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디지털 타임즈]기획-`국가 R&D` 새틀 짜자>(1);돈벌이에 내몰리는 연구원들.. 현직 연구원이 밝힌 실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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맹성렬
등록일
2002-11-19 10: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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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부출연연구기관 연구원들이 돈벌이에 내몰리고 있다. 본연의 연구개발 활동에 몰입해야 할 시간에 외부기관의 연구개발 프로젝트를 따내느라 동분서주하고 있다. `일단 따고 보자'는 식으로 맡은 연구개발과제는 인건비가 싼 임시직의 몫이다. 모두가 그런 것은 아니지만, 정규직 연구원들은 자신이 연구원인지 영업사원인지 가끔은 헛갈린다고 고백한다.

기초기술연구회 소속 한국생명공학연구소 간부급 몇몇 연구원들은 출연연구기관의 어려운 사정을 적나라하게 고발했다. 생명공학연구소의 한 연구원이 동료 연구원들의 의견을 취합해 본지에 전한 얘기를 그대로 싣는다.

<편집자>

PBS가 실시된 이후 정부출연연구기관 연구원의 일 강도가 대폭 늘었다. 자기 인건비는 물론 시설비 등의 간접비, 연구소 운영비용까지 직접 충당해야 하기 때문이다.

대학교수와 연구원의 상황을 비교해보자. 대학교수의 인건비는 연구개발 활동과 상관없이 보장된다. 가령 5000만원짜리 프로젝트를 수주했다면 대학교수는 약간의 인센티브를 빼고 5000만원의 대부분을 외부 인건비 등 연구개발에 투입할 수 있다.

정부출연연구소 연구원은 다르다. 5000만원에서 우선 자기 인건비를 빼야 하고 간접비도 계산에 넣어야 한다. 우리 연구원의 간접비 비중이 지난해 약 73%였다. 간접비가 80%를 넘는 연구소도 있다. 연구원마다 다르지만 보통 간접비가 전체 비용의 60~70% 되는 것으로 안다. 5000만원 중 3500만원이 간접비로 빠지는 셈이다.

이렇게 기본적인 비용구조가 다르다 보니 출연연구기관 연구원들은 똑같은 과제를 수행하더라도 대학교수보다 몇 배 이상의 비용을 확보해야 한다. 대학교에서는 5000만원짜리 과제 하나만 따면 되는데 연구원은 먹고살기 위해 3~4개 과제를 수주해야만 하는 것이다.

이렇게 다수의 프로젝트를 수주하고 동시 다발적으로 수행하다 보니 연구에 대한 집중력이 떨어지는 것은 당연하다. 프로젝트를 따야지, 인력 관리를 해야지, 이것저것 연구 외의 일들이 많다 보니 연구 성과를 도출하는데 시간이 더 많이 든다. 데이터를 쌓아놓고도 논문을 쓰지는 못하고 있는 형편이다.

한 우물을 파는 것도 허용되지 않는다. 여러 개의 프로젝트를 따기 위해서는 자신의 연구분야만을 고집할 수 없기 때문이다. 돈이 있는 곳에 연구원들이 몰린다. 연구의 일관성이 없을 수밖에 없다. 자기 전공이 아닌데도 들고 오는 프로젝트도 많다. 이곳 저곳 돈 나오는 데는 모두 손을 벌리다 보니 이젠 `문어발'이 다 됐다.

하나의 연구 과제를 이렇게 저렇게 변형시켜 여러 개의 프로젝트로 만드는 것도 다반사다. 예를 들어 동일한 연구를 환경부, 산업자원부, 농림부 등 정부 부처의 입맛에 맞춰 재단하는 것이다. 연구 아이디어는 하나인데 마치 서로 다른 과제인 것처럼 꾸민다. 부처간 중복투자가 생길 수밖에 없다.

정부나 기관에서는 이러한 일을 막기 위해 10억원, 100억원짜리 대형 과제를 연구기관들이 공동으로 수행하면 되지 않느냐고 한다. 그러나 정부출연연구기관들은 거대 프로젝트를 위해 협업할 수 있는 구조가 아니다. 다른 출연연구기관과 손잡지 않고 대학연구소 등 외부 인력을 쓰면 비용을 대폭 줄일 수 있는데 굳이 협력할 이유가 있겠는가. 이런 일들은 일상적으로 무시로 발생한다.

심지어 모 연구기관은 인력 풀(pool)제도를 운영함으로써 프로젝트를 따오지 못하는 연구원을 압박했다. 프로젝트를 수주하지 못해 인건비를 충당하지 못하는 연구원은 `공동활용 인력'으로 배정해 누구나 데려다 쓸 수 있게 한다. 한마디로 무능한 사람으로 낙인찍는 것이다. 또 다른 연구기관은 `삼진아웃제'를 도입한다고 연구원들에게 엄포를 놓았다고 한다. 3년 동안 일정한 프로젝트를 수주하지 못하면 연구직 계약을 해지하겠다는 협박인 셈이다.

최소한의 인건비를 보장해 전공을 살릴 수 있는 연구 개발 환경을 만들어야 한다. 연구 성과를 높이기 위한 경쟁이어야 한다. 지금처럼 연구성과는 뒷전으로 밀어놓고 벌이는 맹목적인 경쟁은 지양되어야 한다. 가난하더라도 신명나게 일해보고 싶다.

기획취재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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