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칼럼] '금강산댐'과 어떤 과학기술자들...

글쓴이
최성우
등록일
2002-11-24 18:05
조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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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래 첨부하는 글은 자칫 오해를 불러 일으킬 수 있는 부분들이 좀 있습니다만...
아마 어떤 사람들(?)에게도 제 책의 글들 중에서 가장 부담이 되었던 글인 듯 합니다. 실은 몇년 전에 한 PC통신의 웹진으로도 나간 처음 글에는 훨씬 '적나라한' 사례들도 언급이 되었습니다만...
내용 중에서, '금강산 댐'의 안전성 여부에 대해서는 충분히 다른 의견이 있을 수 있다고 봅니다. (그것의 '정치적 위험성'이 아닌, 최근 제기되었던 '토목공학적 안전성' 자체에 대하여...)

그런데 한가지 강조하고 싶은 것은, 과학기술계에서 좋은 업적을 쌓은 유능한 분이나 원로 과학기술자들 중에서... (물론 그분들의 학문적 업적 자체는 충분히 존중해야겠습니다만...) 자신의 위치에 걸맞는 사회적 의식을 갖추지 못하고 자칫 '엉뚱한 얘기'들을 할 경우, 그것은 이공계를 홀대하고 천시하는 기득권 집단보다도 더 해악을 끼칠 우려가 크다는 점입니다. (예를 들면, "젊은이들의 이공계 기피현상을 어떻게 생각하는가?" 라는 질문에 대해, "모든 과학기술자들은 세속적 부나 명예, 다른 욕구 등에는 초연한 채 오로지 실험실에 틀어박혀 열심히 연구에만 정진해야 한다. 요즘 젊은 애들은 정신력이 문제다" 라는 식으로 답변한다면 어떨까요...? ^^)

또한, 최근들어 중국 국가지도층의 예를 거론하면서 이공인들의 공직 진출이나 정치참여 확대를 요구하는 목소리들도 높아지고 있습니다. (우리 과기인연합에서도 논평이 나갔고요...) 그런데, 현장 과학기술인들의 힘과 목소리를 모으고 대변하면서 그것을 바탕으로 정치나 행정에 참여하는 것과, 과, 순전히 개인적인 입신양명과 영달을 위하여 힘센 권력에 빌붙거나 굴종하는 것은 분명 구별을 하여야 한다고 봅니다.

그간 이공인들을 홀대하고 무시해 온 사람들을 비판하고 우리의 주장을 하는 것 못지않게, (그런 홀대가 정당했다는 것이 결코 아니라...) 과학기술인 내부에서는 과연 반성할 점이 없었는가 하는 것도 스스로 돌아보지 않으면 안될 것입니다.
일찌기 맹자가 얘기한 "무릇 남이 나를 업신여길 때에는, 나 자신에게는 그럴만한 원인이 없지 않았는지 스스로 성찰해 보라" (夫人必自侮 然後人侮之)는 구절의 현대적인 의미와 교훈을 생각해볼만 하다고 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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금강산댐 소동

최성우 (과학평론가; hermes21@nownuri.net)
- '상상은 미래를 부른다(사이언스북스)' 中에서 -

몇 년 전 TV의 한 시사관련 프로그램에서, 과거에 언론에 의해 왜곡, 편파적으로 보도된 사건들 및 허위, 과장된 오보들이 소개된 적이 있었다. 초등학교 시절부터 '반공정신의 화신'으로 기려져 온 이승복 사건은 신문기자에 의해 쓰여진 '소설'이었다는 것을 비롯해서, 수십 년 간의 독재정권 치하에서 언론의 굴종된 모습들이 적나라하게 드러나서 시청자들에게 상당한 반향을 일으켰던 것으로 기억된다.

그중에서도 특히 필자의 관심을 끌었던 것은 1986년에 전두환 정권에 의해 행해진 희대의 사기극 '금강산댐 사건'이었다. 필자가 대학에 있던 시절의 일이니 기억도 생생한데, 북한이 댐을 건설하여 수공으로 서울을 순식간에 물바다로 만들려 한다는 주장은, 권력유지의 방편이라 해도 치졸하기 그지없었다. 지금이 무슨 을지문덕 장군이 수나라의 대군에 수공으로 맞서 살수대첩 승리를 거두던 삼국시대도 아니고, 국제적으로도 웃음거리가 되었을 것임이 틀림없다.
그러나 불행히도 많은 국민들이 이 사기극에 꼼짝없이 넘어가고 말았다. '평화의 댐' 건설만이 살 길이라며 코흘리개들의 용돈까지 긁어모은 성금만 700억원이 넘고, 게다가 1300억에 가까운 국민의 혈세를 포함하여 2000억원이 무용지물의 건설에 낭비되었다고 한다.
하지만 순진하기 그지없는 우리 국민들만을 탓할 문제는 아니었다. 당시의 모든 신문, 방송들이 앞 다퉈 금강산댐의 무시무시함을 알리기에 바빴고, 그중에서도 TV 9시 뉴스에서 63빌딩이 차츰 물에 잠기는 그래픽 장면은 단연 압권(?)이었다.

