잡설... - 사색자

글쓴이
scieng
등록일
2004-12-30 17: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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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건
제가 지난 1년간 영업포닥으로 뛰면서 그리고 최근에 어떻게 회사에서 펀딩 좀 받을려고 프로포잘도 좀 끄적이고, 사업해볼까하는 간큰 생각도 해보면서 느끼는건데... 여러분들 혹시 이런거 느껴보신적 있는지 모르겠습니다만...


첫번째... 아, 이 아이디어 참 쌈빡하다... 라고 자아도취에 빠져본적 있습니까? (거울아, 거울아, 이 세상에서 누가 제~일 쌈빡한 아이디어 내니? 하고 저는 매일 거울에게 물어본다는 전설아닌 전설이... *^^*) 이 아이디어 저는 정말 대단해보이는데 웬지 세상이 진흙속에 묻힌 진주를 못알아보는건지 아니면 혼자 자아도취와 나르시즘에 중독되어서 자기 혼자 대단하다고 착각하고 있는건지 헷갈린다는...

두번째, 그런데, 어떤 아이디어를 실현하는데 혼자서는 힘들고... 라이너스 폴링이나 아인쉰타인 할배 혹은 파인만 아저씨 정도면 몰라도 저같은 평범한 인재는 다방면으로 수퍼맨되긴 그렇고 각 방면이 전문가들의 조력이 필요한데, 아이디어만 질질 흘러나오고 도저히 이걸 어떻게 구현할지 막막하다는... 혼자 북치고 장구치다가 제 풀에 지쳐서 헤롱거린다는...

세번째, 아이디어의 독창성을 검증하기 위해 특허검색을 하다가 보니깐... 참 세상에 나만 잘난게 아니구나... 나만 똑똑한게 아니구나하는 사실을 알고서 담배 한대 빼어무는 심정...

네번째, 이런저런 광범위한 분야에 대한 기술적 문제에 대한 조력을 얻기 위해 소위 '인맥' '휴먼 네트워크'가 필요한데 여기저기 수십군데 접촉해도 반년간 건진 소득이라곤 없고... 지도교수에게 이 사람에게 도움을 청해보면 어떨까... 상의를 하면 '그사람은 너무 자기것만 챙긴다. 그사람은 접자...' -,.-
아... 여기서 소위 정치나 외교적인 뭔가가 좀 필요하구나...

다섯번째, 뭐 시약하나 얻는 것도, 회사에 무슨 도움하나 청하는 것도, 프로포잘 써서 회사에 넣어보는 것 등등... 하다보니 일개 포닥이 접촉해서 뭐 하나 오거나이징해서 해볼려니 잘 안되네요. (just one little tiny grain of sands on the beach = 사색자, 즉 듣도 보도못한 별볼일 없는 넘이 이상한 아이디어를 가지고 프로포잘 써서 기웃거리는 형국...)
참... 후광이나 유명세가 좀 필요하다는 느낌...

여섯번째, '이 아이디어 쌈빡하다. 사업 함 해보자!'라고 그러니깐 '흠... 그거 장사 되겠어? 비즈니스 플랜이 영 부실하네. 세상에 좋은 아이디어는 넘치지만 그거 상업화하는 것은 다른 문제지. 이거 쓴게 꼭 리서치 프로포잘 같잖아? market validation 좀 더해봐야되지 않겠어? 어플리케이션 범위를 좀 좁히고 어쩌고 저쩌고...'

과학기술로 세상이 돌아간다고하지만 그 과학기술이 탄생하고 시장에 등장해서 살아남는데는 엔지니어나 사이언티스트의 노력 외에도 비즈니스라는 최대 고비가 도사리고 있다는...

맨날 실험실에 박혀서 실험만 했는데 마켓 조사나 경제/시장성 조사를 하라고 하는데 해볼려니 무지 막막하다는... 도대체 다른 장비들의 가격은 고사하고 실제 생산 비용 비교같은 것은 어떻게 해야할지... 그거 회사에 물어보면 '우리 장비의 생산비용은 얼마가 들고...' 이렇게 나온다는 것인지?

