과학자가 아닌 사람에게 과학에 대해 이야기 하기 - 바라쿠다

글쓴이
scieng
등록일
2004-12-30 16:58
조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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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가 여기 온지 얼마 되지도 않았을때, 학교에서 무료로 하는 이공계 박사과정 학생들을 대상으로 하는 수업을 들은적이 있습니다.
아실지 모르겠지만 유럽애들은 박사과정에 이론수업이라는 과정이 없습니다. 우리나라는 미국방식을 따라서 박사과정에서도 이론수업을 듣고, 시험을 통과해야 논문을 쓸 자격이 주어집니다.
대신, 여러가지 강좌를 개설하고, 학생들이 자유롭게 신청해서 듣도록 합니다. 과목들은 자신이 공부하는 전공에 대한 이론수업이 아니라 "컴퓨터 활용하기"해서 한국에선 기본으로 다 알고 있는 엑셀 쓰는법, 파워포인트 쓰는법, 등등을 가르치고, "시간 활용하기"해서 어떻게 시간 배분을 잘해야 실험하면서 논문읽고, 박사학위 마치기 전에 안 미치나 가르키고, 논문 쓰는법, 연구비 신청하는 법 등등의 자신이 하는 공부와 직접적인 관련은 없지만, 박사과정을 마치면서 알아두어야 할 부차적인 기술에 대한 걸 가르칩니다.

그중에 하나가 "과학자가 아닌 사람에게 과학에 대해 이야기 하기" 였고, 영국에 도착한지 얼마되지도 않아 잘 알아듣지도 못하고 말하지도 못하는 제가 아무생각없이 덜컥 그 수업을 신청을 했습니다.
인터넷에 대략적인 설명이 있었는데, 대략적인 설명만으로는 제가 겪어야할 악몽을 상상하기 힘들었습니다.

수업에 갔더니 처음에 한것이 몇명씩 그룹을 만드는 것이었습니다.
그 다음에 이틀인가에 거쳐 들은 수업 내용은 "초. 중생에게 가장 기본적인 과학개념을 어떻게 잘 설명할까"라는 제목하에 현장에서 직접 그 일을 하고 있는 사람이 와서 강의를 했고 나중에는 그걸 학생들에게 시켜보더군요. 한명씩 앞으로 나와서 '콧물이 왜 나요?' '나뭇잎은 왜 붉어져요?' '어떤새는 왜 낮에 울고 어떤새는 왜 밤에 울어요" 등등의 질문에 대한 답을 초등생 버젼으로 하라고 시키더군요.
등짝에 땀이 주르륵...죽죽

그 다음엔 인터뷰하는 연습을 시켰습니다.
역시나 그 분야의 전문가가 와서 마이크랑 녹음기 앞에 놓고 처음엔 어떤식으로 인터뷰 해야 하는지 알려주고 좀 있다가 한명씩 가서 진짜로 자기의 전공에 대한 인터뷰를 합니다.
그리고 오후에 자신의 인터뷰 내용을 다시 들어가면서 어떻게 해야 일반대중에게 자신이 하는 일에 대해서 짧은 시간에 효과적으로 알릴수 있는가에 대한 조언, 인터뷰 당한 사람의 인터뷰시 문제점등을 조언해 줍니다.
넌 영어부터 잘 하라데.....

세번째는 신문에 칼럼쓰기
역시나 신문을 읽는 독자들에게 자신의 전공을 설명하는 글쓰기.
세명이서(전공이 서로 다른) 서로 다른 사람의 글을 읽고, 그 사람의 글에서 못 알아먹겠는것 지적하기, 전문가의 피드백등등이 이루어지고, 젤 잘쓴 애한테 상도 줬습니다.

그 이외에도 이마에 삐질삐질 땀나게 하는 수업 내용이 많았는데 지금은 생각이 안나고,

그 수업을 들으면서 좀 부럽기도 하고 무섭기도 했던게,
그 수업이 정부에서 보조를 받으면서, 정부의 시책에 따른 수업이라는 점.
즉,정부에서 돈 들여서 박사학위를 가진 과학자들에게 일반일들에게 자신의 일을 설명할 필요성을 느끼게 하고 그 방법을 가르친다는점.

