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벨상 프로젝트로 보는 한국과학기술정책의 난맥상 - 김인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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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cien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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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4-12-30 17: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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히딩크가 한국팀을 이끌고 월드컵 4강에 올랐던 일은 ...이유여하를 막론하고 대단한 일이고 엄청난 일이다. 전 세계가 부러워한 것도 사실이고, 공동개최지인 일본은 이 일을 계기로 한국에 대한 인식이 크게 달라져 현재의 한류의 기원이 된 것도 사실이며, 커가는 용 중국이 덩치에 맞지 않게 질투를 부려 추한 티를 냈던 일도 아직 생생하다.

그러나 히딩크 이후 한국축구는 어이없는 동네북으로 전락했다. 베트남, 오만, 몰디브...지도에서 찾으라고 하면 잘 찾지도 못할 나라(비하하는건 아님)들에게 번번이 바보가 되었고 명장이라고 추켜세워 초빙했던 움베르토 쿠엘류는 계약기간도 못 채우고 경질당했다. 이 글을 쓰는 13일 오늘밤에는 레바논과 월드컵 예선전이 열리는데 레바논에게 질까봐 전전긍긍하는 현실이 히딩크 이후의 한국축구의 모습이다.

월드컵에서 4강을 달성한 일은 대단한 일임에  틀림없지만, 애석하게도 우리에겐 이러한 대 사건의 맥을 이을 기반 즉 인프라 자체가 너무 부족하다. 그래서 83년 세계 청소년 선수권이후에도, 94년 미국월드컵에서의 선전에도, 2002년 월드컵 4강이후에도 한국축구는 여전히 축구강국들에겐 만만한 상대로 남아있다. 왜? 인프라를 세울 생각은 하지 않고 체면치레만 생각하느라 일회성 행사에 역량을 너무 소진한 탓이다.

정확히 한국축구가 보여주는 모습이 우리나라 과학정책자들이 하는 일이다. 이번에 정부는 노벨상을 탈만한 과학자 10여명을 선장하여 집중 육성하겠다는 계획을 발표했다.

"..................과학기술부 고위 관계자는 “세계적으로 우수한 연구성과를 내고 노벨상 수상 가능성이 있는 과학자를 국가 차원에서 집중 관리·지원하자는 취지”라며 “일단 10명 이내에서 선정하는 안이 논의되고 있다”고 말했다........" (10월 2일 뉴스)

정책관계자들은 노벨상에 목말라있다. 세계 10대 교역국중 하나로, 유능한 인제를 키운다는 나라로, 동북아시아에서 중국과 일본사이에서 균형조절자로 등등 다양한 긍정적인 비젼을 생각하면서 국가이미지 제고와 쇄신에 반드시 노벨상이 들어가야한다고 믿는 것이다. 즉 노벨상은 국가의 이미지를 강국으로 형성시키는데 일조한다는 생각에만 빠져 기초과학및 공학의 특징과 원리를 개무시하고있는 것이 현실이다.

필자가 현재 포닥으로 일하면서 느끼는 논문 쓰는 방법은 두가지다.
하나는 논문이 될거리의 실험만 골라서 하는것이다. 다른 하나는 실험자체의 과정을 하나의 단계로 인식하고 과학의 필수요건인 '왜, 어떻게'를 충족시키는 과정에서 얻은 데이터들을 모아서 해석하는 것이다.

이와 같은 베이스에서 필자가 생각컨데 한국에서 노벨상이 나오는데는 두가지 방법이 있다.

하나는 이번의 경우와 같이 될만한 놈을 집중적으로 키워서 한놈을 건지는것이다. 대신 나머지 놈들은 대체로 버림받는다는 표현이 맞겠다. 왜냐하면 과학예산의 특성상 없는 것을 만들어주지는 않고 있던것을 요리조리 모아서 즉 남의 것을 빼앗아서 한 곳에 몰아주기 때문이다.

다른 하나는 될만한 딱 몇놈에게 투자하기보다 기초과학의 인프라 자체를 늘리는 것이다. 이 일은 시간이 많이 걸린다. 그리고 당장 어떤 정책적인 빛을 보기는 어렵다. 다들 아시겠지만 과학기술은 하루아침에 성장하지 않기때문이다. 그러나 한가지는 보장할 수 있다. 한국이 과학강국이 되는 것이다. 그리고 과학강국은 필연적으로 기술강국으로 연결된다. 이건 내가, 그리고 우리가 보장한다.

