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 교수가 수업시간에 해준 얘기'에 대하여...

글쓴이
임호랑
등록일
2002-10-02 16:35
조회
3,629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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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건
며칠전 아래에 게시한 '그 교수의 지적'이 나름대로 상식적인 선에서는 타당하다고 생각한다.
나름대로 요약하자면 다음과 같이 되겠다.

1) 국경이 없어져서 경쟁력 없는 국내대학, 특히 지방대학은 도태한다.
2) 국내 대학교육을 무시하고 대기업에서 전공불문 우수인력만 뽑는다
3) 공학의 발전으로 빨라지기만 했지 인간의 삶이 향상되질 않았다.
4) 공장 자동화로 이공계 인력이 많이 필요없다. 향락산업이 더 전망있다.
5) 과학기술 발전이 인류에게 스트레스만 되고 있다.

워낙 과학기술 문화가 일천한 우리 나라다 보니, 과학기술에 대해 막연한 동경, 아니면 푸대접이라는 극단적 평가가 나오고 있는 것이 현재의 상황이다. 특히 사탕발림과 장밋빛 언사로 과학기술의 장래를 선전하는 정부관료(요즘엔 그런 관료도 별로 없다)나 사업책임자들 때문에 경부고속전철 사업이든, 핵융합 사업이든, NT, BT, ST 기술분야든 잔뜩 거품만 끼어있는 상태이다.

그러다보면 이런 류의 비판적인 논조가 상당히 설득력을 얻는 당연하다.
건전한 과학기술 비평문화가 너무나도 부족하기 때문에 느끼는 대중적 갈증을 해소시켜 주는 것이다.

하지만, 이는 현실 진단에서부터 결론에 이르기까지 아주 문제가 많은 주장이라고 본다.
왜 그런가?

1) 국경이 없어져서 경쟁력 없는 국내대학, 특히 지방대학은 도태한다.

나도 인터넷 강의를 들어도 봤지만, 미국대학 강의를 인터넷으로 들으면 충분한 지식과 기술을 얻을 수 있다는 것은 현실성이 결여되어 있다. 미국에서 1970-80년대에 Computer Aided Education이라고 해서 교육 인건비를 줄이려는 노력을 상당히 했지만, 신통한 효과를 거두지 못했다. 그 이유는, 간단하고 정형화된 원리교육, 기초교육은 정해진 틀로 할 수 있지만, 첨단 기술이나 경험적인 강의는 매번 달라져야 하고 대상자가 제한되어야 기술이 보호가 되기 때문에 이런 강의 대상에 포함될 수가 없다는 것이다.

한 마디로, 첨단 기술은 인터넷이나 해외유학으로 배우는 것이 거의 불가능하다는 것이다. 따라서 국내대학, 특히 지방대학들의 경쟁력이 떨어지는 것을 해결해야지 외국 대학에만 의존해서 첨단기술을 배우려는 것은 현실성이 없다는 것이다.

그리고, 미국을 비롯, 영국, 프랑스, 독일 등 어느 나라든 각 지역에 고루 명문대학이 있고, 지방에 있다는 이유만으로 명문대가 될 수 없다는 것은 매우 한국적인 현상일 뿐이다. 대학 때문에 서울에 집중되는 사회비용을 고려할 때 우리도 프랑스나 독일과 같은 대학 평준화 작업의 당위성이 높아질 뿐이다.

2) 국내 대학교육을 무시하고 대기업에서 전공불문 우수인력만 뽑는다.

이 말은 우리 나라 대학 교육 수준과 산업체의 기술경쟁력 차이가 커지다 보니 발생한 현상이라고 이해된다.
하지만, 영리를 추구하는 대기업의 입장이 지나치게 강조된 측면이 있다. 이제 개인이 돈들여 대학까지 졸업하고 이를 대기업에서 거저 갖다 쓰는 것은 종식돼야 한다. 영국, 프랑스, 독일의 경우 초등학교부터 대학졸업시까지 정부에서 전액 부담을 하고, 미국도 수많은 기업장학금이나 프로젝트비로 대학이 운영된다. 이제 대기업이 국내 대학을 살리고 인재양성을 적극 지원하거나, 정부가 세금을 더 걷어 공부하고 싶고 능력이 되는 모든 국민이 자신이 원하는 데까지 고등 교육을 받을 수 있게 제도를 발전시켜야 한다.

