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re] 연구개발시스템 업그레이드 방안(4) v.0.9

글쓴이
임호랑
등록일
2003-01-30 20:3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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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 연구개발 전략 이원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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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현재 우리나라 과학기술 발전 전략을 한마디로 요약하자면 ‘선택과 집중’이라고 할 수 있다. 6T(IT, BT, NT, ST, ET, CT)를 중심으로 대형 사업단을 구성, 대규모의 연구비를 집중 투입하는 방식이다. 이와 같은 방식은 선진국을 최단시간에 따라잡고 신산업에서만큼은 대등한 출발선에 서고자 하는 전략에서 나온 것으로, 70년대초 이후 30여년간 나름의 성과를 거두었음은 부정할 수 없다.

> 이러한 ‘선택과 집중’ 전략의 핵심은 벤치마킹, 나쁘게 말해 ‘모방’인데, 7~80년대엔 선진국에서 이미 산업화가 된 분야(제철, 조선, 자동차 등)를, 8~90년대엔 선진국에서 한창 자리잡으려고 하는 분야(반도체, 컴퓨터등)을 단시간내에 국내에서 구현함으로써 경제성장의 핵심 동력으로 작용할 수 있었다. 90년대 이후엔 선진국에서 ‘근미래에 하려고 하는’ 분야(이동통신, 평면 디스플레이 등)에 집중투자함으로써 결과적으로 선진국과 대등한 선상에서 출발, 거의 동시에 산업화에 성공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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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00년대들어 ‘다음 먹거리’를 준비함에 있어 더 이상 이러한 벤치마킹 전략은 실효를 갖기 어려워졌고, 결국 선진국들조차 산업화에 확신이 없는 분야에까지 접근할 수밖에 없는 상황을 맞이하였다. 선진국들은 선택과 집중보다는 과학기술의 다양성을 유지하는 중 돌발적으로 경쟁력을 갖추게 되는 경우가 많기 때문에, 경제규모나 발전단계상 선택과 집중 전략을 견지할 수 밖에 없는 우리나라로서는 그 대상을 선정하기가 어려워진 상황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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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6T중 IT는 이미 한국 경제의 핵심 산업으로서 지속적으로 국제 경쟁력을 갖고 나아가야 하므로 선택되었다. ST, ET. CT는 선진국에 비해 아직 낙후한 분야로서 산업화의 모델이 있기 때문에 선택되었다. 그러나 BT의 경우엔 세계에서 유일하게 미국만이 수익을 내고 있는 바이오 산업을 보유하고 있는 상황이며, 천문학적인 투자가 요구되는 분야이다. NT의 경우는 미국조차도 산업화로 이어질지 확신하지 못하고 있으며, 일부에서 ‘NT 무용론’, ‘NT 허상론’까지 등장하고 있다. 물론 NT의 범위를 넓게 보자면 이미 산업화가 진행되고 있는 측면도 있으나, 선택과 집중의 대상이 될 수 있는지에 대해 깊이 있는 고찰이 이루어진 바 없이, 미국 대통령의 한마디에 선택되었다는 해석이 강하다. 바로 이런 경우, 즉 BT나 NT의 경우에서 볼 수 있듯이, 선진국으로 도약하고자 하는 시기의 과학기술 전략 수립은 만만한 일이 아니다.


