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겨레] 기자들이 금뺏지를 다는 방법

글쓴이
추풍령
등록일
2002-10-04 09: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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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겨레신문 안수찬 기자의 오늘자 메일입니다.
기사를 보는 순간 필이 딱 꽂혔습니다.
알면 알수록 희한한 사람들이 많다는 생각뿐입니다.
대한민국을 이해하기 위하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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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자들이 금뺏지를 다는 방법 2

“되고 싶은 사람은 되더라구요. 되야겠다고 준비하는 사람도 다 되고. 안하는 사람은 그냥 지금이 편하니까 안하는 거고.”
 
 이번 연재 뉴스메일의 첫번째 글이 나간 직후, 평소 알고지내던 한 변호사가 내게 건넨 말이다. 내용인즉슨 금뺏지 달고 싶어하는 주변 변호사들은 오래지 않아 실제로 국회의원이 되더라는 이야기였다.
 
 그 이유는 무엇일까. 법조인들은 어떻게 생각하는지 몰라도, 정치권이 이들을 반기는 가장 큰 이유는 돈때문이다.
 사법시험이 전통적으로 `인재'를 가려내는 가장 권위있는(혹은 그렇다고 믿어지는) 검증절차였다는 사실도 무시할 수 없을 것이다.

 그러나 아주 솔직히 말하면 정치권 입문 과정이 무슨 아이큐 테스트가 아닌 다음에야, 사법시험을 패스했다는 것 자체가 그 사람의 정치적 자질과 관련해 증명해낼 수 있는 건 그리 많지 않다.

 변호사들이 돈을 많이 벌고, 돈이 많아야 정치를 할 수 있기 때문이라고 생각한다면, 대충은 많지만 정확하지는 않다. 오히려 법조인들이 `돈으로부터 자유로울 수 있기 때문'이라고 해야 정확한 표현일 것이다.
 
 국회의원 선거를 치르는 데 드는 비용은 최소 수억원 단위다.
 지역구별, 의원별 편차가 심하고, 요즘에는 비공식적으로라도 이런 씀씀이의 공개를 극히 꺼려해 정확한 규모를 알기는 힘들지만, 지난 2000년 16대 총선에 출마했던 한 유명 정치인이 선거당시 중앙당으로부터 5천만원 정도의 지원금을 받았다는 사실을 최근 확인하기도 했다.
 이 정치인은 `돈줄'이 꽤 든든한 것으로 평가받는 인물인데, 중앙당 지원이 이 정도였다면 실제로 본인이 동원해 투입한 금액은 이를 훨씬 웃돌 것임에 틀림없다. (정치자금에 대해서는 다음 기회에 자세히 쓰겠다)

 중앙당으로선 선거를 한번 치를 때마다 각 출마자들에게 `지원'해야할 이런 `총알'이 큰 부담이 아닐 수 없다. 통상 돈많은 출마자들로부터 정치헌금을 받고, 이를 `궁핍한' 출마자에게 돌려 사용한다는 것은 정치권의 공공연한 비밀이다. 

 부동산 투기나 기업경영으로 졸부가 된, 경력도 보잘 것 없는 어떤 지역토호가 국회의원이 됐다면 그 사람은 당의 `돈줄' 노릇을 한 대가를 얻은 것이라고 보면 거의 틀림없다.
 그 사람이 낸 돈은 `유능하지만 자금이 부족한' 다른 정치인에게 흘러가 그 정당의 정치적 쟁투에 소중한 거름이 될 것이다. 누이좋고 매부좋다는 건 이런 경우다.
 
 그런데 법조인 특히 변호사의 경우, 이런 실탄부담이 덜할 수밖에 없다. 돈많은 기업인은 이런저런 잇권개입에 대한 우려로 구설수에 오르기 십상인 반면, 변호사들은 법에 따라(!) 수임료를 챙겨 부를 축적했으므로 `도덕적'으로도 큰 문제가 될 것이 없다. 부유층에 대한 사회적 비난으로부터도 상대적으로 자유로운 것이다.

 그래서 중앙당의 자금지원이 필요없고, 경우에 따라서는 오히려 정치헌금을 할 수도 있고, 사회통념상 `지배 엘리트'로 분류되고, 돈많은 사람들에게 따라다니기 마련인 `곱지 않은 눈초리'도 덜한 변호사들은 그 어떤 직종보다 정치권의 입맛에 맞는다.

