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디지털 타임즈](2);허울뿐인 자율연구.. 특허부처 발주과제 `용역기관` 전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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맹성렬
등록일
2002-11-19 10: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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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창신 heri@dt.co.kr 2002/11/19
 
정부출연 연구기관 간부들은 96년 연구과제중심운영제도(PBS) 도입과 99년 연구회 출범 등 국가 연구개발(R&D) 시스템이 크게 바뀌었지만 이 같은 변화의 결과로 눈치를 보고 접대해야 하는 `시어머니'가 늘어났을 뿐이라고 말한다.

이 연구기관들은 정부부처?기획예산처?연구회의 삼중관리체제에서 연구개발과 기관운영의 자율성은 사라진 지 오래됐고, 연구비를 타내느라 이쪽저쪽을 열심히 찾아다니며 사정하고 접대하는 존재가 됐다는 설명이다.

◇정부부처에의 종속심화

기획예산처는 연구개발 예산을 산업자원부?정보통신부?과학기술부 등 정부부처에 배정한 뒤 정부부처가 공개경쟁을 통해 이 예산을 배분케 하고 있다. 연구기관의 독립성 확보와 연구과제의 질적 수준을 높인다는 게 이러한 예산배분의 목적이다.

그렇지만 이 같은 제도가 빚은 결과는 연구기관의 행정부처 종속을 심화시켰을 뿐이란 게 일반적인 지적이다. 연구기관 입장에서는 정부의 연구개발 사업예산을 따내기 위해 오히려 이전보다 더 적극적으로 정부부처와 밀접한 관계를 유지해야 한다. 이는 정부부처와 연구기관 사이의 수직적인 종속구도를 심화시킬 뿐 아니라 연구개발에 진력해야 할 연구원이 정부부처 관계자를 수시로 찾아다니면서 `잘 보여야' 하는 이유가 된다. 정부출연 연구기관 관계자들은 특정 행정부처 산하기관으로 존재했던 98년 이전의 주무부처 시절보다 국무총리실 산하 연구회 소속으로 돼 있는 지금이 정부부처에의 예속이 더욱 심해졌다고 말한다.

이러한 현상은 매년 새롭게 채결하는 연구개발 협약에서도 드러난다. 한국전자통신연구원은 매년 260건의 협약을 체결했는데 이 가운데 다년도 협약의 비율은 채 1%에도 미치지 않는다고 밝히고 있다. 3~5년짜리 중장기 프로젝트의 경우 해마다 협약을 갱신함으로써 불필요하게 서류를 꾸미고 절차를 밟아 정부기관과 협의하느라 한바탕 부산을 떨어야 하며 이로 인해 시간은 시간대로 버리면서 연구개발의 안정성도 떨어진다는 설명이다.

이에 따라 출연연구기관이 `국책연구기관'으로서 공공성이 높은 연구개발과제를 수행하기보다는 특정 정부부처가 발주하는 연구개발과제 용역기관으로 전락하는 결과를 초래하고 있다. 이와 관련, 지난 9월 국정감사 자료용으로 정부출연연구원 문제의 개선방안을 연구한 국회사무처 예산정책국 관계자는 정부출연 연구기관이 정부부처가 발주하는 사업을 통해 인건비의 60~70%를 충당하고 있는 상황에서 출연연구기관 고유의 사업을 활성화하거나 자체적으로 전략적 목표를 설정하기는 어려운 것으로 판단된다고 말했다.

◇기획예산처는 `상전 중 상전'

A출연연구기관의 B실장은 얼마전 기획예산처를 수 차례 찾아다니며 연구개발예산을 구걸했던 기억이 지금도 생생하다고 말했다. 사실 기획예산처 담당자는 기술을 모른다. 그러니 신규 연구개발과제의 예산을 따내려면 문외한도 알기 쉽게 기초지식과 함께 기술개발의 필요성을 설명해야 하는데, 그게 무척 고단하고 어렵다. 파워포인트로 깔끔하게 브리핑 자료를 만들어 과천을 여러번 드나든 끝에 겨우 2억~3억원짜리 예산을 받아낼 수 있었다.

B실장은 연구개발예산 편성과정의 접대관행에 대해서도 털어놓았다. 예산이 확정되기까지는 점심식사도 하려 하지 않는다. 그렇지만 일단 결정되면 한 400만~500만원은 써야 한다. 그는 예산 편성과정의 어려움을 푸는 것도 직급별로 올라간다. 담당 직원을 설득하면 과장에서 막히고, 과장을 설득하면 국장 선에서 지적이 나온다. 그러니 우리쪽도 점차 높은 직급이 찾아가 부탁해야만 한다고 밝혔다.

과학기술인의 모임인 한국과학기술인연합의 인터넷사이트(www.scieng.net)에서는 연구개발예산을 확보하는 과정에서 이뤄지는 접대문화에 대한 고발을 심심찮게 찾아볼 수 있다.