--> 우리나라 과학기술 근대사를 어떻게 이해할 것인가에 대해서는 더 연구가 필요하다고 봅니다만, 우리나라 과학기술계의 발전을 간단히 두 시대로 나누어 보자면 이렇게 볼 수 있다고 봅니다. 사실 박정희 시대와 이후 시대로 나누어 각각 20년간씩 나누어 본다면 큰 무리가 없을 것입니다. 60-70년대는 '공업입국'의 기치를 내걸고 일본의 하청기지로서 관주도로 기능인력(공고 졸업자 및 직업훈련원 졸업생)이 중심이 되어, 섬유, 신발, 전자공업 등의 단순제조업 및 중화학, 제철, 조선, 건설 등의 노동집약형 산업을 발전시킨 것으로, 80-90년대는 뚜렷한 모토가 없이 민간의 주도로 모방개발 및 독자개발이 시작되어 산업인력(2년제 및 4년제 대졸자 중심)이 중심이 되어, 자동차, 가전, 반도체, 그리고 철강, 조선, 중화학 공업을 세계적 수준으로 도약시킨 단계라고 봅니다. 즉 연구개발이 중심이 된 산업분야는 반도체, 가전을 포함한 IT분야 일부에 불과하고 중급의 기술을 보유한 산업인력이 중심이 되어 국부를 창출했다는 것입니다. 이제 21세기를 맞아 '기술입국'이 한국의 미래를 책임져줄 수 있을 것이고, 이는 석박사급의 연구개발 인력이 중심이 되고, 산업인력/기능인력은 산업계와 생산현장을 책임지는 협력-분담체계의 선진국형 산업체제의 정착을 의미하는 것입니다.  여기서 굳이 선택과 집중이란 말대신, Agency를 중심으로한 연구기획 능력이 대폭 보강되면 분야별로 해야할 과제가 선정될 것이고 이 때 시장성, 상품성, 기술의 전략적 가치, 소요 예산, 가용인력 등이 종합적으로 고려될 것입니다. 위에서 6T에 대한 각각의 평가는 아주 적절하다는 생각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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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 실태와 문제점
>1. 6T를 중심으로 국가 과학기술 연구의 축이 형성되면서 과학기술 연구의 다양성이 위협받고, 특정 분야의 인력이 집중 양성되고 있다. 선택해서 집중했던 분야가 정답이 아니었다면? 다양성에 기반한 후보주자가 있는 선진국에 비해 우리나라가 받을 타격은 매우 심각할 것이다. 특히 중국에 의해 우리나라가 현재 경쟁력을 가지고 있는 분야를 침탈당한다면, 속된 말로 ‘먹고 살 일이 막막해지는’ 상황까지 상상할 수 있다.

>2. 6T에서 소외된 과학기술인들의 사기가 저하되어 있으며, 양지를 쫒아 너도나도 6T의 가면을 씀으로써 진짜 능력있는 전문가를 구별할 수 없는 ‘물타기’현상이 일어나고 있다. 또, 연구비 편중과 학생들의 몰림으로 인해 가뜩이나 기피되고 있는 이공계 내에서도 분야별 불균형이 심화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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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 6T라는 구분이 오히려 분야간 융합을 방해하고 있다. 특히 모든 분야와 관련이 있는 국방기술이 따로 떨어져 있어 국가 연구개발에 불합리성을 증가시키고 있다.

