (1. 16) 경향신문 기고입니다.
[기고]또 과학기술 푸대접인가
지난해 12월27일 16명의 대통령직 인수위원회 명단이 발표되었을 때 나는 크게 실망했다. 그에 앞서 인수위 간사직 명단이 발표되었을 때도 7명 중에 과학기술계를 대표할 만한 인물이 없어 섭섭해 했는데 16명의 위원 중에 과학기술계 인사가 단 한명밖에 없었기 때문이었다. 전체 인수위원 중 과학기술인이 한명이라니, 국정을 완전히 문과 출신 인사 위주로 끌어가겠다는 의지인가.
노무현 대통령 당선자는 지난해 12월13일 대덕연구단지의 한 중견 과학기술인 모임이 주최한 간담회에서 “극심한 국제경쟁 속에서도 ‘아시아의 중추국가’로 서기 위해서 가장 중요한 것은 과학기술 정책이며, 나의 비전은 한마디로 ‘과학기술 중심 사회’”라고 말한 적이 있다. 그때 나는 과학기술 중심 사회는 고사하고 과학기술이 지금처럼 푸대접이나 받지 않았으면 좋겠다고 생각했다.
그러면서 그는 과학기술 5대 강국을 건설하기 위해 “이공계 지도자를 국가지도자로 육성할 것”과 “더욱 많은 과학기술자가 정부의 정책 결정에 참여하도록 할 것”을 약속했다. 그가 약속한 공약의 일부만 해도 과학기술 수석비서관 신설, 과학기술인 국회 비례대표 할당 추진, 정부 3급 이상 고위 관리직 과학기술인 30% 임용 등 과학기술인들이 들으면 귀가 솔깃할 공약이 많았다. 노당선자는 과학기술인이 이 나라에서 문과 출신들로부터 박대당하고 있다는 것을 알고 있고 그것이 옳은 방향이 아니라며, 아들이 법대를 나와서 지금 기술관련 회사에 다니는 것을 강조하기도 했다.
그러나 1, 2차에 걸쳐 발표된 인수위의 실무인력 100명의 명단을 보면 한숨이 절로 나온다. 그들의 면면을 보니 대개는 민주당 선거대책위 및 당직자, 노당선자 자문단 등에서 차출된 사람들로 현직을 보면 거의 모두가 과학기술과는 거리가 먼 사람들이다. 아무리 보아도 125명의 인수위 관계자 중 과학기술인이 5명을 넘지 않는다. 과학기술 중심 사회를 만들자면서 과학기술자는 비켜 있으라는 것인가.
과학기술이란 것이 그저 아무나 해도 된다는 생각을 하고 있는 것인지, 아니면 과학기술인은 그저 시키는 대로 하기만 하면 된다는 생각이 깔려있는 것인지 도무지 알 수가 없다. 과학기술인의 한 사람으로서 심히 자존심이 상하는 일이다. 노당선자의 마음이 바뀐 것일까, 아니면 거기까지는 챙기지 못한 것일까.
이공계 기피 현상이 이제 사회적으로 큰 문제가 되어 있고, 이 현상이 더 이상 진전되는 것은 나라의 장래를 위해서 바람직하지 않다는 공감대는 형성된 것으로 보인다. 그렇다고 과학기술인들을 우대하라고 하는 것은 아니다. 그저 필요한 곳에는 써 달라는 것이다.
과학기술 중심 사회는 과학기술자가 사회의 중심에 서지 않고는 불가능하다. 지금의 문과 위주의 국정 운영, 그리고 그 바탕에 깔려있는 사농공상 의식은 이제 많은 사람들이 버려야 한다고 말한다. 그리고 우리 과학기술인들은 이 사회가 써먹고 버릴 수 있는 소모품 내지 재주만 부리는 곰이 아니다. 진정 다음 정부가 과학기술 중심 사회를 만들기를 원한다면 그런 사회를 과학기술인들로 하여금 만들게 하라. 그러기 위해서 노당선자가 그의 말대로 ‘과학기술인이 정부의 정책 결정에 중심적으로 참여’할 수 있도록 만들어 주길 바란다.
〈여인철/한국선급 수석연구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