 특히 낙선 뒤에도 언제든 현업으로 복귀해 경제적 부와 사회적 명예를 유지할 수 있다는 점에서, 법조인 스스로와 정당 모두에게 `큰 부담없이' 선거에 도전할 수 있다는 매력(?)도 덤으로 따라 붙는다. 
 (물론 최근 이회창 후보의 인재등용 과정에서 불거진 `법조인 우대' 정책은 조금 다른 측면이 있다. 이 또한 다음 기회에 자세히 설명하겠다. 참고할만한 기사는 9월25일자 박찬수 기자가 쓴 취재파일 `사시우월주의'를 참고하시길)
 

 그렇다면 정치세계에서 기자들이 내걸 수 있는 `상품성'은 무엇일까. 
 국가고시에 급제한 것도 아니고, 돈이 많은 것도 아니고, 일단 정치권에 뛰어들면 `후일'을 기약한다는 것이 불가능할 정도로 신분이 불안정한 이들이 법조인을 뛰어넘을 정도로 정계에서 두터운 그룹을 형성하고 이유는 도대체 뭔가.
 
 내가 보기엔 `정보의 그물망'이다. 오해 없기 바란다. 무슨 대단한 고급 기밀 정보를 기자들이 갖고 있다는 이야기가 아니다.

 `나와바리'라는 말이 있다. 구역이라는 뜻의 일본말인데, 이 단어를 쓰는 집단은 우리나라에서 세 부류다. 조폭, 경찰, 그리고 기자다. 
 넓은 의미에서 배속부서(정치부, 사회부 등)가 기자들의 나와바리에 속하고, 좀더 좁히면 출입처(한나라당, 민주당 등)가 통상 사용되는 나와바리라는 개념에 가깝다.

 사회부 경찰기자들 사이에는 우스개 소리가 있다. 한강 다리 북단에서 떨어져 자살한 사람의 시체가 다리 남단 쪽 강변에서 발견되면 누구 나와바리일까. 북쪽의 마포서 출입기자? 아니면 남쪽의 영등포서 출입기자?
 
 정치부 기자들도 이런 나와바리가 있다. 
한나라당을 출입하는 내 경우엔 초선 의원들, 개혁성향 또는 비주류 의원들, 대구경북지역 의원들 등을 기본 담당으로 삼는다. 
국회 상임위 가운데는 환경노동위원회와 정무위가 담당이고, 당직자 가운데는 이회창 후보, 정책위의장 정도가 주요 `마크' 대상이다. 이밖에 민주노동당, 한국미래연합도 담당하고 있다.
 물론 실제로는 당 안팎의 거의 모든 사안을 `담당'하고 있지만, 주요 취재동선(動腺)은 이런 나와바리를 따른다. 

 남의 말을 듣고 수집해 취사선택한 뒤, 일정한 그릇에 담아 평가하고 분석하는 게 기자의 일인만큼, 만나는 사람을 가려서는 안된다. 주어듣는 이야기도 적지않다. 기사로 쓰지 못할 이야기도 있다. 강물에 내 귀를 씻고 싶어지는 이야기까지 주의깊게 듣는다.
 
 이런 과정에서 (정치부) 기자들은 자기 나와바리의 정치인과 `관계'를 맺는다.

 첫째, 친해지는 정치인들이 생긴다. 
사람이면 누구나 죽이 맞고 뜻이 통하는 부류가 있다. 기자들도 친소관계에 따른 주요 취재원이 있기 마련이다. 정치인들도 친근한 기자에게 자신의 이야기와 의정활동을 더 많이 이야기한다.

 둘째, 정치인들이 기자를 `활용'하기 시작한다. 
정치인들도 기자들이 수집한 정보를 알고 싶어한다. 한나라당 초선 의원이라면, 당내 중진들의 의중도 알고 싶고, 민주당 돌아가는 이야기도 알고 싶다. 정치인이 알 수 있는 정보가 있고, 기자들만 알게되는 정보도 있다.
정형근 의원처럼 확실한 `자기 정보망'을 구축한 정치인이 아니라면, 잡식성으로 정보를 긁어모은 기자들의 이야기에 귀가 솔깃해지는 건 당연지사다.
특히 기자들은 자기가 직접 취재한 내용이 아니더라도, 다른 출입처의 다른 기자가 취재한 내용까지 꿰뚫고 있다. 언론사의 독특한 구조가 이를 가능하게 한다. (이에 대해서는 `폭탄주와 정보보고'라는 뉴스메일을 참조하면 좋겠다)

 셋째, 이런 과정을 거치며 기자들도 `정치감각'을 기른다.
 정당의 큰 흐름에 대해 정치인에게 조언한다. 최근의 언론플레이가 서툴다거나, 쟁점에 대한 접근이 잘못됐다거나 하는 지적이, 정치인과의 대화도중에 손쉽게 튀어나온다.
(이러다가 어떤 기자는 급기야 `보고서'까지 만들어 정치권에 제출해 사회적으로 큰 물의를 빚기도 했다)

 정치인을 길러내는 특별한 `아카데미'가 따로 있는 것도 아닌 상황에서, 이런 관계는 독특한 힘을 갖는다. 