비즈니스가 결국 남의 돈 끌어다가 자기가 쓰면서 사업하겠다는  것이니깐 남의 돈 끌여드는 것만큼 치열하게 고민하고 조사해야된다는 것은 압니다만...

요즘 비즈니스하는 분들, 자기 사업하는 분들, 참 대단하다는 생각이 문득 들더군요. 과기인만큼이나 치열한 삶을 사는 사람들이라는... 과학기술 하나만이 전부가 아니다라는 생각이 듭니다.
(우리끼리니깐 이런 이야기합니다. 돌던지지 마시길... *^^*)


몇년전 같이 실험실에 있었던 영국 포닥 똘똘한 놈, 자기 사업 시작한지 몇년되었는데... 사람이 노력하고 자기 똑똑하고 그런다고 세상이 알아주는게 아니라는게 새삼 느껴집니다. 가끔씩 그 포닥친구가 실험실에 오는데, 하루는 진짜배기 영업전담할 놈 하나 뽑아야겠다고 이야기하더군요. 어느정도의 기술이 밑받침된 이후에는 비즈니스가 최대 관건이라는...

자기사업해서 자수성가하신분들... 때도 맞아야하고 운도 작용해야하지만 사업을 시작하는 단계에서의 결단력, 그리고 그것을 밀고나가는 추진력 등등... 저같은 새가슴가지고는 좀 힘들거 같다는... 이래저래 자기사업으로 자수성가하신 분들 새롭게 보입니다.

일곱번째... 공돌이 문돌이 이러는데... 알고보면 다 하나의 큰 배에 같이 탄 운명공동체라는... 과기인인 내가 모자라는 영역을 영업하는 분들이 커버해주고, 뒤에서 좀더 원활한 비즈니스가 되도록 과기인들은 지원해주고, 그 지원으로 영업인들은 다시 이익을 내도록 노력하고, 그 노력을 이용해서 과기인들은... 네버엔딩 스토리...

이 생각을 하니깐... 입, 손, 위가 서로 싸우는 동화가 기억납니다. 손이 맛난 음식을 입으로 가져가면 입은 그 맛을 즐기면서 씹어서 넘기고 위는 입이 씹어넘긴 곤죽이 된 음식을 소화시키면서 불평을 합니다. "난 왜 맨날 이렇게 곤죽이 된 음식만 소화시켜야하는거야?" 그러니깐 손은 "난 왜 맛도 못보면서 맨날 입 좋은 일만 하지?" 그리고 파업해버립니다. 결국 입으로 들어오는 음식이 없으니 위도, 손도 점점 힘을 잃어간다는...


그냥 오늘 센티멘탈해져서... 기술개발하시는 과기인여러분도, 영업하시는 분들도, 지원부서분들도, 행정부서분들도 모두 자기 고유의 역할을 인지하고 자기 맡은 바 열심히 하시면서 사이좋게 지내면서 파이팅하시길... 대동단결의 그날이 올때까지~

*^^* 아, 오늘 진짜 드럽게도 의사, 치과의사, 약사 고교 친구들이랑 곰장어랑 참이슬이랑  마시고 싶네... (이상하게 제 진짜 친한 고교친구들은 모두 성형외과의사, 약사, 임플란트/교정 전문 치과의사가 되었다는... 그 친구들 아낙들은 해외에서 포닥하는 저를 부러워하지 않을까??? 세상은 요지경이네요.)


 
 

 
 
사색자 (2004-09-18 10:55:30) 
 
인맥이야기가 갑자기 나온 이유는... 거의 반년간 이리저리 조력을 얻고자 했는데 얼마전부터 대만의 교수가 꽤 긍정적으로 나오고 있습니다.

