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칼럼] "에디슨의 두 얼굴"

글쓴이
최성우
등록일
2002-12-03 21: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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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랜만에 매우 "...X파일"적인 글을 하나 첨부합니다.  제가 몇 년 전에 이 글을 처음 L연구소 게시판에 썼을 때에, 읽어 본 사람들이 "무척 충격적이었다" 는 반응들을 보이더군요...^^

회원게시판에도 며칠 전에 에디슨이 잠깐 언급된 글이 하나 올라왔던데...
에디슨이야 뭐 모르는 사람이 없겠지만, 여러 가지로 연구의 대상이 될 만한 인물이기도 하지요.
제가 보기에는 앞으로는 더 이상 에디슨과 같은 사람은 나오기 힘들지 않을까 싶습니다. (아래 글에서도 언급했지만...)  꼭 에디슨만한 천재가 나오기 힘들다는 의미라기보다는, 이제는 연구개발의 중요한 성과물이 한 두사람의 뛰어난 천재에 의해 좌우된다기 보다는, 집단적, 조직적 R&D에 의해 이루어지게끔 바뀌었기 때문이지요...  (물론 리더와 개인적 창의력을 간과할 수는 없겠습니다만, 에디슨처럼 무더기로 중요한 발명품들을 쏟아내기는 매우 어렵겠지요...)

또한 그가 한복판에 서 있던 직류/교류 논쟁은 기술발전사에서도 매우 중요한 의미를 갖습니다.  이밖에 후문으로, 그가 경쟁자였던 니콜라 테슬러와 함께 노벨 물리학상을 '탈 뻔' 했다는 이야기 등도 있습니다만, 다 쓰자면 너무 길어질 듯 해서 이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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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에디슨이 만든 사형기계

                                                    최 성우 (과학평론가; hermes21@nownuri.net)
                                                    - '과학사 X파일(사이언스북스)' 中에서 -


천여가지가 넘는 발명을 했다는 에디슨(Thomas A. Edison; 1847-1931)과 그의 업적에 대해서 새삼스럽게 논한다는 것은 정말 진부한 일일 것이다. 그의 전기는 청소년들에게 빠지지 않는 '단골메뉴'였고, 그가 남겼다는 '천재란 99%의 노력과 1%의 영감의 결실'이라는 격언도 귀 아프게 들었을 것이다.
오늘날에는 과학기술상의 중요한 발명들이 천재적인 발명가 개인보다는, 연구기관, 민간기업 등의 조직적인 대규모의 R&D(연구개발)에 의해서 이룩되는 경우가 대부분일 것이다.
적어도 필자가 보기에는 '과학자'라고 보기에는 어려운 에디슨과 같은 개인발명가가, 과학기술의 발전에 큰 기여를 한 중요한 발명들을 무더기로 이룩한 경우는 아무래도 에디슨이 마지막 인물이 되지 않을까 여겨진다.
그러나, '발명왕', '멘로파크의 마술사' 등의 숱한 찬사를 들어 온 이 위대한 발명가에게도 잘못은 있었다. '천려일실(千慮一失)'이라는 고사성어는 바로 이런 경우를 두고 하는 말인지도 모르겠다.
전기의 송전방식으로서 교류의 채용에 반대하고, 심지어 이를 방해까지 하여 교류송전 방식의 발전을 늦춘 것은 매우 큰 잘못으로 비판 받을 만하다. 더우기, 상대방을 공격하기 위하여 '전기의자'를 사형집행에 채용하도록까지 했다는 사실을 아는 사람은 많지 않을 것이다.

에디슨 이전에도 백열전구를 발명하려 애쓴 사람들이 꽤 있기는 했으나, 그들이 만든 전구는 수명이 몇초밖에 안되는 등, 제대로 성공한 사람은 아무도 없었다. 에디슨이 전구의 개발에 본격적으로 뛰어든 것은 1878년 무렵이었는데, '멘로파크의 마술사'가 곧 마술을 부려줄 거라고 기대했던 약삭빠른 자본가들은 다투어 에디슨을 후원해 주었다. 덕분에 에디슨은 연구비 걱정없이 발명에 몰두할 수는 있었으나, 전구의 개발은 에디슨에게도 결코 만만한 일이 아니었다.
그는 처음에는 백금선을 이용한 전구를 만들려 했으나, 백금은 여러 가지 면에서 실용성이 없다는 것을 깨닫고 다른 여러 재료들을 써서 시험해 본 끝에, 드디어 무명실을 탄화시킨 필라멘트로 만든 진공전구를 40여시간 지속적으로 켜는 데에 성공하였다. 세계 최초의 백열전구에 사람들이 환호성을 올린 것이 1879년 10월 21일의 일이었다.  
에디슨은 전구를 더욱 개량하여 수명을 늘리는 데에 주력하는 한편, 전구를 켜는 전기의 공급에 필요한 송전선, 소켓, 스위치, 퓨즈 등의 부품을 개발하고, 자신의 연구소를 비롯해 여러 발전소들을 세워서 많은 가정의 전등에 전류를 공급하였다. 에디슨의 이 연구소가 바로 오늘날 미국에서 1, 2위를 다투는 대기업인 GE, 즉 제너럴 일렉트릭사의 모태이기도 하다. 그러나 에디슨은 송, 배전에 110V의 직류전류를 썼기때문에, 낮은 전압과 전선의 저항으로 인한 손실이 매우 커서, 발전소에서 2-3마일 바깥은 제대로 송전할 수가 없었다.