지난 몇년간 SCI논문이 한국에서 몇편 나왔는지를 보고 한국을 과학강국이라고 쉽게 단정하지 않는다. 도대체 그중에서 정말 실험다운 실험, 과학다운 과학으로 나온 논문이 얼마나 되는지는 당사자들인 우리가 더 잘 안다. 그만큼 이 나라는 눈에 보이는것에 집착하는 경향이 있다. 논문수로 몇편이니까, 우리는 10대 강국 이런식이라는거지. 그런데 왜 우리는 아직도 수천억불의 로열티를 해마다 일본에 미국에 프랑스에 퍼주는 것일까. 좋은 논문을 쓸 생각에 좋은 과학을 할 생각, 좋은 환경을 만들 생각, 좋은 인프라를 구축할 생각이 없어서는 아니었나? 그래서 이공계로 해마다 지원자는 줄어들고, 그 많은 학위가진 양반들이 학원강사로, 특채 공무원으로 몰려들어도 정책자들의 머리에서 나오는 생각이란 기껏 해외에서 학위받는 사람들에게 돈이나 더 쥐어주고, 병역특례들 시간 조금 더 단축시켜주고(젠장 이거에 대해서도 할말 진짜 많다),  언론에 좀 유명하다는 과학자 몇명 데려다가 '이공계 해도 잘 먹고, 좋은 차 굴리고 잘 살아요'이딴거나 보여주는거 아닌가? 과학자들이 정말로 원하는게 그거라서? 착각도 대단한 착각이다.

경영자에게 기업하기 좋은 환경을 만들어달라고 난리다. 그래야 나라 경제가 산다고. 근데 왜 과학은 다 죽어가는데 과학하는 환경을 좋게 만들어줄 생각은 안 할까? 그나마 뿌려진 작은 프로젝크들 긁어모아서 조만간 노벨상 탈만한 몇몇에게 돌려줄거라면서, 정말로 인프라와 기반을 생각하기는 하는걸까?

100억 정도의 돈이 간다고 생각해보자. 내가 알기로 어느 좀 나간다는 교수님의 연구실이 일년에 굴리는 돈이 4억수준이라고 들었다. 이정도면 그만한 랩이 굴러간다는 이야기다. 100억이면 그만한 연구실 25개를 일년간 굴릴 돈이다. 이걸 다 거두어서 한 곳에 주겠다고, 그래서 노벨상 한번 타서 유세하겠다고 생각하는 과학정책 담당자들....그들을 생각할 때마다 한숨이 저절로 난다.

인프라와 배경이 살아야 과학이 산다. 남들에게 보이는게 중요한게 아니라, 그 터전 자체를 유용하고 쓸만하게 만들어놓는것, 그것이 지금 과학정책에 반영되어야할 가장 큰 요건이다. Master's game이라는 대회를 아는가? 전세계의 아마추어 체육인들이 모여서 하는 일종의 올림픽이다. 이 대회에선 항상 독일이 우승을 한다. 그 독일은 이러한 비전문 체육인들의 아마추어리즘을 인프라로하여 엘리트 체육에서도 성공을 거두고있는 것이다. 국가대표축구팀 키우는데 백억씩 들이 붓느라고 변변한 잔디구장 한없이 애들에게 뛸 것을 강요하는 문화로는 축구에서 종종 신화는 일어날지 몰라도, 진정한 축구강뮌?되기는 어렵다. 이런면에서 오래동안 말없이 소리없이 과학을 육성하고 키워온 일본은 지금 그 결실을 보는중이다.(일본에게 노벨상 프로젝트가 없었냐하면 그건 아닌데, 그렇다고 기초과학계 자체를 이분화시키지는 않았다)

장담하는데 이런식으로는 노벨상 한번 타고나면, 그걸로 끝이다. 4강 이루고나서 동네 북된 한국축구모양 그대로이다. 과학하는 자들이 원하는것은 동등한 대우가 아니라 합당한 대우이다. 또한 일하기 좋은 환경이다. 맨날 아침에 나와 밤 12시에 들어가도 쿠사리 먹고사는 판에 더 이상 정신력 운운하면서 노벨상 따라고 닥달하지 말아달라. 개천에서 용나는거? 그거 별로 좋은 일 아니다. 왜냐하면 맑은 물에서는 수많은 크고작은 고기가 놀지만, 개천에서 난 용은 아주 가끔 일어나는 일이거든.

PS>선정이 예상되는 몇몇 유능하신 분들의 업적을 비하할 마음은 전혀 없음을 밝힙니다.


 
 

 
 
김영민 (2004-10-13 23:42:22) 
 
아..너무 가심에 와 닿는 말이군요.
대가리들이 인프라를 구축하지 않는 것은 당연하다고 봅니다.
자신이 이득볼것이 전혀없고 돈은 들어가는데 성과는 안나오니(실제적으로 기반이 튼실해지고 있으나 알지못하죠.) 더 윗대가리한테 질책당하기 쉽거든요.
차라리 노벨상을 타기위한 프로젝트!! 라고 짜잔!~ 하면 윗대가리들도 "얼~ 노벨상 그거 좋은거잖아." 한번 해봐 라고 할겁니다.