웬일이지 별꼴이 반쪽이네... 이러고 있던 차에 알고보니깐 그분이 저랑 같은 학교, 같은 과 출신이더군요. 이분도 영국에서 학위를 했거든요. 저는 석사를 그쪽에서 했고. 그러다보니 누구 아냐 뭐 이렇게 나왔고 그 분은 잘 안다... 뭐 이런식으로 나오고... 그러다보니 제가 도움이 필요한 부분을 한번 도와주도록 노력해보겠다... 말만으로도 고맙죠.

참내... 이런식으로 가닥이 조금 잡혔습니다. 물론 뚜껑은 열어봐야 알겠지만서두...

한국의 회사들하고 프로포잘 엮어볼려고 이리저리 북치고 장구 치는데, 이상하게 영국의 회사들하고는 북도 안쳐지고 장구도 안쳐지거든요. 지도교수 분석으로는 제가 영국의 회사들과 네트워크가 없어서 그렇다는... (흠... 그럼 네가 좀 도와주지 그랬니? 당신 영국사람 아냐? 그리고 난 한국에 안면 트인 네트워크 없어. 그냥 들러붙어서 사정하는거지...라고 속으로 반말하면서 생각했다는 전설이 있습니다. 영어... 어차피 반말 아닙니까? 저 지도교수보고도 당신(you) 어쩌고 이럽니다. *^^* )


얼마전에 다른 대학에서 방문객들이 와서 미팅을 했는데.. 그분들은 좀더 물리/수학쪽에 가깝습니다. 그러니 어플쪽에 가까운 교수랑 협력을 하고자 하는데... 나중에 이런 말을 하더군요. "우리하고 같이 협력하다가 나중에 페이퍼에 acknowledgements에만 넣는 식으로 팽하지 말고... 페이퍼 나오면 이름도 같이 올리고 좀 그래줘..."

교수는 "결과가 일단 나오면 그걸로 같이 프로포잘 넣어보지."
(아자, 우리편 이긴다...라고 기뻐해야하나???)


네트워크... 정치... 돈... 학문... 요즘 난 정치적이어야하나 아니면 학문적이어야하나... 심히 정체성을 잃고 헤롱거리는 중입니다. 갑자기 대학울타리를, 혹은 회사의 R&D의 울타리를 넘어서면 나는 무엇을 할 줄 알까... 하는 두려움도 듭니다. 내가 모르는게 단순히 학문적인 것만이 아니라 세상에 대해서도 모르는게 너무 많다는 자각을 하게 된다고나 할까요? 아... 곰장어랑 참이슬이여... 오늘 센티멘틀해져서 주저리주저리 횡설수설만 실컷 하다 갑니다. 사노라면 이런날도 있듯이 언젠가는 저런날도 있기를... 
 
 
 
사색자 (2004-09-18 11:19:45) 
 
참, 요즘은 벤처붐이 사그라들어서 대학교수들이 벤처를 겸하는 케이스가 거의 없을거라고 생각됩니다만... 이전에 교수들이 벤처를 겸하는 케이스가 꽤되었으리라 봅니다. 그런데, 사업이란게 목숨걸고 죽자사자해도 될똥말똥인데, 한다리 안전하게 대학에 발담그고 다른 한다리는 벤처에 걸친채로 한다는게...

요즘은 안그러리라 봅니다. 그렇죠? 
 
 
 
김재호 (2004-09-18 11:21:58) 
 
뭘 하든지 간에 인맥 정말 중요합니다. 한사람이 아무리 똑똑한들 (정

말 아인슈타인이나 파인만 정도면 몰라도) 열사람을 당해낼수는 없다

소 생각합니다. 시비 걸려고 하는 말은 아니지만, 이공계에 종사하시는

분들, 특히나 아직 직장경험이 없는 학생분들은 더더욱 "나만 똑똑하고

내가 공부만 열심히 하면 되지." 라고 생각하거나, 아니면 "인맥은

정말 중요하지." 라고 생각은 하면서도 인맥을 관리하는 것을 실천은

안하는 분들이 많더군요. 인맥관리하는 것도 쉬운일이 아니고, 이곳에

계신 많은 분들이 "문돌이들은 할줄아는건 없으며 인맥에만 연연하고

매달리고 또 그런것으로 많은 이득을 보는데 정말 불합리하고 납득할

수 없다." 하시는 분들도 여럿 있지만, 실제로 인맥관리라는게

신경도 정말 많이 쓰고 돈도 꽤나 깨지고.. 쉬운일이 아니라는 겁니다.