--> 6T 중 사실은 IT가 거의 대부분을 차지하고 있습니다. 우리나라 벤처의 90%가 IT분야이며, 앞으로도 상당기간 전자공학과 전산학이 미래산업을 주도할 것으로 보입니다. 항공기, 자동차와 같이 종래 정밀기계, 항공공학이 주도하던 영역도 전자공학이 차지하는 비중이 50-80%까지 커지는 추세입니다. 미국의 방산업체, 예컨대 Raytheon사나 Northrop Grumman같은 회사도 불과 10여년 전까지만 해도 항공분야의 매출이 40-80%였었는데, 지금은 전자/정보분야의 매출이 60-80%를 차지하고 있습니다.  분야별로 우리나라의 경우 항상 지금과 같았던 것은 아니고, 70년대에는 화학/화공, 원자력, 정밀기계가, 80년대에는 전자공학이, 90년대 이후에는 전산학이 두각을 나타내고 인기가 있는 등 변천을 거듭해왔습니다. 중요한 것은 박상욱님도 지적했다시피 6T의 가면을 쓰는 것이 아니라, 각자의 전공을 변화시켜 관련 산업과 기술을 개발해내는 것입니다. 그리고 IT를 중심으로 하여 다른 5T 및 그 외의 다양한 분야를 개척해나가는 'IT중심 spin-off' 전략이 필요하지 않나 생각합니다. 예컨대 첨단 전투기 개발/생산비의 60-70%가 IT분야입니다. 종래 전투기의 경우 60-70%가 항공/기계공학적이었던 것과는 대조적입니다. 그리고 많은 인공위성 기술의 70% 이상이 전자공학에 바탕을 두고 있습니다. 따라서 IT를 중심으로 하여 다른 기술분야를 끌어들여 큰 시스템을 구성하는 것이 현대 과학기술에 있어서는 중요한 전략이 될 수 있습니다.  (제 전공이 전자공학이다보니 이런 의견을 내놓기가 조심스럽긴 합니다만, 오해를 무릅쓰고라도 사실관계에 바탕을 두고 논의를 해야 한다는 입장입니다. 이럴 때는 제 전공이 물리학이나 산업공학, 경영과학었으면 참 좋겠다는 생각이 드네요. 적어도 비교적 객관적이라는 얘기는 들을 수 있을 테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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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 개선 방안
>1. 국가 과학기술 발전 전략을 이원화할 것을 요구한다. 즉 산업화를 대비하는 분야와 미래를 대비하는 기초 분야로 이원화하여, 산업화 분야의 경우엔 과감한 선택과 집중 전략을 유지하되, 기초 분야는 억지로 6T로 편입시키지 않고 다양한 연구 분야가 유지되도록 최대한 지원한다.

--> 현재 19%에 불과한 기초과학 지원비를 선진국 수준으로 25%정도로 올리는 것은 새정부 청사진에도 나와 있는데, 제 생각은 선진국의 경우에도 목적과 목표없이 연구비 지원을 하지 않기 때문에, 명목을 기초과학이라고 애매하게 하지 말고, '원천/전략기술 연구'로 하여 미래의 불확실성에 대비하는 것을 목표로 하였으면 합니다. 사실 불확실성 극복을 위해 치열하게 실험하고 조사연구하는 분야가 기초과학 분야인데, 여기에 뚜렷한 목적과 목표가 없어서는 곤란하다는 생각입니다. 대부분의 '우연한' 발견도 사실 뚜렷한 목표를 가지고 연구하다가 나온 것이기 때문에, 이런 명목으로 과제가 부여되고 철저히 관리되어야 국가가 전체 연구개발비의 25%나 되는 많은 비용을 연구개발에 투자할 당위성이 있게 되는 것입니다. 그래서 전 '원천/전략기술 연구'분야 관리도 각 Agency에 맡겨야 한다고 봅니다. 왜냐하면 Agency는 달성해야 할 뚜렷한 큰 목표가 있는 곳이고, 무엇이 불확실한지, 어떤 분야는 할 필요가 없는지를 가장 잘 판단할 수 있는 조직이기 때문입니다.

>2. 소규모 장기 과제를 많이 신설하고, 특히 신진 연구 인력과 지방대 위주로 창의적인 과제를 많이 배정하여 지방대 공동화를 막고 학문과 기초과학/공학의 다양성을 유지한다.

--> 미국도 그렇지만 우리 주변 국가중에 대만이 이런 제도를 채택하고 있습니다. 한 개의 과제를 과제의 성숙도에 따라 2-3 단계로 나누어 첫째 단계에는 4-8개의 연구팀에게 동일한 소액과제를 주어 경쟁을 시키고, 다음 단계에 가서는 다소 예산을 늘여 2-3개의 팀에게 과제를 주어 경쟁를 시킨 후 마지막 단계에 가서는 단일팀에게 대부분의 본 예산을 주는 식으로 합니다. 어떠한 경우에도 연구개발비는 경쟁을 통해서 배분이 이루어지도록 해야지, 나눠먹기나 학비보조금의 명목으로 지급되어서는 안된다고 봅니다. 과제를 따서 학생을 두고 학자금을 주는 것은 옳지만, 교육비 명목의 예산을 연구개발비로 주어서는 안된다는 것이죠. 과학기술 예산은 사회복지 예산이 아니기 때문에, 자본주의적 논리에 따라 철저하게 경쟁주의 원칙에 입각해서 집행되는 것이 바람직하다고 봅니다. 