그러던 중, 사업가 웨스팅하우스(George Westinghouse; 1846-1914)가 전력공급 사업에 새로 뛰어 들게 되었다. 그는 철도용 에어 브레이크를 스스로 발명하였고, 사업화에도 크게 성공하여 많은 돈을 벌어 들인 인물이다.
중간 손실이 큰 직류송전방식의 문제를 해결하려 고심하던 그는, 변압기를 통한 교류송전방식을 추진하였다. 변압기는 패러데이의 전자기유도 법칙에 의해 전압을 변환해 주므로, 전압을 원하는 곳에서 원하는 비율로 바꾸어 줄 수 있으며, 오옴(Ohm)의 법칙에 따르면 송전손실은 전압의 제곱에 반비례하게 된다.
이미 1881년에 프랑스의 골라르(Lucien Gaulard)와 영국의 깁스(John D. Gibbs)가 일련의 교류송전체계를 고안하여 변압기의 특허를 취득한 일이 있었다. 웨스팅하우스는 1885년에 이 특허를 구입하고 웨스팅하우스 전기회사를 설립하여 본격적인 원거리 송전사업을 시작하였다. 발전소에서 송전할 떄에는 전압을 크게 하여 중간의 손실을 줄이고, 수신소에서는 전압을 낮추어 수신함으로써 일반 가정에서는 안전한 낮은 전압을 쓰도록 하는 오늘날과 같은 송전방식을 이용한 것이었다.
1886년 3월에는 4마일 거리의 송전에 성공하였고, 추수감사절날 밤에는 버팔로시의 수많은 전등을 켜서 각광을 받았으나, 교류 송전방식에도 약점은 있었다. 당시에는 효율적인 교류전동기가 없었다는 점이다. 그리하여, 당시의 전기업계, 학계에서는 교류가 좋은가, 아니면 직류가 좋은가를 둘러 싸고 상당한 논란이 이어지게 되었다.
그러던 중, 교류 송전방식에 강력한 원군이 나타나게 되었는데, 크로아티아 출신의 테슬라(Nikola Tesla)라는 인물이었다. 그는 한때 에디슨의 연구소에서 일한 적도 있었는데 많은 특허를 가지고 있던 유능한 사람이었고, 1888년에 교류방식에 매우 적합한 전동기를 발명하여 특허를 취득하였다. 웨스팅하우스사는 즉시 이 특허를 구입하였고 대도시에 알맞는 교류 전력망을 설계하여 교류 송전 사업에 더욱 박차를 가하였다.    

