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대 이름은

글쓴이
REVOLUTION
등록일
2004-07-12 16: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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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대 이름은 무식한 대학생>    홍세화

그대는 대학에 입학했다. 한국의 수많은 무식한 대학생의 대열에 합류한 것이다. 지금까지 그대는 12년 동안 줄세우기 경쟁시험에서 앞부분을 차지하기 위해 부단히 노력했다.


영어 단어를 암기하고 수학 공식을 풀었으며 주입식 교육을 받아들였다. 선행학습, 야간자율학습, 보충수업 등 학습노동에 시달렸으며 사교육비로 부모님 재산을 축냈다.

그것은 시험문제 풀이 요령을 익힌 노동이었지 공부가 아니었다. 그대는 그 동안 고전 한 권 제대로 읽지 않았다. 그리고 대학에 입학했다. 그대의 대학 주위를 둘러 보라.


그 곳이 대학가인가? 12년 동안 고생한 그대를 위해 마련된 '먹고 마시고 놀자'판의 위락시설 아니던가.

그대가 입학한 대학과 학과는 그대가 선택한 게 아니다. 그대가 선택 당한 것이다. 줄세우기 경쟁에서 어느 지점에 있는가를 알게 해주는 그대의 성적을 보고 대학과 학과가 그대를 선택한 것이다.


'적성' 따라 학과를 선택하는 게 아니라 '성적' 따라, 그리고 제비 따라 강남 가듯 시류 따라 대학과 학과를 선택한 그대는 지금까지 한 권도 제대로 읽지 않은 고전을 앞으로도 읽을 의사가 별로 없다.


영어영문학과, 중어중문학과에 입학한 학생은 영어, 중국어를 배워야 취직을 잘 할 수 있어 입학했을 뿐, 세익스피어, 밀턴을 읽거나 두보, 이백과 벗하기 위해 입학한 게 아니다.


그렇다면 차라리 어학원에 다니는 편이 좋겠는데, 이러한 점은 다른 학과 입학생에게도 똑같이 적용된다. '인문학의 위기'가 왜 중요한 물음인지 알지 못하는 그대는 인간에 대한 물음 한 번 던져보지 않은 채, 철학과, 사회학과, 역사학과, 정치학과, 경제학과를 선택했고, 사회와 경제에 대해 무식한 그대가 시류에 영합하여 경영학과, 행정학과를 선택했고 의대, 약대를 선택했다.

한국 현대사에 대한 그대의 무식은 특기할 만한데, 왜 우리에게 현대사가 중요한지 모를 만큼 철저히 무식하다. 그대는 <조선일보>와 <동아일보>가 '민족지'를 참칭하는 동안 진정한 민족지였던 <민족일보>가 어떻게 압살되었는지 모르고, 보도연맹과 보도지침이 어떻게 다른지 모른다.


그대는 민족적 정체성이나 사회경제적 정체성에 대해 그 어떤 문제의식도 갖고 있지 않을 만큼 무식하다.

그대는 무식하지만 대중문화의 혜택을 듬뿍 받아 스스로 무식하다고 믿지 않는다. 20세기 전반까지만 해도 읽지 않은 사람은 스스로 무식하다고 인정했다.


그러나 지금은 대중문화가 토해내는 수많은 '정보'와 진실된 '앎'이 혼동돼 아무도 스스로 무식하다고 말하지 않는다. 하물며 대학생인데! "당신의 능력을 보여주세요!"에 익숙한 그대는 '물질적 가치'를 '인간적 가치'로 이미 치환했다.


물질만 획득할 수 있으면 그만이지, 자신의 무지에 대해 성찰할 필요조차 느끼지 않게 된 것이다.

그대의 이름은 무식한 대학생. 그대가 무지의 폐쇄회로에서 벗어날 수 있을 것인가. 그것은 그대에게 달려 있다. 좋은 선배를 만나고 좋은 동아리를 선택하려 하는가, 그리고 대학가에서 그대가 찾기 어려운 책방을 열심히 찾아내려 노력하는가에 달려 있다.

  • REVOLUTION ()

      전 고등학교를 강남 8학군에서 다녔는데, 87회 선배님께서 학보사와의 인터뷰에서 이런 말씀을 하시더군요..

    "주변 사람들의 기대에 너무 신경 쓰지 않았으면 좋겠어. 요즘 학생들은 자신의 성적이나 성격 등을 혼자 고민하고 해서 직업을 선택하는 것이 아니라 주위에 기대에 따라 흘러가는 것 같아. 대학 들어가서 느낀 것이지만 특히 8학군 친구들이 이런 경향이 크다는 느낌이 들어. 자신에 대해 생각할 시간을 가지고 진지하게 자신의 진로를 생각해 봤으면 해..."

    저의 경험을 일반화시킬 수는 없지만, 제가 고교 재학 당시 이과생의 절반 이상이 의대를 희망했고, 문과 친구들중에서도 제가 가려고 고민했던 역사학과를 간다는 친구는 거의 없더군요..(1명 있었습니다..ㅡㅡ;;)

  • 보라탱이 ()

      레버루션님의 고딩때와 전 다르군요.

    의 고딩시절엔, 대부분이 이공계를 원했고, 약간, 떨어진다는 부류들이 의대 간걸로 앎니다.

  • REVOLUTION ()

      제가 고등학교 졸업한지가 오래되지 않아서 예전의 일은 잘 모르겠지만 보라탱이님 말씀이 색다르네요..지금은 절대 그런 일이 있을 수 없거든요..

  • Lodi dodi ()

      이공대 컷이 몇 년 사이에 팍팍 내려갔죠..

  • Lodi dodi ()

      저희 사촌형이 재수하셔서 지방 국립의대 본과2년이신데..
    그때만해도 그 형이 서울공대랑 그 의대랑 두고 '서울공대'가겠다고 우긴적이 있었습니다...

  • Lodi dodi ()

      음.. 사촌형의 꿈과 희망을 잘 몰라서 어쨋든 그 선택에 대해서 제가 뭐라 말하기 그렇지만.. 저희 어머님 말로는 제 외삼촌이 계속 의대쪽으로 꼬셧다더군요.. 공대전망이 안좋다는 이유로요..
    사촌형은 지금 생활에 만족하신다고 그럽니다

  • REVOLUTION ()

      그 형님분은 잘 가신겁니다..ㅡㅡ;;(이런 말 하기는 좀 그렇지만..)

    앞으로도 한동안은 계속 될겁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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