3) 공학의 발전으로 빨라지기만 했지 인간의 삶이 향상되질 않았다.

그렇게 얘기하는 교수의 말이 이렇게 인터넷에 회자되고 있다는 것을 그 교수가 알고나 있을까?
많은 문돌이들이 현대과학기술에 비판적인 입장을 취하고 있는데, 그 논리 중 하나가 과학기술로 인해 뭐 더 행복해진게 있냐는 것이다. 그 사람들도 집에 가면 TV보고 냉장고에서 음식을 꺼내먹고, 전화를 한다. 20세기의 20대 발명품을 보면, 인류가 이룩해낸 20세기 역사는 과학기술의 역사가 지배적임을 직시할 수 있다. 엘빈 토플러같은 역사학자가 공연히 과학기술을 띄운게 아니다.

물론 과학기술로 인해 세계대전도 더 치열했고, 환경도 파괴되었으며, 선진국과 후진국간 빈부차, 권력차는 더 심해졌다. 하지만, 전쟁을 종식시킨 것은 정보/감시기술이고, 환경을 구해내는 것도 환경기술이며, 상당 수 지역에 식량난을 해소한 것은 농학기술, 언론통제와 정보제한을 무너뜨린 것은 인터넷기술이다.

모든 세상사가 그렇듯이 양면성이 있는데, 과학기술 역시 마찬가지다. 때문에 과학기술에 대해 부정적인 것만 강조하는 것은 편견이며 단견이다. 오히려 과학기술의 경제력, 군사력, 교육력, 국제정치외교력에 있어서 차지하는 큰 비중을 고려할 때 긍정적 측면이 보다 강조되고 부정적 측면이 보완적으로 작용하는 균형적 이해가 필요하다고 본다.

그 교수가 이공계인지 비이공계인지는 모르지만, 무책임한 일부 과학문맹들의 주장에 동조나 한 것은 아닌지 우려된다.

4) 공장 자동화로 이공계 인력이 많이 필요없다. 향락산업이 더 전망있다.

한마디로 터무니 없는 얘기다.
이 얘기한 것으로 봐서는 현장경험이 없거나, 공학에 대한 이해를 제대로 하고 있지 못하고 있다는 생각이 든다.
공장 자동화로 줄어드는 것은 단순 생산직이지, 과학기술자들이 아니다. 어떻게 공장 자동화를 이공계 인력 감축으로 직결시킬 수 있다는 말인가?

우리나라에 부족한 기술부분이 공장 자동화, 내지는 장치산업 분야다. 이것으로 큰 돈을 벌고 있는 나라가 대표적으로 일본과 독일이다. 모두 기술기반이 튼튼한 나라여서 그렇다. 이러한 분야는 다품종 소량 생산에다가 가격도 수억-수백억원으로 많은 설비와 시설, 장비개발이 뒤따라야 하며, 이른바 시스템 엔지니어링이 필요한 분야다.

우리나라는 삼성전자를 비롯하여 이런 장치 산업기반이 너무도 취약하며 관련 기술과 장비, 시설을 외국 특정사에 의존하여, 금싸라기같이 번 돈을 장치/시설에 쏟아 붓는 형국이다. 우리나라에 현재 없으니까 이런 분야가 원래 없는 것이라고 보는 우를 범하고 있는 것이다.

향락산업(엔터테인먼트, 레포츠 산업 등)이 전망있다는 것을 굳이 부인하지는 않겠지만, 공장자동화로 인한 고급기술 소요 창출과 새로운 기술서비스 분야를 잊는다면 제대로 전망한 것이 아니다.

5) 과학기술 발전이 인류에게 스트레스만 되고 있다.

사실 인류에게 스트레스가 되고 있다는 것에 공감한다.
하지만 더 큰 스트레스를 받고 있는게 이공계다. 이공계가 이런 스트레스를 주고 있는 것 같지만, 사실 누구보다도 더 스트레스를 받고 있는게 이공계인 것이다.

중요한 것은 우리 인생 자체가 도전과 스트레스의 연속이라는 점이다.
과학기술이 스트레스를 주고 있는 것은, 현대문명의 중심에 과학기술이 놓여있기 때문에 발생한 자연스런 현상이다.