이렇게 되자 송전사업의 선발주자격이었던 에디슨은 교류 송전방식에 갈수록 위협을 느끼고, 자신의 직류 송전방식은 안전한 반면, 교류 송전방식은 위험한 것이라는 선전공세를 적극적으로 펼쳐 나아가기 시작했다. 정상적인 방법으로는 경쟁이 어렵게 되자, 상대방을 악의적으로 비방하는 비열한 수법을 쓰게 된 것이다.
자신의 연구소에 기자, 관계자, 관람객 등을 대거 모아 놓고 개, 고양이들을 고압의 교류전류로 태워죽이는 끔찍한 실험을 반복하였는데, 이 때문에 근처의 개와 고양이의 숫자가 크게 줄어들었다고 한다. 더우기 뉴욕주의 교도소에서 사형집행 방식으로 기존의 교수형 대신에 새로운 방식을 모색하게 되자 고압의 교류를 쓰는 전기의자를 발명하고, 자신의 영향력을 이용하여 이것이 사형방식으로 채택되도록 로비를 벌였다.
결국 전기의자가 새로운 사형집행 방식으로 결정되자, 에디슨은 사람을 사서 웨스팅하우스사가 제작한 교류발전기를 교도소에서 이용하도록 하였고, 이후 더욱 대대적으로 '교류의 위험성'을 부각시켰다.
그러나, 에디슨 측의 악랄한 선전공세에도 불구하고 교류 송전사업은 진전을 거듭하여, 1893년 시카고의 만국박람회에서 25만개의 전등을 켜는 계획에 에디슨 진영을 제치고 낙찰받는 데에 성공하였다. 콜롬부스의 신대륙 발견 400주년을 기념하기 위하여 열린 이 박람회의 개회식에서 미국 대통령이 스위치를 누르자 웨스팅하우스사가 만든 교류발전기가 돌아가면서 박람회장의 온갖 전등이 대낮처럼 환하게 켜졌고, 이 장면은 많은 사람들에게 강한 인상을 주었다.
또한, 나이애가라 폭포에 세계 최초의 수력발전소를 건설하는 공사도 웨스팅하우스사가 맡게 되어, 1895년부터 교류 전력을 생산하는 나이애가라 발전소가 가동되기 시작하였고, 이듬해에는 그로부터 40km 떨어진 버팔로시에도 교류전원이 공급되었다.
이를 계기로 송전방식을 둘러싼 교류 방식과 직류 방식의 대결은 결국 교류의 승리로 끝나게 되어, 오늘날에도 전세계의 가정 곳곳에 교류전류가 송전되고 있다.

물론 직류방식을 끝까지 고집한 에디슨에게 이러한 잘못이 있었다고 해서 그의 다른 업적들이 과소평가 되어질 수는 없으며, 의도적으로 그의 명예에 흠집을 내려는 것도 결코 아니다. 다만, 근래에 '세계 소프트웨어 업계의 황제'로 군림하고 있는 빌 게이츠 같은 인물도 독과점, 불공정거래 등의 문제로 심심챦게 비판의 도마 위에 오르는 것을 보면, 우리는 천재적인 인물들에 대하여 좀 더 다각도로 이해할 필요가 있을 듯하다.

  • 데스티니 ()

      예전에 수업듣다가 교수님이 그러시던데 직류가 장거리 송전에는 더 좋다구 그러시던데요. 요즘에는 교류말고도 전압을 높이는 방법이 있으니까 직류로 쓰면 더 효율적이라고 말씀하셨던 기억이.. -_- 그러고 보면 천재는 선구자적 기질이 있는거 같다는.. -_-

  • 임호랑 ()

      음... 그게 초전도 전선이 실용화된다는 가정하에서지요. 초전도 전선은 교류에서는 자기회로 저항때문에 손실이 있고, 직류에서만 손실이 0이 됩니다. 그리고 전압 올리고 낮추고 하는 것은 지금은 직류 콘버터로 쉽게 할 수 있는 전력전자 기술이 개발되어 있으니까 고압직류송전을 얘기하는 것입니다. 문제는 상용 초전도 전선인데... 아직은 꿈에 불과하고, 실험실에서도 만족할 만한 결과가 안 얻어졌습니다. 실용화까지는, 상온 초전도 전선 제작기술,  대전류 송전 기술, 인버터 배전 기술, 기존의 교류 부하를 직류로 바꾸는 문제 등의 난제가 있습니다. 천재라 해도 영웅시하는 것(그 사람은 옳고 나는 틀리다식)은 옳지 못하다는 생각입니다.

  • 최성우 ()

      초전도 전선의 실용화을 염주에 둔 직류송전의 가능성도 그렇지만...  교류전원의 전자파 간섭에 의한 폐해 등이 거론될 때에도 에디슨을 떠올리는 사람들이 가끔씩 있더군요...  선구자적 기질이라...  그건 지나친 비약으로 들리네요.  역사적 사건들을 오늘날의 시점에서만 바라보면 큰 무리가 따를 수 있습니다...

  • 이민주 ()

      직류를 이용하면 트렌스포머 등을 못쓰고 SMPS등으로 다 바꿔야 하는데. 간단한 트렌스 포머를 이용한 기기들이 많지 않나요.. 심지어는 항공기 내부의 전원도 교류 400hz를 쓰는데.. 교류가 실제 사용에 편리한 점도 있지 않나 싶습니다.

  • 한기진 ()

      교류전동기를 만든 테슬라는 에디슨과 비견될만한 인물임에도 그다지 크게 부각된거 같지 않습니다. 여러가지 다른 시각도 있는거 같구요. 다른분들은 어떻게 생각하시는지 궁금합니다. 

  • 닐리리 ()

      재미있게 잘 보았으며 여러가지 많이 배웠읍니다. 앞으로도 이글과 같이 많은 좋은 글들을 보기를 기대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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