국회의원 공천이 각 직업별, 연령별 대표주자를 뽑아놓고 이를 계량측정해 후보자를 뽑는 게 아닌 다음에야, 일단은 `공천권'을 지닌 중진의원들의 입김이 크게 작용하기 마련이다.
 중진급 의원들은 적당한 인물을 찾아 주변을 뒤지지만, 이 또한 평소에 알음알음으로 관계를 맺은 인맥을 따라간다.
(장상 전 총리서리가 이휘호 여사가 졸업한 대학의 인사였고, 이를 바탕으로 두 사람이 꽤 깊은 관계를 유지했으며, 이것이 다시 인사권자의 귀에 들어가 총리서리까지 올랐다는 이야기는 한국 정치권의 인력충원구조의 `전근대성'을 드러낸 한 사례에 불과하다)

결국 그 그물을 쫓아가다 보면 항상 어떤 기자가 있다. 명문대학을 나왔고 성실하고 정치적으로도 명민하고 인간성도 괜찮은 어떤 기자다. 기자시절, 나름의 명망을 얻었다면 금상첨화다.
 
 재야시절, 김대중 대통령이 가택연금 당했을 때 그 옆에서 숨죽여 함께 울분을 토하던 출입기자가 어느날 국민회의에 입당하고, 한나라당 비판기사를 써대던 출입기자가 어느날 한나라당 중진 의원의 보좌관을 거쳐 다음 총선에 출마하는 일은 이런 끝에서 발생한다.

 `정보'를 구하기 위해 정치인을 만나기 시작해, 그 정보를 갖고 있다는 이유로 정치인들이 호의적으로 대하고, 그 과정에서 정치적 문법을 배운 정치부 기자들은, 뜻을 함께한 정치인과 어느 순간 같은 길을 걷게 된다.
 
 현명한 독자들이라면 이미 눈치챘겠지만, 이는 결국 한국정치의 `인적 충원 구조'의 문제다.
그 구조에 가장 가까이 다가간 두 집단, 법조인과 언론인은 가장 정치권을 혐오하면서도 가장 손쉽게 정치판에 뛰어들게 된다.

 다른 경우, 다른 이유, 다른 사람이 없지 않다. 일반화는 언제나 수많은 `예외'의 경우를 사장시켜 버린다는 것도 안다. 
그러나, 어떤 면에서 이 글은 그런 `예외적 경우'가 일반적인 상황이 되는 미래를 위한 것이기도 하다. 그런 미래가 오기까지, 정치권에 명함을 내미는 언론인의 일반적 유형은 항상 이런 구조를 따라간다.
 
 다음 메일에서는 이런 길을 따라 정치인이 된 옛 언론인들을 살펴 보겠다.

?6s 안수찬 기자 ahn@hani.co.kr

  • 호섭이 ()

      제가 보기에 한국문화에서는 권력자나 재산가 또는 학벌좋은 사람을 이유없이 혐오하는 경향이 있으면서도, 동시에 흠모하는 경향도 있는 이중적 문화입니다. 국회의원 선거때가 되면, 입후보자 개개인에 대해 알 턱이 없으니, 특별히 선호하는 정당이 없으면 대충 변호사 판검사 출신, 고위 공직자 출신, 중앙일간지 기자 출신 있으면 붓뚜껑을 꾹 누르는 사람이 많을겁니다. 어차피 이사람들이 대개 학벌도 좋지요.

  • 호섭이 ()

      이런 세태를 극복하고 과학기술자 출신의 중앙정계 진출을 촉진할 방안이 어디 없을까요? 제 머리로는 과학기술인이 목소리를 크게 내서 전국구로 많이 배정하도록 하는게 제일 빠를것 같습니다. 어차피 지역구 출마해도 변호사나 기자출신한테 밀릴것 같거든요,

  • 최성우 ()

      전국구 의원으로 최소 1/4 ~ 1/3을 과학기술인으로 배정하도록 강력하게 요구하고 압력을 넣어야하지 않을까 싶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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