그리고 쉬운 일이 아닌것인 만큼 그에 대한 대가도 상당하니, 많은

분들이 어려서부터 그점 유념하고 인맥관리를 잘하셧으면 좋겟습니다.

공무원에다가 문돌이인 제 아버님.. 명절때 되면 그 전 주말에 휴일에

어디 놀러가거나 쉬지도 않고 몇시간씩 앉아서 손으로 일일이 카드를

써서 50 여장 정도 친한 사람들에게 보내더군요,... 단순히 비싼 선물

보내는것보다도 그런 노력이 중요할듯...


저두 그냥 잡설이네효 ^^;; 
 
 
 
이승철 (2004-09-18 18:58:34) 
 
사색자님.. 전 늘 그러고 산다는 -_-;;
자아도취에 빠지면 몇 달 행복하죠. 뽕맞은 사람처럼 몇 달을 정신없이 일을 하다보면 빵구난 부분이 보입니다. 제 능력으로 할 수 없는 일들..
운이 좋으면 서쪽에서 귀인을 만나 빵구를 채울 수 있지만 운이 안좋으면 광야에서 목놓아 외치는 선구자신세로 몇 달 외치다가 제풀에 지치더군요. -_-;;

특히 제가 하는 분야는 이론계산 분야라 뭔가를 정말 만들어서 보여주려면 실험하는 사람과의 공동연구가 필수적입니다. 근데 제가 하는 일과 실험하는 사람이 바로 연결되기가 참 힘들더군요. 거기다가 저도 아직 쫄따구의 신분이라 어디가도 아는 척 하는 넘들도 없고.. 젊은 나이에 아이디어가 많다고 좋은 것 만은 아니라고 생각합니다.

실험하는 사람의 조력을 받기 위해서는 인맥이 정말 중요하더라는..
제가 있는 곳의 보스도 학계에서 잘하는 사람이긴 하지만 뛰어난 사람이 아닌데 인맥은 장난이 아닙니다. 거의 한국으로 치면 마당발 수준이더군요. 여기 저기 아는 사람은 왜그리 많은지..
솔직히 여기 있으면서 자존심 상하는 일들도 많긴 하지만 그 사람의 인맥을 조금이라도 이용해 보려고"충성"을 바치고 있습니다. 약소국의 비애를 씹으면서요.

사색자님은 뭘 할 때 마다 돈이 없어서 힘들다고 하셨는데 저는 학위과정때 한 프로젝트 시작해서 뭔가 해보려고 하면 다른 프로젝트 프로포절쓰고 그거 간신히 쓰고나면 다른 프로젝트 프로포절쓰고 해서 프로젝트에 진절머리가 난 적이 있습니다. 차라리 과제를 안하고 살면 어떨까 하는 생각까지 했었으니까요.

과제란게 잘하면 약이고 잘못하면 독인거 같습니다. 저는 개인적으로 학위과정때부터 돈없이 연구하는 거에 너무 익숙해져서 과제가 많으면 싫더군요. -_-;; 

  • Khaeley ()

     
    아직 직장경험이 없는 학생분들은 더더욱 "나만 똑똑하고 내가 공부만 열심히 하면 되지." 라고 생각하거나, 아니면 "인맥은 정말 중요하지." 라고 생각은 하면서도 인맥을 관리하는 것을 실천은 안하는 분들이 많더군요.

    이 말 완전 공감입니다. 제가 그래요 제가. 쥐뿔도 없으면서. ㅠ_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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