반기업정서는 없다

글쓴이
REVOLUTION
등록일
2004-07-25 20:4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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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성장과 신용불량자 등의 문제가 지속된다면 동북아 허브는커녕 3~4년 안에 중국 변방의 위치로 떨어질 수도 있다.”
“우리나라는 전세계에서 가장 규제가 많은 ‘규제 백화점’이다. 누군가 더 많이 가져가면 누군가 덜 가져갈 수밖에 없다는 것은 농경사회 논리다.”

재계가 올해 의욕적으로 펼치고 있는 시장경제 교육 현장에서 강사로 나선 재계 인사들의 발언록이 요즘 심심찮게 얘깃거리를 만들고 있다. 전국경제인연합회(전경련)가 사회협력위원회라는 전담기구까지 만들어 추진하고 있는 이 교육사업의 가장 중요한 목표는, 반기업 정서 해소다. 기업 이해도를 높여 기업하기 좋은 환경을 만들어보겠다는 취지다. 교육 대상도 학생, 교사, 학부모, 법조인에 이르기까지 광범위하다. 여름 방학이 시작된 이번주에는 전경련과 대한상의가 경쟁하듯, 각각 교사들을 대상으로 한 교육을 동시에 진행하고 있다. 전경련이 예정해 놓고 있는 올 한 해 교육 인원은 5만명이나 된다.

반기업 정서가 도대체 어느 정도이길래, 이렇게 대대적인 사업에 나서고 있는 걸까 기업인 스스로 매긴 국민의 기업 호감도는 55점, 일반 국민이 매긴 기업 호감도는 39점이다. 앞의 것은 100대 기업 최고경영자(CEO)들에게, 뒤의 것은 전국 성인 남녀 1000여명에게 물어본 결과다. 특히 일반인들이 매긴 윤리경영 점수는 14점(100점 만점)에 불과하다. 그래서 재계 스스로 내린 결론은 ‘세계 최악의 수준’이다.

정경유착, 분식회계, 문어발 확장, 족벌·세습경영 …. 마치 연상 퀴즈처럼, 재벌하면 거의 반사적으로 떠오르는 이런 이미지들이 냉혹한 평가를 내리게 한 열쇳말들이다. ‘차떼기’ 수법으로 유명한 첩보작전식 불법 대선자금 수수, 대마 불사의 문어발식 성장을 추구하다 빚어낸 22조원대의 대우그룹 분식회계, 청와대에서 대통령과 재벌 총수들이 주고받은 천문학적인 규모의 전·노 비자금, ‘왕자의 난’이란 별칭까지 얻은 족벌·세습경영의 뒷골목 풍경 등등 사실 몇가지 열쇳말만 들이대도 그와 관련된 숱한 사건들이 꼬리를 물고 이어지는 게 우리 현실이다. 그 몸통이 재벌임은 두말할 것도 없다. 결국 혐오감의 실체는 ‘반기업’이 아닌 ‘반재벌’인 셈이다.

그렇다면 해법도 자명하다. 무엇보다 재벌들의 성역이 없어져야 한다. 하지만 현실은 아직 이와 거리가 먼 듯하다. 불법 대선자금 수사의 경우만 보더라도 그렇다. 4대 그룹이 뿌려댄 돈만 따져도 700억원이 훌쩍 넘지만, 회삿돈이 아닌 개인 돈인데다 아랫사람이 멋대로 쓴 것이라는 이유로 정작 재벌 총수들은 면죄부를 받았다. 검찰 논고대로 “오너 개인의 지배구조 확장을 위해 부당 내부거래를 하고 천문학적 분식회계를 한” 어느 재벌 총수도 슬그머니 옛자리로 돌아왔다. 검찰 소환 기미를 알아챈 한 재벌 총수는 올해 초 황급히 미국행 비행기를 탄 뒤 지금까지도 돌아오지 않고 있다. 이런 상황에 교육사업이 얼마나 효과를 거둘 수 있을지 의문이다.

‘반기업 정서’ 해소의 최상책은 재벌 스스로가 변화된 모습을 보여주는 것이다. 몇몇 재벌들에게나 해당되는 출자총액 제한제도 따위가 이 나라 기업 전체의 현안인양 포장해 여론몰이를 하는 식으로는 국민의 마음을 잡아끌 수가 없다. 독점적 지위를 누리면서도 규제가 많다는 타령만 하는 것은 아무래도 볼썽사납다. 강자의 논리를 앞세운 재벌들의 탐욕 앞에서 얼마나 많은 기업인들이 꿈을 접어야 했던가.

다행히 최근 들어 재벌 내부에서 사회 책임경영이나 윤리경영, 지속가능 경영 등의 목소리가 점차 높아지고 있다. 그만큼 사회의 따가운 시선을 의식하기 시작했다는 징표다. 하지만 여전히 한켠에서는 과거 개발독재 시절에 대한 향수도 엿보인다. 변화된 사회환경을, 기업의 새로운 생존조건으로 받아들이는 재계의 인식 전환이 필요한 때다. 이를 위한 교육 프로그램을 추진하는 것이, 큰돈 들어가는 대국민 교육사업보다 훨씬 경제적이지 않을까

곽노필 경제부 차장 nopil@hani.co.kr


  • 김선영 ()

      제게는 다른 나라 기업들은 냅둬도 알아서 윤리경영, 책임경영을 하지만, 우리나라는 그렇게 하지 않아서 규제가 생겼다로 보이네요. 그러게 미리미리 잘하지... 소잃고 외양간 고치고 있긴...

  • kalp ()

      글 읽는 내낸 실실~~ 웃고 있습니다. ^^;;;
    밤샘해서 그런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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