기초과학의 경우 학부는 교육의 영역이고, 대학원은 연구개발의 영역이라고 볼 수 있는데, 학부는 타 이공계 학과와 같이 지원을 해주고, 대학원의 경우 위에서 언급한 대로 미래전략분야 연구 임무를 수행토록 한다면 많은 창의적인 연구과제가 나올 수 있을 것으로 봅니다.

한가지, 미국의 경우 수학, 물리학, 화학, 생물학, 지구과학 등의 기초과학 분야 연구비의 상당액은 국방연구개발비에서 나옵니다. 그만큼 군사과학기술분야가 미래전략기술 연구를 많이 필요로 하고 있다는 것이죠. 우리나라의 경우 학계, 특히 기초과학 분야의 경우 군사과학기술에 대한 막연한 거부감을 갖는 경우가 많은데, 이에 대해서는 군사과학기술과 과학기술자의 윤리에 대해 차제에 명확한 철학적 정리가 필요하다고 봅니다. 

>3. 연구개발 인프라와 역량이 이미 수립된 몇몇 대학을 선정하여 산학연 연계를 더욱 강화한다. 핀란드, 독일식 모델을 도입하여 산학 통합 수준의 산업화에 대비한 연구개발을 수행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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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 기초과학 연구비 투자 비중을 높이고, 특히 거대 시설물(가속기, 망원경등) 이용 분야의 경우 연구원 해외 파견을 활성화하고 국제간 연구 프로젝트를 수립하여 큰 시설투자 없이 높은 효과를 얻을 수 있도록 지원한다.

--> 앞서 언급한 대로 기초과학 연구비 투자비중을 높여야 하는 당위성을 미래의 불확실한 전략분야 연구로 설정하고, 구체적인 원천/전략기술 연구 과제를 선정해 나간다면, 그리고 군사과학기술로부터 상당수의 과제를 수주받을 수 있도록 한다면, 기초과학 육성(단순히 기초과학분야 발전이라기 보다는 IT등과의 융합이 되어야 할 듯)은 구호가 아닌 현실이 될 수 있을 것 같습니다. 해외 파견연구는 좋은 것 같군요. 또 해외에서 올 수 있도록 하는 것도 중요하겠죠.

>5. (3)주제에서 언급한 인력 수요 예측 기구에 다양한 분야별 전문가로 구성된 미래 산업 예측 연구소를 두고, 미래에 육성할 산업 분야와 연구개발 대상을 합리적인 과정을 통해 연구, 도출한다.

--> 인력예측을 위해 따로 연구소를 세우기 보다는 현재의 조직중 통계청이나 각 정부부처의 기능을 잘 활용하되, 각 분야별 인력 예측 임무 역시 Agency같은 곳에 주는 것이 적절할 듯 합니다. 이렇듯 Agency의 기획 기능은 매우 긴요한데, 지금까지 우리나라에는 이러한 Agency의 필요성이 너무 간과되어 왔습니다. 속히 기존의 기획, 평가 기관을 정부 부처로부터 독립시키고, 정출연의 기능 중 일부를 분리하여 8개 내외의 Agency를 출범시키는 것이 필요합니다. 새정부의 첫 단추를 Agency 체제 출범으로 시작해도 좋다는 생각입니다.
  • 임호랑 ()

      이상 제 의견제시를 마칩니다. 좋은 토의 주제였다고 생각합니다.

  • 박상욱 ()

      저는 Concept proposal을 썼다고 생각했는데, 임호랑님께서 살을 붙여 주셨군요. 수고하셨습니다.

  • 유종완 ()

      이 글을 바탕으로 우리 모임을 위한 큰 틀을 구상함도 가능하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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