그리고 '초딩에게 과학 설명하기'는 실제로 매년인가 2년에 한번씩인가 과학 페스티벌 형식으로 해서 개최되고, 거기에 박사과정 학생들이 많이 아르바이트를 한다는것.
실제로 제가 그 수업을 들을때도 그 분야의 전문가가 와서 지가 애들한테 하는 수업비디오을 보여주고 기타등등 수업을 마치고 나서, 이번에 과학페스티벌 하는데 자기 도와줄 수 있는 사람 신청하라고 하더군요.

이공계에 대한 대책도 시급하지만, 제겐 어쩐지 영국애들의 이런 교육방식이 더 무섭고 더 효과적일거라는 생각이 듭니다.

또다른 이야기는
저 역시 석사 마치고 한달에 70만원에 보너스도 없이 일했습니다. 제가 한달에 70만원을 받는다는 사실보다 더 저를 열받게 하고 기운떨어지게 했던건, 돈이 없어서 70만원을 주던 저같은 연구원을 짤라야 하고, 고용을 제한하고 3개월짜리 계약직으로 직급 전환을 해야 한다고 주장하던 국가연구소에서 몇년동안 실적이 없어서 그나마 국가에서 주던 연구비마저 끊겼던 책임연구원을 그 다음해에 아무일 없었다는 듯이 다시 고용했다는 점입니다. 그 책임 연구원이랑 같이 일하던 사람들은 연구소내 다른 실험실로 흩어졋다가 일년후에 다시 모였지요

몇년이 지난 지금도 저는 아직도 그 연구소를 안 좋아합니다. 비효율적이고 무기력하며 거대하기만 한 공룡의 느낌이거든요.

그 연구소에 쓰는 돈, 조금만 줄이면 우리도 어린 세대에게 그런 교육하고, 조금이라도 관심만 있으면 대학에서 돈 많이 안들이고 박사과정 학생들에게 그런 교육 할 수 있습니다.

돈이 없어서 우리나라 과학이 발전 못한다는 말 맞지만, 그게 전부는 아닙니다.
돈 낭비하는 하마들이 있거든요.
당장 국가에서 운영하는 연구소들 (임업연구소, 국립 보건원, 농촌 진흥 연구소, 화학연구소...)의 실적들을 한번 보시고 비용대비 결과를 기업연구소와 비교해 보시면 압니다.




 
 

 
 
임호랑 (2004-05-24 18:15:11) 
 
흥미있는 이야기군요.
학교에서 가르치고 싶은 것을 가르치는 것이 아니라, 학생들에게 필요한 것을 가르치는 것으로 교육 방향이 바뀌어야만 가능한 것들입니다.

논문쓰는 법, 연구비 집행하는 법, 다른 사람 설득하는 법, 과제 기획하는 법, 강의하는 법 등 사회생활하는데 필요한 것들이 무지하게 많은데, 우리나라 학교에서는 수학공식에 기반을 둔 이공학 개념만 무지하게 많이 가르칩니다. 이 점은 영국, 미국 등과 확연히 구별되는 '형식주의' 입니다. 
 
 
 
배성원 (2004-05-25 15:30:23) 
 
정출연에도 비슷한 것이 있습니다. 자녀가 다니는 학교에 가서 '일일교사' 인가 뭔가 하는건데요.
그렇게 활성화 되지 않고 있는거 같습니다. 학교에서 먼저 요청이 와서 하는건지도 모르고요. 대덕 인근의 학교에선 좋은 활용예가 될거 같기도 한데 말입니다. 
 
 
 
노홍선 (2004-06-01 12:42:22) 
 
예전에 이면우 씨가 말하던 축전지 이론 이라는 말과 같은뜻이네요..

저도 정말 공대인들이 연구도 중요하지만 자신이 하는것을 일반인들에게

알기쉽게 설명할수 있는 능력을 기르는 것도 중요하다고 생각합니다.

근데 웃긴건 이런능력을 기른다고 ABEEK(공학인증제도)을 시행해서

필수교양을 만들어 놓았던데 오히려 그런 능력이 늘기보다는 엄청나게

지리한, 그리고 교수님들도 일반 타교양과는 달리 거의 무성의하게

강의를 하시는것을 느끼겠더군요...

뭐라할까..논리적 설득력을 배우기보다는 성질 죽이는걸 배우고 왔다고

나할까요..ㅠ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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