정치외교든, 군사력이든, 일상생활이든, 식량문제든, 종교문제든, 사상문제든 항상 인간들에게 스트레스를 주어왔다. 하지만, 지금은 이런 것들보다 과학기술이 실질적으로 세계를 움직이기 때문에 과학기술만이 스트레스를 주는 것처럼 느낄 뿐이다.

따라서 과학기술이 스트레스를 주고 있다는 말은 사실 역설적이게도 과학기술의 중요성을 입증해주는 말인 것이다. 특히 이공인들이 엄청난 스트레스를 받고 있다는 것도, 사실 그 만큼 이 분야가 세계적으로 중요하기 때문에 엄청난 경쟁이 벌어지고 있다는 반증인 것이다.

이공인들이여!
바로 이런 일을 하고 있는 것이 우리들이다.
남들이 어떻게 평가를 하든 우리는 현대문명을 주도하고 미래를 여는 전사들인 것이다.

  • muroi ()

      찬성

  • 임호랑 ()

      아니 '안티-호랑'의 거두 muroi님이 웬 찬성을??? ^^

  • 소요유 ()

      적극 동감입니다.

  • 김경우 ()

      정말 멋진 주장이군요. 사실 지금껏 서양을 세계의 중심으로 만든게 과학자,기술자들 아닙니까?

  • 긍정이 ()

      그 교수님은 특정 현상을 말씀 하신것 같고, 임호랑님께서는 나름대로 분석을 해 주신 것 같습니다. 호랑님의 의견에 상당 부분 일리가 있는 설명이라고 생각됩니다. 찬성!

  • 호섭이 ()

      대학관련 의견에는 공감하나 기술이 인간에게 도움이 되는 방향으로 진보한다는 것에는 반은 수긍하나 반은 수긍하지 않습니다. 기술의 발전은 결코 인간의 이성에 의해 의도된 방향으로 일어나는 것이 아닙니다. 우리도 어디로 가고 있는지 모르면서 흘러가는 겁니다. 특히 기술이 환경을 보호한다는 측면에 대해서는 환경공학기술이란게 상당부분 자원 및 에너지 소모를 댓가로 하고 있다는 점을 지적하겠습니다. 자세한 것은 다음에 시간나면 올리지요

  • 임호랑 ()

      세상은 항상 변하는 것이고(=제행무상), 그 변화의 중심에 과학기술이 있을 뿐입니다. 이는 선도 아니고 악도 아니며, 우리 인간의 모습만큼이나 천차만별의 모습으로 나타납니다. 과학기술이 인간에게 꼭 도움만 주지도 않고 해를 끼치기도 합니다. 왜냐면? 가장 강한 힘을 갖고 있으니까요. 그래서 이를 알아야 하고, 이를 잘 아는 사람만이 현대문명을 계발하고 운영할 수 있는 것입니다. 과학기술의 윤리적, 사회적, 경제적, 군사적, 정치적 측면을 제대로 이해할 수 있는 사람(비이공인이더라도)만이 사회의 리더가 되어야하는 이유가 여기에 있습니다. 선진국들이 바로 그렇죠. 참, 본문에서 제가 언급한 기술들이 완벽하단 얘긴 아닙니다. 문제도, 이의 해결도, 또 그과정에서 생기는 부작용도 과학기술이 중심이 되고있는걸....

  • 소요유 ()

      임호랑님의 댓글에서 중요한 점을 일깨우고 있군요.

  • 최성우 ()

      임호랑님이 잘 정리해 주셨는데, 3, 4, 5번에 대해서는 저도 나름대로 생각을 정리한 관련 글을 하나 올리도록 하겠습니다.  가끔씩 '얼치기 문명비판론자'들이 과학기술을 잘 모르는 일반 대중들에게 혹 할만한 주장들을 내놓는 경우가 꽤 있는데, 그런 식의 (좋게 보면) '낭만적인' 주장들에 대해서도 어느 정도의 단호한 입장 표명이 필요하다고 봅니다.  (자유게시판에도 그런 류의 비슷한 글이 하나 올라왔다가 사라진 듯 하네요...) 

  • 아햏ᕛ… ()

      beautifu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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