기획예산처를 어려워하는 입장은 국무총리실 산하 연구회도 마찬가지다. 연구회는 예산 배정 및 배분에 대해선 아무런 권한이 없는만큼 늘 기획예산처의 눈치를 살펴야 하는 것이다. 한 연구회 관계자는 기획예산처의 입장에서 보면 예산배분은 고유의 권한일텐데 이를 쉽게 내주겠는가라며 그렇지만 기획예산처가 작은 규모의 연구개발예산에 간섭하는 것은 잘못된 것이다. 예산에 관해 일정 부분은 하향식으로 위임해야 한다고 밝혔다.

◇유명무실해진 연구회

99년 3월 출범한 연구회체제는 당초 연구기관의 자율성과 독립성을 보장하고 연구기관의 유사?중복 기능을 조정하며 연구기관간 협동연구를 활성화하겠다는 목적을 가지고 있었다.

자율성 보장은 정부부처 산하에 있던 연구기관들의 소속을 국무총리 산하로 변경, 인사?조직 등 기관운영과 연구수행에 있어서 연구기관의 자율성을 확대한다는 것이다. 이는 연구회가 과거 정부부처의 역할을 대신해 임기 3년의 출연연구기관 기관장 인선을 비롯해 실질적인 관리기관의 역할을 수행함으로써 연구기관이 정부부처의 눈치를 보지 않고 연구개발 업무를 진행할 수 있도록 한다는 것이다. 그렇지만 연구회가 부여받은 권한은 기관장 인선과 기관평가 업무가 고작이다. 각 연구기관을 운영하는 데 필수적인 재정적 지원은 여전히 기획예산처와 정부부처에 의해 이뤄지고 있는만큼 연구회가 출연연구기관에 줄 수 있는 것은 거의 없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연구회체제가 출범한 이래 정부출연 연구기관의 유사?중복 기능을 조정한 사례는 지난해 공공기술연구회의 연구개발정보센터와 산업기술정보원을 `한국과학기술정보연구원'으로 통합한 게 고작이다. 연구기관들은 연구회 출범 이전에 법에 설립근거가 있는 법인이며, 이 법인들은 임금 및 직급 체계가 서로 판이한만큼 이를 합치거나 조정하기가 결코 쉽지 않다. 이는 기관의 명칭이 유사할 뿐더러 기능이 중복되는 경우가 많은 경제사회연구회와 인문사회연구회 산하 23개 기관을 지금까지 조정하지 못한 사례에서 확연하게 알 수 있다. 연구기관별로 법인을 이루고 있는 현 상황을 근본적으로 바꾸지 않는 한 연구회를 통한 연구기관의 기능 조정이나 통합은 기대할 수 없다고 전문가들은 말한다.

외국의 경우 연구회가 산하 연구기관의 기본적인 행정업무를 떠맡아 수행함으로써 연구기관은 본연의 연구개발만 수행하도록 지원하고 있지만 우리나라 출연연구기관은 연구회체제 출범 이전과 동일한 수준의 행정지원인력을 자체 보유하고 있다. 각각 10명 안팎의 작은 기관에 불과한 5개 연구회가 산하 연구기관의 행정기능을 대신하기에는 제도적으로나 역량 면에서 불가능한 것이다.

그러다 보니 연구회는 매년 실시하는 연구기관 평가업무에 주력할 수밖에 없다. 그렇지만 평가는 산하 연구기관에 부담으로 작용할 뿐 아니라 평가 자체가 기관별 특성을 전혀 감안하지 않은 채 이뤄지고 있어 연구기관의 불만을 사고 있다. 일례로 산업기술연구회 산하 한국전자통신연구원과 한국한의학연구원의 연구성과를 동등한 잣대로 비교평가해 우열을 매긴다는 것 자체가 어불성설이 아닐 수 없다. 전자통신연구원 관계자는 우리와 한의학연구원을 비교하는 게 아니라 삼성종합기술원과 비교해야 맞는 게 아니냐고 말했다. 이와 관련, 한국행정학회는 최근 출연연구기관에 관한 보고서에서 연구회의 기관평가제도는 평가지표, 평가의 타당성, 평가결과 활용 등을 포함한 여러 측면에서 아직 상당한 문제점과 한계를 지니고 있다고 지적했다.

결국 연구회는 설립취지를 살리지 못하면서 `옥상옥'의 평가기관으로 변질돼 출연연구기관의 부담거리만 되고 있다는 비판이 높다. 이런 현상은 연구회 자체의 잘못이 아니라 연구회가 연구기관 지원기관으로서 제 기능을 다하도록 실질적인 힘을 실어주지 않은 데 기인한다고 연구회 관계자들은 말하고 있다.

기획취재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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