왜 이나라 관료들은 나라를 어떻게 하면 더욱 부강하게 할까~ 그 방법은 무엇인가~ 이런걸 생각하지 않는거죠? 관심이 없다라고 보는게 맞는 것 같습니다. 내가 지금 매달 월급 꼬박꼬박 나오고 시간 지나면 승진 착착되어서 늙어죽을때까지 잘 살 수 있는데 굳이 모험을 할 필요성을 못느끼는거죠. 
 
 
 
김영민 (2004-10-13 23:46:36) 
 
과학기술의 실질적인 이득은 시간이 오래걸리고 처음엔 별로 티도 안나고 돈만 들어붓는듯한 느낌이 들므로 당장 뭔가 명분을 찾는 관료들에게는 필요없는겁니다. 
 
 
 
김영민 (2004-10-13 23:48:42) 
 
노벨상 프로젝트가 성공하여 노벨과학상 수상자가 나오면 뭐합니까
이미 기반이 붕괴되어 더이상 손도 못쓰는 불구가 될텐데,
아마 노벨상 수상자는 외국에서 러브콜하여 외국으로 가겠죠.
그때 매국노 어쩌고저쩌고하면서 또 난리칠테고..

음..저혼자 소설을 썼네요.
 
 
 
 
김영민 (2004-10-13 23:54:52) 
 
또 한가지..이건 다른 이야기이지만...
현재 우리나라에선 경기가 어렵고 이공계에 투자할 돈이 별로 없어서 여기저기 찔끔찔끔 나눠주는 꼴인데요.
한국 고속철 공사때 선로의 부실공사로 몇조원이 추가로 들어갔잖습니까? 그돈을 이공계에 투자했으면...하는 생각을 자주합니다.
뿐만아니라 관에서 행하는 사업의 부실이나 저효율성을 개선해 나간다면 돈은 충분히 만들어질거라고 봅니다.
(행정실수로 도로를 만들다말고 다시 갈아엎는다, 대규모 공사에 대규모 부실로 보수비용만해도 엄청나다... 이런 기사보면 총으로 갈기고 싶은 심정이 한두번 아닙니다.) 
 
 
 
lemon (2004-11-09 12:21:14) 
 
이웃나라 일본의 예를 들어보겠습니다. 지금까지 노벨화학상을 4명이 받았는데요, 양자화학의 후쿠이, 전도성고분자로 시라카와, 비대칭 합성으로 노요리, 그리고 유명한 MALDI분석법의 다나카입니다. 일본 언론들은 노벨상 수상 시즌이 되면 수상할만한 사람들의 리스트를 뽑아 수상했을 때 바로 기사를 쓸 수 있게 필요한 데이타를 모아두고 기자들을 수상 예상자들의 집에 파견해서 수상소식과 함께 바로 취재할 수 있도록 하죠(올림픽 금메달 후부 집에 미리 갔다가 수상하면 부모님이 좋아하는거 보여주거 하는거랑 같죠). 그런데 노요리 교수를 뺀 나머지 세사람은 전혀 노마크 였었습니다. 즉 전혀 수상할 것을 예상하지 못해서 수상소식이 전해지자마자 각 신문사들은 수상자 관련데이타를 찾느라 개발에 땀났었습니다. 시라카와 선생의 경우 일본내에서 받은 상이 아주 작은 상 딱 하나뿐니었다고 합니다. 그래서 노벨상 수상직후 일본화학회가 부랴부랴 무슨 큰 상하나 만들어서 허둥지둥 수상한다고 하자 시라카와 선생이 거부했었죠. 결론은 뭐냐하면 노벨상이란게 특정인을 밀어준다고 탈 수 있는게 아니고 위에 여러분이 지적하였듯이 과학기술 전반의 인프라를 높여서 많은 분야에서 골고루 좋은 연구성과가 나올 수 있도록 해야지 가능성이 있는 것이죠. 옛날에 김영삼대통령때 우리도 노벨 상이라는 가치아래 고등과학원이라는 걸 지었는데 지금 어떤지 모르겠습니다. 정권 바뀔 때 마다 비슷한 퍼포먼스가 있군요. 위정자들은 아마 자기 임기 내에 노벨상 수상자가 나왔으면 하는가 봅니다. 
 
 
 
놀자박사 (2004-11-21 14:25:35) 
 
노벨상 받는거 간단합니다!! 대한민국 공무원들 특히 고위공무원들 제발 아무일도 하지말고 가만히 계십쇼..가만 놔두면 다들 알아서 잘 합니다!!
공무원들이 아무일도 않하면 우리나라 선진국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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