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겨레신문] "학술지, 닫힌 제도가 학계 망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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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2-12-03 11: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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학술지, 닫힌 제도가 학계 망친다

학술진흥재단(학진)의 학술지 정책과 대학들의 교수 연구업적 평가 방법이 ‘논문중심주의’를 강화해, 학자들의 자유로운 글쓰기를 억압하고 있다는 주장이 제기됐다.

계간지 <사회비평>의 겨울호 특집 ‘학술권력과 글쓰기’는 학진의 학술지 평가사업이 학술담론의 생산·유통 과정에 끼친 부정적 영향, 마광수 교수 재임용 탈락 사건을 빚은 대학의 닫힌 글쓰기 문화 등을 비판적으로 검토한 글들을 실었다. 1990년대 이후 ‘인문학 위기론’이 고개를 들면서 지식인 사회에 ‘표현인문학’ 등 새로운 글쓰기를 찾아보려는 움직임이 활발했지만, 현실의 제도와 관행이 이를 가로막고 있다는 진단이다.

‘마음을 아프게 하는 글쓰기’라는 글을 발표한 장덕현(부산대 교수·문헌정보학)씨는 학진의 학술지 평가가 회원이나 논문심사위원의 숫자 같은 가시적 데이터를 중시한다는 데 주목했다. 그는 현재의 평가방식이 소규모 전문 학술지나 대중적 학술지들을 소외시켜, 결국 “관습에 도전하는 글쓰기나 현실을 끌어안는 실천적 글쓰기를 억압하게 된다”고 주장했다.

학술지 평가사업은 학진이 자체적인 우수 학술지 색인을 만들고, 국내 학술지를 평가해 그 색인에 실을지 여부를 결정하는 방식으로 이뤄진다. 현재는 논문 게재율, 논문투고자의 전문성과 국제성 등을 기준으로 삼으면서, 동시에 전문가에 의한 주관적 내용 평가를 병행하고 있다. 회원의 숫자도 중요한 평가항목 가운데 하나인데, 이에 따라 많은 학회들이 몸집을 불리기 위해 공격적 회원배가운동을 벌이는 웃지못할 촌극도 벌어지고 있다.

장씨는 “대학과 연구기관들이 소속 교수의 업적을 가늠하는 요소로 학진의 학술지 평가를 사용하면서 부작용을 우려하는 목소리가 높다”고 밝혔다. ‘학진 등재 학술지에 논문을 몇 편 실었는가’만을 따지므로, 논문 인정이 안 되는 신생·군소 학술지들은 필자를 구하기 힘들 정도로 몰락한다는 것이다. 이는 결국 학문 후속세대인 젊은층의 새로운 학문적 지향과 글쓰기를 억압하고, 학문의 보수성을 부추긴다는 게 그의 생각이다. 장씨는 “현장지향성과 문체의 해방을 통해 학문의 대중화에 기여”하는 대중적 학술지의 장래도 어둡다고 본다.

장석주(시인·문학평론가)씨가 쓴 ‘논문이냐, 주체적 글쓰기냐’는 이태전 학계와 대중의 이목을 집중시킨 마광수씨의 교수 재임용 탈락사건을 새롭게 바라봤다. 중증 우울증과 지병으로 투병중인 마교수는 당시 재임용에 필요한 서류와 업적물로 에세이집 <자유에의 용기>, 장편소설 <알라딘 신기한 램프> 등을 제출했지만, 인사위원회로부터 “(논문이 아닌) 작품은 평가의 대상이 되지 않는다”며 부적격 판정을 받았다.

장씨는 마광수 교수가 재임용에 탈락한 것은 ‘도발적인 성담론으로 교수의 품위를 떨어뜨렸다’는 식의 인식 때문만은 아니라고 본다. 그는 자유주의적 세계관에 입각한 마광수 교수의 글쓰기가 딱딱한 형식의 논문과 어울리지 않는다는 데 주목했다. 실제 마광수 교수는 <자유에의 용기>에서 “형식이나 논리로 억지 허세를 부리다 보면 속 빈 강정이 되기 쉽다”며 “학위논문이라 할지라도 에세이의 형태를 갖추는 게 더 좋다”고 제안하기도 했다. 장씨는 재임용 탈락 사건을 “마광수 교수의 글쓰기 방식이 논문만을 고집하는 학술권력의 경직된 평가기준과 정면충돌한 결과”라고 주장했다.

임주환 기자 eyelid@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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