그런데 더욱 한심했던 것은 적지 않은 저명한 과학자, 공학전문가들이 금강산댐의 위험성을 '과학적으로' 입증하기 위해 나섰던 일이다. 권력에 굴종하는 이른바 어용 지식인의 극치를 보여주었던 것이다. 그중에는 자발적, 열성적으로 참여한 것이 아니라, 정부가 제시하는 자료를 근거로 단지 수치계산만을 해준 것에 불과하다고 변명하는 이들도 상당수 있을 것이다. 그러나 자신들이 계산한 이론적, 과학적 뒷받침이 어떻게 악용될지는 뻔히 알 수 있었을 터인데, 독재정권의 음모를 폭로하는 용기까지는 아니더라도, 최소한 학자적 양심에서 그 일을 거부하거나 회피했어야 하지 않았을까? 실제로 정권 측의 부탁을 받고 일언지하에 거절한 학자들도 있었다고 한다. 아무리 과학, 공학 방면의 유능한 전문가라 한들, 그런 초보적인 정치의식조차 없었다면 커다란 문제가 아닐 수 없다.

불행히도 필자가 지금까지 보아 온 우리나라의 저명한 과학기술자들 중에는 매우 기초적인 정치적 소양도 갖추지 못한 사람들이 적지 않았다. 도리어 그런 것과는 일부러 무관해야 하는 것이 과학기술자들의 '정도'인양 치부되기도 하였다.
1980년대에 대학을 다닌 필자에게, 학내에서 시위 등이 있을 때마다 학생들의 대열을 막는 데에 동원되었던 교수님들의 행동은 어두운 기억으로 남아 있다. 1980년대 초반은 사복형사들이 학내에 상주하던 시절이었다. 교수님들의 입장에서는 그저 제자들의 안전을 우려했을 따름이라고 설교하셨을 것이고, 어찌 보면 그분들 역시 시대의 피해자라고 볼 수도 있을 것이다. 그러나 항상 그렇지만은 않았던 것으로 기억된다.
축제 때 학술행사 등을 준비할 때마다 학생들은 담당교수님과 피곤한 줄다리기를 하지 않을 수 없었는데, 교수님들이 학생들의 행사를 가로막으며 내세우는 이유들은 자연과학을 연구하시는 분들의 생각치고는 참으로 어이없고 치졸하기 그지없었다. 과학기술정책에 관한 학술 심포지엄을 필자와 후배 몇 명이 준비한 적이 있었는데, 정치적으로 민감한(?) 사안이 아님에도 불구하고 필자 역시 적지 않은 고생을 겪어야 했다. 행사 당일에는 무슨 007작전을 하듯 인쇄책자들을 학교 담장 너머로 간신히 학내로 들여 올 수 있었던 기억이 새삼 떠오른다.
물론 이공계열 교수님 중에 지식인적 사명감과 용기를 지닌 분들도 없지는 않았다. 암울했던 1980년대 초반 지식인 양심선언에 당당히 서명한 분도 있었고, 전두환 정권 말기의 개헌정국 때 시국선언을 주도하신 분도 있었다. 그 수가 인문, 사회계열의 교수님들에 비하여 지극히 적기는 했지만 더 이상 자연과학자들이 연구실에만 틀어박혀 있지는 않겠다는 용기를 보여주셨다는 점은 높게 평가하지 않을 수 없을 것이다.

필자가 그다지 유쾌하지도 않은 철 지난 기억들을 끄집어 낸 것은 이제 와서 특정 과학자들을 개인적으로 비난하려는 의도는 결코 아니다. 그러나 자연과학자들 역시 사회의 지식인의 일원으로서 잘못된 과거에 대한 최소한의 반성은 있어야 하지 않을까?
이제는 우리나라에 이만큼이라도 민주화가 실현되어, 예전처럼 과학기술 분야의 전문가들이 정권적 차원의 이용도구로 동원되는 불행한 일은 없으리라 생각된다. 또한 국가적 차원에서 과학기술의 중요성이 강조되는 오늘날, 과학기술자들의 창의적 연구들이 어느 때보다도 절실히 요구된다고 할 것이다.
그러나, 유능한 과학기술자 및 이공계 지식인들이 자신들의 위치에 걸 맞는 의식을 갖추지 못하거나 사회적 임무를 도외시한다면 이는 본인들 뿐 아니라 나라와 사회 전체를 위해서도 크게 우려되는 일이 아닐 수 없을 것이다.

  • 김덕양 ()

      열렬한 한 표! 과학기술자의 참여, 이제부터 제대로 시작해야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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